철벽의 라익
"해피 벌스데이 투 유~ 해피 벌스데이 투 유우~"
2032년 1월 10일 오후 2시.
더 스카이 스타디움.
약 8천 명 팬이 모여 생일축하 노래를 열창했다. 주인공은 당연히 만 17세 생일을 맞이한 도라익이다.
신축한 5만6천 명을 수용하는 뉴 스카이 스타디움은 공사가 끝났지만 약 1개월 동안 안전 검사를 해야 한다.
문제가 발견되면 부분적으로 재공사를 해야 하는 건 맞지만, 자체 검사로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기에 2월 하순부터 새 경기장을 사용할 가망이 크다.
새 구장이 아직 정식으로 사용 허가가 안 난 이유도 있고, 낡은 구장과 추억 하나라도 더 쌓으려는 생각으로 도라익의 생일을 더 스카이 스타디움에서 치렀다.
이젠 한 경기 치르면 한 경기 적어지는 더 스카이 스타디움이다. 그리고 빠르면 4월, 늦으면 5월에 경기장을 허물고 토지를 시 정부에 넘겨야 한다.
그렇게 되면 뉴 스카이 스타디움은 100% 스토크시티 구단 소유가 되지만, 동시에 낡은 구장은 영원히 사라지고 기록과 기억으로만 남는다.
생일축하 노래가 끝나자 거대한 케익이 등장했다. 도라익의 침대보다 더 큰 케익엔 1미터 길이의 촛대 17개가 꽂혔다.
스토크시티 선수들이 긴장한 얼굴로 공 앞에 섰다. 가장 먼저 공을 찬 사람은 도라익이었다.
"와우!"
도라익이 찬 공에 맞아 촛대 두 개가 부러졌다. 입으로 불어서 끄는 개념이 아니라 공을 차서 촛대를 부러뜨려야 하는 특별한 생일 케익이었다.
두 번째 주자는 타이먼이었다. 크로스는 별로여도 방해를 안 받는 프리킥은 곧잘 차는 타이먼이지만, 긴장했는지 촛대를 맞히지 못했다.
덕분에 한 바퀴 돌고도 촛대 3개가 남았다.
2라운드에서 도라익이 하나 맞히고 타이먼이 하나 맞혔다. 그리고 마지막 촛대는 1라운드에 공을 케익에 박고 팬들의 야유를 들은 제임스가 해치웠다.
"축하해 제임스."
저녁에 선수와 스텝들만 모이는 파티의 계산은 제임스가 모두 부담하는 거로 결정되었다.
거대한 케익은 수천 개 작은 조각으로 잘려져 구장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눠 먹었다. 그리고 축구 팬과 선수들의 미니 경기가 있었다.
5인조 경기장 여럿으로 나눠 동시에 경기를 진행했다. 페널티로 프로 선수들은 인형 탈 알바들이 신는 커다란 신발을 신고 팬들은 제대로 된 축구화를 신었다.
그럼에도 프로의 벽은 높아 딱 한 경기장을 빼고 모두 선수들의 승리로 끝났다.
경기에서 승리한 팬들은 사인 유니폼과 사인 공 외에도 선수들이 신었던 축구화를 선물로 받았다. 패배한 팬들은 축구화 빼고 유니폼과 공만 받았다.
행사가 다 끝나고 주인공 도라익이 마이크를 잡았다.
5인조 경기에서 수비수로 뛰며 무실점 경기를 이끈 대신 동료들의 거센 비난을 샀지만, 철면피를 두르고 꿋꿋이 버텨낸 철벽남이었다.
"여러분의 지갑을 털고 싶습니다."
도라익의 연설은 다소 뜬금없었다.
"티켓값이 비싼 유로파 경기를 하나라도 더 보게 만들고 싶습니다."
그제야 도라익의 뜻을 이해한 팬들이 환호와 박수로 호응했다.
"만약을 대비해 결승전 티켓이랑 밀라노로 갈 비행기 티켓값도 모아두세요."
팬들의 환호가 커졌다.
사실인지 거짓인지 확인이 어렵지만, 1월 1일부터 도라익의 이적에 관한 루머가 매일 생산되었다.
레알 마드리드가 이미 포화 상태인 유럽 시장 대신 아시아 시장으로 눈을 돌리며 스타성과 실력을 겸비한 선수를 찾는다는 것이다.
레알의 유스에서 몇 년 전부터 중국 선수를 대대적으로 뽑으며 중국 시장을 주요 타깃으로 삼았는데, 도라익의 유니폼이 중국에서 기록한 판매량을 보고 생각을 바꿨다고 한다.
가끔은 충동구매를 하지만, 바르셀로나는 영입에 신중한 팀이다. 그러나 레알에 도라익을 뺏기지 않으려고 적극적으로 영입 계획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베르딩요를 이적시키며 자금 여유도 있어 도라익과 루머가 도는 구단 중 가능성이 가장 크다.
그 외에 유력하게 언급된 구단은 역시 스페인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베르딩요 이적 이후 힘을 못 쓰는 바르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클라시코에선 어떻게든 승리하여 승점 6점을 챙겨가는 바르사.
그러한 바르사 덕분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지난 시즌 1점 차이로 레알을 꺾고 라리가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워낙 공격수 보는 눈이 남다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레알과 바르사가 도라익을 영입하는 걸 원치 않아 영입 경쟁에 뛰어들 거라는 소문이 있다.
그리고 맨시티와 리버풀 및 아스널과 토트넘하고도 이적 소문이 돌았다. 심지어 베르딩요의 영입으로 자금 여유가 없어 세대교체도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 맨유로 이적한다는 기사도 적지만 있었다.
거기에 바이에른 뮌헨과 유벤투스 그리고 파리 생제르맹 등도 언급되었고, 중국의 CSL도 어느새 거론되었다.
이렇듯 17세라는 나이는 아주 미묘하고 복잡한 상황을 만들었다. 그러나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으로 겨울에 이적하지 않을 거라고 직접 발표했고, 오늘 또 유로파리그를 언급했기에 팬들이 한시름 푹 놓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1월이 끝나 이적시장이 닫힐 때까지는 그래도 매일 뉴스를 검색하며 마음을 졸이겠지만, 그래도 잠잘 때 다리를 어느 정도 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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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우, 벌써 가려고?"
저녁 8시가 되자 도라익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 그런데 취침 시간은 꼭 지켜야 한단 말이야."
짧아도 반년 정도를 도라익과 함께 보낸 선수들은 이상하게 생각지 않았다. 도라익은 매일 취침 시간이 바뀌지만, 나름대로 규칙이 있었다.
당일 스케줄과 다음날 스케줄로 취침 시간을 계산하는데, 가끔 원정에서 늦게 경기하고 당일로 돌아올 땐 버스에서 꿀잠을 자기도 했다.
"태워줄까?"
"아니. 뛰어서 채 10분도 안 걸리는 거린데 뭘. 그리고 음주운전은 절대 안 돼. 그거 잠재적 살인이라고."
마지막 당부를 마친 도라익은 슬렁슬렁 뛰어서 집으로 향했다.
'오늘은 혼자네?'
최경호는 어느 구단과 만난다고 집을 비웠다. 한국은 새벽이고 한국 시간으로 이미 도라익의 생일은 지났다. 통화할 시간대도 아니고 명분도 없다.
집은 외롭고 심심하나 빨리 가서 보일러를 켜야 제때 씻고 취침할 수 있다.
그런데 느리게 뛰어서 도착한 집엔 손님이 있었다. 옷은 따뜻하게 입었지만, 손발이 시린지 연신 입김을 불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엘, 전화하지 그랬어. 날씨도 추운데."
"전화가 안 되던데?"
"아, 형이 널 블랙리스트에 넣었나 보다."
에이전트를 바꾸라는 문자와 전화가 너무 많았다. 전화기 사용이 미숙한 도라익이 일일이 블랙리스트에 넣는 걸 보고 최경호가 뺏어서 스레드로 해치웠다.
그 과정에 엘의 전화번호도 블랙리스트로 간 게 틀림없다.
"네가 한 건 아니고?"
"아니. 내가 널 좋아하는데 왜."
원래부터 빨갛던 엘의 얼굴이 더 빨개졌다.
"그런데 왜 자꾸 거절했어?"
말이 헛나간 도라익 역시 당황해서 버벅거렸다.
"내가? 내가 언제."
"계속 이렇게 밖에 세워둘 거야?"
도라익이 뻣뻣한 움직임으로 대문을 열고 엘을 안으로 안내했다. 집에 들어간 도라익은 사장이 선물한 다기로 차를 끓이며 어떻게 말을 뗄지 고민했다.
따뜻한 차를 마시니 추위가 순식간에 가셨다. 그리고 뒤늦게 가동한 보일러가 냉랭하던 집에 열기를 골고루 공급하며 둘의 얼굴을 발그스레하게 달궜다.
"아, 잊을 뻔했네. 생일 선물."
디자인이 이쁜 손목 보호대와 손가락 보호대였다.
"땀을 흡수하면 차가워져. 여름 유니폼을 만드는 천과 비슷한 소재에 탄성이 강한 천을 섞은 거야. 더운 날 경기할 때 사용하면 체온도 낮추고 부상도 방지할 수 있어."
"이런 거 처음 봐."
"당연하지. 내가 직접 만들었으니까."
감동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자, 정식으로 한 번 더 고백할게. 나랑 사귈래?"
동화책에서 나온 공주님 같은 얼굴을 한 엘이 질문했다. 머리와 가슴이 치열하게 갈등했다. 아니라고 하고 싶지만, 전과 달리 엘에게 상처가 될까 봐 걱정이었다.
그러나 대답을 망설이는 자체만으로도 엘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괴로운 마음이 들었다.
"좋아. 우리 사귀자."
기쁜 얼굴을 한 엘이 도라익의 품에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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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럽고 말랑말랑한 감촉이 너무 좋았다. 주저주저하다가 큰 결심을 내리고 붙인 둘의 입술은 떼어질 생각이 꼬물만치도 없었다.
스윽.
셔츠 밑으로 손이 들어갔다. 처음에는 배꼽 부위에서 망설이던 손이 조금씩 위로 올라갔다. 그러다 용기가 자랐는지 갑자기 쑥 올라가 가슴을 어루만졌다.
"안돼."
"왜?"
"거긴 만지면 안 돼."
"왜 안 되는데?"
"기분이 이상해."
"어떻게 이상한데?"
아교로 붙인 게 아닌지 의심되던 둘의 입술이 드디어 떨어졌다.
"우린 아직 미성년자야. 그러니 키스까지만 허락된다고. 그 이상은 안 돼."
엘이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도라익의 셔츠 밑에서 손을 꺼냈다. 엘의 손이 사라지자 도라익도 허한 느낌이 확 몰려왔다.
"우리 사귀는 거 맞아?"
"응. 사귄 첫날에 키스하는 것도 대단한 거야. 우리 아버지랑 엄마는 10년 만에 키스했거든."
우연인지 필연인지. 도라익의 부모가 키스한 날도 도민준의 만 17세 생일이었다.
"우리 그간 마음으로 각자 사귀고 있었던 거 아니야?"
"이적 루머가 돈다고 내가 다른 팀 선수인 건 아니잖아."
더는 안 만진다는 약속을 받고 도라익은 다시 키스를 시작했다.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입술이 주는 감촉은 신비하고 위대했다. 따뜻한 엄마의 품이 문득 그립고, 애교쟁이 라희의 하얀 볼이 떠오르기도 했다.
"저기."
도라익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질문했다.
"혀 써도 돼?"
- 작가의말
미안합니다. 저는 늘 고백을 받는 쪽이라 고백하는 법을 모릅니다. 읽는 분들께 괴리감과 위화감을 드린 점 죄송하나, 받는 게 일상인 저로선 이렇게 쓰는 게 편하군요.
글쟁이로서 다양한 경험을 미리 못 한 점 깊이 사죄드립니다. 그러나 신중한 저로선 눈이 마주치고 3초 안에 고백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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