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파도
1월 12일 홈에서 리그 19위의 풀럼을 만난 스토크시티는 도라익과 찰리가 골을 하나씩 넣으며 2:1로 승리했다.
그러나 스토크시티 팬들은 오히려 마음을 졸여야 했다. 원정에서 에버턴에 0:1로 패한 맨시티와 홈에서 뉴캐슬을 6:0의 큰 점수로 이긴 맨유.
맨시티 구단주가 불같이 화를 내며 선수단 재정비를 지시했다는 소문이 퍼지며 당장 도라익을 뺏기는 게 아닌지 걱정해야 했다.
1월 16일 FA컵에서 맨시티에 0:1로 패배한 스토크시티는 리그와 유로파리그 경기만 남았다. FA컵을 처음부터 포기하고 싶었던 윌슨으로선 첫 대결 상대가 맨시티였던 게 정말 다행이었다.
지고도 기쁜 윌슨과 달리 팬들은 커뮤니티에서 도라익이 왜 출전 안 했는지를 추측하며 갑론을박을 펼쳐야 했다. 도라익의 이적 협상이 마무리 단계가 되어 출전에서 배제된 거라는 의견을 내는 비관론자들과 우리 도우가 그럴 리 없다는 순정파들이 문자열로 피 터지는 싸움을 벌였다.
그리고 1월 20일 원정에서 스토크시티는 또 맨시티를 상대하게 되었다. 선발로 출전한 도라익은 공격 포인트를 올리지 못했지만, 꽤 준수한 모습을 보여주고 경기 70분에 교체되었다.
스토크시티는 제임스의 골로 맨시티와 1:1로 비기면서 리그 10위를 굳건히 지켰다.
그리고 1월 26일.
스토크시티는 홈에서 리버풀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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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입니다!
- 경기 1분 만에 도라익 선수가 득점에 성공했습니다.
- 정확히는 47초죠.
다소 의외의 골이었다.
리버풀의 선축으로 시작한 경기였다. 리버풀 선수들은 패스로 합을 맞추며 공격에 급급해하지 않았다.
시즌 초반 같으면 득달같이 달려들었을 도라익과 제임스도 슬렁슬렁 걸으며 적극적으로 압박하지 않았다.
이어지는 경기 일정이 장난이 아닌 탓이다.
공이 스토크시티 진영으로 넘어온 뒤 리버풀의 오른쪽 윙이 돌파를 시도하다가 맥자넷한테 공을 뺏겼다.
그때까지만 해도 다들 별생각이 없었다.
맥자넷 역시 별생각 없이 달려오는 루이스한테 패스했고, 루이스 역시 별생각 안 하고 제임스한테 공을 넘겼다.
제임스 역시 정석대로 찰리한테 패스했다. 리버풀 센터백과 벌인 몸싸움을 힘겹게 이겨낸 찰리는 공을 오래 잡을 엄두가 나지 않아 달려오는 도라익한테 백 패스했다.
그리고 도라익이 슛을 때렸다. 골대와 무려 45미터나 되는 곳이어서 본인 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페널티 마크 근처에서 어슬렁대던 키퍼가 황급히 돌아서 뛰었으나 궤적이 다소 평평한 도라익의 슛은 정확히 골대에 꽂혔다.
- 큰 의미는 없습니다만, 올해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빠른 골입니다.
- 가장 슈팅 거리가 먼 득점이기도 하고요.
행운과 실력이 반반인 골이다. 45미터는 프로도 100% 확신 못 하는 거리다. 더구나 키퍼에게 걸리지 말아야 하기에 일정 수준 이상의 정확성이 필요하다.
경기 20분.
- 이르게 터진 골이 스토크시티에 딱히 호재는 아니었습니다.
- 대니 선수 레드카드로 퇴장합니다.
선축으로 시작한 경기에서 1분도 안 되어 실점한 리버풀이 기어를 한꺼번에 최고 단계로 올려버렸다.
시뻘건 파도가 스토크시티 골문을 쉼 없이 덮쳤고, 그 결과로 대니 밧스가 경기 20분 만에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했다.
카드 누적이 아닌 직접 레드여서 3경기 결장이다.
- 산체스를 내리고 타이먼을 넣습니다. 이해하기 조금 힘든 선택이네요.
- 리버풀은 현재 세트피스 상황에 8득점을 성공한 팀입니다. 9골의 첼시 다음으로 프리미어리그 2위죠. 세트피스 수비를 생각하면 찰리 선수를 내려보낼 순 없습니다.
- 세트피스만 생각하기엔 필드 상황에서 위험이 속출하고 있거든요.
리버풀만 박싱데이에 쉬고 챔피언스리그를 안 뛰었는지 공격 리듬이 2라운드에 상대할 때와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 맥자넷 선수 옐로카드 받습니다.
- 옛 동료였던 페어린던에게 심한 반칙을 했죠.
- 부상 위험이 큰 반칙이 아니기에 다행히 옐로카드만 받았습니다.
맥자넷이 피식 웃으면서 바닥에 누워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 페어린던에게 손을 내밀었다. 페어린던이 머쓱한 얼굴로 맥자넷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넌 오늘 아무것도 못 해."
"우리 팀이 이길 거야."
웃는 얼굴로 대화한 둘이 떨어졌다. 그러나 리버풀이 톰 에드워즈로 꽉 막힌 왼쪽 대신 오른쪽 공격에 치중하다 보니 맥자넷과 페어린던의 대결이 쉬지 않고 이어졌다.
헛다리로 맥자넷을 속인 페어린던이 골라인 쪽으로 공을 치고 달렸다. 속임수에 당해 중심을 잃은 맥자넷이 다리를 내밀어 페어린던을 걸어버렸다.
"심판. 피할 수 있는 반칙이었어. 일부러 당한 거야."
도라익이 주심을 찾아 따졌다. 다행히 주심도 이미 레드카드 하나 꺼낸 상황에 퇴장을 더 만들고 싶지 않았는지 맥자넷에게 구두로 경고했다.
- 맥자넷 선수 옐로카드 5장 누적으로 다음 경기에 출전할 수 없습니다.
- 페어린던 때문에 어려운 상황임에도 맥자넷을 바로 교체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최소 전반전은 버텨줘야 하거든요.
도라익은 왼쪽으로 내려와 수비를 도왔다. 이미 옐로카드를 한 장 받은 맥자넷이건만 전혀 동작을 줄이지 않고 위험한 수비를 견지했다.
그러나 사고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터졌다.
- 루이스 선수 레드카드입니다.
- 반칙으로 옐로카드 한 장 받은 상황에 상대방과 말다툼하다가 손을 썼습니다.
- 주심이 쌍방 과실로 판단해 옐로카드 한 장씩 줬습니다만, 루이스 선수는 방금 받은 카드가 식지도 않았거든요.
잠깐 고민한 윌슨은 스티븐 워드로 맥자넷을 교체했다. 그리고 도라익이 루이스의 위치로 가고 찰리 역시 도라익보다 더 뒤로 내려 수비에 힘을 보탰다.
붉은 파도가 스토크시티란 이름의 방파제를 끊임없이 덮쳤다.
하프타임.
"찰리, 체력 어때?"
"15분 정도 가능합니다."
수비하느라 무리하여 뛴 찰리는 얼굴이 핼쑥했다. 키나 체중과 비교해 운동능력이 나쁘지 않은 찰리지만, 프로로선 기초 체력이 조금 부족한 편이다.
"20분만 버텨. 후반 65분에 교체해 줄게."
톰 에드워즈가 전반전에 리버풀 상대로 레전드 수비를 펼쳤다. 45분 동안 단 한 번도 돌파된 적 없고 차단에 3번이나 성공했다.
30분 즈음에 맥자넷을 교체해 출전한 스티븐 워드도 도라익과 타이먼의 도움을 받아 페어린던과 리버풀 오른쪽 윙을 꽁꽁 묶어뒀다.
제임스가 자기 수비 위치를 고분고분 지키고, 속도가 느리지만 다리가 길고 몸싸움이 뛰어난 찰리가 딱 버티고 있으니 중앙도 크게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다.
대신 공격은 꿈도 못 꿀 상황이었다.
- 리버풀 선수들도 피로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 일방적으로 수비하는 쪽도 죽을 맛이겠지만, 내내 공격하면서도 점수를 내지 못하는 리버풀 역시 지옥일 겁니다.
- 몸은 다 지쳤습니다. 이제부터 정신력 싸움입니다.
- 도라익 선수 계속 고함을 지릅니다. 미켈 선수와 레체르트 선수도 자주 입을 열어 주변 선수들한테 뭐라고 말하네요.
- 놀랍게도 도라익 선수의 골 이후 스토크시티의 공격 기회가 딱 3번 있었습니다.
- 그중 한 번이 후반전 선축으로 얻은 기회죠.
후반 65분. 윌슨 감독이 약속대로 찰리를 교체했다.
- 이게 뭔가요? 찰리 대신 줄리엔 선수가 투입됩니다.
- 줄리엔 선수 센터백 출신이라는 기록이 있네요. 그러나 무려 8부리그 시절 얘깁니다.
- 8부리그면 거의 동호회 아닌가요?
- 4부리그까지는 프로이고, 6부리그까지는 세미 프로입니다. 파트 타임처럼 평소 직장 다니고 경기 때에만 계약한 팀을 대표하여 뜁니다.
- 8부면 경기 전에 선수 명단을 제출하는 아마추어 리그입니다. 다른 팀을 대표하여 출전한 기록만 없으면 미리 등록하지 않아도 자격이 된다고 하네요.
그러나 줄리엔이 찰리보다 수비를 더 잘하고 제공권도 확실하게 지킬 수 있는 적임자라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대니 밧스의 퇴장으로 제공권 장악이 어려워졌다. 레체르트와 리엄의 제공권이 찰리처럼 절대적이지 않기에 찰리가 교체되면 급격히 세트피스 수비가 무너질 수 있다.
여러 방면으로 고려한 윌슨은 고심 끝에 줄리엔을 수비수로 올렸다.
- 도라익 선수 근육 경련이 왔습니다.
- 이동 거리가 13km입니다. 공격이 거의 없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정상적으로 펼쳐진 경기의 16km와 맞먹는 거립니다.
- 시종 상대가 주도권을 쥔 경기에서 13km나 뛰었으니 멀쩡할 리 없죠.
"도우. 개인 훈련을 당분간 쉬어."
다리를 눌러주던 쇠렌센이 말했다. 지금 도라익은 규정에 따라 그라운드 밖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두 다리가 동시에 쥐가 올라왔기에 벤치에 있던 쇠렌센과 맥자넷이 도왔다.
"당분간 훈련 쉬어야겠다."
신체 리듬을 잃지 않으려고 매일 기본기 훈련을 2번에 나눠 총 2시간 정도 했다. 격렬한 운동은 아니지만, 알게 모르게 피로가 쌓여 이번 경기에 폭발한 것이다.
경련이 멈추자 도라익은 손을 들어 경기 투입을 요청했다. 주심의 허락을 받고 그라운드에 복귀한 도라익은 교체로 출전한 선수처럼 열심히 뛰었다.
그간 경험도 쌓이고 훈련을 통해 수비 스킬도 늘었지만, 지치고 힘든 상황에 머리가 돌아가지 않아 예전의 그 족보 없는 수비가 다시 튀어나왔다.
- 힘겨운 승리였습니다.
- 스트코시티 시즌 10승 축하드리며 중계를 마치겠습니다.
철벽남 도라익을 소유한 스토크시티가 붉은 파도를 막아냈다.
그러나 레드카드 2장과 카드 누적으로 다음 경기에 빠질 선수를 생각하면 마냥 기뻐할 수도 없었다.
'어떻게 지금까지 잘 나가다가 한 경기에서 터지지?'
도라익은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으나 부족한 경험으로 뭐가 이상한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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