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턴
프리미어리그 3라운드에 스토크시티는 원정에서 1:2로 미들즈브러에 졌다. 경기 과정만 보면 스토크시티의 압승이어야 하는데, 상대의 반격에 2골을 허무하게 내주며 참패를 받아들여야 했다.
"감독님, 무슨 영문인가요? 저는 문제가 뭔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도라익은 알론소 감독에게 직접 찾아가 질문하는 거로 주장의 책무를 성실히 이행했다.
"결과를 떠나 앞선 두 경기는 물론 이번 경기도 우리는 명확한 우위를 보였어. 맞지?"
"네. 데이터도 그렇고 경기 과정도 그렇고, 우린 많은 기회를 창조했고 상대는 아니었습니다."
"두 가지 문제가 있어."
알론소는 잠깐 고민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선수는 감독이 아니다. 감독이 아는 걸 선수가 모두 알면 생각이 복잡해서 오히려 경기를 뛰는 데 방해만 될 때도 있다.
"하나는 선수들의 전술 이해야. 앞선 두 경기에서 재미를 본 선수들에게 이미 패턴이 생겼어. 새로운 전술이어서 상대가 우리 움직임을 예측하기 어려워야 하고, 우리 움직임을 예측하지 못함으로 반격이건 느린 공격이건 효과를 제대로 보지 못해야 맞는다. 그런데 선수들이 자신의 좋았던 선택을 몸과 머리로 기억해서 일정 패턴을 보이는 바람에 후반전에 골을 허무하게 먹었다."
새로운 포맷과 새로운 전술의 우위는 상대가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공을 잡고 공격할 때 수비 측이 예상과 벗어난 움직임을 자주 보이면 공격수 입장에선 짜증이 난다.
오른쪽에 기회가 날 것 같아서 오른쪽으로 공을 돌리려 했는데 그쪽이 이미 탄탄한 수비를 구축했다면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 하려는 것마다 막히면 결국 뻔한 선택이나 모험을 하게 되며, 그 과정에 실수가 나오고 잦은 실수는 보통 나쁜 결과로 이어진다.
그런데 알론소가 전술을 너무 잘 짜는 바람에 문제가 되었다. 앞선 두 경기에서 단맛을 본 스토크시티 선수들에게 어느새 패턴이 생겨버렸다. 스토크시티가 뭘 할지 몰라서 전전긍긍해야 하는데, 두 경기 내내 보여준 모습을 그대로 보여 상대가 너무 편하게 공격 시나리오를 짤 수 있었다.
"이해했습니다."
새로운 포맷과 새로운 전술로 예측이 어려운 팀이 되어야 하는 스토크시티인데, 오히려 뻔한 팀이 되어버렸다. 거기에 새로운 전술이 익숙지 않아 가끔 손발이 안 맞는 경우까지 겹치니 후반전에 역전패를 당한 것이다.
"또 하나. 전술은 결코 골을 만들지 못하고 실점도 막지 못한다."
전술이 아무리 훌륭하고 선수가 아무리 잘 수행해도 그것만으로 골이 되고 실점을 없애진 못한다. 결국 경기를 뛰며 골을 넣는 건 선수고 수비하는 것도 선수다.
"제가 뭘 해야 합니까?"
도라익의 질문에 알론소는 태연한 웃음을 지었다.
"흔들리지 마."
사실 제일 똥줄이 타는 사람은 알론소다. 전임은 고작 2시즌도 안 되는 사이에 우승컵 두 개나, 그것도 유로파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거의 손실 없이 팀을 물려받았기에 최소 전 시즌과 대등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큰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감독이 불안하고 흔들리면 팀 전체가 삐걱거릴 것을 잘 알기에 알론소는 늘 태연한 척 연기해야 했다.
"그거면 됩니까?"
"또 하나. 네가 이 팀에서 최고의 선수라는 걸 잊지 마."
"무슨 말입니까?"
영화나 드라마에선 보통 감독이 신비한 미소와 함께 몸을 돌려 떠난다. 그러곤 어깨 너머로 고뇌에 빠진 주인공의 얼굴을 잡은 채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도우. 네가 빨리 이 의미를 알아차리길 바란다. 넌 이미 답을 알고 있어."
그러나 생각해보면 대답 안 해주는 놈도 이상하고, 그걸 또 혼자 고민하는 놈도 이상하다. 팀이 성적을 내야 하는데 수수께끼 놀이나 하는 감독도 선수도 정상이 아니다.
다행히 알론소는 영화에 나오는 그런 또라이가 아니었다.
"팀이 어려울 땐 도우 네가 나서서 골을 넣어야 해. 널 미드필더로 내린 건 팀의 전력을 향상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그러나 네가 미드필더로 내려갔다고 수비랑 패스만 잘하면 되는 게 아니야."
도라익은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공격수로 출전해서 미드필더 롤을 수행할 땐 부담감 없이 잘했다. 그러나 정식으로 미드필더로 뛰게 되자 최소 기본은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수비를 열심히 하고 패스 성공률에 신경 썼다. 그런데 자신을 미드필더라는 자리에 가두는 바람에 공격에 제대로 가담하지 못했다.
#
8월 30일.
상대인 바이에른 뮌헨은 아니겠지만, 스토크시티엔 역사적인 날이다. 1만2천 명의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스토크시티 팬들이 온갖 기괴한 분장으로 이 기념비적인 날을 경축했다.
"우린 오늘 우승을 위해 경기한다."
감독을 비롯한 스텝과 벤치 선수들이 먼저 나가고 도라익이 연설을 시작했다.
"그럼 어떻게 경기를 뛰어야 할까?"
대답을 들으려고 한 질문이 아님을 알기에 다들 입을 꾹 다문 채 이어지는 말을 기다렸다.
"멋진 경기를 할 필욘 없다. 상대보다 느리면 몸을 던져서라도 막고, 필요하면 바닥을 뒹굴어 흙투성이가 되어야 한다. 상대가 공을 잡았을 때 수비 전술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하나, 위험 지역에선 머리를 비우고 자신의 경험과 감을 믿어야 한다."
선수들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누구나 경험을 통해서나 들어서 아는 얘기들이다. 그러나 경기 전에 주장이 직접 말로 해주면 경기 후반에 집중력이 하락할 때도 쉽게 잊지 않을 것이다.
"내가 마지막 수비수라는 마음으로 수비해야 하지만, 가끔은 일부러 상대를 우리 수비 함정에 끌어들여 힘을 아껴야 함도 잊지 말자. 그리고 카드를 받았다고 위축하지 말자. 조금 자존심 상하는 얘기지만, 아마 주심이 우릴 동정해서 두 번째 카드를 잘 안 꺼낼 거 같아."
"마지막에 김새게 뭐야."
제임스가 툴툴거렸다.
"너희 얼굴에 경련이 날 거 같아서 농담한 거야. 자, 상체를 뒤로 젖히고 심호흡 세 번."
스토크시티 선수들이 몸을 한껏 젖히고 느리게 호흡했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도라익이 선창했다.
"스토크시티!"
선수들이 젖혔던 몸을 굽혀 머리를 한데 모으며 후창했다.
"필승! 필승!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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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입니다.
- 안타깝습니다. 뮌헨이 첫 공격 기회를 잡아 득점에 성공했습니다.
코너킥 실점이다. 뮌헨은 코너킥을 띄우지 않고 뒤로 보냈고, 공을 받은 선수 역시 크로스 대신 가까운 포스트로 땅볼 패스했다.
공을 차지한 뮌헨 공격수는 중앙으로 패스하거나 작은 각에서 슛하는 대신 또 뒤로 넘겼고, 공을 받은 선수는 볼만 따라가느라 수비진이 헝클어진 스토크시티의 틈을 정확히 공략했다.
코너킥인데 득점까지 공이 한 번도 잔디를 떠난 적이 없었다.
- 도라익 선수 주장답게 선수들을 다독입니다.
- 실력 차이가 현격한 건 차지하고, 이번 코너킥 실점 때문에 스토크시티는 당분간 뮌헨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 그렇죠. 또 코너킥 상황이 오면 스토크시티 선수들 머리엔 방금 실점이 떠나지 않을 겁니다. 뮌헨이 다른 전술을 펼치기 참 좋죠.
- 강 해설은 다음 코너킥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 아마 빠르고 낮은 크로스로 가까운 포스트를 노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도라익 선수가 일본전에 넣었던 두 번째 골처럼 말이죠.
강철민의 말대로 뮌헨의 두 번째 코너킥은 낮고 빠른 크로스였다.
- 도라익 커팅.
가까운 포스트에 나타나 헤딩에 성공한 선수는 다름 아닌 도라익이었다.
"나가자!"
도라익은 헤딩할 때 힘을 살짝 뺐다. 덕분에 공이 밖으로 흐르는 속도가 조금 느렸다. 오프사이드를 만들 요량으로 도라익은 빠르게 앞으로 달리며 수비 라인을 올릴 것을 주문했다.
뮌헨 선수는 느리게 구르는 공을 바로 올렸다. 뮌헨의 키가 2m에 육박하는 포워드가 키퍼가 출격하기 전에 공을 머리에 맞춰 골대로 보냈다.
도라익은 부심의 깃발이 들렸는지 확인한 후, 바닥에 주저앉은 리엄을 바라봤다. 코너킥이 올 때 상대 선수와 몸싸움을 벌이다가 쓰러진 리엄이 미처 밖으로 달리지 못한 탓에 골은 유효 판정을 받았다.
'내 탓이다.'
미처 뒤의 상황을 확인하지 못한 주제에 오프사이드를 만들자고 도라익이 외쳤고, 대부분 선수가 도라익의 지시에 따랐다.
그 바람에 상대 포워드는 아무런 방해도 안 받고 골에 성공했다.
"자책하지 마. 네 판단은 나쁘지 않았어. 다만 상황이 안 좋았던 것뿐이야."
찰리가 도라익을 위로했다.
"주장 탓이 아니야. 수비 상황에서 지휘 책임은 나한테 있어."
레체르트 역시 도라익을 다독였다.
"아니야. 수비 지휘는 레체르트 몫인데 내가 경솔했어. 다음부턴 레체르트가 판단하고 지휘해."
코너킥 2번에 실점 2개. 스토크시티는 최대한 상대에게 코너킥을 안 주려고 노력했다. 감독이 지시를 내리거나 한 건 아니고, 그저 선수들이 무의식적으로 내린 결론이었다.
- 아. 난전 중에 뮌헨이 득점에 성공합니다.
- 방금은 수비진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았거든요. 차라리 공을 건드려 코너킥을 주는 게 나을 뻔했는데 말입니다.
- 스토크시티는 당분간 세트피스 전술 훈련에 매진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공격은 물론 수비도 말입니다.
- 윌슨 감독 시절에도 스토크시티는 세트피스 공격이 뛰어나지 않았습니다. 물론, 수비는 그럭저럭 괜찮았습니다.
- 지금도 나쁘진 않습니다. 그저 상대가 나쁜 것이지요.
지난 시즌 세트피스 상황에서 득점을 가장 많이 한 팀인 뮌헨. 2등은 프리미어리그의 첼시다. 그리고 뮌헨의 세트피스 득점은 첼시의 1.5배나 된다.
- 알론소 감독의 전술이 벌써 들통이 난 걸까요?
-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상대가 너무 강해서 전술을 펼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어렵게 반격 기회가 오자 도라익이 빠르게 달렸다. 그러나 화려한 드리블로 뮌헨 선수 세 명을 제치고도 골대는 무려 35미터 밖에 있었다.
공격 지원보다 상대의 수비수들이 자리를 잡는 게 먼저일 것 같다는 판단에 도라익은 원거리 슈팅을 때렸다.
- 안타깝습니다. 거리가 먼 데다가 역풍이 부는 상황이어서 키퍼가 손쉽게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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