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의 키
9월 1일.
스토크시티는 원정에서 챔피언십 2위 자격으로 프리미어리그에 승급한 레딩과 경기를 벌였다.
현재 4점을 기록한 레딩은 첫 경기에서 맨유와 0:0으로 비기고 3라운드에 에버턴을 1:0으로 이기는 기염을 토했지만, 4라운드에서 19위에 있던 볼튼에 3:0 패배를 당했다.
시즌 초반의 흥분이 가라앉고 플레이 스타일도 연구 당한 바람에 실력을 뛰어넘은 좋은 모습을 지속하여 보일 수 없었다.
경기가 시작하고 5분, 도라익은 페널티 박스 근처에서 제임스의 패스를 받았다.
순식간에 세 명의 선수가 도라익을 에워쌌다. 도라익은 공을 굴리며 고개를 돌려 왼쪽을 바라봤다. 지난 시즌이었다면 샘 앨런이 패스를 달라고 손을 흔들었을 것이다.
도라익은 시선으로 페이크를 주는 동시에 왼발로 플립플랩을 펼쳤다. 시선에 이미 속은 레딩의 세 선수 모두 도라익이 왼쪽으로 가려는 줄로 판단하고 무게 중심을 미리 움직였다.
그러나 도라익은 아웃사이드로 밀던 공을 다시 인사이드로 끌어온 다음 오른발 아웃사이드로 툭 치고 달렸다.
찰리를 마킹하던 센터백이 달려오며 슈팅과 패스를 동시에 방해했다. 제임스와 산체스 역시 레딩 수미들의 마킹을 벗겨내지 못해 패스를 받기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그러나 도라익에겐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
도라익은 왼발로 공을 밀어 곧게 찔렀다. 구르는 게 아니라 밀려서 잔디 위를 미끄러진 공을 사선으로 달린 찰리가 왼발로 한 번 터치하여 오른쪽으로 보낸 다음 발끝으로 빠른 슈팅을 가져갔다.
찰리가 발끝으로 찬 공은 강하진 않지만 빠르게 굴러 오른쪽 포스트를 맞히고 골이 되었다.
- 도라익 선수와 찰리 선수의 호흡이 기가 막힙니다.
- 산체스와 제임스의 수비 견제도 좋았고요.
- 맥자넷 선수의 공격 가담도 조금 늦었지만 상대 수비진의 주의를 끌었죠?
- 스토크시티가 측면 크로스를 이용해 공격할 거란 레딩의 예상을 뒤집고 미드필더와 공격수들의 패스워크로 중앙을 뚫었습니다.
도라익이 골이 아닌 도움을 기록했기에 강철민과 박만호도 크게 흥분하지 않았다.
레딩은 챔피언십에서만 해도 포백을 이용하던 팀이다. 그리고 앞선 4라운드 경기에서 전부 포백 전술을 사용했다.
그러나 찰리 아담은 물론 도라익도 훌륭한 점프력으로 공중볼 경합에 우위를 보이기에 이번 경기에선 스리백 전술을 사용했다.
스토크시티는 그런 레딩의 예상을 뒤엎고 중앙에서 패스워크로 수비를 흔들었다. 익숙지 않은 스리백 전술로 레딩 선수들이 위치 선정의 어려움을 느끼는 바람에 고작 경기가 시작한 지 5분밖에 안 되어 수비가 뚫려 실점했다.
- 윌슨 감독은 미국에서 감독으로 데뷔했습니다. 선수 경력은 전혀 없고요. MLS 최하위 팀을 맡아 2년 만에 준우승을 기록했고 프리미어리그 첫 미국인 그리고 흑인 감독이 되었죠.
- 윌슨 감독은 축구에 종사한 지 3년밖에 안 되는 신입입니다. 그러나 축구에 대한 이해가 깊고 용병술도 뛰어납니다.
- 나이도 감독치고는 젊은 편이죠. 그래서 그런지 선수 기용이 파격적이고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스토크시티의 사정이 급하다고 해도 관습에 젖지 않은 윌슨 감독과 언제나 돈이 1순위인 구단주의 콜라보가 아니었다면 도라익의 영입은 이뤄지지 않았다.
- 오늘 경기에 과감하게 키 178의 조쉬 타이먼을 선발로 기용했습니다. 10년 동안 주전 자리를 지킨 대니 밧스는 현재 벤치에 앉았죠.
- 미드필더 역시 제임스와 산체스 그리고 쇠렌센의 조합입니다. 안정적인 대신 위력은 루이스가 출전할 때와 비교해 훨씬 부족하죠?
- 그렇습니다. 루이스는 공 차단 스킬이 좋은 선숩니다. 속도가 빠르고 몸싸움도 잘하며 제공권도 어느 정도 갖췄습니다. 공격에 가담하는 타이밍도 훌륭하죠. 모든 면에서 쇠렌센 선수를 압도합니다.
- 쇠렌센 선수는 일대일 경합에서 이기는 경우가 드뭅니다. 대신 반칙을 해서라도 악착같이 물고 늘어져 다른 선수들이 수비 위치로 복귀하게 시간을 벌어주죠.
- 축구라는 게 그저 각 자리에 스타 선수를 세우면 승리하는 간단한 게임이 아닙니다. 챔피언십에서도 주전을 확신하기 어려운 스탯인데 윌슨 감독은 주전으로 기용해 그 쓸모를 톡톡히 합니다.
루이스에게 경험이 쌓이면 쇠렌센은 다시 벤치로 물러나야 한다. 피지컬이 훨씬 훌륭한 대니가 스리백 전술에 적응하면 타이먼 역시 벤치에서 경기를 구경하는 일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당장은 두 선수가 루이스나 대니보다 훨씬 팀에 도움이 되었다.
- 레딩 감독은 지금 울고 싶을 겁니다. 포백으로 돌아가는 즉시 스토크시티는 양쪽 윙백을 이용한 크로스로 레딩의 골대를 폭격할 겁니다.
- 그러나 스리백을 고집하자니 스토크시티의 패스워크 그리고 도라익과 산체스의 돌파로 수비진이 자꾸 무너지죠?
레딩 감독이 결정을 못 내리고 꾸물거리는 사이, 도라익이 앞을 막은 두 선수 사이로 공을 찌른 후 왼쪽으로 에돌아 달렸다.
테크닉 면에서 지난 시즌과 비교해 큰 발전이 없지만, 그간 훈련과 실전을 통해 쌓은 경험으로 기술 운용이 일취월장했다. 판단이 정확하니 기술 운용이 훨씬 합리적이고, 덕분에 훌륭한 순발력과 탄탄한 기본기가 위력을 제대로 발휘했다.
- 슛! 페이크네요.
도라익은 왼발로 슈팅 페이크를 준 다음 오른발로 칩 킥을 했다. 아웃사이드에 맞은 공은 괴이한 궤적을 그리며 먼 포스트로 향했다.
어느새 달려온 페어린던이 골대를 향해 슈팅했다. 아쉽게도 페어린던이 아웃사이드로 찬 공은 포스트를 맞히고 튕겨 나왔다.
- 공이 찰리 선수의 정강이에 맞아 골이 됩니다.
- 요즘 끈이 없고 살에 찰싹 붙는 탄소섬유 정강이 보호대가 유행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찰리 선수는 여전히 딱딱한 보호대를 선호한다고 하네요.
- 덕분에 득점에 성공했는지도 모릅니다. 탄소섬유 보호대는 부드러운 편이어서 반탄력이 약하거든요.
- 비록 아직 득점을 기록하지 못했지만, 도라익 선수는 산체스와 함께 레딩 수비진을 해체하고 있습니다.
- 선수의 가치가 득점만으로 정해지는 게 아니죠. 그리고 이타적인 플레이가 가능한 선수라는 게 증명되면 수비수들 머리가 복잡해져서 득점 기회도 더 많이 생깁니다.
원정에서 2:0으로 전반전을 마무리했고 경기 내용도 좋았다. 하프 타임에 스토크시티의 분위기는 무척 화기애애했다.
주전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톰 미켈과 페데리치가 이마를 맞대고 낄낄 웃으며 대화하고 대니 역시 자기 자리를 뺏은 타이먼과 스리백 전술에 관해 교류했다.
루이스는 쇠렌센 그리고 산체스와 함께 클루카스한테서 위치 선정과 공 처리에 관한 조언을 들었다.
- 후반전 시작합니다.
- 레딩이 포백으로 포메이션을 바꿨습니다.
- 스토크시티도 도라익의 위치를 올리고 측면에서 공격을 전개합니다.
레딩의 변화에 맞춰 스토크시티도 선수들 위치를 조금 조정했다. 도라익이 아예 포워드 위치로 올라가고 산체스와 제임스도 상응하여 라인을 올렸다.
스토크시티의 두 윙백은 반대로 위치를 뒤로 내렸다. 레딩의 두 풀백을 끌어들이기 위한 포석이었다.
그러나 득점 기회는 전반전과 마찬가지로 중앙에서 났다. 미드필더 자리를 경쟁할 선수가 총 네 명이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쇠렌센이 치고 나오는 바람에 제임스는 전보다 훨씬 부지런해졌다.
근면성실함이 신에게 인정받았는지 운 좋게 상대 패스를 가로챘다. 흥분한 상태에서 패스를 느끼고 몸을 날린 게 아니라 그저 뛰다가 얼떨결에 얻어걸린 것이다.
공을 잡은 제임스는 바로 도라익한테 찔렀다. 상대 진영에서 공을 뺏었기에 찰리보다는 도라익이 적임자다.
공을 잡은 도라익은 재빨리 몸을 돌렸다. 센터백이 어느새 적절한 거리에 자리를 잡았고 오른쪽 풀백이 지원하러 달려오는 중이다.
남은 센터백은 찰리를 마크하고 있고 레딩의 왼쪽 풀백은 제임스한테 달려가고 있다.
빠르게 상황을 파악한 도라익이 바로 움직였다. 왼발 아웃사이드로 공을 강하게 차서 센터백 왼쪽으로 지나게 한 다음 자신은 오른쪽으로 달렸다.
도라익은 자신의 돌파를 막으려고 허우적대는 센터백의 팔을 손으로 강하게 쳐낸 다음 가속했다. 달리는 중에 만난 레딩의 오른쪽 풀백을 바디 체크로 저지한 도라익은 자신이 찬 공을 향해 전속력으로 뛰었다.
센터백은 속도로, 지원하러 오는 풀백은 바디 체크로 해결한 도라익은 강한 스핀 때문에 속도가 느려진 공을 발바닥으로 건드려 회전을 죽였다. 어느새 레딩 키퍼가 앞으로 나와 자세를 낮춘 채 슈팅 각도를 꼭꼭 봉쇄하고 있었다.
레딩 키퍼는 왼손을 앞으로 늘어뜨려 가랑이를 수비하고 오른손은 높이 들어 칩슛에 대비했다. 위치 선정이 기가 막혀 도라익으로선 골대 어디도 확신하고 노리기 어려웠다.
슈팅 기회가 막히자 도라익은 오른쪽으로 드리블했다. 키퍼는 칩슛 가능성을 지우고 달려 나왔다. 칩슛을 고려해 거리를 좁히지 않으면 슈팅 각이 크게 열린다.
그러나 도라익은 슈팅에 급급해하지 않고 다시 방향을 꺾어 왼쪽으로 향했다.
- 페널티킥입니다.
바디 체크를 당했던 풀백이 몸을 일으켜 급히 달려오다가 갑자기 방향을 꺾은 도라익과 부딪혔다.
- 도라익 선수 누운 채로 머리맡에 구르는 공을 잡아 찰리 선수한테 던져줍니다.
- 양보의 아이콘답습니다.
찰리의 해트트릭을 도운 도라익은 경기 60분에 우디르로 교체되었다.
- 지난 시즌에 공격의 키를 잡은 선수는 찰리였고 도라익 선수는 득점에 집중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경기에선 도라익 선수가 공격을 주도하고 득점은 찰리 선수가 하네요.
- 상대 입장에선 골치가 정말 아픕니다. 결국 스토크시티의 공격 루트가 다양해졌다는 거고, 수비하는 입장에선 머리가 복잡할 수밖에 없죠.
도라익이 교체됐지만, 두 해설의 화제는 도라익을 떠나지 않았다.
- 작가의말
여기서 키는 열쇠가 아니고 배의 키를 말합니다.
그리고 허참거 님의 추천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글 추천했다고 욕먹지 않도록 정성 들여 글을 꾸미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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