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58 화 – 그릇과 만들어진···.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자한테 누군가가 봐준다는 것이 참 힘이 되고 고마운 것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제 58 화 – 그릇과 만들어진···.
자신을 죽여달라고 말한 그 사람은
뒤틀림이 사라져 맑게 투명해진 호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앞서 한 말과는 전혀 다른.
“호수의 뒤틀림이 사라졌군요···.”
그리고는 시선을 옮겨 류안을 봤다.
호수 안의 뒤틀림이 모두 사라지고 그 어둠을 품은 듯한 모습으로 나타난 존재.
눈앞의 존재가 뒤틀림을 사라지게 했다는 것을 확신했다.
“다행이네요.”
낮은 저음의 목소리에는 안도와 기쁨이 서려 있었다.
“그게 널 죽이는 것과 무슨 상관이지?”
“·········.”
리아인의 말에
그 사람은 잠시 말없이 있다가 입을 움직였다.
“전 이 검은 호수 밑에 가라앉아 있던 뒤틀림을 담을 ‘그릇’입니다.”
“!!!!!”
리아인은 류안을 자신의 뒤로 물리고는
자신을 죽여달라면서 스스로 ‘그릇’이라고 칭한 그 사람 앞에 섰다.
죽여달라고 했지만,
행여나 쇼트한테 류안이 해주었던 그 상황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으며
그때와 같은 고생을 또 하게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리아인의 경계를 이해하는···
그릇이라는 그 사람은 제 가슴팍에 있는 투명한 돌을 손으로 쥐었다.
“이 투명한 돌에는 위치추적 마법이 걸려있습니다. 제가 어디로 가든 곧 사냥꾼이 와서 절 수거해 끌고 가겠죠···.”
그릇의 사람은 눈을 감았다.
이제는 느껴지지 않는 심장의 박동.
“그리고, 또다시 뒤틀림이 모여있는 곳으로 끌려가 뒤틀림을 담을 그릇으로 사용될 것이고, 그 뒤틀림은···.”
그릇의 사람은 천천히 눈을 떴다.
“어떻게 사용될지는··· 다들 아실 겁니다. 전 더 이상 남에게 해[害]를 줄 수 있는 뒤틀림을 담는 그릇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니 부디······”
“스스로는 죽을 수 없었나 보네.”
류안은 리아인 뒤에서 그릇이라는 사람의 몸을 찬찬히 살펴보며 말했다.
“···네. 육체는 이미 죽었는데도 이 투명한 돌 때문인지 제 영혼은 이 육체에 묶여있어서 완전히 죽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말대로 투명한 돌의 영향도 있었으나,
‘그릇’으로서 뒤틀린 기운을 몸에 몇 번 담는 과정에서 죽음의 순리[順理]가 뒤틀려져 죽지 못하고 있었다.
그릇의 사람은 허리를 깊이 숙였다.
“부탁드립니다. 제발 절 죽여주십시오.”
낮은 저음의 목소리에는 간절함과 절박함이 가득했다.
그 모습에 리아인의 표정이 묘해져 갔다.
신경 쓰고 싶지 않고 외면하고 싶은데,
이대로 외면해도 될까 싶은···
그때,
리아인은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는 감촉을 느꼈다.
그 감촉에 뒤를 돌아보자.
류안이 비켜달라는 듯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고 있었다.
“·········.”
리아인은 아무 말 없이 옆으로 한 걸음 비키며 섰다.
저 그릇이라는 사람의 부탁을 들어줄지 말지는 류안이 알아서 할 일이었기에···.
자신의 감정과는 별개의 일이었다.
류안은 허리 숙인 그릇의 사람 앞에 가서 쪼그려 앉아서는 그 사람을 올려다봤다.
그 시선에 그릇의 사람은 덩달아? 얼떨결에 천천히 바닥에 무릎 꿇고 앉으며 류안과 시선을 마주했다.
“죽여주는 것은 어렵지 않아. 대신 그 전에 한 가지 말해 줬으면 하는 게 있는데, 해줄 수 있어?”
류안의 말에 그릇의 사람 얼굴에는 기쁨이 감돌고 있었다.
“네. 제가 아는 것이면 말해드리겠습니다.”
류안은 그 말에 미소를 보이며
그릇이라는 사람의 가슴팍에 박혀있는 투명한 돌에 살며시 손을 얹었다.
그릇의 사람은 이미 죽은 자신의 육체.
온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차가운 피부 위로 부드럽고 따뜻한 감촉이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그 감촉에 기대고 있었다.
“이 돌 어디서 만들었는지 말해줘.”
“───!!!”
류안의 말에 리아인, 워스만, 쇼트는 순간 흠칫했다.
습득한 것이 아닌 만들어 졌다.
이 사실은 엄청난 위험신호가 되어 그들의 뇌리에 박혔다.
“···정확히 어디서 만들어지는 것인지 저도 잘 모르지만, 스체스 왕국에서 조달해 온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릇의 사람 얼굴에 정확한 정보를 주지 못한 미안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거면 충분해.”
류안은 충분히 만족스러운 답에
그릇 사람의 가슴팍 투명한 돌을 조심히 쥐고는 그대로 빼냈다.
빼내기 힘들어 보일 정도로 죽은 피부와 거칠게 엉키고 들러붙은 투명한 돌은
스륵─ 하고 너무나도 쉽게 빠져나왔다.
그릇의 사람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은 무슨 짓을 해도 빼낼 수 없었던
심지어는 예리한 칼로 투명한 돌과 함께 피부를 도려내려고까지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불가능했다.
그릇의 사람은 놀람 뒤에
느껴지는 죽음의 안식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너의 몸은 이미 껍데기 화 되어서 화장을 해야 해. 괜찮지?”
“네, 부디 그리 해주십시오.”
류안을 응시하며 말하던
그릇이라는 사람의 눈이 스르륵 감겼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이 말을 끝으로 아무런 움직임 없이 조용해졌다.
육체에서 영혼이 완전히 떠난 것을 확인한 워스만이 엄숙하게 화장을 치러주었고
리아인과 류안, 쇼트가 지켜봐 주었다.
화장한 뒤에 남은 한 줌의 재는
자연으로 돌아가는 의미로
쇼트가 나무뿌리 사이에 묻어주고는 묘비 대신 납작한 돌과 꽃 하나를 올려놓아 주었다.
“·········.”
말없이 있는 쇼트는 심정은 복잡하면서도
자신이 얼마나 운이 좋았는지를 새삼 깨닫고 있었다.
워스만은 그런 쇼트를 잠시 보고는
시선을 돌려 류안을
정확하게는 류안의 손에 들린 투명한 돌을 봤다.
류안도 자신의 손에 있는 돌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 모습에 워스만이 말했다.
“괴수의 몸에 있는 것도 챙겨야 하지 않나?”
“···쓸모없어.”
“뭐?”
의외의 대답에 워스만이 의아해하는 사이,
류안은 투명한 돌을 쥔 손에 힘을 꽉 주었다.
파삭-!
투명한 돌은 오래되고 삭아 속이 빈 점토가 부서지듯이 힘없이 조각나고 가루로 변하며 부서졌다.
덤으로 이때 추적마법도 같이 부서졌다.
“음··· 투명한 돌이 원래 이렇게 쉽게 부서지는 것이었나?”
“아니. 가짜? 모조품? 아닌데···.”
워스만의 물음에
류안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설명에 적합한 단어를 찾고 있었다.
“음─··· 인위적으로 억지로 만든 투명한 돌.”
“그게 가짜나 모조품이라는 의미 아닌가?”
“으음─, 투명한 돌이 만들어지는 시간. 꽤 오랜 세월이 걸리는 그 시간을 앞당겼다고 해야 하나? 압축했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가짜나 모조품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정상적인 과정을 거친 것이 아니라서 불완전해 일회용으로밖에 못써.”
류안은 손에 남아있는 투명한 돌의 가루를 손뼉을 치듯이 탁탁 털어내고는 쓰러져 있는 괴수들 쪽으로 다가갔다.
리아인의 백금빛 지뢰 전류를 정통으로 맞은 괴수들은 이미 숨이 끊어진 채,
몸에 박혀있는 돌에는 금이 가 있었다.
류안은 몸을 숙여 죽은 괴수 몸에 박혀있는 투명한 돌을 손가락으로 툭 건드렸다.
파삭-!
그 돌 역시 쉽게 부서지며 가루로 변했다.
그렇게 괴수들 몸에 박혀있는 투명한 돌을 모두 부순 류안은 워스만을 바라봤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괴수 시체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것들도 태워줘.”
“그러지.”
워스만은 먼저 구덩이를 파더니,
그 안에 괴수들의 시체를 넣은 후 깔끔하게 태워버리고 흙을 덮어 마무리했다.
류안은 그 과정을 다 보고 마차로 가기 위해 발을 움직이려고 할 때,
자신의 팔을 강하게 잡는 손이 보였다.
리아인의 손이었다.
리아인의 눈동자에는 걱정과 함께
매서움이 자리해 있었다.
“류안, 할 말 없어?”
“응? 무슨 말?”
리아인이 미간을 구기자,
류안은 아주 살짝 움찔했다.
“호수 밑에서 세 시간 넘도록 뭐 하고 있었어?”
“응? 아─.”
류안은 리아인한테 잡히지 않은 쪽 손에 하얀 창 하나를 불러냈다.
모두의 시선이 류안의 손에 들린 하얀 창으로 집중되었다.
“하얀 창이 있었어.”
레쉬아 왕국 건국기념 축제 마지막 날, 차원의 틈에서 습득한 첫 번째.
버려진 신전에서 습득한 두 번째.
그리고 이곳
듀아 왕국의 검은 호수에서 세 번째 처형자의 하얀 창을 습득한 것이었다.
워스만과 쇼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하고 있을 때,
리아인은 그러지 않았다.
“설명 부족해.”
“응?”
류안은 살짝 당황했고
워스만과 쇼트는 은연중에 알고 있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있던 것을 새삼 인지하면서 못 말린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류안을 향한 리아인의 과도한 집착.
리아인의 시선에
류안은 두 눈을 깜박이다가
세 시간 넘게 호수 밑에 있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호수 밑바닥에 박혀있는 하얀 창을 잡는 순간,
하얀 창 안에 깃들어 있던 정보, 기억들이 흘러들어와 그것을 받아들이느라 시간이 좀 걸린 것이라고 간략하게 설명했다.
힘이 아니라 몸에는 무리가 없었다고도 덧붙였다.
그리고 추가 설명으로
그동안 하얀 창이 뒤틀린 기운을 끌어당겨 호수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고 있었으며
그렇게 오랜 세월 모여 자연스레 만들어진
하얀 창 밑에 묻혀있던 투명한 돌에 호수 안의 뒤틀림을 스며들게 했다고 말했다.
설명을 마친 류안을 보며
리아인은 뭔가 더 있을 것 같은 찜찜함이 들었지만,
“···나 졸려.”
이 말에 리아인은 류안을 황급히 어깨 쪽에 안아 올리고는 마차로 향했다.
몸에 무리가 없었다고는 해도
처형자의 하얀 창을 습득하면서 투명한 돌과 뒤틀림도 다루었으니, 마냥 멀쩡하지는 않을 거라 여겼다.
그러는 사이
워스만은 류안한테 물 파장에 관해 확인해 보려던 때를 놓치고 말았다.
“아, 이런··· 다음에 확인해 봐야겠군.”
그렇게 의문을 다음으로 기약하고 있는 워스만은 깡그리 무시한 채,
류안을 업은 리아인, 쇼트는 마차 안에 들어왔다.
류안은 1층 자신의 침대에 고이 눕혀지면서
리아인한테 말하지 않은 것이 괜스레 되새겨졌다.
그것은
세 번째 처형자의 하얀 창을 습득한 동시에
세 자루의 창이 서로 공명하면서
그 여파인지 류안의 ‘방’에 더부살이 중인 ‘---’의 사념체가 잊고 있던 것이 기억이 났다며 알려 준 것으로
오로지 ‘---’만이 알고 있는 ‘---’의 아이인 처형자들도 모르고 있던 것이라 했으나,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리아인한테 굳이 말해 줄 필요도 없고
더 설명해주기도 귀찮아져 ‘졸려’라고 했던 것이었다.
거기에다가 실제로 졸리기도 했기에
이내 눈을 감고 잠에 빠져들었다.
그러면서 부탁하듯이 생각했다.
‘몰라도 되는 것, 알고 싶지도 않은 것 좀 그만 알려주라고···.’
* * *
삐이익───···!
듀아 왕국의 1 왕자 다미엔의 집무실에 영상통신 장치의 알림음이 울려 퍼졌다.
그 영상통신 장치는 전쟁의 신 워스만하고만 직통으로 연결이 되는 것이라
다미엔은 바로 영상통신을 켰다.
-좋은 소식이 있다.
“네?”
-출입금지구역으로 지정한 검은 호수의 뒤틀림이 모두 없어졌으니, 출입금지 해제해도 돼.
영상통신이 연결되자마자
인사할 틈도 없이 제 할 말만 하는 워스만으로 인해 다소 당황스러웠으나,
좋은 소식인 것은 맞았기에 웃어 보이며 말하려던 그때.
-스체스 왕국 조사해 봐. 그 왕국에서 투명한 돌 인위적으로 만들고 있는 것 같으니까.
“─!!!!!!!”
대비할 틈도 없이
엄청난 정보가 다미엔의 뇌리를 강타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최근에 발생한 기이한 사건 중, 사람이나 동물들이 시간을 뺏긴 듯 갑자기 늙어버린 사건도 있는지 조사해. 투명한 돌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아.
다미엔은 시간이 정지한 듯, 웃어 보이려던 어정쩡한 표정 그대로 잠시 굳어있다가
이내 입을 움직여 말했다.
“그런 정보는 대체 어떻게 어디서 누구한테서 구하신 것입니까?”
-누구긴 누구야, 이미 짐작하고 있으면서 입 아프게 묻지 말도록.
이미 짐작하고 있는···
워스만의 말대로 다미엔은 짐작하고 있었다.
류안 덕에 알게 된 정보라는 것을.
투명한 돌과 뒤틀림이 관련되었다 하나,
명확한 근거가 있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이상하게 확신할 수 있었다.
또한,
검은 호수의 뒤틀림도 류안이 사라지게 했다는 것도 바로 인지했다.
“···이러니 자꾸 욕심이 나잖아.”
-뭐?
“아, 아닙니다.”
평소 신중하던 것과는 다른 다미엔의 모습에 중얼거리는 듯한 말을
워스만은 못 들은 척해주면서도
마지막 한 방을 다미엔한테 날렸다.
그리고 그 한방은 강렬했다.
-나 잠깐 그 아이하고 레쉬아 왕국에 다녀올 테니, 그리 알고 있도록.
팍-!
“네?!! 워스만 님─!!!”
다미엔은 잘 못 들었나 싶어
다급히 영상통신 장치를 부여잡고 워스만을 큰 소리로 불렀으나···,
영상통신은 이미 끊긴 상태였다.
“·········.”
다미엔은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굳어버렸다.
가서 무슨 사고를 칠지 두려웠다.
그리고
레쉬아 왕국의 국왕 레이쉴과
수호신을 맡은 벨드라엔도 아연실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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