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12라운드 경기에서 도라익과 우디르의 골로 스토크시티는 2:1 홈 승리를 거뒀다.
문제는 13라운드였다.
A매치 데이에 월드컵 예선전이 있었다. 늘 있던 일이지만, 올해는 유난히 부상이 많았다.
다행히 스토크시티 선수들은 부상이 없었지만, 테일러는 지친 선수들을 대신해 후보 선수를 대량으로 기용했다.
풀백은 라미스와 스미스가, 센터백은 네이선과 스테판이, 미드필더는 산체스만 그대로고 남은 셋은 쇠렌센과 타이먼과 닉 포웰이, 공격수는 줄리엔과 도라익이 출전했다.
스리백 상대로는 원톱 혹은 제로톱이 효과적이다. 4-4-2에 대항해 3-5-2가 유행했고, 3-5-2에서 세 센터백의 위력을 죽이려고 나온 게 4-5-1 원톱 전술이다.
3명의 센터백으로 2명의 공격수를 효과적으로 수비하던 걸, 공격수를 1명만 올리는 거로 센터백을 3명이나 쓰는 게 낭비가 되게 만들었다.
스리백이 다시 유행한 건 센터백이 위치를 올려 공격에 가담하는 전술 덕분이었다. 상대가 원톱 혹은 제로톱 전술을 쓰더라도 패스 잘하는 센터백이 미드필더처럼 위치를 올려버리면 그만이다.
스리백 전술을 잘 쓰는 뉴캐슬 상대로 4-4-2 포맷을 고집하는 건 어찌 보면 실책이다.
테일러는 여기서 역발상을 냈다.
줄리엔과 도라익을 공격수로 올려 상대의 세 센터백을 잡아뒀다. 센터백 한 명의 지원을 받아 패스 워크를 진행했던 뉴캐슬은 당황하고 말았다.
스토크시티의 네 미드필더 중, 쇠렌센과 타이먼은 수비 잘하는 선수다. 닉 포월 역시 수비가 뛰어나서 주전인 산체스가 오히려 넷 중에 수비를 제일 못한다.
센터백의 도움을 받지 못한 뉴캐슬 미드필더들은 넷의 수비를 뚫지 못했다.
중앙이 단단해서 두 윙백의 활약이 더욱더 돋보였던 뉴캐슬이다. 중앙의 도움을 덜 받는 건 스토크시티의 두 풀백 역시 마찬가지지만, 원래 축구는 공격보다 수비가 쉬운 스포츠다.
게다가 스토크시티는 머릿수의 우위가 있다.
도라익과 줄리엔 둘이서 키퍼와 센터백 3명을 잡고 있으니 남은 9명은 7명만 수비하면 된다.
- 절대 카드를 잡은 감독의 여유죠.
줄리엔이라는 절대 제공권이 있어 반격 효율이 매우 높다. 거기에 12라운드 15골의 도라익이라는 절대 카드까지 있으니 테일러는 한 골 먹고 들어간 거나 마찬가지다.
- 뉴캐슬이 도박합니다.
공격은 지지부진하고, 수비는 간담이 서늘하고. 이대로는 홈에서 무승부를 하고도 잔치를 벌여야 할 판이다.
뉴캐슬은 끝내 못 참고 라인을 잔뜩 올리고 센터백 한 명이 공격에 가담했다.
줄리엔의 절대 제공권을 무력화하는 괜찮은 선택이긴 하나, 도라익의 반격 위험은 오히려 커지는 도박이다.
상대가 라인을 올리자 줄리엔은 바로 센터백으로 위치를 내렸고, 네이선이 상대 공격수를 따라다녔다.
뉴캐슬이 어렵게 한 선택이지만, 이미 테일러의 예상에 있었다.
- 반격입니다.
뉴캐슬이 도박을 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스토크시티의 선발 선수 중에 패스 잘하는 선수가 산체스밖에 없기 때문이다.
남은 선수 중 라미스와 스미스가 그나마 긴 패스를 좀 하고, 남은 선수들은 아니었다.
문제는 횟수 그리고 남은 두 센터백과 키퍼가 받는 스트레스였다. 도라익은 골을 못 넣더라도 꿈에 나올까 봐 두려울 정도로 세 선수를 괴롭혔다.
- 오오, 들어갑니다.
- 의외의 슛이고 의외의 골이네요.
- 40미터 밖의 원거리 슛이 들어갔습니다.
'이게 들어가네?'
혼자서 셋을 괴롭히는 일이 쉬울 순 없다. 전반전 35분이 돼가면서 도라익도 꽤 지쳤다. 괜히 공을 잡고 오래 끌다가 쉽게 수비당하면 얕보일 수 있기에 도라익은 공격을 간단히 끝내기로 했다.
그저 어처구니없는 슛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으로 적당히 때렸는데, 멋진 골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1골을 앞선 스토크시티 선수들은 감독의 전술을 더욱더 철저히 이행했고, 그런 스토크시티의 수비를 뚫지 못한 뉴캐슬은 점점 초조해졌다.
- 도라익 선수 해트트릭!
- 후반 72분, 도라익 선수의 해트트릭으로 스토크시티가 3:0의 점수로 앞섭니다.
- 전반전 7번의 반격 기회에서 하나 잡았는데, 후반전은 4개의 기회 중에서 2개 잡았습니다.
경기는 3:0으로 끝났다.
뉴캐슬은 주전 2명이 부상으로 결전하면서 실력 발휘를 제대로 못 한 핑계가 있다.
그러나 선수들의 부족한 체력에 적극적인 대책을 세운 테일러와 그렇지 못한 뉴캐슬 감독의 차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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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1위야."
5연승으로 2위까지 치고 올라왔던 아스널이 지난 경기에서 무승부를 내더니 결국 동시에 진행한 경기에서 웨스트 브로미치에 졌다.
"목표를 이뤘네."
선수들이 낄낄거리며 농담했다. 내일 맨시티가 홈에서 리버풀을 이기면 2위로 내려갈 것이지만, 일단 하루 동안은 프리미어리그 1위 팀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13라운드는 저주를 받았는지, 토트넘과 첼시를 빼고 모두 원정팀이 승리했다.
맨시티는 부상자가 속출한 리그 10위의 리버풀을 홈에서 맞이해 1:6의 참패를 당했다.
덕분에 13라운드 경기가 모두 끝나고도 스토크시티는 리그 1위에 랭크돼 있었다.
난리가 났다.
스토크시티는 20실점으로, 수비 순위에서 14위에 랭크됐다. 대신, 공격 순위에선 28골로 1위를 차지했다. 13라운드 18골로 시즌 골든 슈즈를 예약한 도라익 덕분이었다.
수비 축구가 아닌 공격 축구의 시대가 열렸다고 전문가나 언론 모두 입 모아 떠들었다.
동시에 시즌 우승을 누가 할지에 대한 논쟁도 치열했다.
27골 15실점의 맨시티, 23골 11실점의 아스널, 24골 11실점의 토트넘, 24골 20실점의 웨스트햄, 24골 16실점의 에버턴.
맨유는 19골밖에 못 넣었다는 이유로 리그 2위를 차지했음에도 언급이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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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 왜 이래?"
방금 끝난 경기에서 맨시티가 승리해 리그 1위를 탈환했다. 2위가 된 스토크시티는 3위에 랭크된 맨유를 홈에서 맞이한다.
아시아 지역에서 인기 1순위를 향해 질주하는 스토크시티와 전 세계에 많은 팬을 보유한 맨유, 거기에 맨시티 팬들까지 지켜보는 덕분에 오늘 경기는 시작 전부터 어마어마한 관심을 받았다.
"별일 아니야."
대답을 한 루이스가 밖으로 나갔다. 이어서 서너 명 선수가 더 일어섰다.
"어딜 가는 거야?"
"화장실."
"방금 내가 화장실 갈 때 네가 나오는 거 본 거 같은데?"
"도우, 잠깐 얘기 좀 하자."
제임스가 도라익을 불렀다.
"내가 없는 사이 누가 싸운 거야?"
도라익이 질문했다.
"아니야. 오늘 이겨야 한다는 부담 때문이야."
일주일 사이 스토크시티 선수들은 수많은 축하와 관심을 받았다. 길을 걷다가도 리그 1위를 축하한다는 낯선 사람의 인사를 받았고, SNS에도 수많은 좋은 댓글을 받았다.
가족 모두가 스토크시티의 1위로 행복해했고, 지인들도 잦은 연락을 했다.
'내가 너무 들떠 있었구나.'
도라익도 리그 우승을 진짜 할 거란 기대는 없었다. 그저 3위니까 2위, 2위니까 1위가 목표여야 한다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13라운드가 끝나고 리그 1위가 되어 기쁘기만 했고, 팀의 분위기를 감지하지 못했다.
사실 도라익의 잘못도 아닌 게, 몇 시간 전까진 이 정도로 분위기가 심각하진 않았다.
"넌 괜찮지?"
제임스가 고개를 저었다.
"나도 화장실 가고 싶은 걸 계속 참고 있어."
"누가 괜찮은 거 같아?"
"스테판. 나머진 다 아니야. 특히 루이스랑 줄리엔 그리고 맥자넷이 심해."
1위라는 목표가 부담을 넘어 공포가 되었다.
"테일러랑 얘기 해볼게."
도라익은 테일러를 찾았다. 경기 전에 감독이나 선수들이 있을 곳은 몇 없다. 라커룸, 샤워실, 화장실 그리고 영양실이다.
도라익은 영양실에서 테일러를 찾았다. 테일러는 양손으로 자기 얼굴을 계속 비비고 있었다.
"감독님, 왜 그래요?"
"도우, 넌 인터넷 안 하지?"
"시간이 별로 없어서요."
"잘했어. 선수 그만둘 때까지 하지 마."
"인터넷에서 뭐라 그래요?"
"날 공격형 축구의 시대를 연 선구자라고 그러더라."
누군가는 관심이 부담됐고, 누군가는 기대가 부담됐고, 누군가는 묵직한 타이틀이 부담됐다. 이러한 부담들이 서로 엮이고 진화해 공포가 되어 팀 전체를 짓눌렀다.
한둘이나 서넛이 이러면 저절로 해결됐을 텐데, 팀 전체가 부담에 짓눌리다 보니 어어 하는 사이에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이대로는 오늘 경기 못 이기겠는데요?"
도라익의 말에 테일러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알아. 그런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괜히 내가 틀린 말을 해서 분위기가 더 최악으로 치달을까 봐 걱정이야."
테일러라고 손 놓고 싶은 게 아니다. 그러나 본인조차 힘든 상황이어서 괜한 짓으로 더 악화시킬까 봐 영양실에 도피했다.
"제게 맡겨주세요."
도라익은 화가 났다. 사람마다 다르다는 건 알지만,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은 일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에 성이 났다.
"다들 모여. 할 말이 있어."
선수들을 모은 도라익은 상의를 벗어 던졌다. 흉측한 흉터들이 라커룸의 밝은 조명에 선명하게 드러났다.
"너희 지금 뭐 하는 거야? 내가 주치의마저 아니라고 할 때 매일 울면서 훈련한 게 이런 꼴 보고 싶어서인 줄 알아? 고작 1위 하는 게 무섭고, 1위 못 하는 게 무섭고. 팔다리 멀쩡해서 뭐가 그리 무서운데?"
선수들이 고개를 푹 숙였다.
"사람이 살다 보면 어쩌다 1위 할 수 있고, 어쩌다 우승 할 수도 있는 거지. 독일엔 2부 리그에서 올라오자마자 분데스리가 우승을 한 팀도 있대. 거긴 안 힘들었을까? 우린 쭉 프리미어리그를 뛰던 팀이야. 2부 리그만 뛰던 선수들보다 더 힘들까?"
"도우, 혹시 이 기사 본 적 있어?"
도라익은 루이스가 건네는 패드를 받아 기사를 빠르게 훑었다. 스토크시티의 감독과 선수 그리고 전술을 면밀히 분석한 기사였다.
"이게 왜?"
"난 내가 저런 선수인 줄 몰랐어."
대부분 선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모르던 장단점을 기사로 확인하고 대부분 선수가 흔들렸다. 자신이 특별한 선수인 것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고, 자신의 단점이 아주 치명적으로 느껴졌다.
발개 벗겨져서 세상에 던져진 기분도 들었고.
도라익은 오창범을 힐끗 바라봤다. 관심을 갈구하고 외부 반응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성격답게 오창범의 표정은 매우 안 좋았다.
저런 오창범보다 루이스나 줄리엔의 상황이 더 나쁘다고 하니, 현재 팀 상태가 얼마나 엉망인지 알 것 같았다.
"우리가 골은 가장 많이 넣었지만, 실점은 뒤로 7번째라고 했던가?"
선수들 모두 도라익의 말에 집중했다.
"그런데 현재 리그에서 토트넘이랑 우리만 1경기 패배지?"
선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왜 우린 1경기밖에 안 졌을까?"
"골 많이 넣어서?"
제임스가 되물었다.
"우리가 강하기 때문이야. 우리가 프리미어리그에서 제일 훌륭한 선수는 아닐지 모르지만, 우리가 만든 팀은 누구한테도 쉽게 안 진다는 거지."
도라익은 선수 하나하나와 눈을 맞췄다. 이글이글 불타는 도라익의 눈이 선수들 마음에 따뜻한 불을 지펴 차가운 공포에 맞섰다.
"자. 허튼 생각은 다 버리고, 경기에 집중한다. 오늘 경기 별거 아니다. 38라운드 경기 중 하나일 뿐이고, 리그 2위가 홈에서 리그 3위를 맞이하는 경기일 뿐이다."
"아자, 아자. 할 수 있다!"
오창범이 악을 썼다. 강팀 상대로는 라미스가 더 많이 주전으로 출전했는데, 오늘은 오창범이 주전이다.
상대의 민첩한 윙을 수비하는 덴 라미스보다 오창범이 낫다는 테일러의 판단이었다.
"맨유 별거냐. 홈에서 우리한테 져서 우승도 놓친 적 있잖아."
전방위적인 관심과 압박으로 팀 전체가 흔들렸지만, 다행히 완전히 허물어지기 전에 테이프로 형태라도 유지했다.
'오늘 경기 지면 끝장이다.'
어렵게 수습했지만, 경기에서 지면 한동안 팀 전체가 슬럼프에 빠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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