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탄생 신화
2015년 1월 10일.
서울 모처의 대학병원.
[안내 센터입니다.]
안내 방송이 부드럽게 울렸다.
[주사 맞기 싫어서 도망간 7세 어린이를 찾습니다.]
사람들이 피식하며 두리번거렸다.
[하얀 운동화에 청바지를 입었고 상의는 검은색 오리털 잠바입니다. 혹시 이명박 어린이를 목격하신 분은 안내 센터에 연락하시거나 502호에 계신 소아과 안철수 과장님께 데려다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웃는다. 하나의 우연은 신기하지만, 둘이 겹치면 즐겁다.
오직 산실 앞에 선 두 남자만 안내 방송을 못 들은 듯 정색한 얼굴로 언쟁을 벌였다.
"아버지. 아기 이름은 제게 맡기세요."
스무 살이 되었는지 싶은 어린 청년이다. 아버지로 불린 남자도 기껏해야 서른 중반으로 보이는 동안이다.
"무슨 소리야. 내가 보은사 큰스님한테 삼십만 원이나 보시 드리고 지은 이름인데."
"큰스님은 속세를 잘 모르시니까 그러시는 거예요."
"큰스님께서 우리 가문을 크게 빛낼 이름이라고 말씀하셨다."
"제 이름 지어주실 때도 똑같이 했어요."
"그래서 네가 드래프트 1위 했잖아."
말문이 막힌 청년이 주먹으로 가슴을 쾅쾅 쳤다.
"아버지. 애 이름을 라익이라고 지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요?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쭉 따돌림당해요. 애가 주눅이 들어서 학교생활도 사회생활도 제대로 못 한다고요."
"큰스님이 말씀하셨다. 특별한 이름이 특별한 사람을 만든다고."
가까운 곳에서 서류를 정리하며 언쟁을 처음부터 엿들은 간호사는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라익이면 성별에 상관없이 쓸 수 있는 이쁜 이름인데.'
가끔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딸인데도 남자 이름을 짓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이런 논쟁은 그리 희귀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번엔 아무리 들어도 쟁점이 뭔지 알 수 없었다.
그때 산실 문이 벌컥 열리며 출산 간호사가 차트를 들고나왔다.
"도민준 씨 누구시죠?"
외침을 들은 사람들이 킥킥거렸다. 아버지와 논쟁하던 젊은 청년이 수줍게 손을 들었다.
"축하드려요. 모자 평안합니다."
언쟁을 벌이던 두 남자가 언제 싸웠냐는 듯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앞다투어 산실로 향했다.
'아들이 이겼으면 좋겠다.'
서류를 정리하던 간호사가 생각했다. 라익이라는 이름은 참 이쁜데, 성과 궁합이 그다지 좋지 않다.
그러나.
인류 역사를 쭉 살피면 선보다는 악의 승리가 훨씬 보편적이다. 인간이 선의 승리에 환호하는 건 그만큼 드물고 소중하기 때문이다.
미처 역사책에 기록되지 않은 이번 이름 전쟁도 마찬가지다. 무심코 엿들은 간호사가 백퍼센트 진심을 담아 응원했지만, 결국 삼십만 원이라는 거금을 쓴 할아버지의 자본주의식 승리로 끝났다.
2015년 1월 10일.
그렇게 세상에 도라익이 왔다.
- 작가의말
새 이야기 시작합니다. 부족한 게 많은 글쟁이지만, 읽는 분들께 건강한 즐거움을 많이 드리려고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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