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
1라운드에서 승리한 스토크시티는 맨시티 다음으로 리그 2위에 랭크됐다. 2라운드 원정에서 웨스트햄을 2:1로 이기고 리그 2위를 고수했다.
도라익은 2라운드에도 1골을 기록해 득점 순위에서 1위를 혼자 달렸다. 4골 이상 넣은 팀이 스토크시티를 포함해 고작 6팀밖에 없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3라운드 홈 경기에서 토트넘을 만난 스토크시티는 1:1로 비겼다. 도라익은 레체르트와 미켈의 정확한 수비 때문에 경기를 뛰는 60분 내내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다행히 찰리의 수비에 실패해 실점을 초래한 줄리엔이 이 악물고 코너킥 상황에 헤딩 골에 성공했다.
이로써 스토크시티의 연승이 종료됐다. 그나마 9연승이 아닌 10연승으로 끝나 아쉬움이 덜했다.
"우리 지금도 2위야."
3전 전승의 맨시티가 1위, 2승 1무로 스토크시티와 맨유와 리버풀이 7점인데, 골 득실로 스토크시티가 2위를 차지했다.
"챔피언스리그 순위, 못해도 유로파리그 순위를 목표로 잡아야 하는 거 아냐?"
유럽컵과 남미컵 때문에 많은 선수가 지쳤다. 덕분에 평민 구단들의 반란이 일어나고 있다.
리그 5위는 크리스털 팰리스가 차지했고, 리그 6위는 2부리그에서 갓 승급한 스완지, 8위 역시 2부리그에서 승급한 노리치가 차지했다.
시즌 초기여서 그럴 수도 있다는 평가가 주도적이지만, 이번 시즌 대이변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예측도 분분했다.
"지금은 2위니까 우승을 목표로 해야지. 순위가 떨어지면 그때 가서 다시 목표를 바꾸면 돼."
도라익이 담담하게 말했다.
남은 스토크시티 선수들이 속으로 깊이 반성했다.
고작 3라운드만 진행했다. 35라운드라는 마라톤과 같은 시즌이 남아있다. 그렇기에 대부분 선수는 4위 혹은 6위를 염두에 뒀다.
도라익은 아니었다. 2위보다 낮은 순위는 거들떠보지 않고 고개를 들어 1위를 노렸다.
"이래서 도우가 주장인 거야."
루이스가 말했다.
앞서서 이끄는 자는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다. 타고나야 한다.
"좋아. 1위를 목표로 뛴다."
스토크시티 선수들이 의기투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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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목표라지만, 1위를 마음에 담은 스토크시티 선수들은 여러 면에서 변화가 생겼다. 큰 변화를 보인 선수도 있고 작은 변화를 보인 선수도 있었다.
긍정적인 변화를 보인 선수도 있고, 부담감에 부정적인 변화를 보인 선수도 있었다.
스토크시티는 4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본머스와 1:1로 비기며 3위로 순위가 하락했다. 누군가는 1위를 동력으로 삼았지만, 누군가는 1위라는 목표가 부담되어 조심스럽게 행동한 탓이다.
2위로 치고 올라온 건 새로운 런던의 왕 크리스털 팰리스였다. 3승 1패로 9점을 기록하며 12점의 맨시티 바로 밑에 랭크됐다.
4위는 2승 2무의 스완지가 차지했다.
그런 상황에 A매치 브레이크가 왔고, 도라익은 오랜만에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뛰었다.
알론소의 배려로 첫 경기는 선발로 출전해 60분만 뛰었고, 2번째 경기는 후반 50분에 교체로 출전했다.
그럼에도 3골 2도움을 기록하며 강렬한 존재감을 보였다.
"우린 10연승의 팀이다."
9월 12일. 홈에서 아스톤 빌라를 맞이한 경기에 앞서 도라익이 연설했다.
"리그 2위로 시작했고, 지난 경기에서 비기는 바람에 3위로 추락했다."
3위가 굳이 추락이라는 단어를 써야 할지 싶었지만, 도라익의 진지한 얼굴에 누구도 태클을 걸지 않았다.
"오늘 너희 컨디션이 어떤지 난 상관 않는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내 컨디션이 더없이 좋다는 거다. 오늘 경기에서 무조건 이기겠다. 의문 있는 사람."
선수들은 입을 열지 않고 묵묵히 결의를 다졌다.
"그럼 다들 동의한 거로 알고, 최선을 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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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라익 선수 돌파합니다.
컨디션이 더없이 좋다던 말은 진실이었고, 오늘 경기에서 이기겠다는 말도 진심이었다.
도라익은 공을 잡고 아스톤 빌라 선수 3명을 연신 제쳤다.
- 왼쪽으로 찌릅니다.
경기 초반부터 도라익에게 연신 돌파당하며 아스톤 빌라의 수비진이 엉망이 되었다. 아스톤 빌라는 어쩔 수 없이 중앙에 수비 역량을 집중하며 양쪽 측면을 비웠다.
맥자넷 대신 출전한 톰 스미스가 공을 잡았다. 맥자넷과 달리 다양한 크로스를 올릴 줄 알고, 오른발 슈팅도 과감히 때리는 재주가 다양한 선수다.
스미스가 오른발 선수였다면 스토크시티가 오창범과 재계약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스미스의 문제는 안정감이다. 같은 경기 중에도 컨디션이 들쑥날쑥해 공격은 물론 수비에서도 실책을 범한다.
- 멋진 크로스.
스미스가 낮은 크로스를 올렸다.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고 날아간 공은 발제르의 발바닥과 충돌한 다음 키퍼의 품에 들어갔다.
낮고 빠른 크로스여서 발제르도 미처 방향을 조절할 수 없어 운에 맡겼는데, 발제르는 운이 좋은 편이 아니다. 대부분 골은 실력으로 넣었다.
"스미스!"
고개를 젓는 스미스를 부르며 도라익이 뒤로 달렸다. 퍼뜩 정신을 차린 스미스가 부랴부랴 자기 수비 위치로 달렸다.
빠른 윙을 2명 보유한 아스톤 빌라기에 두 풀백의 수비 복귀가 엄청 중요하다. 오늘 오른쪽 풀백으로 오창범 대신 라미스가 출전한 이유다.
아스톤 빌라 키퍼가 힘있게 찬 공은 도라익이 잡았다. 미처 복귀가 어려운 스미스 대신 도라익이 왼쪽 풀백 자리로 간 거였다.
"스미스!"
똑같은 말이지만, 의미가 달랐다. 스미스는 복귀하다 말고 다시 앞으로 달렸다. 도라익이 찌른 공이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스미스의 발밑에 쓱 안착했다.
스미스는 드리블하다가 공을 토미에게 패스했다.
'아까도 크로스 올리는 게 아니었어.'
팀이 라인을 잔뜩 올린 상황인데, 문전에는 발제르밖에 없었다. 이는 패스로 공을 돌리자는 의미다.
측면으로 찌르다가 중앙으로 공을 돌리고, 중앙에서 패스로 지키다가 측면에 틈이 나면 다시 공을 보내는 거로 상대 수비를 흔들어 틈을 만드는 게 오늘의 공격 전술이다.
갑자기 머리가 맑아진 스미스는 선수들 위치와 공의 위치에 따라 앞뒤로 움직이며 자기 위치를 조절했다.
"쟤 갑자기 왜 저리 잘해?"
벤치에서 편하게 경기를 구경하던 맥자넷이 기겁했다.
"저게 잘하는 거야?"
오창범이 질문했다.
"팀 전술에 딱딱 맞게 위치를 잡잖아."
맥자넷의 말에 오창범도 스미스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보면 볼수록 머리가 간질간질한 게 뭔가 알 것 같았다.
"내가 대표팀 경기 뛰고 왔다고 벤치에 앉힌 줄 알았는데, 좀 더 열심히 해야겠어."
맥자넷이 말했다.
지난 시즌엔 맥자넷이 수비진의 안정감을 책임졌다. 그러나 스테판이 오면서 줄리엔은 물론 오창범도 안정감이 생기며 맥자넷의 역할이 퇴색됐다.
거기에 공격 옵션이 다양한 스미스가 너무 잘해버리니 맥자넷은 오금이 저릿저릿했다.
'라미스도 놀진 않았구나.'
오창범이 라미스보다 기회를 많이 얻은 건 팀의 공격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라익이 자리를 비운 사이 토미와 제임스는 물론 우디르와 발제르까지 크게 성장했다.
이제 도라익까지 돌아왔으니 오창범의 출전 기회가 줄어들지도 모른다.
'더 열심히 해야지.'
주전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수비보다는 공격 훈련에 치중했다. 그러나 이젠 수비에 더 신경 써야 할 때가 된 것 같았다.
'어린 나이에 어쩜 저리 잘하지?'
스테판의 수비 지휘를 지켜보던 네이선이 감탄했다. 센터백으로선 아직 어린 나이에다 키퍼 출신이다. 센터백으로 전환한 지 몇 년 되지 않았는데, 본인 역할은 물론 수비 지휘도 엄청나게 잘했다.
'스테판 같은 센터백이 되고 싶다.'
벤치 선수도, 어쩌다 벤치에 앉은 주전도 각자 개인 목표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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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전은 0:0으로 끝났다.
스토크시티가 무척이나 많은 기회를 만들었는데 아쉽게 골대와 키퍼의 완강한 저항을 받았다.
'빨리 골을 넣어야 한다.'
노골이 계속되면 팀의 사기가 급락한다.
'근데 뭐가 문제지? 내 감각에 문제가 생긴 건가?'
고민 끝에 도라익은 신발을 갈아 신었다.
'도우가 있어 참 다행이야.'
테일러가 흐뭇한 얼굴로 그런 도라익을 바라봤다.
알고 한 건지 모르지만, 선수들은 전반전에 골이 안 들어간 걸 도라익의 신발에 문제가 생겼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면 후반전에 좀 더 긴 기간 전반전의 사기를 유지할 수 있다.
- 도라익 선수 공 잡습니다.
도라익은 전후좌우 마음껏 날뛰던 전반전과 달리 포워드 자리로 갔다. 얼마 안 남은 체력을 낭비하지 않고 골 넣는 데 집중하기 위해서다.
- 슛!
- 들어갑니다.
도라익은 공을 잡자마자 몸을 돌려 수비수를 마주했고, 페이크도 없이 왼쪽으로 한 번 툭 친 다음 슈팅을 때렸다.
'리듬 변환. 왜 그걸 잊었지?'
도라익은 전반전 내내 일정한 리듬으로 움직였다. 컨디션이 너무 좋아서 그저 몸이 가는 대로 맡긴 탓이었다.
'상대 리듬에 맞춰 움직이다가 갑자기 리듬을 변환. 이 중요한 걸 잊었다니.'
- 도라익 선수 돌파!
- 급정지!
- 슛!
- 골! 또 골입니다.
오른쪽으로 공을 짧게 세 번 치다가 갑자기 멈춘 도라익이 왼쪽으로 한 번 친 다음 왼발로 슈팅했다.
수비수와 비슷한 리듬으로 상대에게 접근한 후, 조금 빠른 리듬으로 돌파를 시도한다. 상대는 급히 리듬을 끌어올릴 수밖에 없었고, 도라익은 급정지와 방향 전환으로 수비수를 쉽게 뿌리쳤다.
'컨디션이 좋으니까 이런 게 되는구나.'
컨디션이 좋다고 엄청 멋진 드리블과 슈팅을 해야 하는 건 아니다. 컨디션이 좋다고 그저 몸에 맡겨도 되는 건 아니다.
'그간 경기를 쉬면서 머리가 굳은 거 같아. 아니면 나이를 먹어서일 지도.'
세월이 너무 야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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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익아, 신발 스폰서 제안서야."
도라익의 2골에 힘입어 스토크시티는 3:2 승리를 일구고 리그 2위로 순위가 상승했다. 맨시티의 5연승 때문에 조금 묻혔지만, 스토크시티의 선전도 꽤 화제였다.
5경기 6골로 득점 1위를 달리는 도라익 역시 화제일 수밖에 없고, 후반전에 신발을 갈아 신은 것도 단독 뉴스가 될 정도다.
"형. 예전부터 말했지만, 돈이 중요한 게 아니야."
도라익이 말했다.
"기술력이 중요해. 난 최고의 신발을 신고 축구할 거야."
"알아. 네 요구대로 회사 찾았어."
"이번 시즌 팀의 현재 목표는 리그 우승이야. 내 목표는 골든 슈즈와 리그 MVP고. 그러니까 무조건 최고여야 해."
8월 이달의 선수를 차지한 도라익이다. 잘한 선수가 많지만, 도라익의 복귀는 드라마틱한 효과가 있고, 눈에 보이는 데이터도 도라익이 최고였다.
"이달의 선수를 5번 정도 하면 MVP 안 주고 못 배길 거야."
"차라리 도움왕까지 한다고 하지?"
도라익의 눈이 번쩍 뜨였다. 왜 이리 좋은 생각을 진즉에 못 했나 자책하며, 또라이한테도 배울 건 있다며 깊이 반성했다.
"이 회사가 한중일 합작인데, 요즘 상승세가 좋아."
"직원이 50명?"
자료를 읽은 도라익의 머리 위에 커다란 물음표가 떴다.
"대부분은 기계가 하니까. 이건 비교 자료야."
접지력이나 감촉을 비롯해 도라익이 봐도 뭔지 모를 지표 대부분이 업계 1위였다.
"한국이 소재를 책임지고 일본이 기계를 책임지고, 중국이 판매를 책임지는 형태야. 제일 중요한 게 디자인이랑 소재니까 한국 기업이라고 봐도 무방해."
"그러니까 그냥 돈 주고 사라는 거야?"
규모가 작고 시작한 지 오래지 않은 회사여서 도라익에게 거액의 계약금을 줄 수 없다. 도라익이 기술력을 언급한 건 대형 브랜드를 염두에 두고 돈 더 많이 주는 회사보단 더 좋은 신발을 만드는 회사를 고르라고 한 건데, 최경호가 직원 50명 규모의 신생 회사를 들이밀 줄 몰랐다.
"아니지. 주식을 사서 네가 대주주 되는 거야. 그다음에 여기랑 종신 계약을 하고 도라익 슈즈를 생산해 파는 거지. 이 회사는 너랑 함께 세계 최고로 성장할 거야."
최경호는 도라익에게 조던 운동화에 대해 설명했다.
"일단 몇 켤레 만들라고 해. 신어 보고 결정할게."
최경호는 도라익이 신었던 신발 수십 켤레를 한국에 보냈다. 도라익에게 꼭 알맞은 전용 슈즈를 생산하려면 기존 신발이 어떻게 변형했는지, 어느 부위가 더 많이 닳았는지 등 수많은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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