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승리
- 도라익 선수가 오른쪽으로 갔습니다.
- 톰 에드워즈 선수는 공격 가담이 드물기도 하지만, 크로스 역시 수준 이하입니다.
- 대신 수비는 확실합니다. 풀백의 공격 가담 요구가 없는 팀이라면 웬만해선 주전으로 뛸 수 있습니다.
- 문제는 그런 팀이 많지 않다는 거죠.
풀백의 공격 가담은 강팀일수록 요구가 높다. 순수 수비 능력으론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상위권이지만, 부르는 팀이 없는 처지다. 키라도 크면 센터백으로 전환하겠는데, 175밖에 안 되고 힘도 약한 편이다.
산체스조차 벤치에 앉아있기에 도라익이 오른쪽 측면 공격을 책임졌다. 도라익의 자리는 순수 청년 토미가 차지했다.
- 도라익 선수 뒤로 크게 꺾고 크로스!
- 찰리! 골입니다!
- 찰리 선수가 헤딩슛으로 리그 9번째 골을 기록합니다.
찰리는 도라익이 대충 어떤 크로스를 올릴지 알고 도라익은 찰리가 어떤 위치를 잡을지 안다. 크로스가 조금 부정확하긴 했지만, 찰리의 뛰어난 개인 능력 덕분에 골이 되었다.
- 더비 카운티 골치 아픕니다.
- 라인을 올리면 도라익, 라인을 내리면 찰리. 진퇴양난이거든요.
- 어차피 진퇴양난이라면 라인을 올렸으면 좋겠습니다.
더비 카운티는 라인을 내린 채 수비수를 교체했다. 속도는 느리지만 키가 크고 몸싸움에 능한 수비수가 출전하여 찰리를 마크했다.
- 더비 카운티 감독의 판단 미스라고 생각합니다.
오른쪽에 가서 크로스로 도움을 준 도라익이 다시 자기 위치로 돌아왔다. 맥자넷의 크로스는 도라익을 주로 찾고 오른쪽 측면은 그저 비워뒀다.
그 바람에 찰리를 마크하는 임무를 맡고 출전한 수비수는 할 일이 없었다.
- 맥자넷의 크로스.
- 도라익 선수 점프합니다.
- 골대를 등지고 점프했네요.
도라익은 판단 실수로 위치를 잘못 잡았다. 찰리처럼 타고난 게 아니어서 크로스를 올리기 전에 공이 어디로 올지 판단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맥자넷이 평소 컨디션이라면 그나마 덜 틀리겠지만, 오늘 맥자넷의 크로스는 도라익의 예측과 자주 어긋났다.
도라익은 헤딩으로 공을 뒤로 보냈다. 제임스와 플레이 스타일이 비슷한 토미가 도라익이 예측한 위치에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토미는 제임스와 달랐다. 제임스라면 하늘이 뒤집혀도 슈팅을 때렸을 것이지만, 토미는 왼발로 크로스를 올렸다.
- 찰리 헤딩!
- 크로스바 맞고 나옵니다.
- 도라익 선수 달려갑니다.
- 오버헤드킥!
- 페널티킥입니다.
토미의 크로스는 찰리를 찾았다. 그러나 공에 실린 힘이 약해 찰리는 헤딩할 때 허리와 목에 힘을 줘야 했고, 결국 정확도가 떨어져 공이 크로스바를 맞고 튕겨 나왔다.
누구보다 빨리 움직인 도라익이 오버헤드킥을 했는데 더비 카운티 선수가 손으로 쳐냈다.
VAR을 십수 번 반복하여 돌려본 후 주심은 옐로카드를 제시했다. 손이 공을 향해 움직이긴 했으나 선수는 이미 눈을 감고 있었기에 고의로 보기 힘들다는 판단이었다.
- 찰리 선수가 공 앞에 섰습니다.
- 찰리 선수는 오른발이 360이고 왼발이 355라고 합니다.
- 발이 큰 선수는 슈팅 정확도가 뛰어납니다. 패스도 빗나가는 법이 없죠.
- 대신 힘 컨트롤이 안 되어 정교한 패스는 어렵습니다.
- 킬패스는 방향뿐이 아니라 공에 실린 힘도 아주 세밀하게 컨트롤되어야 합니다.
- 도라익 선수는 발이 작은 편인가요?
- 그렇습니다. 그래서 정교한 터치를 곧잘 합니다.
주심의 통신 장비가 고장 나 교체해야 하기에 페널티킥은 바로 진행되지 않았다.
- 도라익 선수는 골대와 가까운 곳에서도 강하게 슈팅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 발이 키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작기에 정확하게 차는 것보다 빠르고 강한 슛이 낫다는 판단인 것 같습니다.
- 그래도 이번 시즌엔 훨씬 다양한 슈팅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장비 교체가 끝났습니다.
휘슬이 울리자 찰리는 바로 달렸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수록 키퍼가 유리하다.
- 골입니다.
- 페널티킥 성공률 100% 선수답습니다.
- 성공률 100%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거든요.
3:0으로 앞선 스토크시티 선수들은 점점 훌륭한 움직임을 보였다. 반대로 낭패한 모습이 역력한 더비 카운티 선수들의 동작이 슬슬 커졌다.
- 찰리 선수 교체 사인을 보냅니다.
- 부상이 큰가요? 화면으로 보기엔 강한 충돌이 아니었습니다.
"괜찮아?"
황급히 달려간 도라익이 찰리한테 질문했다.
"큰 부상 아니야. 그래도 발목 근처여서 신중하게 대처하는 게 좋을 것 같아."
해트트릭이 욕심날 만도 하나 찰리는 자발적으로 교체를 요구했다. 지금 팀의 공격에서 자신과 도라익의 역할이 얼마나 큰지 알기에 개인 욕심을 부릴 때가 아님을 확실히 자각하고 있다.
찰리는 도라익의 부축을 받아 쩔뚝거리며 벤치로 걸었다. 윌슨도 찰리의 의견을 존중해 줄리엔으로 교체를 진행했다.
"높은 공이 오면 어디로 헤딩할지 생각부터 해."
줄리엔이 고개를 끄덕였다. 찰리를 교체하여 몇 번 출전하긴 했지만, 그렇다 할 모습을 보여준 적 없었다.
"찰리처럼 뛰려고 하지 마. 찰리가 하는 일은 공을 잡아 같은 편한테 패스하는 거야. 굳이 훌륭한 패스를 하지 않아도 돼. 공 소유권만 지키면 합격이야."
더비의 반격을 수비하는 데 성공한 레체르트가 롱킥으로 줄리엔을 찾았다. 줄리엔은 몸싸움에서 자신과 덩치가 비슷한 수비수를 가볍게 이기고 헤딩에 성공했다.
줄리엔의 헤딩을 받은 선수는 제임스였다. 비슷한 유형인데 자신보다 속도가 빠르고 패스와 드리블도 훌륭한 토미 때문에 경기 내내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도우!"
공을 받는 순간 틈이 보이자 제임스는 길게 생각지 않고 앞으로 찔렀다. 동시에 도라익이 라인을 깨고 페널티 박스 안으로 침투했다.
부심의 깃발은 들리지 않았다.
- 도라익 선수 골라인 앞에서 또 크루이프 턴을 보입니다.
- 뒤로 뺀 공은 오른발로 밀어서 백 패스합니다.
- 토미, 슛!
- 골입니다. 도라익 선수 도움 해트트릭을 달성합니다.
도라익은 짧게 드리블하며 키퍼와 수비수 두 명을 유인한 후 토미한테 패스했다. 처음부터 작정했는지 모든 과정에 망설임이 없었다.
- 시계추 세리머니가 나왔습니다.
- 줄리엔 선수가 토미를 들고 흔듭니다.
- 토미 선수도 180으로 작은 키가 아닌데 줄리엔 앞에선 꼬마 같습니다.
더비 카운티 팬들이 분분히 일어나 퇴장했다. 머리로는 팀의 사정을 이해하지만, 리버풀에 6:0으로 진 경기가 생각나 더 지켜볼 기분이 아니었다.
- 코너킥입니다.
- 스토크시티는 이번 시즌 코너킥 득점이 달랑 하나밖에 없습니다.
- 리그컵에서 줄리엔이 넣은 게 전부죠.
- 이건 헤더가 아니라 키커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찰리는 물론 도라익과 레체르트 그리고 리엄 선수 모두 제공권이 훌륭합니다.
맥자넷이 찬 코너킥은 더비 카운티의 수비수가 먼저 따냈다.
"여기!"
코너킥이 엉뚱한 곳으로 향하는 걸 확인한 도라익은 바로 몸을 빼서 페널티 박스 밖으로 뛰었다. 예상대로 밖으로 흘러나간 공은 쇠렌센이 잡았다.
누굴 줄지 망설이던 쇠렌센은 도라익의 외침을 듣고 반사적으로 패스했다. 미리 움직인 덕분에 도라익은 페널티 박스 라인 근처에서 공을 잡았다.
- 오른발 슛!
- 휘슬이 울립니다.
- 레드카드에 페널티킥입니다.
찰리를 마크하라고 올려보낸 수비수가 손으로 도라익의 슛을 막았다. 굳이 VAR을 볼 필요도 없는 명백한 고의 파울이어서 레드카드를 받았다.
잠깐 고민한 도라익은 손에 든 공을 줄리엔한테 넘겼다.
"네가 차."
- 줄리엔 선수는 지난 시즌 1군으로 발탁되었지만, 시즌 내내 1경기도 뛴 적이 없습니다.
- 리그컵이나 FA컵에서 하위리그 팀을 상대할 때조차 출전하지 못했네요.
- 이번 시즌은 찰리 아담 선수를 교체해 유로파리그와 프리미어리그도 출전했습니다. 그러나 별 신통한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죠?
줄리엔이 엉망으로 뛴 건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프리미어리그 팀인 스토크시티에 바라는 기대치라는 게 있는데 그에 한참 못 미쳤다.
"진짜 내가 차?"
"응."
"실수하면 어쩌지?"
"기적이 있을 거야."
미라클. 도라익의 말에 줄리엔의 얼굴이 강인하게 변했다.
"미라클을 위하여."
줄리엔이 도라익한테서 건네받은 공에 입을 맞춘 후 성호를 그렸다. 그리고 단단해진 얼굴로 공을 페널티킥 마크에 놓고 천천히 뒷걸음쳤다.
휘슬이 울리고 줄리엔이 달렸다. 자신 있게 찬 강슛이 골망을 갈랐다. 스토크시티 선수들이 프리미어리그 첫 골을 기록한 줄리엔을 잡고 격하게 흔들어 축하했다.
"카메라 저기 있어."
선수들의 마수에서 줄리엔을 구출한 도라익이 손가락으로 중계 카메라를 가리켰다. 카메라 앞으로 달려간 줄리엔은 성호를 그으며 자신의 골이 미라클의 용기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고마워, 도우."
리그컵에서 득점한 적 있지만, 프리미어리그 골은 무게가 다르다. 줄리엔은 자꾸 찡그려지는 얼굴을 펴며 웃으려 애썼다.
- 도라익 선수 1골 4도움 기록합니다.
- 후반전에 출전하여 경기를 지배했습니다.
- 지난 시즌 스토크시티가 리그 꼴찌일 때도 3경기 연속 모든 득점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며 팀을 수렁에서 끌어낸 선수죠.
경기는 5:0으로 끝났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도라익은 주심한테 달려가 줄리엔이 페널티컥에 성공한 공을 요구했다.
"미라클이 좋아할 거야."
유성펜으로 웃는 얼굴을 그린 공을 받아든 줄리엔이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 작가의말
페널티킥 양보가 습관이 된 도라익. 200만 파운드의 힘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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