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동료 새 전술 새 역할
2031년 2월 1일.
도라익은 집합 시간보다 한 시간 반이나 일찍 훈련장에 도착했다. 20분 가깝게 투자하여 준비 운동을 마치고 일단 달렸다.
몸이 따뜻하게 달아오른 느낌이 들자 미리 챙긴 공 5개를 들고 슈팅 훈련을 했다.
뉴캐슬과 경기할 때 이 정도면 골이겠지 생각했던 슈팅이 대부분 안 들어갔다. 세계 최고로 꼽히는 프리미어리그의 키퍼들은 개인 기량이 엄청났다. 각자 약점이 있고 실수도 가끔 하지만, 실수는 공격수들이 훨씬 많이 한다.
그래서 골을 넣으려면 상대 팀 키퍼와 합이 맞아야 한다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다.
도라익은 공 다섯 개를 나란히 놓고 연속으로 슈팅하는 훈련을 주로 했다. 슈팅 동작을 간결하게 하면서도 속도나 공에 실린 힘이 줄어들지 않게 하려는 목적이다.
강한 힘으로 빠르게 차려고 하니 계속 한두 개씩 빗나갔다. 그 바람에 공 주우러 다녀오는 시간이 훈련 시간보다 훨씬 길었다.
'누구지?'
훈련 시간까지 반 시간 정도 남았을 때 처음 보는 선수가 나타났다. 공을 줍는 도라익을 힐끗 쳐다본 구릿빛 피부의 선수는 준비운동 대신 운동장을 느리게 뛰었다.
"하이. 난 도라익이야."
"너에 대해 들었어. 난 페르난도 산체스. 산체스라고 부르면 돼."
간단하게 인사를 마치고 각자 할 일에 열중했다. 산체스는 30분 동안 느리게 계속 운동장을 달렸고, 도라익은 집합 시간 10분 전부터 땀을 들이며 휴식을 취했다.
"라세. 오랜만이야."
"오랜만은 무슨. 그저께 병원에서 봤는데."
"운동장에서 오랜만이라는 거지. 근데 산체스는 누구야?"
라세 쇠렌센은 어휘량이 부족한 도라익을 위해 쉬운 말로 설명했다.
부상에서 회복한 찰리 아담이 포츠머스 상대로 해트트릭을 했고, 제임스가 네 번째 골을 넣었다.
뉴캐슬 경기에서도 제임스는 2골 2도움을 기록했다, 이번 역시 제임스 덕분에 페널티킥까지 가지 않고 90분에 경기를 끝냈다.
드디어 결심이 선 감독과 구단주가 톰 인스를 팔고 페르난도 산체스와 두 명의 풀백을 영입했다.
"조쉬가 요즘 울상이야. 강력한 경쟁자가 둘이나 왔으니."
키가 178인 조쉬는 어릴 때 센터백을 보다가 15세부터 성장을 멈춘 바람에 풀백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속도가 느리고 공격 가담이 적극적이지 않아 벤치에도 몇 번 앉아본 적 없다.
"넌? 오른쪽 윙이면 네 경쟁 적수잖아."
"어차피 산체스 아니어도 제임스가 있고 리가 있어. 차라리 수비형 미드필더로 전환하는 게 어떨까 생각하는 중이야."
라세는 키도 185로 적당하고 힘이 좋고 순발력도 나쁘지 않다. 딱히 뛰어난 점이 없다는 게 문제지만, 성격이 진중한 편이어서 수비형 미드필더에 꽤 어울린다.
더구나 팀의 수미이자 제2주장인 샘 클루카스가 이번 시즌이나 다음 시즌까지 뛰고 은퇴한다는 말이 있다.
그때 감독과 코치가 나와 선수들을 집합시켰다. 어제 리버풀로 원정을 다녀왔기에 스트레칭 위주의 회복 훈련을 길게 했다.
스토크시티는 1:2로 리버풀에 아쉬운 패배를 하며 20점으로 18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찰턴이 20점으로 바싹 따라붙긴 했으나 골 득실은 스토크시티가 앞섰다.
다행인 점을 꼽으라면 17위의 위건이 연이은 패배로 23점에 고정되어 한 경기 승리로 따라잡을 수 있다.
"자. 다음 경기부터 새 전술을 사용한다. 완전히 새로운 건 아니니까 며칠이면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원래는 네 미드필더가 상황에 따라 중간에 모이기도 하고 양쪽으로 퍼지기도 하는 다이아몬드 포메이션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전술은 샘 앨런과 산체스가 윙으로 뛰고 제임스와 샘 클루카스는 중앙 미드필더로 뛰는 U 포메이션을 취했다.
그리고 찰리 아담이 포워드 자리를 차지하고 도라익은 뒤로 조금 처진 새도우 스트라이커가 되었다.
"캠벨이 출전할 땐 도우가 포워드 자리로 가는 거야. 그러니까 두 위치의 전술 모두 숙지해야 해. 캠벨도 도우와 스위칭할 수 있으니까 마찬가지고."
제임스는 클루카스와 함께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 뛰어야 한다. 클루카스가 좀 더 수비적인 포지션을 책임질 것이기에 불안한 수비로 인한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
수비진은 그대로였다. 단순히 수비만 보면 스토크시티 수비수들의 능력은 상위권과 별 차이 없다. 점수의 차이는 수비수들이 공격 상황에서 공헌도가 너무 낮아 벌어진 것이다.
산체스의 영입으로 오른쪽의 수비와 공격 모두 강화되었고, 제임스를 중앙으로 보내면서 수비의 불안 요소를 하나 제거했다. 포메이션 변화만으로 공격력과 수비 모두 강화되었기에 윌슨은 수비진까지 건드리진 않았다.
전술 설명이 끝나고 간단한 포메이션 훈련을 했다. 호각 소리에 따라 정해진 위치로 가는 훈련인데, 누군가 하나 틀릴 때마다 푸시업 벌칙이 있었다.
"너무 큰 모험 아닙니까?"
수석 고치는 전술 코치의 호각에 맞춰 달리는 선수들을 보며 감독에게 질문했다.
"산술적으로 보지. 우린 23라운드까지 12득점에 33실점을 했네. 변화가 없다면 어떤 성적이 기대되나?"
코치는 속으로 암산하고 대답했다.
"20득점에 55실점 정도 될 것 같습니다."
"그래. 남은 15경기에서 겨우 8득점에 22실점이나 해야 한다는 계산이 대충 나오지. 그런데 최근 2경기는 어땠지?"
"6득점에 7실점입니다."
"리그컵 경기까지 포함하면?"
"10득점에 7실점이죠."
"축구는 산수가 아니야. 그러나 데이터가 무의미한 것도 아니지. 최근 3경기에서 우리 팀이 달라진 점은 뭐라고 생각하나?"
"도우의 입단과 찰리의 복귀라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 제임스를 중앙으로 보낸 것이지."
그간 톰 인스 때문에 원하는 위치에서 활약하지 못했던 제임스다. 특히 윙처럼 뛸 때는 수비 부담까지 있어 자기 공격 재능을 뽐내지 못했다.
그러나 도라익이 빠른 속도로 상대 수비라인을 찢기 시작하면서 제임스의 과감한 공격 가담이 빛을 발했다. 지공 상황에선 알 수 없었던 제임스의 탁월한 위치 선정이 빠른 반격 상황에서 골을 만들었다.
뉴캐슬 경기엔 2골을 넣었고 포츠머스와 진행한 경기에서도 1골 넣었다. 그리고 리버풀 상대로 1도움을 기록하며 찰리의 리그 득점을 8개로 늘렸다.
"하지만, 뉴캐슬과 포츠머스 경기에서 톰 인스와 함께 뛰며 견제를 덜 받았습니다."
"톰 인스와 함께 뛰느라 원하는 대로 하지 못했다고 볼 수도 있지."
수석 코치는 여전히 걱정이 많았지만, 설득하는 걸 포기했다.
윌슨은 사람도 괜찮고 수준도 높은 감독이다. 원래 감독이 쓰던 포메이션대로 이번 시즌을 버티면 결과가 어떻게 되든지 윌슨만의 책임이 아니게 된다.
원하는 선수를 수급하지 못해 기존 선수와 전술을 그대로 사용한 탓이라는 명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톰 인스를 내보내고 전술 변화까지 주면서 잔류에 실패하면 책임을 져야 한다. 유임한다고 쳐도 다음 시즌 발언권이 작아질 수밖에 없다.
구단주가 윌슨에 대한 신임이 꽤 깊은 듯하지만, 팀에 대한 투자를 아끼는 바람에 구단주의 영향력이 그렇게 크지 않다.
첼시나 맨시티처럼 투자를 팍팍 하는 구단주도 임원들의 견제를 어느 정도 받는 현실인데, 팀에 투자하는 걸 아까워하는 수전노 구단주의 입지는 말할 것도 없었다.
"원래 원했던 팍이 온다면 내 전술에 딱 알맞았을 거야. 도우는 전술적인 움직임이 팍보다 훨씬 부족해. 그런데 그는 놀라울 정도의 스피드와 침착성을 갖췄어."
"침착성이요?"
"그래. 도우가 뉴캐슬하고 뛸 때 슈팅을 무려 15번이나 했어. 그런 면에서 보면 성급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겠지. 그런데 자세히 살피면 도우는 무턱대고 슈팅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늘 슈팅이 최선이라고 판단되는 상황에서만 슈팅 시도를 했지."
경기 장면이 생생히 기억나진 않지만, 수석 코치는 감독의 말에 동의했다. 만약 도라익이 함부로 슈팅하여 공격 기회를 날렸다면 분명히 부정적인 평가가 기억에 남았을 것이다.
"도우가 오지 않았다면 톰 인스를 보내고 산체스를 영입한 보람이 없었을 거야. 어차피 공격력이 비슷하니 전반기와 다르지 않은 결과를 냈겠지. 그런데 도우가 오는 바람에 우린 공격력이 강해졌어. 제임스를 중앙으로 보내고 산체스가 윙으로 뛰어 주면 충분한 공격력으로 상대를 억제하여 수비 부담을 줄일 수 있어."
라리가는 윙과 풀백의 천국이다. 대신 센터백과 중앙 미드필더가 흉년이나 다름없다. 덕분에 스토크시티는 톰 인스에 천만 파운드를 얹어서 주전급 윙에 로테이션 급 풀백 둘을 데려올 수 있었다.
라리가 로테이션 급이면 웬만한 리그에선 주전으로 부족함이 없다.
톰 인스가 부상 전의 폼을 되찾는다면 스토크시티가 밑지는 장사지만, 이번 시즌 잔류에 성공하면 무조건 이득이다.
"산체스가 잘 적응할까요?"
"남미 선수들의 약점은 잘 변화하지 못한다는 거야. 개인 기량이 아무리 뛰어나도 팀 전술과 안 맞으면 엉망인 모습을 보여주지. 반대로 생각하면 팀 전술과 맞으면 즉시 전력감이라는 뜻이야."
감독의 기대와 수석 코치의 걱정 속에서 선수들은 열심히 전술 훈련에 임했다. 구단주와 감독이 이번 시즌 강등을 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라고 공식적으로 선수들한테 통보한 덕분에 사기가 드높고 결의도 단단했다.
- 작가의말
대충 찰리가 어그로를 끌고 도라익이 마무리하는 전술입니다. 전술 이해가 조금만 깊었다면 도라익이 어그로를 끌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을 텐데, 참 아쉽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주인공인데, 라익이는 고작 골 넣는 거 빼곤 달리 할 일이 없게 되었네요.
Comment '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