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 시즌
이어진 경기에서 스토크시티는 원정에서 3:0으로 블랙번에 패배하고, 홈에서 맨유를 만나 0:1 패배를 했고, 원정에서 웨스트햄과 벌인 경기에서도 2:1로 패배했다. 찰리와 루이스의 부재에도 어떻게든 분전했으나, 시간이 흐르며 다른 팀들이 스토크시티의 약점을 파악하고 정확히 찌른 탓이다.
그러나 팀의 3연패와 무관하게 도라익은 절찬을 받았다. 찰리의 부재가 길어지며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깨달았고, 그걸 착실히 해내면서 좋은 모습을 지속하여 보인 덕분이다.
특히 맨유와 벌인 경기에서 무섭게 날뛰며 상대가 편하게 공격하지 못하도록 억지하는 모습이 모든 사람에게 놀라움을 선사했다.
그리고 1월 3일 FA컵을 맞이해 스토크시티는 리저브 팀을 출전하고 주전들에게 하루 휴식을 줬다.
"형. 연락 온 구단 없어?"
"있지. 열 개가 넘어. 그리고 구단에서도 몇 개 오퍼에는 동의했다고 들었다."
구단주는 겨울에 도라익을 팔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몇몇 구단의 조건이 너무나 좋았다. 돈에 관한 계산이라면 미적분도 암산으로 해결하는 구단주기에 옵션까지 합쳐서 1억 파운드가 넘은 오퍼를 결국 수락하고 말았다.
"지금 이적하는 거 비겁한 결정이 아닐까?"
스토크시티는 현재 20점으로 리그 18위다. 강등권이긴 하지만, 리그 7위가 고작 28점이기에 걱정할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찰리와 루이스의 부재에 이어 도라익까지 사라지면 팀이 강등할 게 뻔히 보인다.
물론, 괜찮은 공격수를 찾아서 도라익을 대체한다면 모를까. 그러나 팀의 주장이기도 한 도라익을 파는 건 공격뿐이 아니라 여러 면에서 스토크시티에 불리하다.
"넌 네가 받는 돈보다 훨씬 많은 걸 팀에 해줬어. 그런 생각은 멍청한 거야."
최경호가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
"그러나 난 이적에 반대한다."
"왜? 챔피언스리그에서 당한 후 늘 더 나은 팀으로 빨리 이적해야 한다고 노래 불렀잖아."
"라익아. 넌 예전에도 대단했지만, 요즘은 훨씬 더 대단한 거 알아?"
최경호의 말에 도라익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요즘은 경기가 훨씬 쉽게 느껴져. 그런데 팀은 오히려 3연패를 당했지."
아스널과 펼친 경기부터 도라익은 실력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 그러나 찰리와 루이스의 부재로 그간 업그레이드된 실력을 펼치지 못했다.
최근에 와서야 찰리와 루이스의 부재에 적응하여 실력을 뽐내는 중이다. 그런데 운 없게도 팀은 3연패를 당했다.
"네 탓이 아니야. 오히려 네가 그만큼 해줘서 팀이 덜 진 거지."
팀이 부진한 게 아니라 약점을 정확히 찔린 것이기에 확실히 도라익의 책임이 아니다.
"그래서?"
"난 네가 여기서 더 발전할 수 있다고 봐. 괜히 시즌 중에 이적하면 새 팀과 새 전술에 적응해야 하잖아. 네가 지금 쑥쑥 자라고 있는데 괜히 환경을 바꿀 필요가 있을까?"
알론소의 훈련이라고 특별한 건 없다. 그러나 알론소는 자주 선수를 만나 대화하는 거로 머리에 정확한 생각을 심어 준다. 막막하던 게 명확해지니 선수들의 변화가 긍정적이고, 도라익처럼 잠재력이 큰 선수들은 쑥쑥 자라는 중이다.
알론소의 밑에서 크게 성장한 선수를 또 꼽으라면 토미다. 이번 시즌 제임스를 완전히 제치고 주전 자리를 확고히 다지는 중이다.
그리고 아직 주전 자리를 위협할 정도는 아니지만, 리저브에서 발탁한 젊은 선수들 모두 기량이 크게 향상했다.
"여기 있으면 내가 더 나은 선수가 될 거란 말이지?"
"이적하면 모든 게 새로워. 팀원이나 전술은 물론이고 팬도 달라져. 음식이나 기후 이런 건 일단 제쳐두고 말이야. 새로운 환경이 자극이 되어 네가 더 빠른 발전을 보일지도 모르지만, 굳이 우리가 스토크시티를 두고 다른 구단에 가서 모험할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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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1일. 스토크시티는 홈에서 리그 1위의 리버풀을 맞이해 0:0의 무승부를 냈다. 그러나 스토크시티 팬들은 3연패를 끊은 것에 환호하는 대신, 도라익의 이적 여부 때문에 마음을 졸였다.
이미 유수의 구단이 스토크시티에 오퍼를 내밀었고, 스토크시티는 몇몇 오퍼를 받아들였다.
프리미어리그는 리그 엔트리에 반드시 영국 국적의 선수가 일정 숫자 포함되어야 하고, 클럽 자체에서 육성한 선수가 일정 숫자 포함되어야 하며, 잉글랜드 클럽에서 육성한 선수가 일정 숫자 포함되어야 한다.
찰리처럼 주전으로 뛸 능력이 되고 위의 세 항목 모두 만족하는 선수는 프리미엄이 붙어 언제든 비싸게 팔 수 있다.
찰리와 달리 도라익은 이번 겨울이 가장 비싸게 팔 기회다. 여름이 되면 계약 기간이 2년 남는데, 프로 선수의 이적료는 남은 계약 기간이 2년이 되면 30% 정도 깎인다. 계약 기간이 1년이면 50% 혹은 더 많이 하락하기도 한다.
그 탓에 도라익이 골든 보이상을 탔는데도 스토크시티 팬들은 마냥 기뻐하지 못했다.
1월 17일. 스토크시티는 원정에서 2:1로 첼시에 패배했다. 그러나 스토크시티 팬들은 팀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기쁨에 겨웠다. 도라익이 선발로 출전하여 경기를 풀타임으로 소화했기 때문이다.
이는 아직 이적 협상이 끝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관례상 개인 대우를 협상할 정도까지 돼도 선수는 선발로 출전하지 않는다. 협상이 끝난 상태라면 벤치에도 앉지 않으며, 팀 훈련마저 빠진다.
1월 28일. 원정에서 토트넘에 3:1로 패배한 스토크시티는 21점으로 리그 19위에 머물렀다. 18위와 20위 모두 21점으로 동점이고, 리그 17위는 23점이었다. 게다가 리그 9위가 고작 29점이어서 아직은 누가 강등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스토크시티 팬들은 저조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마음껏 환호했다. 토트넘과 벌인 경기에도 도라익은 선발로 출전했고, 경기 75분에 교체되었다.
그리고 경기 후 인터뷰에서 알론소 감독이 도라익이 이적을 포기하고 팀에 남기로 했음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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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V 놈들이 설득한 건가?"
보아스는 도라익이 이적을 포기했다는 소식을 듣고 회의를 소집했다.
"그렇습니다. 여름이 되면 계약 갱신을 요청해 바이아웃을 넣을 수 있고, 스토크시티 구단 형편으로 보면 기껏해야 5천만 유롭니다. 이적료가 적으면 선수의 주급이 오르는 건 당연하니까, 독일 놈들이 설득한 것 같습니다."
1억 유로에 도라익을 영입하고 주급 20만 유로를 주기로 했다고 가정할 때, 만약 5천만 유로에 도라익을 영입한다면 구단은 이적료 5천만 유로를 아낄 수 있다.
그러나 도라익의 몸값이 이보다 비싸기에 선수는 구단에 30만 유로의 주급을 요구할 수 있다.
주급을 10만 유로 더 준다고 쳐도 5년 합산 2600만 유로 정도다. 주급 인상까지 고려해도 3천만 유로를 넘지 않는다. 구단 입장에선 여전히 2천만 유로를 아끼는 셈이다.
게다가 높은 주급으로 선수의 충성심도 얻을 수 있다면 많이 남는 장사다.
그렇기에 뮐러는 최경호를 설득해 도라익의 이적을 막았다. 최경호는 스토크시티가 받는 이적료보다 도라익이 받는 주급이 더 중요하기에 당연히 설득당했다.
그러나 괜히 돈 얘기로 도라익의 머리를 어지럽힐 생각이 없었기에 개인 기량의 발전을 들먹이며 스토크시티에서 남은 반 시즌을 계속 뛰는 게 좋다는 핑계를 댔다.
최경호의 설득과 알론소의 은근한 읍소, 거기에 팀의 좋지 않은 상황까지 겹쳐 도라익은 결국 이적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유일한 변수라면 알론소에게 도라익을 잡으라고 부탁했던 구단주가 예상을 뛰어넘은 이적 금액에 변심한 것이지만, 팀의 상황이 어려움을 알기에 오퍼만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도라익한테 이적을 권유하진 않았다.
"이젠 정면으로 들이받을 차례군."
보아스의 말에 배가 불룩한 아저씨들의 눈이 날카롭게 변했다.
"도우가 대단한 선수가 될지는 여전히 모르겠어. 동양인의 피지컬엔 아직 확신이 없거든. 그러나 만에 하나 도우가 메시나 호날두를 잇는 선수가 된다면 우린 독일 놈들한테 1위를 뺏기게 돼."
"어떻게 할 작정입니까?"
"뺏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도우와 계약해. 독일 놈들이 일어서지 못하게 아예 싹을 잘라."
"현재 수집한 데이터로 분석한 결과, 도우가 에이전트를 바꿀 가능성은 아예 없습니다."
"멍청한 놈. 도우를 못 뺏으면 도우의 에이전트와 계약해. 그 에이전트를 우리 회사 소속이 되게 하고 인형 만들면 되잖아. 도우면 몰라도 그 동양인 에이전트 하나 못 해결하는 건 아니겠지?"
대화하는 사이 경기가 시작했다.
1월 31일, 스토크시티는 홈에서 맨시티를 맞이했다. 비록 알론소 감독이 인터뷰에서 도라익이 이적을 포기했음을 명확히 밝혔지만, 고대에도 하늘이 무너질까 봐 근심하는 사람이 있었듯이 팬들의 걱정은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그러나 홈에서 맨시티를 맞이한 경기에서 도라익이 주장 완장을 차고 출전한 덕분에 스토크시티 팬들은 이미 이긴 경기라도 되는 듯이 제자리 뜀질을 하며 승리의 노래를 불렀다.
"온 김에 함께 경기나 보자고."
비록 축구 에이전시와 야구 에이전시를 하는 회사지만, 보아스를 비롯한 임원 모두가 경기 관람을 별로 안 한다.
이들에게 축구와 야구는 그저 돈벌이 수단일 뿐이다.
"어린 나이인데 플레이가 노련하군요."
그렇기에 도라익의 경기를 처음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백문이 일견에 불여하다고, 그저 소문으로 듣던 것과 경기를 직접 보는 건 달랐다.
"저 정도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젊은 선수가 현재 최소 열 명은 있어. 도우와 달리 어려서부터 체계적인 훈련을 받아 기초가 탄탄한 아이들이지. 도우는 스피드와 슈팅, 그리고 동양인이라는 점에서 각광을 받는 거야. 그러니까 현재 퍼포먼스에 현혹하지 말고 큰 그림을 봐. 저 아이는 HV가 거목으로 자라려고 찾은 씨앗이야. 그러니 우리가 갖든지 망가뜨리든지 해야 해."
사실 처음엔 뮐러가 최경호와 친분이 있어 도우려는 목적으로 접근한 거고, 어쩌다 보니 뮐러의 회사인 HV가 도라익의 덕을 본 것뿐이다.
HV도 꽤 탄탄한 회사고, 축구는 물론 예술과 격투기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했기에 굳이 축구와 도라익에 목을 맬 정도가 아니다.
특히 HV는 선수를 이적 시켜 돈을 벌기보단 선수의 자산을 관리하며 커미션을 받는 형태의 에이전시다. 보아스처럼 선수의 수익에서 퍼센티지로 받는 전통적인 방식이 아니다.
그러나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보아스는 업계 2위로 빠르게 성장하는 HV가 뭘 해도 자신을 노리고 하는 짓 같았다.
경기는 아주 빠른 리듬으로 치열하게 진행됐다. 도라익은 여전히 공격수로 출전했지만, 하는 일은 미드필더와 다를 바가 없었다.
다른 경기에선 반격을 염두에 두고 위치를 깊숙이 내리지 않았는데, 상대가 상대인 지라 거의 수미처럼 뛰었다.
"저 선수의 미래가 어떨지는 신도 몰라. 현재 내가 확실히 아는 건 하나야. 저 선수를 뺏어 HV가 더 성장하지 못하게 방해해야 한다는 거. 만약 HV가 더 크면 우리 고객을 다 뺏길지도 몰라."
보아스의 회사가 바로 그렇게 컸다. 돈과 여자 그리고 약으로 선수를 유혹해 계약하는 방식으로 덩치를 불리고, 그렇게 업계 1위가 되자 선수들이 알아서 찾아왔다.
그땐 경쟁 상대들의 몰락을 보며 그렇게 통쾌했는데, 이젠 자신이 피해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겁이 더럭 났다.
"혹시 경기에 베팅한 사람 있나? 난 맨시티 승에 100유로 걸었어."
보아스의 말에 임원들은 하나 같이 핸드폰을 꺼내 경기에 베팅했다.
아쉽게도 보아스는 100유로를 허망하게 날렸다. 90분 내내 2번밖에 없었던 반격 기회 중 하나를 도라익이 잡았고, 유일한 유효 슈팅을 골로 연결했다. 스토크시티는 맨시티 상대로 1:0 승리를 일궈냈다.
"큰돈을 날렸군."
보아스의 말에 임원들은 재빨리 일어나 인사도 없이 회의실을 떠났다. 아까까지만 해도 동양인의 피지컬 운운하며 애써 도라익을 폄하했던 보아스다. 그러나 맨시티와 벌인 경기를 보고 나서 그 믿음이 흔들린 듯했다.
인성과 별개로 선수 보는 눈이 독하기로 유명한 보아스다. 아마 도라익 혹은 최경호를 회사에 데려오는 자가 몇 년 뒤에 보아스의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이 아주 크다.
그러니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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