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비급
10월 31일.
스토크시티는 리그컵 원정 경기에서 챔피언십 팀인 코벤트리와 대결했다. 도라익과 찰리는 벤치에서 시작했고, 약팀 상대로 자주 출전하던 쇠렌센과 타이먼도 벤치에 앉았다.
그간 거듭 강조했지만, 슈팅이 도라익과 찰리한테 몰리는 현상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버려도 안 아까운 리그컵 경기에서 도라익과 찰리를 빼는 특단의 조치를 했다.
쇠렌센과 타이먼은 프리킥 상황이 아니면 공격에 전혀 참여하지 않기에 역시 제외되었다.
"찰리. 왜 넌 리그에서 골을 잘 넣고 난 유로파에서 골이 잘 들어갈까?"
스토크시티 선수들 사이에 내년 유로 대회에서 찰리가 주전을 차지할 수 있도록 이번 시즌 득점을 밀어주자는 공감대가 생겼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유로파리그에선 도라익이 3경기 연속 해트트릭을 기록하고 있고 찰리는 무득점이다.
"너 지난 시즌에는 골도 잘 넣었잖아."
"그렇지. 솔직히 다 쉬운 골이긴 했지만."
"그게 문제야."
클루카스가 끼어들었다. 정식 코치라면 선수들과 잡담하는 게 아니라 경기 내용에 집중해야겠지만, 클루카스는 꼬마 주장과 팀 적응에 어려움을 느끼는 젊은 이적 선수들을 보살피는 임무를 지녔다.
"시즌 전반기에 쌓인 피로가 박싱데이를 기점으로 폭발해. 게다가 부상이 잦고 겨울 이적시장에서 인원 변동이 생기며 대부분 팀이 전반기보다는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단 말이야. 도우는 지난 시즌 후반기에 혼란해진 팀들 상대로 득점 기회를 얻었던 거야. 지금은 모든 팀이 잘 짜인 전술로 정확히 움직이니까 그런 틈이 적은 거고."
"그럼 얘는 왜?"
"찰리의 몸싸움과 위치 선정 그리고 헤딩은 절대적이야. 도우의 드리블과 슈팅도 꽤 위협적이긴 하지만, 아직 프리미어리그에서 절대를 논할 수준이 아니지."
도라익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럼 유로파리그는 왜?"
"거기 팀들은 경기 리듬이 느리고 수비도 상대적으로 허술해. 토너먼트로 가면 강팀이 늘겠지만, 조별리그 대부분 팀은 시즌 후반기의 프리미어리그 팀보다 훨씬 약해."
"왜 토너먼트로 가면 강팀이 늘어?"
클루카스와 찰리가 한숨을 쉬었다.
"토너먼트로 가면 챔피언스 조별리그 3위를 한 팀 8개가 추가돼."
"왜요?"
"그냥! 그냥 그렇게 정해있다고."
클루카스가 버럭 화를 냈다.
"너 유로파리그 조 추첨할 때 개인 훈련한다고 안 참가했지? 주장이 나서서 선수들을 모으지는 못할망정 혼자 빠져?"
"그거 지켜봐야 할 이유가 있어? 어차피 보나 안 보나 달라지는 게 없잖아."
"선수들 모아놓고 어떤 상대가 있는지 확인한 다음, 적이 강하면 열심히 하자고 사기를 고취하고 적이 약하면 방심하지 말자고 마음을 단단히 하고. 다 주장이 해야 할 일이야."
"명심할게."
"말이 잠깐 샜는데. 도우는 아직 리듬을 조절할 줄 몰라. 넌 대충 프리미어리그 전반기 리듬이라고 보면 돼. 왠지 지난 시즌보다 슈팅 기회가 적어진 것 같은 느낌이 안 들어?"
"맞아. 난 그저 상대 팀들이 날 중시하나보다 생각했는데, 아니야?"
"맨유는 널 무시해서 2골이나 먹었을까? 네가 공을 잡으면 더 집중하는 것도 있지만, 네가 더 빠른 리듬으로 움직이지 못해서 마음에 드는 슈팅 기회가 잘 안 나오는 거야."
"유로파리그에선 슈팅 기회가 많이 나오고, 그래서 못 참고 자꾸 슈팅하니까 골이 잘 들어간 거구나."
"네가 경험도 부족하고 전술 이해도 부족해 늘 비슷한 리듬으로 뛰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리그에선 기회가 잘 안 생기고 유로파에선 기회가 자주 생기는 거지. 너 슈팅 데이터 확인해 봐. 유로파에서 경기당 슈팅 횟수가 리그 3배는 될걸."
"그럼 후반기로 가면 난 리그에서도 골 잘 넣고 유로파에서도 계속 골 잘 넣는 거야?"
"네가 지금 리듬을 계속 유지할지 지켜봐야지. 지난 시즌 넌 후반기부터 경기에 투입되어 피로도가 낮았잖아."
그때 다른 의문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런데 찰리는 왜 유로파에서 골을 안 넣는 거야?"
"보통 상대가 밀집 수비를 하니까. 그리고 크로스 상황에 키퍼가 늘 나와 방해하잖아. 리그에선 다양한 가능성을 두고 안정적인 수비를 하지만, 유로파리그에서 만난 팀들은 그런 거 없이 크로스 상황엔 모든 수비역량을 찰리한테 쏟아붇는 경향이 있어."
'내가 리듬을 상대보다 어느 정도 빠르게 조절할 수 있다면 모든 경기에서 골을 넣을 수 있다.'
도라익은 절대 비급을 얻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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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6일.
스토크시티는 홈에서 팔레르모를 맞이했다. 오늘 경기만 승리하면 남은 2라운드 결과와 무관하게 스토크시티는 토너먼트에 진출한다.
구장은 팬들로 꽉 찼고 시청 공무원들과 구단 스텝들도 경기가 끝나고 벌일 축제 준비로 분주하게 보냈다.
- 오늘 동시간대에 진행하는 경기가 50개는 넘습니다.
- 그러나 전 세계가 주목하는 경기는 단 하나입니다.
- 도라익 선수가 4경기 연속으로 해트트릭을 하느냐 마느냐. 안 궁금한 사람이 없을 겁니다.
- 경기전 도라익 선수와 통화했다면서요.
- 네. 그건 잠시 후에 말씀드리죠. 우선 기온과 날씨와 풍향 등 기본 정보를 소개해야지 않겠습니까.
- 그럼요. 방송 절차는 지켜야죠.
시청률 그래프가 강하게 기지개를 켰다. 약 5분이 지나 성장세가 둔화하는 기미를 보이고 나서야 최 PD는 정보를 풀라고 신호를 줬다.
- 그럼 아까 주제로 돌아가죠. 도라익 선수와 어떤 대화를 나눴습니까?
- 이거 진짜 중요한 얘긴데. 기자 수백 명 불러놓고 회견 열어야 할 정도의 발언이거든요.
- 뜸 더 들이다간 밥이 타겠습니다.
- 도라익 선수가 절대 비급을 찾았다고 합니다.
- 절대 비급이요? 이번 시즌에 벌써 10골 12도움을 기록한 선수가 더 강해지는 길을 발견했다는 거네요?
- 그렇습니다. 어떤 팀 상대로도 골을 넣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았는데 노력이 필요하답니다.
- 노력 좋죠. 도라익 선수가 누구보다 잘하는 게 노력 아니겠습니까?
- 코어 단련을 하루에 2번씩 했죠? 평범한 사람 기준으로 일주일에 2번도 힘든 운동입니다. 도라익 선수는 하루에 다른 사람 일주일 치 노력을 할 수 있습니다.
-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가요?
-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지만, 오늘 경기에서 몸소 보여주시겠다고 합니다.
- 오늘 팔레르모는 키퍼를 비롯해 주전 세 명이 복귀했습니다. 우디네세와 더불어 수비가 탄탄하기로 세리에 A에서 유명한 팀이죠.
- 현재 세리에 A에서 10위에 머무르고 있지만, 실점은 3번째로 적은 팀입니다.
스토크시티와 팔레르모의 경기를 지켜보는 대부분 사람은 도라익의 해트트릭을 바랐다.
- 나카야마 마사시가 J리그에서 4경기 연속 해트트릭을 하여 16골을 넣었습니다. 현재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죠.
- 도라익 선수가 오늘 해트트릭을 하면 비기게 됩니다.
- 기록은 같다고 해도 유로파리그와 J리그의 무게감을 생각하면 누구 손을 들어줄지 다들 같은 결론일 겁니다.
그러나 경기 진행은 생각처럼 흐르지 않았다. 팔레르모는 경기 5분에 간접 프리킥으로 득점한 다음 빗장 수비를 펼쳤다.
주전 키퍼가 아닐 때도 50분 이상 골문을 열 방법을 찾지 못했다. 경험이 풍부하고 수비 지휘가 훌륭한 주전 키퍼의 복귀로 훨씬 단단하고 치밀해진 팔레르모는 비밀번호를 모르는 금고문처럼 견고했다.
하프 타임.
"타이먼 대신 줄리엔을 투입한다. 루이스는 후반전에 센터백으로 뛴다."
쇠렌센은 점점 출장 기회가 줄고 타이먼은 오히려 주전 자리를 굳혔다. 좌우 안 가리고 윙백의 공백을 잘 메꿨고 수비 상황에 악착같이 들러붙어 선수들이 복귀할 시간을 벌어준다.
게다가 직접 슈팅은 부족하지만, 간접 프리킥에서 훌륭한 크로스를 꽤 올렸다. 득점이 되지 못한 건 아쉽지만, 어차피 간접 프리킥은 한 시즌에 3개만 넣어도 훌륭하게 여길 정도로 득점 가능성이 작다.
그러나 개인 능력의 부족으로 교체 상황에선 항상 1순위 대기자다.
"도우도 후반전엔 헤딩 경합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도라익은 윌슨의 안배가 무슨 의민지 몰랐다. 지난 시즌이라면 그냥 그러려니 했을 테지만, 주장 완장을 단 지금은 반드시 명확히 알아야 한다.
"헤딩 경합에서 우위를 차지하면 상대는 셋의 수비에 더 많은 선수를 투입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페널티 박스 밖에 공간이 생길 거다. 제임스와 산체스는 기회가 생기면 중거리 슛을 날려."
제임스와 산체스의 중거리 슛으로 수비진을 끌어내면 찰리 등이 헤딩하기에도 편하다.
가깝게 붙어 상대 방패를 두드리는 동시에 먼 곳에 창으로 틈을 찌르는 전술. 방패를 먼저 부술지 창이 먼저 틈을 찾을지는 모르지만, 스토크시티로선 최선의 변화로 볼 수 있다.
"그리고 60분 정도 되면 토미를 올릴 거야. 제임스는 체력을 아끼지 말고 열심히 뛰어."
오른발인 제임스와 산체스를 상대하다가 갑자기 왼발에 슈팅도 잘하는 토미를 마주하면 수비가 쉽지 않을 것이다.
도라익은 윌슨이 한 말들을 곱씹으며 후반전에 어떻게 뛸지 머릿속에서 상상했다. 예전과 달리 자신뿐 아니라 다른 선수들의 움직임도 고민해야 해서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 작가의말
같은 비급도 해독에 따라 다른 위력을 보입니다. 부디 도라익이 비급을 12성 수준으로 해독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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