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대적인 개조
스토크시티는 총 2명의 선수만 영입했다. 한 명은 6월부터 소문이 있었던 마르코 렌테. 키 194에 이적료 2100만 파운드의 이 21세 선수는 헤딩은 물론 패스까지 정확하나 속도가 조금 느린 약점이 있다.
그러나 속도가 빠른 레체르트 그리고 활동 범위가 넓은 키퍼인 톰 미켈과 궁합이 잘 맞아 스토크시티엔 완벽한 선수다.
다른 한 명은 바로 오창범과 경쟁할 루벤 라미스. 스페인 출신으로 120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주고 데려왔다. 나이는 27세고 키는 182로 오창범보다 크다.
수비적인 측면에서 오창범보다 나으나 공격적인 면은 부족함이 있다. 드리블은 괜찮은 편인데 크로스 정확도가 낮아 오창범과 마찬가지로 주전 자리를 확신하기 어렵다.
새 감독은 더 많은 선수를 영입하는 대신 유스와 리저브 팀에서 젊은 선수 몇 명을 콜업했다.
왼쪽 풀백 자리엔 톰 스미스. 페이크에 쉽게 속는 약점이 있지만, 속도가 빠르고 크로스가 정확하며 몸싸움도 준수한 흑인 선수. 맥자넷이 잘하고 있기에 스티븐 워드와 벤치 자리를 두고 경쟁해야 할 신세지만, 1군에 합류한 것만으로도 무척 만족하는 눈치다.
그리고 샘 보크스. 호주에서 태어났으나 영국에서 자란 백인으로 키 186의 센터백이다. 팔다리는 물론이고 몸통도 굵직하여 모 타이어 브랜드 모델과 헷갈릴 정도의 몸매다.
점프가 약해 헤딩은 별로지만, 그것만 빼면 특별한 약점이 없는 선수다. 물론,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기엔 경험을 비롯해 보완해야 할 부분이 꽤 있지만, 리엄 린드세이의 자리를 위협할 정도는 된다.
또 한 명은 미드필더의 닉 포웰. 공격보다는 수비에 재능을 보이는 젊은 선수로, 체력이 뛰어난 장점을 보유했다. 제임스는 물론 토미도 경기 후반에 빠르게 퍼지는 모습을 보이기에 꽤 괜찮은 콜업이다.
여러 위치에 선택지를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호세 알론소 감독은 기존 선수에 대한 개조도 병행했다.
수비밖에 모르는 수비 바보 리 그레고리는 지난 시즌 출장 기회가 드물었다. 스리백 전술을 사용하며 양쪽 라인은 윙백 차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윙이 아닌 미드필더인 리 그레고리로선 팀 전술에서 아예 자리가 사라진 셈이다.
그런 리를 알론소 감독은 맨투맨 전담 미드필더로 개조했다. 작년에 도라익과 찰리가 처음 전담 마크를 당했을 때 팀이 좋지 못한 모습을 보였었다. 다행히 바로 대책을 마련했기에 더는 당하지 않았지만, 모르고 당했을 땐 팀의 전술 자체가 와해되는 어마어마한 효과가 있었다.
한 시즌에 겨우 한두 번 써먹을 전술이긴 하지만, 리 그레고리는 자신이 챔피언십에 가도 주전 자리를 차지하기 어려움을 알고 흔쾌히 감독의 요구에 승낙했다.
그리고 키 작은 센터백 조쉬 타이먼. 긴장하면 몸에 힘이 들어가는 버릇 때문에 지난 시즌 공을 피하지 못해 핸드볼 반칙으로 상대에게 헌납한 페널티킥과 프리킥만 해도 다섯 개가 넘는다.
몸싸움이 좋고 위치 선정도 훌륭하며 센터백은 물론 양쪽 풀백도 뛸 수 있는 귀한 자원이긴 한데, 키가 작고 헤딩이 안 되고 속도가 느린 점 등으로 팀의 약점이 될 수도 있는 선수다.
알론소 감독은 그런 조쉬를 미드필더로 개조했다. 모두의 예상과 달리 수미가 아닌 그냥 미드필더이고, 앞뒤보다는 좌우로 뛰는 역할을 맡겼다.
능력치가 고른 라세 쇠렌센은 좌우는 물론 앞뒤로도 잘 뛰지만, 속도가 느리고 성격이 보수적인 조쉬에겐 무리였다.
그리고 토미는 왼쪽 윙 역할도 훈련해야 했고, 산체스 역시 오른쪽 윙으로 뛰는 훈련을 재개해야 했다. 도라익의 백업인 우디르 자타는 양쪽 윙을 모두 뛰어야 했고, 줄리엔은 공격수 훈련은 물론 센터백 훈련도 받았다.
"라익아. 감독은 왜 내게 윙으로 뛰란 얘기 안 하지?"
꽤 많은 선수가 자신이 원래 뛰던 위치 외에도 다른 역할을 훈련하는 상황에 오창범은 예외였다. 루벤 라미스의 영입으로 신경이 날카로운 오창범은 이게 뭔가 안 좋은 시그널이 아닌지 불안했다.
"형, 감독이 어떤 유형들이 있는지 알아?"
"잘하는 감독과 아닌 감독."
"장난하지 말고."
"글쎄다. 거기까지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우선 팀을 잘 만드는 감독이 있어. 예를 들어 퍼거슨 감독 같은. 한 팀을 수십 년 맡으면서 쭉 3위 아래로 내려간 적 없다는 건 대단한 일이거든."
"인정."
"그리고 자기 전술에 따라 팀을 잘 개조하는 감독이 있어. 무리뉴 같은 감독이지."
퍼거슨 감독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만, 차이도 확연하다. 퍼거슨 감독은 선수의 능력에 맞춰 전술을 변환하고 조합을 바꾸기도 한다.
그러나 무리뉴는 선수에게 자기 전술에 따라 움직일 것을 엄격히 요구한다.
"그리고 클롭 같은 경우에도 큰 전술 틀을 갖춘 다음 보유한 선수에 맞춰 조정하는 타입이야. 무리뉴보다는 융통성이 강한 편이지만, 원하는 위치에 꼭 필요한 선수가 있어야 전술이 위력을 발휘하는 타입이야."
형 덕분에 어려서부터 이런 방면으로 주워들은 게 꽤 있는 오창범이기에 도라익의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윌슨 감독은 이상을 좇기보단 타협을 잘하는 타입이야. 자기 전술 때문에 원하는 선수를 꼭 영입해야 한다기보단 이미 갖춘 자원으로 전술을 짜는 유형이지. 본인의 축구 철학이 분명히 있을 테지만, 그걸 무조건 고집하는 성격이 아니지."
도라익은 스트레칭 자세를 바꾸며 오창범에게 질문했다.
"우리 감독은 어떤 타입인 거 같아?"
"이제 본 지 한 달도 안 됐는데 그걸 어떻게 알아?"
"호세 감독은 포르투갈과 스페인에서 감독을 했어. 여기 팀들 특징이 뭔지 알아?"
"공격이 강하고 수비가 약한 것?"
"강팀 두세 개를 빼면 남은 팀은 모두 셀링 팀이라는 거야. 선수를 팔아서 팀을 유지하는 스타일이지."
"그게 호세 감독이랑 무슨 상관인데?"
"호세 감독은 한 팀에 오래 못 있었어.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오창범은 깊이 고민했지만, 아무 정보도 없는 상황에 어떠한 결론도 내릴 수 없었다.
"호세 감독의 장점은 선수를 키우는 거야. 대신 운영엔 약하지."
윌슨은 팀 운영에 강점을 보였다. 윌슨이 주도한 이적 대부분이 합리적이었고, 결과적으로 팀에 이득이 됐다.
대신 너무 합리적인 운영 때문에 일부 경기에서 주전을 아끼거나 일찍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 팬과 구단의 많은 직원에게 불만을 샀다.
"퍼거슨이나 벵거처럼 팀을 맡아 오랜 기간 운영하는 건 힘든 타입이야. 대신 선수 개조에 재능이 있어서 단기간에 팀의 전력을 끌어올리는 덴 능하지. 그런데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에서 선수를 괜찮게 키우면 돈이 더 많은 구단이 뺏어버리니까 문제인 거야."
"또 키우면 되잖아."
"무슨 팀에 유망주가 그렇게 많겠어? 키울 만한 선수가 뭐 화수분처럼 계속 솟아?"
팀 운영에 재능이 전혀 없는 호세이기에 유망주를 키워 팀의 성적을 바짝 끌어올린 후 바로 팽 당하기 일쑤다.
그러기에 장기적인 안목으로 구단을 운영해야 하는 라리가와 같은 빅리그에선 호세가 설 자리가 없었다.
"그럼 우리 구단주는 왜 호세랑 계약한 건데?"
"팀에 비싸게 팔아먹을 선수가 있잖아."
'누구야?'라고 질문하려던 오창범은 잽싸게 입을 다물었다. 팀에 비싸게 팔 선수라면 일단 눈앞에 있는 도라익이 일 순위다. 찰리 아담은 이미 몸값이 꽤 높게 책정되었고 토미 매클린은 아직 능력치가 전반적으로 부족하다.
"주장이라서 이런 것까지 다 아는 거야?"
"아니. 경호 형 친구 뮐러 있잖아. 그 형 회사에서 준 정보야. 내가 그 회사 고객이거든."
"잠깐. 지금 왜 나만 무시하는지 물었던 거잖아. 왜 쓸데없는 얘기만 해?"
사실 오창범뿐이 아니라 제임스나 찰리 아담 역시 감독의 관심을 덜 받았다. 그러나 남의 눈에 박힌 비수보다 내 손가락에 박힌 가시가 더 아픈 게 인간인지라, 오창범은 자신만 불쌍하고 억울했다.
"말이 잠깐 샌 거야."
도라익은 다리 누르던 걸 멈추고 스트레칭 자세를 또 바꿨다. 대화하면서도 스트레칭 시간을 정확히 지키는 모습에 오창범은 몰래 감탄했다.
'그냥 또라인 줄 알았는데, 어마어마한 또라이였어.'
"일부 선수는 지금 역할보다 새 역할이 더 알맞아. 리 그레고리 같은 경우, 위치 감각이 부족해서 미드필더임에도 공격에 잘 가담하지 않아. 넓은 범위를 뛰면 자신이 잡아야 할 위치를 잘 헷갈리거든."
"그런데 어떻게 프로가 됐대?"
"그만큼 수비가 확실하니까. 그래서 전담 마커로 딱인 거야. 한 명만 따라다니면 되니까 위치 때문에 스트레스받을 일 없잖아."
"오키. 접수."
"그런데 대부분 선수는 다른 위치에서 뛰는 경험을 통해 더 성장하라는 의도야. 토미는 사실 윙에 안 어울려. 긴 패스보단 짧은 패스가 위협적인 선수니까."
많은 선수가 섞인 상황에 정확한 짧은 패스로 도라익의 골을 몇 번 도운 토미다. 그렇기에 라인에서 활동하는 윙보다는 중앙이 훨씬 적합하다.
호세 감독은 토미가 윙으로 뛰면서 윙 역할을 이해하는 거로 시야를 좀 더 넓히길 바라는 것이다. 토미는 중앙에서 공을 잡았을 때 오른쪽 라인으로 공을 돌리는 일은 있어도 왼쪽으로 돌리는 경우는 아주 드물었다.
"난 뭐야? 더 성장하기 어렵단 얘기야?"
"형은 경험이나 이해 문제가 아니라고 감독이 판단한 거지."
"그럼 난 심리적인 문제만 해결하면 된다는 거야?"
"심리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수비 훈련을 더 열심히 하고, 프리킥과 크로스 훈련도 더 열심히 해. 형의 프리킥과 크로스는 프리미어리그 풀백의 평균에 못 미쳐. 형은 수비가 약점이니까 크로스를 훨씬 잘 올려야 한단 말이야."
오창범의 수비도 아주 엉망은 아니다. 다만 상대의 컷인을 막을지 아니면 골라인으로 돌파하는 걸 막을지 판단할 때 가끔 실수해서 팀에 큰 위기를 선물할 뿐이고, 개인 수비 기술이 프리미어리그 수준에 미치지 못할 뿐이다.
"아이고, 갈 길이 머네."
"그래도 길이 막힌 것보단 낫잖아. 스트레칭 끝났으니까 이제 근력 운동하자. 형은 하체가 부실한데 코어도 별로니까 일단 상체부터 하자."
결국엔 다 부족하단 말이었다. 오창범은 입술을 삐죽 내민 채 팩폭러에게 무언의 항의를 거세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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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법이죠."
김상현이 뾰족하게 외쳤다.
"군 면제 이미 받았으니까 올림픽 불참하는 거 아니겠어요?"
"한국은 아직까지 올림픽 축구 금메달을 딴 적이 없습니다."
도라익이 온다고 반드시 우승하는 것도 아니다. 일례로 호나우두를 비롯해 많은 스타를 보유했던 브라질이 결승에서 진 일이 있다.
그러나 시청률에 목을 맨 방송국 놈들은 대본을 독하게 썼다.
"금메달 1개는 올림픽 순위가 바뀔지도 모르는 소중한 점수입니다."
"그럼요. 그러나 도라익 선수 입장도 이해해야죠. 이미 군 면제도 다 받았는데 굳이 올림픽팀에 와서 뛸 이유가 없죠. 괜히 메달을 못 따면 다 본인 탓이 될 텐데요."
누가 들어도 확실한 반어법이다.
'제길. 가만히 있는 게 돕는 거다.'
오태범은 말을 아꼈다. 괜히 도라익 편을 들면 반발만 더 커진다. 어차피 도라익이 프리미어리그와 챔피언스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면 언론은 금세 얼굴을 바꿔 찬양할 것이다.
"만약 도라익 선수가 다음 올림픽을 뛴다면 제 손에 장을 지지겠어요."
오태범이 조용히 있자 김상현이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었다.
- 작가의말
장지지 장지지 장지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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