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툼
5월 5일. 더 스카이 스타디움.
도라익은 제임스의 패스를 가랑이 사이로 흘렸다. 도라익한테 몸싸움을 걸었던 센터백은 움찔하며 고개를 돌려 공을 바라봤다.
그새 도라익은 페널티 박스 안으로 달렸다. 도라익이 흘린 공을 잡은 샘 앨런이 지체하지 않고 바로 사선으로 찔렀다.
스루패스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곧게 찌르고 사선으로 뛰는 것으로 도라익이 뉴캐슬에 넣은 두 번째 골이 거기에 속한다.
하나는 곧게 달리고 사선으로 찌르는 것인데, 이는 곧게 찌르는 스루패스보다 좀 어렵다.
물론, 과정이 어려운 만큼 결과는 훨씬 달콤하다. 도라익은 오른팔로 수비수의 접근을 막으며 아주 편하게 왼발로 슈팅했다. 틈이 큰 가까운 포스트를 더 신경 쓰던 키퍼는 미처 먼 포스트로 향하는 강슛에 반응하지 못하고 실점했다.
"도우! 도우! 도우!"
전반전에 0:1로 뒤처진 바람에 애태우던 팬들이 도라익을 연호했다. 도라익은 유니폼을 움켜쥔 다음 엠블럼에 진하게 키스했다.
- 도라익 선수의 활약에 비해 골이 늦게 터졌습니다.
- 운이 좋았으면 전반전에 이미 해트트릭을 하고도 남았죠.
- 유로파리그에 참가하면 조별 경기만으로 천만 유로의 수익을 보장합니다. 팀에 스타 선수가 있으면 중계료도 천만 유로 정도 받을 수 있고요. 유로파리그 전용 유니폼의 판매라든가, 리그보다 가격이 훨씬 높은 입장료로 오는 부수적인 수입까지 합치면 팀 재정에 큰 보탬이 되죠.
- 현재 리그 5위인 볼튼은 그 기회를 놓치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FA컵 우승이 누구냐에 따라 리그 6위까지 유로파리그를 노려볼 만하지만, 이대로 경기가 끝나면 볼튼은 7위로 추락합니다.
- 조급한 볼튼이 수비 라인을 올리면 도라익 선수의 기회가 많아진다는 것이죠.
볼튼은 이겨야만 5위 자리를 지킬 수 있다. 두 해설의 예측대로 수비 라인을 전반전보다 20미터 정도 더 올린 상태에서 경기를 진행했다.
그러나 볼튼이 리그 5위까지 간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 볼튼이 생각보다 신중하네요.
- 3분 동안 공을 돌리며 겨우 크로스 한 번 올렸습니다.
- 스토크시티는 급해 하면 안 됩니다. 공을 뺏으려고 무리하는 순간 수비진이 흐트러지고 실점하게 됩니다.
두 해설의 걱정은 기우였다. 윌슨은 도라익의 위치를 더 뒤로 물리는 것으로 압박을 강화했다.
도라익은 공이 있는 곳을 열심히 쫓아다니며 족보 없는 수비를 펼쳤다. 하이에나 제임스는 도라익 뒤를 열심히 따르며 흘러나오는 패스를 가로챌 궁리만 했다.
빠른 속도로 쉬지 않고 달리는 도라익 때문에 볼튼 선수들은 큰 압박을 받았다. 패스가 점점 빨라지며 결국 누군가가 실수했다.
날래게 공을 가로챈 제임스는 지체하지 않고 공을 띄워 찰리한테 보냈다. 찰리는 센터백과 벌인 몸싸움을 가뿐하게 이기고 공을 차지한 후 어느새 달려온 산체스한테 굴려줬다.
산체스는 몇 미터 드리블로 전진한 후 상대 센터백이 다가오기 전에 패스했다. 공은 질주하는 도라익 발밑에 배달됐다.
도라익은 공을 멈추지 않고 앞으로 찼다. 도라익과 3미터 거리를 유지하던 센터백이 바로 몸을 돌려 뛰었으나 도라익보다 느렸다.
도라익은 방금까지 공을 빼앗으려고 쉬지 않고 달렸고, 제임스가 공을 가로채자마자 빠른 속도로 공격에 투입됐다. 패스를 받은 후 속도로 센터백을 제친 도라익은 슈팅할 힘이 남지 않았다.
도라익은 공을 따라잡자마자 중앙으로 강하게 패스했다.
용케 달려온 제임스가 슬라이딩 태클로 도라익의 공을 맞혔다. 제임스의 발바닥에 맞은 공이 데굴데굴 느리게 굴러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흥분한 선수들이 달려와 바닥에 누운 제임스를 멱살 잡아 일으킨 후 마구 흔들었다. 그때 샘 클루카스가 도라익한테 접근해 속삭였다.
"도우. 웬만하면 찰리한테 패스해."
"방금 찰리한테 한 거야. 제임스가 가로채서 그렇지."
"알았어. 그래도 좋은 기회 있으면 찰리한테 꼭 하나 패스해."
도라익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자 클루카스가 미소를 지으며 물러났다.
경기가 재개됐다. 훨씬 다급해진 볼튼은 아까와 달리 크로스를 자주 올리고 스루패스도 빈번하게 찔렀다.
팀 전체가 제임스처럼 뛰는 바람에 흘러나온 공도 대부분 볼튼이 차지하며 스토크시티는 일방적으로 수세에 몰렸다.
볼튼의 미드필더가 찌른 패스에 윙이 달려갔다. 그때 버틀랜드가 달려 나오며 헛다리를 시전했다. 버틀랜드의 가랑이로 흐른 공은 골라인을 벗어나며 스토크시티의 골킥이 되었다.
버틀랜드는 그 공을 줍지 않고 볼 보이한테 다른 공을 요구했다.
[상대가 공 점유율이 훨씬 높을 땐 공을 교체해라.]
도라익은 누가 해줬는지 기억나지 않는 말을 떠올렸다.
버틀랜드는 상대가 이미 익숙해진 공 대신 새 공을 경기장에 투입했다. 큰 차이는 아니지만, 공을 오래 잡고 있던 볼튼 선수들이 스토크시티 선수들보다 새 공이 조금이라도 더 불편하다. 그리고 볼튼의 빠른 리듬으로 흐르던 경기 템포까지 깨는 훌륭한 전술이다.
도라익은 버틀랜드의 그러한 경험이 너무 부러웠다.
'이런 거 가르치는 학원은 없나?'
버틀랜드의 골킥은 정확히 찰리를 찾았다. 찰리는 두 명의 센터백과 몸싸움을 벌이며 헤딩에 성공했다.
어느새 다가간 제임스가 흘러나온 공을 잡아 클루카스한테 넘겼다.
산체스와 샘 앨런 그리고 도라익이 동시에 달렸다. 무리한 수비로 체력이 소진된 도라익이 가장 늦게 출발했다.
클루카스의 공은 앨런을 찾았다. 누굴 줘도 비슷한 상황이라면 친하거나 가장 마음이 놓이는 상대한테 패스하기 마련이다. 앨런은 두 경우에 모두 해당한다.
찰리 아담과 도라익이 골과 도움을 많이 기록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팀의 진정한 핵심 선수는 샘 앨런이다.
도라익은 찰리의 움직임을 확인하며 조금 느리게 달렸다. 드리블로 수비수를 제치지 못한 앨런은 크로스를 포기하고 가까운 도라익한테 패스했다.
공을 잡은 도라익은 터치라인 쪽으로 공을 슬쩍 굴렸다. 도라익의 속도를 경계한 센터백은 따라오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센터백과 거리를 벌린 도라익은 왼발 인사이드로 공을 강하게 찼다. 찰리 아담과 볼튼의 왼쪽 센터백이 함께 달려가며 헤딩 경합을 했다.
삑!
찰리가 헤딩한 공이 센터백의 손에 맞았다.
주심이 페널티킥을 선언하자 볼튼 선수들이 달려왔다.
"아니야. 난 공을 등졌고 팔도 높이 들지 않았어."
"그래서 카드 안 주는 거야. 고의 반칙은 아니지만 슈팅 방해니까 페널티킥이 맞아."
볼튼 선수들도 규칙을 모르는 게 아니다. 그러나 이들은 축구 선수지 판사가 아니다. 주심이 뭐라고 하든 이들은 페널티킥이 아니라고 우겼다.
결국엔 VAR이 개입하여 페널티킥 판정을 내렸다. 그 시간 동안 볼튼 키퍼는 열심히 팔다리 스트레칭을 하며 페널티킥 방어를 준비했다.
'어쩌면 지금까지 뛴 경기에서 내가 미처 모르고 지나친 소중한 경험이 엄청 많았을 거야.'
볼튼 선수들이 벌어준 시간 덕분에 워밍업하는 척하며 접근한 벤치 선수가 키퍼에게 쪽지를 전했다.
내용을 확인할 길은 없지만, 페널티킥에 관한 정보가 분명하다.
"내가 찰 거야."
도라익은 페널티킥 통계가 없는 자신이 가장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만든 페널티킥이야."
찰리는 양보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난 페널티킥 기록이 없어. 키퍼가 혼란스러워할 거야."
"난 페널티킥 성공률 100%야. 그리고 감독이 지정한 1순위 키커고."
그때 제임스가 다가와 도라익을 끌고 물러났다.
"너랑 찰리 둘 다 9골이야. 찰리는 너보다 10골을 먼저 넣고 싶은 거야. 잉글랜드 대표팀 주전을 경쟁하는 친구고 네가 오기 전까진 팀의 주요 득점원이었으니까."
"나도 10골 넣어야 하는 이유가 있어."
"그래도 찰리가 넣는 게 팀 화합에 좋아. 너랑 찰리가 우리 팀 핵심인데 서로 양보하는 훌륭한 모습을 보이는 게 어때?"
도라익은 고개를 젖히고 심호흡했다. 뭐라 하고 싶어도 이미 찰리가 공을 페널티킥 마크 위에 놓고 킥을 준비하고 있다.
'나도 페널티킥 넣을 자신이 있는데.'
- 잠깐 다툼이 있었죠?
- 이건 도라익 선수가 잘한 겁니다. 자기가 차겠다고 용감하게 나섰고, 결국엔 양보했습니다. 리더의 자질이 보이는 대목이었죠.
- 찰리 선수도 9골이고 도라익 선수도 9골입니다. 10골을 달성하고 싶은 마음은 똑같을 겁니다. 도라익 선수가 물러난 건 잘한 일입니다.
- 페널티킥을 만든 것도 찰리고 팀의 1순위 키커도 찰리입니다. 실수하면 안 되는 킥을 선뜻 차겠다고 나선 것에서 도라익 선수의 책임감을 엿볼 수 있지만, 이건 양보하는 게 옳은 일이죠.
두 해설은 어떻게든 사실관계를 좋게 전달하려고 했지만, 그게 잘 안 됐다.
나쁘게 해석하면 박힌 돌 찰리가 굴러온 돌 도라익을 튕겨낸 것이다.
- 페널티킥이 성공했습니다. 2골 차이로 벌어지면 마음가짐이 달라지죠.
- 남은 기간 볼튼은 공격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고 도라익 선수의 득점 기회는 점점 많아질 겁니다.
안타깝게도 체력이 소진된 도라익은 75분에 교체되었다. 다른 경기와 달리 교체된 도라익의 표정이 살짝 어두웠다.
3:1로 경기를 마무리한 스토크시티는 38점으로 17위가 되며 강등권을 탈출했다.
리버풀 경기부터 5연패로 20위를 기록했다가 3연승으로 희망을 보았고, 다시 2연패로 나락에 떨어졌다. 그러나 최근 기적 같은 3연승으로 다시 희망의 불씨를 살렸다.
- 작가의말
슬슬 시작해야겠습니다. 성장이 필요한 주인공에게 위기와 고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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