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공창의 일과
└ 내 이랄 줄 알았다.
└ 알긴 개뿔. 지난 댓글 보기는 과학이지.
└ 아직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하나 확실한 건 이새끼 백퍼 또라이라는 거.
└ 실망이다. 여친 있다니.
└ 오늘부터 도라익 안티다. 여친이 실존 생물이라는 걸 증명해 버리다니. 미워할꺼야.
└ 여러분. 우리 검색어에서 도라익 성추행을 없애요. 그리고 제목이 애매한 기사들 모조리 신고해요.
└ 여기서 놀지 말고 다들 도공창 SNS로 가요. 도공창이 10분 뒤 도라익 여친 사진을 공개한다고 했어요.
도공창은 도라익 공식 창구의 줄임말이다. 눈은 영혼의 창이고 오창범은 SNS는커녕 인터넷도 잘 안 하는 도라익의 공식 창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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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냐. 이 사진이 더 이뻐."
"팬들은 이 사진 더 좋아할 거야."
도라익과 오창범은 사진 두 장을 놓고 옥신각신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접전을 벌였다.
하나는 도라익이 잘 나온 사진이고 하나는 엘이 잘 나온 사진이다. 도라익 팬들에게 도공창으로 불리는 오창범은 도라익이 잘 나온 사진을 올리려 했고, 도라익은 엘이 이쁘게 나온 사진을 올리려 했다.
자기 여친이라면 오창범도 여자가 잘 나온 사진을 올렸을 것이다. 그러나 오창범은 그저 팔로우 수와 조회 수 그리고 댓글 수량에만 관심이 있기에 도라익이 잘 나온 사진이 더 마음에 들었다.
"가위바위보로 하자."
팬들과 약속한 시각이 다가오자 오창범이 결단을 내렸다. 비록 거의 전부가 도라익의 소식과 일상이 궁금해 찾아온 제사보단 떡에 관심이 많은 팬이지만, 오창범에겐 하나같이 소중했다.
결국, 가위바위보를 진 오창범은 삐죽 나온 입술로 불편한 심기를 도라익에게 전달하며 엘이 천사처럼 나온 사진을 업로드했다.
└ 여자 외모 실화임?
└ 라익 오빠 이쁜 사랑 하세요.
└ 라익 오빠 존잘.
└ 작을 거야. 틀림없이 작을 거야. 사람이 완벽할 리 없잖아.
└ 창범 오빠 오늘도 고마워요.
늦잠 잘 권리가 한 톨도 없는 대한민국 초중딩들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기지개를 켜는 대신 전화기부터 켰다. 일찍 일어난 새가 벌레를 먹듯이, 먼저 일어난 어린이가 베스트 댓글을 먹는 법이다.
그러나 메인 뉴스를 확인하는 순간 베스트 댓글을 향한 치열한 두뇌 싸움은 뒷전이 되어버렸다. 일찍 잔 게 평생의 한이 될 정도로 안타까운 상황이 이들이 꿈나라에서 헤매는 사이에 발생했다.
기승전결이 훌륭하고 반전까지 완벽한 드라마 한 편이 각본 연출도 없이 방영됐고, 댓글창은 복마전이 열린 상태였다. 시간대별로 베스트 댓글이 엎치락뒤치락을 하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안 부러운 치열함과 반전 그리고 반전을 연출했다.
베스트 댓글 1위를 먹은 건 어디에 갖다 붙여도 만능인 '내 이랄 줄 알았다'였다.
게다가 지난 댓글 보기를 보면 베스트 댓글을 쓴 유저도 생방송의 진행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입장이 계속 흔들려서 재미를 한층 더했다.
그리고 영국의 새벽이 깨면서 도공창이 공식 활동을 시작했다. 도라익의 허락을 받고 엘의 사진을 올릴 것을 예고하며 팔로우가 순식간에 수십만 명 늘었다.
"형. 이러는 거 안 귀찮아?"
시력이 나빠질까 봐 꽤 불편한 특수 안경까지 쓰고 댓글을 일일이 확인하며 자신을 언급한 댓글만 귀신같이 골라 응원 버튼을 누르는 오창범을 보며 도라익이 진심으로 궁금해했다.
"노력하지 않고 어찌 달콤한 열매를 바라겠느냐. 나도 너처럼 잘생기게 태어났으면 굳이 이러지 않았을 거야."
댓글 삼매경에 빠졌던 오창범은 카메라를 켜고 도라익이 건강 주스를 마시는 옆모습을 찍었다.
"제목이 뭐 좋을까?"
잠깐 고민한 오창범은 '성추행 신고 기념 샷'이라고 제목을 달아 SNS에 업로드했다. 사진과 제목이 아무 연관도 없었지만, 팬들은 오창범에게 제목까지 완벽하길 기대하지 않았다.
└ 저 콧날 봐. 보기만 하는 데도 베일 것 같아.
└ 울대 큰 거 봐라. 엄마가 울대 큰 남자가 듬직하다고 했어.
└ 차라리 내가 저 주스였으면.
└ 난 컵.
└ 난 손잡이.
└ 창범 오빠. 오늘도 잘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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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훈련을 마친 오창범은 지친 몸을 이끌고 본인 지정석으로 갔다. 그리고 음식을 집는 대신 카메라를 먼저 들었다.
수많은 도라익의 사진 중 이 위치에서 찍은 것들이 유독 조회 수가 높고 좋아요도 많았다. 아직도 확실한 주전 자리는 확보하지 못했지만, 사진이 잘 나오는 위치는 이미 1년도 더 전에 확보한 상태다.
"챵게이. 안 지겨워?"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오창범이 도라익한테 하는 걸 보고 게이라고 의심할 법도 하다. 물론, 오창범을 챵게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팀에서 제임스밖에 없었다.
"젬. 나 오늘부터 팔로우가 너보다 많아."
엘의 사진을 올리면서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게 된 오창범은 1년 전만 해도 자신의 열 배를 훌쩍 넘었던 제임스를 제치고 스토크시티 선수단 팔로우 1위를 공식적으로 달성했다.
"그건 그렇고. 도우가 진짜 이적 안 하는 거 맞아?"
이적 때문에 개인 훈련만 하던 도라익이 갑자기 팀 훈련에 나왔고 이적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그러나 너무 믿기 어려운 말이어서 제임스는 도라익의 공식 대변인 오창범에게 거듭 확인했다.
└ 포크 터프하게 잡은 거 좀 봐.
└ 축구 유니폼을 입었는데도 섹시해.
└ 내 남친 아닌 거 빼면 완벽한 남자.
└ 라익이랑 동시대에 태어날 줄 알았으면 나도 전생에 우주나 구할걸.
└ 창범 오빠. 수고 많으십니다. 저녁에도 잘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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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 단련이 대부분인 오전 훈련과 달리 오후엔 전술 훈련 위주였다. 그러나 전술 훈련이라고 오창범에게 여유가 생기는 건 아니다.
감독의 전술을 완벽히 이해한 자들에겐 쉬울지 몰라도, 아직 이해가 부족한 오창범에겐 꽤 어려운 훈련이었다.
더구나 라미스의 드리블과 크로스가 점점 나아지며 오창범에게 스트레스를 줬다.
다행이라면 전술 이해는 라미스 역시 부족하다. 그러나 피지컬과 개인 수비 역량의 차이는 전혀 좁혀지지 않았다. 오창범도 수비가 꽤 나아졌지만, 라미스 역시 1년 동안 놀진 않았다.
'부족한 수비를 보완하고 프리킥과 크로스의 우위를 더 확실히 굳혀야 해.'
"챵붐. 방금은 앞으로 달렸어야지."
감독의 호통에 오창범은 손을 번쩍 들어 잘못을 시인했다.
"라익아. 내가 뭘 잘못했니?"
훈련을 잠깐 쉬는 중에 오창범은 라익에게 질문했다.
"아까 형이 앞으로 뛰면 상대 풀백이 형을 마크하러 가야 하잖아. 그러면 산체스가 센터백과 풀백 사이에 자리를 잡으며 수비 라인을 흔들 수 있었어."
"풀백이 마크하러 안 오면? 대부분 팀은 거기로 달려도 그냥 놔두던데?"
"상대가 뛰든 안 뛰든 형은 거기로 뛰어야 하는 거야. 일단 기본에 충실하고 상대에 따라 변통해야지."
공이 왼쪽에 있는 상황에서 오창범이 거기로 뛰어도 큰 소용은 없다. 공을 잡은 사람이 롱패스로 오창범을 찾더라도 공이 오는 사이 상대 풀백도 접근한다.
경기를 뛰면서 많이 고민하는 편인 오창범이기에 괜히 앞으로 뛰었다가 수비 위치로 제때 복귀하지 못할까 봐 눈치를 보고 있었는데, 감독한테 지적을 받은 것이다.
"형 문제가 뭔지 알아?"
"뭡니까. 주장님."
오창범은 손을 싹싹 비비며 귀한 말씀을 청했다.
"팀이 공격 상황일 때 수비를 걱정해. 팀이 수비 상황일 땐 공격을 염두에 둬."
오창범은 벼락 맞은 사람처럼 굳어버렸다.
"이유를 알아?"
"알 것 같기도 한데. 아니었으면 좋겠어."
"겁이 많아서 그래. 자신이 공격을 망칠까 봐 빨리 공격이 나 없이 끝나기를 바라고. 수비할 땐 팀이 실점할까 봐 빨리 공격으로 전환하길 바라고."
도라익의 지적은 정확했다. 약팀 상대로 오창범은 프리미어리그 주전 자리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활약한다. 심리적 부담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대가 조금만 강하면 이런저런 걱정으로 가진 실력을 모두 발휘하지 못한다.
"공격 능력만 보면 형도 괜찮아. 몸싸움이 좀 약하지만, 속도나 민첩 그리고 크로스 모두 수준이 높은 편이야. 그런데 형이 상대하는 윙이 조금만 잘하면 형은 위축돼서 공격도 수비도 제대로 못 해."
"해결할 수 있을까?"
오창범이 도라익의 나이라면 조급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오창범은 이미 프로이고 심지어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 뛰고 있다. 설사 경쟁자가 없다고 쳐도 빨리 해결하여 리그와 팀에 어울리는 선수가 되어야 한다.
"심리 상담에 이 내용도 추가해."
"아, 맞다. 그 박사님이 비슷한 얘길 한 적이 있어."
영어 실력이 부족해 상대의 말을 얼추 때려 맞추느라 모든 대화를 이해한 건 아니다. 그러나 도라익의 지적을 받고 보니 비슷한 말을 들었던 것 같았다.
'편한 관심만 받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지.'
SNS에 본인이 아닌 도라익의 일상을 올려 관심을 받고 있다. 자신을 내세워 관심을 받기보다 남을 내세우는 게 훨씬 편했다.
그때 코치의 호각이 울렸다.
"형.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하기 싫은 것도 다 해. 그러다 보면 뭘 해야 하고 뭘 하지 말아야 하는지 몸이 알 거야."
"주장님의 주옥같은 말씀 뼈에 새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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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익아, 고개를 좀 더 젖혀."
주차장에 오니 최경호는 없고 차만 덩그러니 있었다. 둘 다 국제면허는커녕 국내면허도 없기에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저녁에도 사진을 올려야 하기에 최경호를 기다리는 시간을 활용하기로 했다.
도라익은 SNS를 전혀 안 하지만, 오창범의 사진 요청을 한 번도 거절한 적 없었다. '오늘도 좋은 말씀 많이 해주신 우리 주장님'이란 전혀 관련 없는 제목으로 사진을 올린 오창범은 갑자기 그게 궁금했다.
"라익아. 너 이럴 거면 차라리 계정 하나 파는 게 낫지 않아?"
"우리 아빠가 해준 말인데."
현재 드림즈 2군 감독인 도민준 얘기다.
"내가 잘하고 싶은 거 있잖아. 그걸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신 다른 걸 안 하는 것도 중요해. 관심을 갖는 분야가 늘면 늘수록 하나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대."
'나도 SNS 접고 축구에 전념할까?'
└ 벤틀리가 오빠 덕을 많이 보네.
└ 이정도면 자동차 회사에서 차 한 대 포상으로 줘야 하는 거 아니야?
└ 아, 사진에 벤틀리가 있었구나. 댓글 안 봤으면 차 있는 줄도 몰랐겠다.
└ 저 우수에 찬 눈빛. 푹 빠지고 싶다.
└ 창범 오빠. 고생하셨어요. 내일도 기대할게요.
그러나 마지막 댓글이 오창범의 결심을 흔들었다. 때로는 작은 위로나 응원이 큰 힘이 되기도 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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