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0 화 – 귀찮은 부탁··· 에휴.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자한테 누군가가 봐준다는 것이 참 힘이 되고 고마운 것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제 30 화 – 귀찮은 부탁··· 에휴.
레쉬아 왕궁 구석진 곳에 있는 2층 오두막.
죽은 듯이 잠들어 있던 백발의 남성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천천히 둘러봤다.
창문으로 따스한 햇볕이 들어와 방을 밝히고 있었다.
“······?????”
백발의 남성이 꿈인가 하는 착각을 하고 있을 때.
끼익───.
방문이 열리면서 쌍둥이 네우가 물병과 수건을 들고 들어오고 있었다.
“일어났어?”
백발의 남성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살펴봤다.
자잘한 상처의 흔적들은 남아 있었지만,
멀쩡했다.
백발의 남자는 네우를 봤지만,
네우는 아무 말도 없이 침대 옆 탁자에 놓인 작은 대야에 물을 따르고 수건을 담가 적셨다.
“어떻게······.”
“이제 일어난 거냐?”
이 상황에 물어보려던 백발 남성은 다른 쪽에서 들리는 화가 난듯한 목소리에 그쪽을 바라봤고
자신처럼 신의 손길로 뒤틀린 소년. 리아인이 방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 뒤로 자신의 뒤틀림을 사라지게 해 준 상당히 피곤해 보이는 류안의 모습도 보였다.
리아인은 네우를 힐끗 노려봤다.
네우는 삐질 거리며 그 시선을 피해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에 리아인은 미간을 살짝 구기고는 백발의 남성을 향해 말했다.
“너, 일주일 만에 깨어났어.”
리아인의 목소리는 여전히 화가 난 듯했다.
“난 솔직히 네가 죽든 말든 상관이 없었거든, 그런데 말이야.”
“저기··· 이제 겨우 눈 떴는데 너무 몰아세우는 거···.”
리아인은 말을 끊는 네우를 다시 노려봤고,
네우는 또다시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네우, 이번에는 네가 좀 심하긴 했어.”
눈 밑에 다크서클이 가득한 쌍둥이 제우가 벨드라엔과 함께 방으로 들어왔다.
“오~ 일어났네.”
루카테르와 레이쉴도 들어왔다.
작지 않은 방의 인구밀도가 급격히 올라갔다.
그러던 중.
“졸려······.”
류안이 방구석에 있는 의자에 힘없이 앉으며 눈가를 손등으로 비볐다.
- ···자네 고생이 많군.
사념체의 목소리에는 안쓰러움이 가득했다.
류안은 지금도 후회 중이었다.
수도가 어떻게 되든 말든 조용히 있을 것을, 괜히 말하고 나서서 엄청난 후폭풍을 맞을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그··· 미안해. 그리고··· 내 부탁 들어줘서 고마워.”
네우는 류안을 조심히 바라봤다.
류안은 졸리고 귀찮아서 대충 손을 휘저어 보였다.
지금으로부터 닷새 전.
류안이 자정이 넘은 한밤중에 썩어가던 신 디케를 소멸시키기 온 다음 날.
네우가 리아인과 류안이 있는 방으로 왔다.
“···류안.”
네우의 부름에 류안은 왠지 불안했다.
“···‘신’인 너한테 부탁이 있어.”
부탁? 무슨 부탁?
죽이고 싶은 신이라도 있나?
“저 사람··· 살 수 있게······.”
“응?”
“잠깐이라도··· 단 며칠이라도 좋으니까 제대로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게 도와줘. 부탁이야.”
“엥?”
류안은 놀랐다.
옆에 있던 리아인도 덩달아 놀랐다.
“어···? 그걸 왜 나한테 부탁해?”
“넌 할 수 있잖아.”
네우는 간절함을 가득 담은 눈망울을 하고 류안의 양손을 잡았다.
류안의 손에서는 벨드라엔 님의 인형과는 다른 따스함과 부드러움이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부탁을 들어줄 것 같았다.
“어··· 왜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류안은 이상하게 ‘못해’ 또는 ‘안 해’라는 말이 바로 안 나와서 말을 빙빙 돌리며 거절 의사를 밝혔지만 소용없었다.
씨알도 통하지 않았다.
“저번 건국기념 축제 때처럼···.”
‘이런.’
류안은 인지했다.
네우는 자신이 백발의 남자를 살릴 방법을 알고 있다는 것을.
좀 번거롭고 귀찮아서 그런 것이지
며칠이 아니라 가능한 만큼 오래 살게도 할 수 있었다.
‘귀찮은데, 내 권능과도 상관없고 굳이 내가 해줘야 할 이유가 없는데···.’
네우의 간절한 눈빛을 본 류안은
처음으로 공포감을 느낀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때 류안 네가 영혼과 생명이 먹혀 빈 껍데기만 남아 있던 사람들한테 해 준 그 기적과도 같았던 방법으로 저 사람도 살 수 있게 해 줄 수 있지 않아?”
‘역시 알고 있네.’
류안은 눈을 질끈 감았다.
-자네··· 그런 힘도 있었나? 이거 정말 놀랍군, 놀라워─!!!
사념체는 감탄을 연발해 됐다.
벌컥───!!
“네우! 너 뭔 짓을 하려는 거야?”
쌍둥이 제우가 급히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일란성 쌍둥이라서 서로에 대한 감응력이 특출났기에 제우는 네우가 사고 칠 것을 직감하고 바로 이곳으로 달려왔다.
“네우 너 말도 안 되는 무리한 부탁하고 있는 것 아니지?”
네우는 제우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고
류안은 쌍둥이 네우와 제우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하아···, 조건들이 다 모였네.”
조건?
리아인, 쌍둥이 네우와 제우는 무슨 말인가 싶어 류안을 봤다.
류안의 미간이 귀찮음으로 인해 구겨져 있었다.
‘근데, 저 세 명은 왜 왔지?’
류안은 방안으로 들어오지는 않고
복도에 서 있는 세 명을 봤다.
리아인도 류안의 시선에 따라 고개를 돌리다 세 명을 보고 같은 생각을 했다.
벨드라엔이야 쌍둥이 때문에 왔을 것이고,
드래곤 루카테르는 지 맘대로 여기저기 설치고 다니니까 신경 접고,
국왕 레이쉴은 왜 왔는지 알 수 없었다.
‘국정, 나랏일 안 하나?’
“크흠, 난 오늘 쉬는 날이야.”
뭔 생각하는지 안다는 듯 레이쉴은 헛기침을 하며 답을 주었다.
“그냥 이곳 상황이 궁금해 온 것이니 난 상관 말고 얘기하던 것, 마저 하게.”
류안은 레이쉴의 말과는 상관없이 네우을 봤다.
“정말 그렇게 하고 싶어?”
네우는 한껏 밝은 표정으로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뿐만이 아니고 제우도 고생해야 하는데 괜찮겠어?”
제우가 순간 움찔했다.
‘뭐야? 뭘 하길래 네우와 나까지 고생을 한다는 거야?’
혼란함으로 가득한 제우를
네우가 눈망울을 반짝이며 바라봤다.
“어, 그··· 내가 지금 상황파악이 좀 안 되기는 하지만, 도울 것이 있으면 도와주기는 할게.”
네우는 환하게 미소지어 보였다.
‘아오- 저 얍삽이.’
제우는 네우가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눈치 빠르고 얍삽하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우선 뭘 하는 것인지, 어떻게 도와줘야 하는지 알려줘.”
제우는 긴장하며 류안을 봤다.
“곧 죽을 백발의 남자 살리기.”
“뭐? 그게 가능해?”
제우가 놀라는 것은 당연하고,
벨드라엔, 레이쉴, 루카테르 모두의 시선이 류안한테로 모였다.
류안은 그 시선들을 무시했다.
“그러기 위해 너희 쌍둥이의 뒤틀림이 필요해.”
“뭐──어─?!!!”
안 그래도 모인 시선들이 더 모여들었다.
류안은 이 역시 무시했다.
백발의 남성이 죽은 듯 잠들어 있는 방.
이 방의 인구밀도가 높아져 ‘백발의 남자 살리기’에 도움을 줄 수 없는 자들은 복도로 쫓겨나 관람 중이었다.
물론, 리아인도 복도에 있었다.
뒤틀림을 다뤄야 해서 만약의 사태에 휘말리지 않게 하기 위함도 있었다.
쌍둥이 네우와 제우는 나무 의자에 앉아 얌전히 있었다.
툭─.
쌍둥이 앞에 있는 탁자에
류안이 넝쿨 줄기들에 엉켜 있는 둥근 물체를 올려놓았다.
“하···, 이런 식으로 쓰일 줄 정말 몰랐는데.”
쌍둥이 둘도 아는 물체.
마을 피스링에서 류안이 엘프인 에피의 친구들을 찾아주고, 에피가 고마움에 류안한테 준 것.
“이 넝쿨 안에 투명한 돌이 있는 것 알지?”
“응, 알아.”
“알고 있어.”
류안은 넝쿨 줄기들에 엉켜 있는 투명한 돌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 돌에 너희의 뒤틀림을 스며들게 할 거야.”
“아, 잠깐 류안.”
제우가 할 말이 있다는 듯 손을 들어 보였다.
“우리가 벨드라엔 님의 ‘손길’로 뒤틀린 적이 있었지만, ‘아이’가 되었기 때문에 그 뒤틀림은 사라졌어.”
“돌연변이 뒤틀림.”
쌍둥이 둘은 움찔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돌연변이의 뒤틀림이야.”
류안은 침대에 잠들어 있는 백발의 남성을 보면서 잠시 생각했다.
‘이곳 세계에 염색체나 유전자 개념이 있던가? 없는 것 같은데, 뭐라 설명하지?’
류안은 귀찮아져서 그냥 염색체와 유전자는 빼고 말하기로 했다.
“우선 설명을 좀 하자면, 백발의 남자는 알비노 백색 돌연변이야. 돌연변이의 뒤틀림은 자연적인 거라 ‘신의 손길’에 의해 뒤틀린 것과는 달리 주변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기에 평범하게 살 수 있어.”
류안은 백발의 남성을 손으로 가리키고 쌍둥이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백발의 남자는 ‘신의 손길’로 인해 뒤틀림에 뒤틀림이 더해졌지. 그래서 하얀 창 촉에 박혀있는 투명한 돌에 뒤틀림을 스며들게 할 때, 백발의 남자 몸에 있던 자연적인 뒤틀림까지 스며들어 사라졌어.”
류안의 눈에 손을 들려고 하는 네우가 보였다.
“혹시, 자연적인 것과 ‘손길’에 의한 것을 구분할 수 있지 않았냐고 물으려는 것이면. 불가능해.”
네우는 여전히 손을 들려고 했다.
“너희와는 경우가 달라.”
네우의 손을 멈칫했다.
“너희는 벨드라엔의 ‘손길’을 거의 바로 받아들였지?”
쌍둥이 네우와 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두 뒤틀림이 섞이지 않은 채, 자연적인 것은 그대로 유지되고 ‘손길’에 의한 뒤틀림만 안정화 된 거야.”
류안은 팔짱을 끼고 다시 백발의 남성을 봤다.
“안타깝게도 저자는 ‘신의 손길’에 뒤틀린 후, 그에 맞는 조치 없이 오랜 기간 방치된 듯해. 아마 뒤틀림을 커지게 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그 바람에 두 뒤틀림이 서로 뒤엉켜버렸어.”
“이 죽여도 모자랄···.”
쌍둥이 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복도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모두의 표정도 안 좋아지고 어두워졌다.
특히,
리아인의 표정에는 살기도 드리워졌다.
참고로 류안은 그 신을 소멸시켰다는 것을 아직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않았다.
물어본 자가 없었으니까.
잠시 리아인의 표정을 살펴본 류안은 이내 말을 이었다.
“설령 운이 좋아 뒤엉키지 않은 부분이 남아 있었다고 해도.”
류안은 손가락 검지로 넝쿨 줄기들에 엉켜 있는 투명한 돌을 톡톡 두들겼다.
“이 돌이 구분해서 ‘신의 손길’에 의한 뒤틀림만 골라 흡수할 수 있었을 거라고 여기는 것은 아니지?”
네우는 조용히 손을 내리고 고개를 숙였다.
“······미안.”
네우는 류안한테 두 뒤틀림을 구분해서 스며들게 할 수 있지 않았냐고 따질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바로 사과했다.
“하아─······.”
류안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네우는 고개를 더 깊숙이 숙였다.
“설명이 좀 길어졌던 것 같은데. 이젠 본론을 얘기할게.”
네우는 숙였던 고개를 들고 얼굴에 열의를 가득 채웠다.
“지금 저 백발의 남자는 있어야 할 뒤틀림이 사라져 영혼만으로 간당간당하게 버티고 있어.”
류안은 네우를 가만히 바라봤다.
‘이미 죽고도 남았을 자인데···.’
험한 일을 당한 그를 살리고 싶은 간절함에
네우는 저도 모르게 자신의 뒤틀림을 저자한테 스며들게 해 준 듯했다.
허술하고 너무 미약해서 겨우 영혼을 붙잡아 두는 것에 그쳤지만.
류안은 탁자 위 돌을 집어 들었다.
“이제 이 돌에 너희의 뒤틀림을 스며들게 할 거야. 한 명의 뒤틀림으로는 부족하기도 하고 위험해질 수 있지만, 두 명의 그것도 똑같은 뒤틀림이면 저자한테 필요한 뒤틀림을 충분히 줄 수 있어. 자─ 받아.”
류안은 돌을 쌍둥이한테 슬쩍 던졌고,
쌍둥이 둘은 동시에 같이 그 돌을 잡았다.
“좀 아플 수도 있어.”
그 말에 쌍둥이 둘의 눈이 커졌다.
뭐라 말하고 싶어 입을 열려고 하는 순간,
“크으으─윽!”
“으윽─!!!”
투명한 돌에 엉켜 있던 넝쿨 줄기들이 스르륵 풀리더니, 쌍둥이 네우와 제우의 손과 팔로 파고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쌍둥이 둘은 자신들 몸 깊숙한 곳에서부터 뒤틀림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둘의 뒤틀림은 넝쿨 줄기들을 통해 흘러가 투명한 돌 안에 채워져 갔다.
“─────·········!!!”
“───······.”
쌍둥이 둘은 고통과 신음을 참았다.
하지만,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기절할 것 같았고 자신들의 뒤틀림이 모두 빠져나가는 것만 같던 그때.
“이제 충분한 것 같네.”
무덤덤하게 보고 있던 류안이 쌍둥이 곁으로 다가가 그 둘의 손에서 넝쿨 줄기들을 펼치고 있는 투명한 돌을 집어 들었다.
그러자,
쌍둥이 네우와 제우의 손과 팔에 파고 들어있던 넝쿨 줄기들이 아무런 저항 없이 빠져나와 뒤틀림으로 가득 차 있는 투명한 돌에 다시 엉키며 감싸았다.
“허─억, 허어억.”
“하아······.”
제우는 의자 등받이에 기댄 채
네우는 탁자 위에 상체를 엎드린 채
가쁜 숨을 내뱉었으며 얼굴과 몸에서는 식은땀이 가득 흘러내리고 있었다.
류안은 당장 숨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침대에 잠들어 있는 백발의 남성한테로 다가갔다.
“이제··· 후우··· 어떻게 할 거야?”
네우가 숨을 몰아쉬면서 류안을 봤다.
“이식해야지.”
“···이식?”
류안은 백발 남성의 상의 끈을 풀어 젖히고는 가슴팍 심장이 있는 위치에 투명한 돌을 올려놓았다.
“참 얄궂은 우연이야.”
투명한 돌에 엉켜 있던 넝쿨 줄기들이 이번에는 백발 남성의 가슴팍 심장 쪽으로 파고들어가기 시작했고
류안은 잘 안착할 수 있도록 돌을 손으로 지그시 눌렀다.
백발의 남성은 고통을 느낄 기력도 없는지 아주 잠깐씩 움찔거릴 뿐, 조용했다.
투명한 돌은 가슴팍에 ⅔정도가 파묻혔고
돌과 연결된 부분의 넝쿨 줄기들은 마치, 심장과 혈관처럼 보였다.
백발 남성의 창백한 피부에 조금씩 혈색이 돌기 시작했다.
“운 좋은 줄 알아. 그냥 투명한 돌이었으면 쌍둥이 너희는 그대로 먹혀 빈 껍데기만 남았을 것이고, 이자한테 이식해 줄 수도 없었어.”
류안이 해맑게 미소 지어 보였다.
“넝쿨이 매개체 역할을 해주어 이자와 너희가 살 수 있었던 거야.”
해맑은 소년의 얼굴로 무서운 말을 하는 류안을 보며 다들 오싹함에 굳어있었다.
류안은 그런 그들을 신경 쓰지 않고
리아인한테 손짓했다.
리아인은 류안한테로 다가갔으며
바로 앞까지 다가가자.
“졸려.”
그러고는 류안은 무릎이 힘없이 꺾이면서 리아인의 품으로 쓰러졌다.
리아인은 놀랄 틈도 없이 황급히 류안을 부축했다.
뒤늦게 얼이 빠진 듯 멍한 얼굴을 하던 리아인은 곧 안도감에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잠들어 있었다.
평소처럼 나지막한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었다.
쿠당─! 쿠당탕───!!
갑자기 쓰러진 류안을 보고 의자에서 일어나려던 쌍둥이 네우와 제우는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의자와 같이 넘어지며 바닥에 주저앉았고
둘은 얼이 빠진 얼굴로 리아인의 품에서 힘없이 팔을 늘어트린 류안을 봤다.
네우와 제우는 이제야 알 수 있었다.
류안이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했으나 그 역시 매개체로서 투명한 돌을 제어하고 있었음을
그것이 얼마나 큰 힘이 들고 자신들은 감히 가늠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하······.”
복도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벨드라엔은 뭐라 말할 수 없이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혼란스러웠다.
평소라면 류안은 늘 신에 대한 상식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신경 접고 무시하려고 했겠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다.
저런 일이 가능했던 것인가?
저런 일은 할 수 있는 신이 있기는 했던가?
류안을 보며 놀랄 일이 많았으나,
신을 죽일 수 있는 신이라는 것보다 더 놀랄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지금 눈앞에서 벌어진 일은 그 무엇과도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놀라웠다.
류안의 ‘방’에서 더부살이 중인 ‘---’의 사념체 역시 처음 보는 광경에 경악하고 있었다.
대체 이 어린 신의 정체가 뭐지?
상상을 뛰어넘는 것들을 보고 있는 것도 대단하건만
이런 것을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이고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건지?
사념체는 류안이 이곳 세계의 신과는 다르다는 것은 바로 알 수 있었지만,
그 다름이 범상치가 않음을 인지했다.
“우아! 뭐 저런 녀석이 다 있어? 이게 말이 돼? 저 녀석 대체 뭔 신이야? 저런 일이 가능한 신이 있었어?”
드래곤 루카테르가 믿기 어려운 광경에 감정을 주체못하고 다다다 내뱉기 시작했다.
“아니, 그래. 뭐든지 예외의 법칙이 있기는 한데, 저 녀석은 그 예외의 허용치를 넘어섰다고!!!”
흥분해서 혼자 열심히 떠들어대는 루카테르 옆에 가만히 서 있는 레이쉴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런 그들 앞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좀 비키지?”
류안을 한쪽 어깨에 업은 리아인의 말에 방 입구 복도 쪽에 있던 세 명은 조용히 비켜섰다.
리아인은 조심히 발을 움직여 자신과 류안이 머무르고 있는 옆방으로 향했다.
그 후,
류안은 이틀간 잠들어 있었다.
하지만 리아인은 동요하지 않고 있었다.
류안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잠을 자는 것뿐이라는 듯
평소처럼 ‘졸려’라고 말하고 잠들었으니까.
리아인은 류안이 때가 되면 일어나기를 조용히 가만히 지켜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가 더 지난 아침.
류안이 눈을 떴다.
그리고,
“이젠, 안 해! 귀찮아!! 피곤해!!!”
일어나 침대맡에 앉자마자 내뱉는 류안의 말에 침대 옆에서 꼼짝 않고 있던 리아인이 얕게 웃음을 보였다.
피곤이 들 풀린 듯 더 멍하니 있고
계속 졸려 하기는 했지만,
괜찮아 보였다.
류안은 아직 졸린 눈을 비비며
이젠 자신과 아무런 관련, 상관없는 일은 절대로 나서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근데,
의문이 한 가지 있었다.
왜 쌍둥이 네우의 부탁에 거절하는 말을 바로 할 수 없었는지 도저히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때,
덜컹─!
“미안하다.”
“응?”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사과의 말이 들렸다.
벨드라엔이 류안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고 바로 달려와 사과한 것이다.
벨드라엔은 류안이 앉아있는 침대 옆으로 가 서서 고개를 숙였다.
“네우가 너한테 신께 부탁하는 주문을 사용할 줄은 몰랐어.”
“응? 부탁하는 주문?”
벨드라엔은 괜히 볼을 긁적이며 고개를 옆으로 살짝 돌리고는 류안의 물음에 답했다.
“신의 영역으로 있는 지역에 있거나 영향력 안에 있는 사람들이 신의 도움이 필요할 때 쓰는 주문인데···. 권능이나 능력과 상관없는 것들은 바로 그냥 무시할 수 있지만, 충분히 들어줄 수 있는 것이면 거절하기가 좀 까다롭거든.”
벨드라엔은 여전히 볼을 긁적이며 천천히 고개를 돌려 류안을 봤다.
“뭐, 그런 부탁을 몇 번 경험해본 신들은 알아서 요령껏 잘 거절하기도 하는데···, 류안 너는 처음이라 더 힘들었을 거야.”
리아인은 팔짱을 낀 채 침대 옆 테라스 창가에 기대고 서서 지긋이 벨드라엔을 봤다.
‘마을 피스링에서 엘프인 에피가 ‘신님께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라는 말에 벨드라엔인 문을 열어 준 이유가 주문 때문이었던 거였나.’
리아인은 순간 소름이 돋았다.
‘만약, 류안이 신이라는 것이 어떤 능력이 있는지 사람들한테 알려진다면······.’
리아인은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아니,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가림막을 더 철저히 이용해야 해!’
리아인은 노려보듯 벨드라엔을 쳐다봤고,
벨드라엔은 어마어마한 오싹함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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