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65 화 – 잠들어버렸다.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자한테 누군가가 봐준다는 것이 참 힘이 되고 고마운 것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제 165 화 – 잠들어버렸다.
타당. 탕. 쿵광.
끼리리-릭, 드르륵-.
부서진 건물 잔해와 파헤쳐진 땅을
정돈, 정리하는 기계 차들의 움직이는 소리로 시끄러웠으나,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조용했다.
괴수들의 출현으로 한바탕 난장판이 된 G 구역 중앙거리를 뒤처리하고 있는 이들은 자신들이 할 일을 묵묵히 하면서도 한 번씩 어느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검은 천사가 마지막까지 있었던 곳.
괴수들의 출현 후,
다들 힘을 합쳐 처리하고 마무리되던 중
‘마찰의 신’이 등장해서는
선물이라는 말과 함께 뒤틀어진 신들이 차원의 균열에서 나오는 바람에
한순간 위기에 봉착하나 싶었으나,
검은 천사에 의해 순식간에 뒤틀어진 신들은 소멸이 되었다.
그 광경을 직접 본 이들의 표정은
뭐라 단정 짓기 힘들 정도로 복잡했다.
소멸당하는 신들의 표정과
무표정한 얼굴로 신들을 소멸시킨 검은 천사의 모습에 숭고함을 느끼면서 안쓰러움이 밀려오고 있었다.
엄청나게 강한 힘을 가졌다고 해도
안식을 주기 위한 행동이라고 할지라도
수많은 존재에게 죽음을 주는 일은 웬만한 감정 소모로는 힘든 일이었다.
감정을 죽여야만 가능한 일.
다들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어린 소년의 모습인 검은 천사를 걱정하고 있었지만,
그러면서도
자신들은 여럿이 힘을 합쳐도 할 수 있을까 말까 한 일을 거의 혼자서 처리한 검은 천사가 이곳에 남아 힘이 되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런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서는 말없이 자신들이 할 일을 했고
그렇게 G 구역이 정리되어가던 중.
아직 복귀하지 않고 남아있던 박민하는 뭔가를 감지하고는
지금은 사라졌지만,
차원의 균열이 있었던 곳으로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라지지 않은 막의 파편들 사이 틈에 있는 유리구슬처럼 아주 작은 투명한 돌을 발견했다.
박민하는 감지능력으로 투명한 돌에 있는 기운이 무엇인지 인지했다.
“하-, 노록원 이 자식. 이것까지 본 거냐?”
박민하는 그냥 만질 수 없는 투명한 돌에
막을 여러 겹 압축해 두른 후,
조심히 챙겼다.
노록원이 생전 예지 외에
자신한테만 간간이 얘기해 주었던 것들.
그중에는 검은 천사에 관한 얘기들이 많았다.
그 얘기 중 하나를
노록원이 조심스레 얘기해 주었던 그것을
박민하는 실행하기로 했다.
* * *
류안은 리아인, 워스만과 함께
제로 팀의 지하근거지로 돌아온 후,
자신을 보는 조심스러운 시선의 의미를 여전히 이해하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류안은 의문을 풀기 위해 리아인을 봤다.
리아인은 멋쩍게 미소 지을 뿐,
아무 말 없자.
이번에는 워스만을 바라봤다.
워스만 역시 아무 말 없이
류안의 머리를 쓰다듬을 뿐이었다.
류안은 뚱한 표정을 지었다.
리아인, 워스만은
본인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감정을
굳이 설명하고 들쳐 마음 쓰게 하고 싶지 않았다.
거기에다가
어린 소년의 모습 때문이라고도 말할 수 없었다.
성인 모습의 류안은
다른 의미로 시선이 집중될 것이 뻔했기에
위험한 일이었다.
-크흠, 다들 자네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그런 것이니, 그리 신경 쓰지 않아도 되네.
‘날 걱정해? 뭘? 왜?’
오랜만에 목소리를 낸
류안의 ‘방’에 더부살이 중인 심판자의 사념체가 한 말에 류안은 오히려 의문만 더 깊어질 뿐이었다.
그로 인해
류안의 뚱한 표정이 더 뚱해져 버렸다.
감정 일부가 결핍되어 설명해 준다 해도
이해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것에
류안은 더 신경 쓰지 않고 돌아갈 일만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서
리아인한테 죽을 준비되었냐고 말하려던
그때.
박민하가 어두운 미소를 한 채 다가왔다.
리아인은 박민하한테 좀 전에 마무리된 출동을 마지막으로 돌아갈 거라 이미 말했기에
어두운 표정의 박민하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박민하는 리아인을
리아인이 빙의한 노록원을 잠시 보고는
조심히 입을 움직였다.
“···가기 전에 차 한잔 정도는 같이 해줄 수 있지?”
‘차?’
류안은 왠지 모를 기시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스체스 왕국 때 취사병이 준 독이 든 차가 생각났다.
하지만,
박민하가 자신을 독살해야 할 이유도 없고
만에 하나 그렇다 한들 상관없었기에
냉각수 보충한다 생각하고 받아들였다.
리아인도 찜찜하긴 했어도
딱히 걱정할 일은 없을 거라 여기고
뒤끝 없게 차 한잔으로 마무리하면 되겠거니 생각하며 승낙했다.
워스만은 둘이 승낙했으니 그에 따랐다.
박민하의 품에서 슬쩍 보인 술을 봐서가
결단코 아니라고 자기 세뇌하면서.
각종 자판기와 탕비시설이 갖춰진 휴게실.
그 한쪽에 자리한 리아인과 류안, 워스만.
그런 그들에게 박민하는 커피와 허브차 그리고 위스키를 각자 앞에 내어주었다.
류안의 허브차에서 옅은 금빛이 비치는 것을 제외하면 별 특이한 점 없는 음료들.
예전 듀아 왕국의 1 왕자 다미엔이 대접해준 온갖 차 중 금빛이나 은빛이 도는 차를 마셔본 적이 있어서
류안은 거부감없이 한 모금 마셨다.
그때, 삐빅- 하고 알림음이 울렸다.
박민하의 개인용 알림이었고
알림을 확인한 박민하는 아쉬움을 보이며 말없이 고개 인사한 후
자리에서 일어나 휴게실을 떠났다.
류안은 다시 차를 마시려 했고
리아인과 워스만이 혹시 모를 일을 방지하기 위해 동시에 손을 뻗으며 말렸다.
“시간 더 지체해서 좋을 것 없으니.”
“이쯤에서 돌아갈 것이 나을 것 같은데.”
워스만의 말에 리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박민하한테는 이미 말해두었고.”
“감지능력이 있으니 돌아간 것 잘 인지할 거야.”
“그리고, 더 이상 안 보여야 그나마 미련을 추스를 수 있을 테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류안은 신경 쓸 생각 없었지만,
리아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리아인, 워스만도 자리에서 일어나 인적이 드문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 한걸음 움직이던 그때.
“어?”
류안이 의문의 소리를 내며
고개를 한번 갸웃거리는가 싶더니.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놀란 리아인, 워스만이 동시에
바닥에 부딪히기 직전 류안을 부축했고
상태를 살펴봤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류안은 잠들어 있었다.
워스만은 류안을 리아인한테 맡기고
류안이 마시던 차를 살펴보았다.
탐색의 힘까지 써가면서 살펴보았으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수면제나 독이 잠재웠을 리는 만무했다.
피곤해서 잠든 것도 아니었다.
리아인뿐만 아니라
워스만도 류안이 잠들기 전에는 하품하거나 ‘졸려’라는 말을 하고 잠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지만,
분명 차 때문이라는 것을 의심이 아닌 확신을 했다.
“대체 뭘 먹인 거야?”
그러다 문득,
리아인, 워스만은 한가지가 떠올랐다.
류안이 갑자기 쓰러지는 이유.
유일무이한 이유가 있었다.
워스만은 다시 차를 살펴보았지만 없었다.
옅게 빛나던 금빛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 금빛이 신의 기운이라는 것을 인지했고
박민하의 능력이 감지와 막을 형성하는 것이었기에 눈치채지 못하게 가렸다는 것도 인지할 수 있었다.
단지,
류안에 대해 아는 것과
신의 기운을 어디서 어떻게 습득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설마··· 이런 것까지 예지한 건가?”
“하─.”
워스만은 어이없어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일개 인간이 신의 발을 묶다니, 대단한데.”
콰직-!!!
찻잔을 쥔 워스만의 손에 힘이 들어갔고
찻잔은 힘없이 부서지며
투명한 찻물이 탁자를 타고 흘러
바닥으로 방울방울 떨어졌다.
* * *
노록원이 박민하한테 해준 검은 천사에 관한 얘기 중.
검은 천사 뒤틀어진 신을 소멸시킨 후,
잔재 같은 투명한 돌을 만지고는
정확한 이유는 몰라도 닷새간 잠들었다는 것이 있었다.
다른 누구한테도 아닌
오로지 박민하한테만 해준 얘기 중 하나였는데.
그 이유를 굳이 설명하자면
큰 틀이 아닌 사소한 일들은 아주 작은 변수에도 바뀌게 되었기에
예지가 아닌 일상적인 꿈 얘기하듯이 말해 준 것이었다.
그 예로
류안은 뒤틀어진 신들을 소멸시키고 투명한 돌을 만져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돌아가려는 것을 떠나려는 것을 막기 위해
박민하는 자신의 방식으로
투명한 돌을 류안한테 접촉하게 했다.
그리고,
원하는 결과를 얻었다.
“수고했다고 해야 하나?”
“평소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원하는 것을 쟁취할 때는 행동력이 참 남다르단 말이야.”
“아, 칭찬이니까, 그런 눈 할 것 없어.”
박민하는 빛도 사라지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압축한 막에 둘러싸인 투명한 돌을 바라봤다.
노록원이 자신한테 얘기해준 건 이러라고 해준 것이 아니란 것을 알지만,
할 수밖에 없었다.
노록원도 함께 있는 검은 천사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기에···.
박민하는 자신의 감정에 빠져있다가
흠칫하며 놀랐다.
엄청난 위압감을 풍기면서 이쪽으로 다가오는 존재.
위압감은 어느새 공포가 되었고
극에 달하려던 그 순간.
콰-앙-!!!
팀장실 문이 거칠게 열리며
전쟁의 신 워스만이 모습을 보였다.
박민하는 극한으로 덮쳐오는 위압감과 공포에
손에 들고 있던 투명한 돌을 떨어트렸고
압축된 막이 깨지면서
유리구슬처럼 작은 투명한 돌 역시 힘없이 부서지며 가루가 되어서는
이내 사라졌다.
워스만은 부서져 사라진 투명한 돌을 보고는
미간을 일그러트린 채
박민하한테로 곧장 다가가서는
그의 멱살을 거칠게 움켜잡고 들어 올렸다.
“커헉-!”
엄청난 악력에
박민하는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였다.
마태수 팀장이 위험함에 나서려 했지만,
“─!!!!!”
워스만의 내려다보는 시선에 그대로 굴복하며
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 버렸다.
전쟁의 신 워스만은
이런 잔꾀에 쉬이 감정을 드러내지 않지만,
아니,
힘을 가진 자를 붙잡기 위해 수를 쓰는 것은 당연한 거라
오히려 좋게 봤을 일었으나,
그 대상이 류안이다 보니
불쾌한 심기를 그대로 표출했다.
그리고
서늘한 눈빛으로 박민하를 봤다.
“너, 대체 류안한테 뭘 먹인 거냐?”
“크윽-··· 저, 저도 잘 모릅니다.”
워스만의 손에는 힘이 더 들어갔고
박민하는 숨을 쉬기 괴로운 것을 넘어
정신이 날아갈 것 같은 공포와 고통을 느꼈으나,
기절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듯이
정신은 더 선명해지면서
고통과 공포만이 더 가중될 뿐이었다.
“다시 묻겠다.”
“류안의 차에 넣은 것이 뭐지?”
“커헉-···, 뒤··· 뒤틀어진 신이 남긴··· 컥··· 기운··· 입니다.”
“어떤 신이지?”
“흐억-! 저··· 정말 모릅니다··· 크헉···.”
확신하고 있긴 했지만,
류안이 잠든 이유가
신의 기운을 받아들이게 되어 그런 거라는 것이 확실해 졌다.
워스만은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해 컥컥거리는 박민하를 잠시 보고는 멱살을 쥔 손을 놓았다.
쿠당탕─!
“커헉! 컥! 쿨럭! 쿨럭!”
박민하는 다리에 힘이 풀리며
바닥에 넘어지듯 주저앉아서는 거친 기침을 내뱉으며 겨우 숨을 쉬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죽이고 싶으나.”
“류안이 깨어날 때까지 보류하겠다.”
“살고 싶으면 더 이상 쓸데없는 짓거리 말고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워스만은 언령에 가까운 말을 하고는
팀장실을 나갔다.
박민하와 팀장 마태수는 식은땀을 흘리며
부서진 문 너머 텅 빈 복도를 본 후,
몸을 옥죄던 위압감이 사라지자
그제야 몸을 움직여 바로 앉을 수 있었다.
“하··· 전쟁의 신이라더니, 어마어마하군.”
팀장 마태수는 위압감에 움츠리기는 했으나
겁을 먹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의 입가에는 흡족함의 미소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검은 천사만 이곳에 있으면
전쟁의 신도 이곳에 붙잡아 둘 수 있다는 사실에 아주 만족하고 있었다.
“흠, 이제 검은 천사를 달랠 방법만 찾으면 되는 건가?”
* * *
-이, 이보게. 자네 정신 차리게.
-정신 차려야 하네!
류안의 ‘방’에 더부살이 중인 심판자의 사념체는 필사적으로 류안을 깨우기 위해 소리치고 있었다.
사념체 테즈 역시 ‘방’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막아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고, 소용없었다.
밤하늘을 닮은 류안의 ‘방’.
지켜보는 힘으로 ‘방’에는 늘 수많은 영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영상들이 펼쳐지기 시작하는 동시에 사라져갔고
곧 새로운 영상들이 펼쳐졌지만,
이내 사라졌다.
본 것들이 기억되기도 전에
사라지는 것 같았고
기억력이 나쁜 류안이 보고도 인지하지 못하는 것과는 엄연히 달랐다.
마치,
‘망각’이 되는 것 같았다.
‘망각[忘却]’이라는 단어가 떠오른
심판자의 사념체는 일순 흠칫했고
위험함을 감지했다.
-자네, 일어나게! 정신 차리게!!
-이대로는 자네의 모든 기억이 사라질지도 모르네.
-부탁하네, 좀 일어나게!!!
심판자의 사념체는 더 필사적으로 깨우기 위해 소리쳤다.
‘심연의 방’에 있는 어린 신.
류안을 깨우기 위해.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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