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단 테스트
함부르크 SV 구단 유소년 트레이닝 센터.
프로를 꿈꾸는 어린 선수들이 훈련하고 경기하는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네비가 잘못된 게 아닌가 의심할 정도로 훈련장엔 인기척이 드물었다.
구단 직원으로 보이는 청년이 최경호와 도라익을 안내했다.
"원래는 먼저 축구 스킬부터 테스트해야 하는데 구단 행사로 다들 바빠서 피지컬 검사부터 한단다."
함부르크는 아시아 선수 영입으로 쏠쏠한 재미를 본 독일 구단이다. 이란 선수와 일본 선수 그리고 아시아 역대 최고로 꼽는 한국 선수까지.
이들 모두 팀의 성적과 재정에 큰 보탬이 됐다.
그래서인지 구단 전체 행사로 바쁜 와중에도 도라익의 테스트를 미루지 않고 진행했다.
"여긴 신체검사하는 곳이야."
둘을 안내한 청년은 뭐가 바쁜지 바로 떠났다. 도라익은 처음 보는 장비들이 가득한 방을 신기한 눈으로 둘러봤다.
"상의 벗으래."
최경호의 말에 도라익이 셔츠를 훌러덩 벗었다.
후덕한 인상의 의사가 도라익의 가슴에 하얀 탭을 몇 개 붙이며 영어로 말했다.
"러닝머신 위로 가서 속도에 맞춰 달려."
도라익은 바로 러닝머신에 탔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러닝머신과 달리 아주 심플한 디자인이었다.
기계가 돌아가자 도라익은 숨을 깊이 쉬며 속도 변화에 맞춰 달렸다. 러닝머신은 변덕스럽게 속도를 높였다가 줄이기를 반복했다.
"오, 매우 좋아."
의사가 감탄조로 말했다.
"방금 무슨 테스트인가요?"
도라익은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한 덕분에 간단한 대화는 막힘이 없다.
"심장 기능 테스트야. 심장 발달이 훌륭해."
탭을 다 뗀 의사는 깔때기 모양의 물건을 꺼내 알콜로 소독했다.
"폐활량 검사야. 내가 '릴' 하면 숨을 들이쉬고 '스톱' 하면 가만히 있어. 다음 '고' 하면 숨을 최대한 길게 뱉는 거야."
도라익은 알콜 냄새가 남은 깔때기를 들어 얼굴에 꼭 붙였다. 입과 코가 동시에 막히며 갑갑한 느낌이 몰려왔다.
"릴."
도라익은 최대한 강하게 들이켰다. 의사는 스톱을 외치고 한참 지나서야 고를 외쳤다. 도라익은 시뻘게진 얼굴로 숨을 내뱉었다.
"평소 수영을 자주 해?"
"아니요."
"폐활량이 수영 선수들 평균보다 높아."
컴퓨터 자판을 일 분가량 두드린 의사는 도라익한테 침대에 엎드리라고 했다. 그러곤 두툼한 손으로 도라익의 몸을 강하게 주물렀다.
"그냥 묻는 거야. 크게 다치거나 한 적은 없지?"
"그럼요. 나 몸 튼튼해요."
"내가 보기에도 그래."
검사를 마친 의사는 또 컴퓨터 앞에 앉아 뭔가를 한참 입력했다.
"자, 이번엔 체지방 검사."
의사의 태도가 눈에 띄게 친절해졌다. 최경호는 컴퓨터에 입력된 수치들이 뭘 의미하는지 모르지만, 꽤 좋은 결과가 나왔음을 직감했다.
"너 몇 살이야?"
"열다섯 살입니다."
"체지방이 7%야. 어린데도 관리를 엄청 잘했구나."
"좋은 건가요?"
의사는 도라익 몸에 붙였던 탭들을 떼며 고개를 끄덕였다.
"축구선수 평균 체지방이 10%야. 건강한 일반인은 15%고. 마라톤 선수들은 5% 정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지. 그런데 너무 낮추려고 할 필욘 없어. 너무 낮으면 건강을 해치거든. 7%는 정말 환상적인 수치야."
이어지는 테스트는 밖에서 진행했다.
"제자리 멀리 뛰기는 왜 하는 겁니까?"
최경호가 질문하자 배에 튜브를 두른 코치가 껄껄 웃었다.
"축구랑은 직접적으로 상관이 없어. 하지만 몸 전체를 쓰는 능력이 어떤지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야."
멀리 뛰기를 잘하는 선수는 아닌 선수보다 햄스트링 부상 횟수가 현격히 적다. 아직 과학적으로 검증된 건 아니지만, 수십 년 축적한 데이터는 정직하다.
"뛰는 법은 잘 알지?"
"알아요. 학교에서 체육 시간에 가르쳐요."
팔을 앞뒤로 젓던 도라익이 숨을 멈추며 힘껏 뛰었다.
"제가 잘못했어요?"
"아니야. 너무 잘했어."
놀라움에 벌린 입을 미처 못 다문 코치와 최경호가 황급히 손사래 쳤다.
"얼마 뛰었어요?"
"3.37미터 뛰었어. 이거 올림픽 나가도 되겠는데?"
"올림픽에 제자리 멀리 뛰기도 있어요?"
코치는 도라익한테 두 번 더 뛰게 하고 수치를 일일이 기록했다. 그리고 바로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서전트 점프 알지?"
"그게 뭐예요?"
"제자리에서 높이 뛰는 거."
"알아요. 체육 시간에 배웠어요."
코치는 카메라를 켜고 기계 전원도 넣으면서 분주하게 준비했다.
"가장 편한 자세로 힘껏 점프해. 카메라가 그 과정을 찍을 것이고, 최고점에서 네 어깨와 골반 그리고 무릎과 발 위치를 체크한 다음 결과를 표시할 거야."
도라익은 살짝 굳은 얼굴로 네모가 쳐진 위치에 섰다. 갑자기 카메라가 등장하고 기계에 불이 막 들어오니 긴장이 올라왔다.
"릴랙스. 딥 브레싱."
코치가 서투른 영어로 도라익에게 긴장을 풀라고 주문했다.
심호흡으로 긴장을 누른 도라익은 몸을 낮췄다가 힘껏 뛰어올랐다. 양팔을 벌리며 가슴을 활짝 편 도라익은 꽤 긴 체공 시간을 자랑하고 땅에 내려왔다.
"아주 좋아. 110센티미터야. 놀라워."
기계는 약 2초의 시간이 지나고 결과를 뱉어냈다. 도라익의 서전트 점프 성적은 110cm였다.
"두 번 더 하자."
긴장이 풀린 도라익은 더 높이 뛰었다. 최종 기록은 115cm로, 분데스리가 현역 중에서도 다섯 안에 드는 성적이라고 코치가 호들갑을 떨었다.
"내 말을 잘 통역해."
러닝 코스로 자리를 옮긴 후 코치가 진지한 얼굴로 최경호한테 말했다.
"100미터를 뛰는 건데, 그저 100미터 성적만 기록하는 게 아니야. 30미터와 50미터 그리고 100미터 속도를 모두 측정해. 그러니까 처음부터 최선을 다해 뛰어야 해. 30미터랑 50미터 기록이 더 중요하니까 굳이 초반에 힘을 아낄 필요는 없다고 꼭 알려줘."
최경호는 도라익한테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 뛰라고 신신당부했다.
"시작 신호는 없어. 네가 출발하면 알아서 타이머가 돌아갈 거야. 그러니까 긴장하지 말고 충분히 준비된 다음 뛰면 돼."
도라익은 서서 출발하는 자세로 있다가 갑자기 뛰었다. 혼자 달리는 거지만, 최경호가 보기에도 무척 빨랐다.
그리고 달리기 결과도 아주 좋게 나왔다.
30m 4.02s.
50m 5.76s.
100m 11.09s.
순간 최고 속도, 시속 35.7km.
테스트를 마친 코치가 멍한 얼굴로 도라익을 바라봤다.
"문제 있습니까?"
최경호가 독일어로 질문했다.
"열다섯이라며?"
"그런데요?"
"프로 수준에서도 최상위권이야. 성장판 검사도 해야겠어."
"문제 있는 건 아니죠?"
"성장이 안 끝났다면 더 좋아질 수 있어. 문제 있거나 그런 건 아니야."
균형 테스트와 민첩 테스트 그리고 지구력 테스트 등이 남은 상황에 도라익은 의사가 있던 방으로 돌아가 성장판 검사를 받아야 했다.
의사는 손과 팔꿈치 X레이 사진을 찍고 겨드랑이털이 언제 났는지 등을 질문했다.
"키가 더 클 것 같아요?"
도라익이 눈을 반짝이며 질문했다.
"성장판이 아직 안 닫혔어. 최소 5센티는 더 자란다고 봐야지."
도라익이 주먹을 불끈 쥐고 자축했다.
"폴, 오늘 테스트 결과 당분간 비밀이야."
코치의 말에 의사가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유연성과 균형 테스트, 반응 테스트를 하고 지구력 테스트도 했다. 유연성과 균형 테스트는 꽤 재밌었지만, 반응 테스트와 지구력 테스트는 힘들었다.
지구력 테스트는 힘든 게 당연하지만, 반응 테스트는 사실 어렵지 않다. 그러나 승부에 집착한 도라익이 오바하는 바람에 쉬운 테스트를 어렵게 치렀다.
"어때요?"
최경호는 도라익의 수치가 훌륭하다는 건 알겠지만, 얼마만큼 훌륭한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프로에서도 최상위 수준이야."
도라익의 수치는 모든 면에서 대부분 현역을 앞섰다.
"남은 테스트는 내일 하고, 내가 저녁 사지."
테스트를 주관한 코치가 밥을 사겠다고 제안했다.
"감사합니다."
도라익이 고개를 살짝 숙여 고마움을 표했다.
"여기 음식이 이 근처에서 가장 맛있어."
셋은 몇 분 걸어 음식점에 도착했다. 저녁 먹기 이른 시간이어서 손님이 없었다.
"정식으로 인사하지. 유스 총괄 코치 호프만이야. 오늘 만나게 돼서 정말 반갑다."
음식을 시키고 코치가 자기소개를 한 번 더 했다.
"최경호입니다."
"도라익입니다."
"자네가 에이전트인가?"
"맞습니다. 일전에 도치 코치한테 영상 보냈었죠."
"훈련 영상은 나도 봤어. 어설픈 부분이 있긴 한데, 포텐셜이 커 보였어. 유스에서 2년 정도만 성장하면 훌륭한 선수가 될 거야. 축구 지능까지 높으면 쏜을 능가하는 것도 문제가 아니지."
"그 정돕니까?"
도라익은 독일어로 대화하는 둘에게 관심을 끊고 어느새 오른 음식을 헤집었다. 전부 먹어도 괜찮은 재료임을 확인한 후 조금씩 입에 넣고 천천히 씹었다.
오전에 차로 함부르크로 오는 내내 최경호는 음식을 천천히 먹어야 최대한 많은 영양소와 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특히 축구 선수는 훈련이 일상이기에 배부르게 먹으면 안 되고, 그렇기에 오래 씹고 천천히 삼켜야 한다.
"잘하면 팀에서 전담 코치 한 명 붙여서 키울지도 모르지. 피지컬은 이미 완성된 거나 다름없으니 테크닉과 전술 부분만 보완하면 되네."
호프만은 식사하면서 최경호한테 많은 얘기를 했다.
"도르트문트와 함부르크가 지금 독일에서 가장 인정받는 유스 시스템을 갖췄어. 함부르크가 경영난으로 2부리그와 1부리그를 오가고 있지만, 유스는 바이에른 뮌헨도 우리한테 못 비비지."
"그럼 도르트문트랑 함부르크의 차이는 뭡니까?"
- 작가의말
일단 피지컬은 최상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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