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오픈
2032년 8월 16일.
볼튼 원더러스의 홈 마크론 스타디움.
-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강철민 인사드립니다.
- 박만호 인사드립니다.
- 요즘 꽤 화제가 되는 일이 있죠. 도라익 선수가 올림픽 불참을 선언했고 그걸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 네. 도라익 선수의 공식 입장은 4년 뒤 올림픽에 참가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 축구는 팀 스포츠죠. 도라익 선수가 있으면 팀 전력이 강화될 테지만, 팀 전술의 변화가 불가피하고 그로 인해 기존 선수들이 자기 기량을 다 발휘하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 이혁신 선수도 요즘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으니 도라익 선수는 프리미어리그에서 성장에 집중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는 개인 의견입니다.
실시간 채팅으로 군 면제를 받아서 올림픽 불참하는 거 아니냐는 비난 댓글이 줄을 이었다. 최 PD는 둘에게 화제를 전환하라고 수신호를 보냈다.
- 개인 성장 하니까 윌슨 감독의 후임자인 호세 알론소 감독이 떠오릅니다.
- 선수를 영입하거나 시즌을 운영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얻음에도 불구하고 프리미어리그 감독 자리를 차지한 데는 다 이유가 있죠.
- 이 감독의 장점이 선수 개조 및 포텐셜 발굴입니다. 그런데 선수들을 너무 잘 키워서 한 시즌만 지나면 팀이 해체되다시피 뿔뿔이 흩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감독 자리를 오래 지키지 못합니다.
- 그런 면에서 스토크시티와 꽤 궁합이 좋습니다. 스토크시티는 선수 영입에 꽤 장점을 보이는 구단입니다. 게다가 유스 시스템도 출중하여 정기적으로 내부 발굴로 젊은 선수들이 1군에 합류하죠.
- 제일 기대되는 건 도라익 선수의 성장입니다. 호세 알론소 감독이 중점적으로 케어할 선수라서 기대되는 것도 있지만, 그간 양발 균형을 잡기 위해 일부러 왼발만 썼다는 게 약 두 달 전에 밝혀졌죠.
- 도라익 선수 표현을 빌자면 오른발을 일부러 봉인했다고 합니다. 뇌에 온도가 유독 높은 그 점도 오른발이 주발이라는 걸 밝히면서 사라졌다는데요.
-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도 개선된 거네요?
- 그렇습니다. 오늘 도라익 선수가 어떤 모습을 보일지 정말 기대됩니다.
- 양 팀 주전을 소개하겠습니다.
- 우선 키퍼는 톰 미켈 선수입니다. 활동 범위가 넓고 공중볼 처리가 안정적이지만 난전 중에 반응이 느린 약점이 있고 2차 반응도 다소 느린 편입니다.
- 돌발 변수에 대처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뜻이죠. 그러니 스토크시티 수비진은 최대한 돌발 상황이 안 일어나게 집중력을 유지해야 합니다.
- 그럼 수비진을 보겠습니다. 스리백으로 리엄, 레체르트 그리고 갓 이적한 마르코 렌테 선수가 출전했습니다.
- 오른쪽 윙백은 안타깝게도 루벤 라미스 선수가 출전했고 오창범 선수는 벤치에서 시작합니다. 왼쪽 윙백은 당연히 맥자넷 선수구요.
- 미드필더가 조금 의외입니다. 루이스와 산체스는 예상했지만, 쇠렌센 선수가 주전으로 출전할 줄은 몰랐네요. 지난 시즌 괜찮은 모습을 보였던 제임스와 토미 매클린 모두 벤치에서 시작합니다.
- 공격진은 도라익 선수와 찰리 아담입니다.
- 이어서 볼튼의 진영을 살피겠습니다.
감독 코치와 벤치 선수들이 먼저 나가고 주전들만 남았다.
"이번 시즌은 아주 험난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도라익의 말에 선수들 모두 피식 웃었다.
"새 감독은 딱히 주전을 정하고 특정 전술에 따르는 타입이 아니다. 상대에 따라 선발과 전술을 달리하는 보기 힘든 유형이지. 그러나 우리가 만약 감독의 스타일에 적응한다면 우린 모든 팀 상대로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고, 소위 전문가들이 예측한 것 이상의 성적을 거둘 것이다."
제임스와 토미는 전술 이해의 부족으로 벤치에 앉게 됐다. 오창범 역시 전술 이해가 부족한 관계로 자신보다 공격 재능이 부족한 라미스한테 주전을 양보해야 했다.
"일주일 혹은 며칠 사이에 맞춤 전술을 이해하고 그에 따른 움직임을 익숙히 하는 건 어쩌면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로 인해 이번 시즌의 여정이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열심히 해서 감독의 의도대로 움직이면 우승컵 하나 더 올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도라익의 목소리에 점점 힘이 실렸다.
"결론은 이거다. 우리 하기 나름이다. 우리가 잘나면 좋은 결과를 얻는 거고 우리가 못나면 나쁜 결과를 얻는 거다."
"우린 자랑스러운 스토크시티! 노력하여 승리한다!"
찰리가 크게 외쳤다. 부주장이 되면서 조금씩 성격이 사교적으로 변했고, 급기야 맥주 몇 잔 마시면 사람들 앞에서 엉덩이를 돌리며 춤출 정도가 되었다.
모든 부담과 책임을 도라익만 짊어지는 것 같아서 부주장의 의무를 이행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뭘 할지 잘 모르는 상황에서 최대한 도라익이 하려는 일을 이해하고 맞장구를 쳐주는 중이다.
"사나이답게 싸우자!"
루이스 역시 호응했다. 책임감 같은 건 아니고 그저 흥이 많아서였다.
"가자!"
스토크시티 선수들은 구호를 끝으로 대기 통로에 가서 줄을 섰다. 두 시즌 보면서 얼굴이 익어진 볼튼 선수들과 인사도 나누면서 잠깐 있으니 바로 입장 시간이 됐다.
경기전 필수 행사를 모두 거치고 심판의 호각 소리와 함께 공이 굴렀다.
초반부터 스트크시티는 볼턴을 압도했다.
- 지난 시즌과 완전히 다른 팀이 됐습니다.
- 윌슨 감독의 스토크시티가 정규군 느낌이었다면 알론소 감독의 스토크시티는 살짝 전투력만 강조한 특수 부대 느낌입니다.
공격 상황에선 세 센터백마저 중앙선을 넘어 공격에 참여했고, 수비 상황엔 찰리 아담을 제외한 모두가 깊이 들어왔다.
- 도라익 선수 공을 잡고 드리블합니다.
센터 써클 근처에서 공을 잡은 도라익이 드리블을 시작했다. 왼발로 드리블하던 도라익이 갑자기 오른발로 바꿨다.
볼튼 선수는 중심을 우측에 두고 도라익이 돌파하면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 쫓을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발로 바꾸니 당황하여 굳어버렸다.
도라익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쉽게 돌파했다.
곧 다른 선수가 도라익의 앞을 막았다. 오른쪽으로 툭툭 치고 가던 도라익이 갑자기 백숏으로 공을 왼쪽에 보낸 다음 왼발로 드리블했다.
중심을 좌측에 뒀던 수비 선수는 앞선 선수와 마찬가지로 중심 이동이 늦어 아주 쉽게 돌파당했다.
그런 도라익 앞을 볼튼의 선수 두 명이 막았다. 한 명은 왼쪽 돌파를 저지하고 한 명은 오른쪽 돌파를 저지할 생각으로 보였다. 그러면서도 둘 사이로 빠질 틈을 안 주려고 꽤 가깝게 붙었다.
도라익의 발이 현란하게 움직였다. 리드미컬하진 않지만, 대부분 선수보다 박자가 빠른 플리플랩에 수비수 두 명 모두 굳어버렸다.
상대 몸이 굳은 걸 감지한 도라익은 공을 두 선수 사이로 빼고, 자신은 왼쪽으로 돌아갔다. 좌측 수비를 책임진 선수가 도라익의 옷깃을 당겼다.
- 수비수 두 명 제치고 슛!
- 아쉽습니다. 키퍼가 선방했습니다.
- 저걸 막네요.
유니폼을 당기긴 했지만, 도라익의 슈팅을 방해하지 못했기에 반칙은 선언되지 않았다.
"복귀!"
공격이 끝나자 스토크시티 선수들이 복귀를 외치며 빠르게 돌아갔다. 괜찮은 패스 능력으로 팀의 패스워크에 참여했던 레체르트와 마르코의 발놀림이 가장 분주했다.
그와 대조되게 중앙선 부근에서 상대 반격에 대비하던 쇠렌선은 오히려 앞으로 나가 도라익과 찰리를 도와 전방 압박으로 볼튼의 공격을 지연했다.
- 선수들 체력이 버텨줄까요?
- 90분 내내 저렇게 뛰는 건 당연히 불가능합니다. 아마 알론소 감독은 전반전에 선제골을 넣은 다음 전술을 변경해서 쉬운 경기를 펼치려는 속셈일 겁니다. 비록 하부 리그지만, 예전에 자주 보이던 모습입니다.
강철민의 분석은 정확했다. 호세 알론소는 스페인 출신이지만, 스타일은 오히려 이탈리아 감독에 가까웠다. 경기 중에 전술을 변경하는 거로 이득을 취하기 좋아하는데, 선제골을 넣은 경기에서 대부분 승점 3점을 따냈다.
불행하게도 볼튼의 골문을 일찍 열지 못한 스토크시티는 자신의 극단적인 전술 때문에 대가를 치렀다.
- 안타깝습니다. 루이스 선수 옐로카드 누적으로 전반전 27분에 퇴장합니다.
코너킥 상황에 쇠렌센과 함께 뒤에 남았던 루이스가 상대 공격수 다리를 걸고 옐로카드 누적으로 퇴장했다.
- 알론소 감독이 고민합니다.
- 고민할 거 없습니다. 빨리 미드필더에 속도가 빠른 토미를 올려야 합니다. 허리가 다치면 공격과 수비 모두 원활하게 안 돌아갑니다.
해설들의 걱정은 아주 빠르게 현실로 나타났다.
볼튼은 알론소가 누굴 올리고 전술을 어떻게 변화할지 고민하는 사이에 연속 3골을 집어넣었다. 스토크시티 역시 도라익의 주도하에 날카로운 공격을 보였지만, 골대만 두 번 맞히고 말았다.
- 3골이나 먹어 아쉽지만, 양발을 자유자재로 쓰는 도라익 선수의 모습은 정말 좋네요.
- 그리고 지난 시즌과 달리 스토크시티의 공격은 도라익 선수를 둘러싸고 진행됩니다.
- 지난 시즌엔 찰리가 공을 잡고 누구한테 주느냐에 따라 공격 전술이 달라졌는데요. 이번 시즌은 도라익 선수가 드리블로 상대 진영을 흔들면서 틈을 만드는 전술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알론소 감독은 결국 인원 교체 없이 전반전을 끝냈다.
"오케이. 후반전 전술이다."
알론소는 팀이 자신의 데뷔전에서 엉망인 모습을 보였음에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줄리엔이 리엄을 교체한다. 그리고 도우는 수비 상황에 미드필더로 뛴다. 줄리엔은 수비 상황엔 센터백, 공격 상황엔 파워 포워드다. 공격 상황에서 수비는 레체르트와 쇠렌센이 한다. 그리고 라미스, 후반전에 챵붐으로 교체할 거니까 체력 아끼지 말고 달려."
- 아니, 전반전부터 이렇게 뛰었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압도라는 말로 부족했다. 압살이라는 말도 조금 미지근하게 느껴질 정도로 선수 한 명이 퇴장한 스토크시티가 볼턴을 농락했다.
- 도라익 선수를 미드필드로 내린 게 신의 한 수 같습니다.
- 그리고 공격 상황엔 새도우 스트라이크처럼 움직이고 있죠.
찰리와 줄리엔 두 거탑이 버티자 볼턴은 어떻게든 라인을 올려 둘이 골대와 멀어지게 하려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도라익이 침투할 공간이 커진다.
불턴에게 다행이라면 오늘 산체스의 컨디션이 평범하여 스루패스가 정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게 아니었으면 스토크시티가 벌써 점수를 만회했을 것이다.
어렵게 볼턴이 반격 기회를 잡아도 쇠렌센의 교묘한 위치 선정과 능력치가 전반적으로 우월한 레체르트에게 다 막혔다.
어렵게 둘을 뚫어도 어느새 돌아온 도라익의 방해를 받기 일쑤고, 아니어도 톰 미켈이 페널티 박스 밖까지 나와서 공격을 와해했다.
비록 골은 터지지 않고 있지만, 흡사 대학생과 초등학생의 경기를 보는 느낌이 들 정도로 스토크시티가 압도했다.
- 도라익 선수가 미드필더처럼 뛰니 스토크시티의 공격과 수비 모두 몇 단계 업그레이드된 느낌입니다.
경기 85분. 스토크시티도 지치고 볼튼도 지쳤다. 그런 상황에 후반 68분에 교체로 출전한 오창범이 오버래핑해 공을 잡았다.
크로스를 올릴 것처럼 다리를 크게 휘두른 것과 대조되게, 오창범은 공을 소심하게 톡 건드려 앞으로 찔렀다. 어느새 달린 산체스가 아무런 방해도 안 받고 편하게 크로스를 올렸다.
가까운 포스트에서 도라익이 높이 점프했지만, 공을 안 건드리고 뒤로 흘렸다. 흘린 공은 먼 포스트에 자리를 잡은 찰리가 아주 편하게 골대로 밀어 넣었다.
- 도라익 선수는 물론 교체로 출전한 오창범 선수 역시 좋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결과가 조금 아쉽게 됐네요.
후반전에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줬음에도 스토크시티는 안타깝게 1:3으로 패배하였고, 리그 19위에 랭크되었다.
- 작가의말
알론소 : 도우, 데뷔전 3골 1도움은 국룰 아니었어? 왜 내 데뷔전엔 골 안 넣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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