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05 화 – 부탁받은···.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자한테 누군가가 봐준다는 것이 참 힘이 되고 고마운 것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제 205 화 – 부탁받은···.
‘날 만나고 싶어 하는 신이라고?’
류안과 시선을 마주하고 있는 마스는
자신이 만든 하얀 창들이 부서진 것에 받은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아서인지
류안의 말을 듣기는 했으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류안은 그런 마스를 보며 고갤 갸웃하다가
마스의 눈앞에서 엄지와 검지를 맞부딪혀 튕겼다.
딱──!
청명한 울림과 함께
마스의 주변으로 어둠이 감싸았다.
그런 뒤,
밤하늘을 닮은 어둠이 내려앉은 듯한 곳에
마스는 홀로 서 있었다.
마스는 어리둥절하면서 주변을 둘러보았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상하게도
불안, 초조, 긴장, 조급함 등이 가라앉고 있었다.
밤하늘의 어둠에 묻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편안해져 가던
마스의 앞에 흐릿하게 누군가의 모습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 누군가의 모습을 본
마스의 두 눈이 커지며 동요가 일어났다.
신의 아이가 되었다가
권능의 일부를 물려받고 가차 없이 배반해 버린···.
융화의 신, 테즈.
사념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사념체 테즈의 모습은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
밤하늘을 닮은 어둠 속.
신을 배반한 아이와 아이한테 배반당한 신이
서로 마주 보며 있었고
묵직한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
마스는 신을 배반하고 나온 그 순간부터
만날 일 없을 거라 기억에서 완전히 지우고 있다가 다시금 보게 되어 놀라기는 했으나,
할 말이 있을 리가 없기에 입을 다물고 있었다.
사념체 테즈는
자신을 배반한 아이의 얼굴을 직접 보면서 할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어린 신한테 부탁해
이 자리, 만남을 가진 것이었는데···.
막상 만나고 얼굴을 보니
하려고 했던 말이 뭐였는지 생각이 나지 않고 있었다.
‘이상하네······.’
자신의 권능 일부를 물려받은
또 한 명의 아이 ‘이어붙이기’ 힘으로 키메라를 만드는 만행을 저지른
‘지스’한테는
‘너의 죄를 죽음으로 사죄하거라’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는데···.
왜······.
눈앞에 있는 아이였던 마스 역시
신을 죽일 수 있는 무기, 하얀 창을 만든 것은 둘째 치더라도
하얀 창을 다루기 위해
뒤틀린 기운을 이용하고
그 뒤틀린 기운의 반동을 억제하기 위해
생명과 영혼을 강제로 갈취한 만행을 저질렀는데,
왜··· 지스한테 한 것처럼
바로 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사념체 테즈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마스를 뒤로하고 발걸음을 움직였다.
그렇게 몇 걸음을 걸어가던 것을 멈추고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뜨자
눈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어린 신.
류안을 볼 수 있었다.
사념체 테즈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입가에 미소가 머물렀다.
“그냥 만나기만 하면 되는 거였어?”
보이는 모습 그대로
천진난만한 소년의 모습을 한 류안의 말에
사념체 테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흐음, 그렇구나.”
류안은 신과 아이였던 둘의 만남을 위해 펼친 영역을 거두기 위해 손을 움직이려 했고
그러던 그때,
사념체 테즈는 해야 하는 말 중
반드시 해야 할 말을 떠올리며 말했다.
“신을 배반한 대가, 벌은 받아야 하니.”
“저 대신 물려준 권능의 일부를 되돌려 받아주십시오.”
사념체 테즈는 류안한테 허리 숙이며 정중히 말했다.
“부탁드립니다.”
“어? 어. 알았어.”
이미 예전에 반강제? 이지만
테즈의 권능 ‘융화’를 받아들인 상태이기에
그 권능의 일부분인 ‘호환’은 별문제 없어
류안은 거부 없이 테즈의 부탁을 승낙했다.
딱───!
밤하늘을 닮은 어둠의 영역이
류안의 손가락 맞부딪히는 소리에 사라지고
이래저래 부서지고 엉망이 된
새하얀 신전 홀의 풍경이
마스의 눈동자에 비추어졌다.
일순 얼이 빠져 꿈을 꾼 것인가 싶은···
자신의 바로 눈앞에 있던 검은 천사는
움직인 적 없다는 듯이
하얀 창들의 공격을 막기 위해 형성했던 방어벽을 해제하고 서 있는 일행들과 같이 있었다.
“이 무슨─···!!!!!”
마스는 그러다 인지했다.
자신 안에 있어야 할 권능 일부의 힘.
‘호환’이 사라진 것을···.
애초에 신으로부터
권능 일부를 물려받은 적이 없었던 것처럼
아무런 흔적도 없이 깨끗하게 사라진 상태였다.
“·········.”
자신이 만든 하얀 창들이
검은 창들에 의해 처참하게 부서졌을 때보다
더한 충격이 온몸에 휘몰아치려던 그 순간,
마스의 머릿속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따뜻하고 포근하면서 달콤한 목소리.
-음, 그냥 말해 주는 건데.
-권능만 돌려받은 것이라 너의 ‘대장장이’로서의 능력은 그대로야.
-그러니, 예전처럼 대장장이 ‘인간’으로 살아가면 돼.
이 말에
마스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을 흘렸다.
“허··· 허허··· 허.”
마스 스스로 기뻐서인지 허탈해서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둘 다 일지도···.
류안은
배반했지만, 신의 아이였던
융화의 신 테즈와 완전히 연이 끊긴 마스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가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 시선 앞에 리아인이 있었다.
“···류안, 뭐한 거야?”
리아인은 어느 순간 하얀 옷을 입은 하얀 창들을 조정했던 자한테 가 있는가 싶더니
또 어느새인가 자신 곁에 와있는 류안을 보며 의아함이 생겼다.
“아, 별거 아냐.”
“부탁받은 것 마무리하고 왔어.”
그러면서 미소짓는 류안의 모습은
앓던 이가 빠진 듯 개운, 상쾌해 보였다.
심판자의 사념체가 부탁했던
마지막 막내 ‘분배’의 하얀 창도 소유해
처형자의 하얀 창 다섯 개가 한자리에 모였으니 마무리되었고,
사념체 테즈의 부탁대로
권능 일부도 되돌려받음으로써
테즈의 권능 일부의 힘으로 인해 만행이 저질러질 일은 이제 없으니,
이것도 마무리 땡.
그럼 남은 것은···.
검은 옷 조직의 ‘그분’이란 자와
‘일렁임의 신’ 그리고 ‘수식의 신’인데,
일렁임의 신은 리아인의 몫이고
수식의 신과 ‘그분’이라는 자는······.
“응? 왜 그러지?”
류안이 빤히 보는 시선에
워스만이 제일 먼저 반응을 보였고
그 뒤,
레이쉴과 다미엔이 반응을 보였다.
“·········?”
“류안 군, 무슨 할 말이라도 있나?”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음, 문제는 아니고···가 아닌가?”
“?????”
“저기 있는 자들 어떻게 할 건가 싶어서.”
“아──.”
검은 옷 조직의 ‘그분’이란 자와
그 외의 일은 확실히
각 왕국의 국왕, 왕자, 수호자가 할 일이었다.
그리고,
신들 간의 문제는 이제 류안은 배제하고
수호신인 워스만과 벨드라엔.
이 둘이 마무리해야 할 일.
워스만과 벨드라엔은
전의를 상실한 것을 넘어 아무것도 못 하는
할 수 없는 인간은
레이쉴, 다미엔, 뮤리나한테 맡기고
일렁임의 신과 수식의 신을 마무리 처리하기 위해 움직이려고 할 때.
리아인이 먼저
제단 옆에 얌전히 있는 일렁임의 신한테
다가가는 것을 봤다.
그 모습에 벨드라엔은
말리든가 도와주든가 해야 하지 않나 싶어
움직이려던 것을 워스만이 막았고
그 행동에 의문을 드러내려던 벨드라엔은
거리를 조금 둔 채
리아인을 응시하고 있는 류안을 보고는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관여해서는 안 되는 것을 인지하고 움직임을 멈췄다.
그렇게 세 명의 신이 지켜보는 사이
리아인은 일렁임의 신 앞에 멈춰 섰다.
자신한테 손길을 내밀고 뒤틀어지게 한
그런 뒤틀린 기운을 모두 되돌려받았음에도
일렁임의 신은 다른 신들에 비해 멀쩡하게 있었다.
그렇다고 마찰의 신처럼 절대자의 권능으로 변화한 것도 아니었다.
눈앞의 신한테서 느껴지는 것은
일렁이는 기운과 뒤틀린 기운만이 느껴지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거칠게 뒤틀리는 기운을
잔잔한 일렁임으로 순화시키고 있었다.
“·········.”
뒤틀림을 다루는 것은 아니었으나,
진정시키고 있는 모습이 뭐라고 할까···.
류안의 모습과는 다르지만
경이로웠다.
그래서인지
적의를 보이지 않아서인지···
일렁임의 신을 처리하기 위해 하얀 창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있었다.
망설여졌다.
눈앞의 신을 소멸시키든 말든 상관없이
자신한테는 이제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음도 알 수가 있어서
더 망설여졌다.
그런 망설임에
리아인의 미간이 구겨져 갔다.
그때,
일렁임의 신 입술이 움직였다.
잔잔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탁이 있다.”
“?????”
“소멸··· 네가 아닌 검은 천사의 손에.”
“신의 학살자한테 당하고 싶은데.”
“부탁을 들어줄 수 있겠나?”
“·········.”
리아인은 대답하지 못한 채,
시선을 돌려서는 류안을 바라봤다.
이런 부탁을 들을 줄은
진짜, 전혀, 상상조차 못 했기에···
어떻게 받아들이고 답해야 할지 당혹스럽고 난감하기만 했다.
그래서 리아인은 저도 모르게 류안을 본 것이었다.
리아인의 시선에
류안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리아인한테로 일렁임의 신이 있는 제단 쪽으로 발을 움직여 갔다.
그리고는
일렁임의 신과 시선을 마주하고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러다가 목에 근육통 오겠다 싶을 정도로
류안은 자주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이것은 무슨 시선일까?
욕심은 없지만, 바라는 것은 있고
모든 것을 놓은 듯 해탈한 거 같으면서도
포기하지는 않은···
모순된 감정들이 이리저리 요동치는 듯한?
아니,
요동친다고 하긴 보다는 잔잔하게 일렁이고 있는 시선이었다.
“아──!”
류안은 뭔가 안듯이 탄성을 내었다.
권능의 과잉반응이었다.
이런 상태의 일렁임의 신을 보고 있으니,
류안도 뭘 해줘야 하나 싶은 난감함이 왔다.
그래서 확인하기 위해 말을 했다.
“정말 소멸이 되어도 돼?”
“───?!!!”
류안의 말에
잔잔하게 일렁이던 감정들 속
크게 요동치는 것을 일렁임의 신은 인지했다.
류안도 그것을 느끼고 말을 이었다.
“음-, 지금 네 상태를 보면 딱히 소멸시킬 이유가 없어졌거든.”
“리아인한테 또 손길을 내미는 만행을 저지르지 않는 한, 이젠 영향을 주지 않는 상태라.”
“거기에다가 뒤틀린 기운도 알아서 잘 진정시키고 있는데.”
“굳이 귀찮게 소멸시키긴 싫어.”
“──···.”
이 말에
일렁임의 신은 무슨 말을 하려다 말았다.
류안의 뒤이어진 말이 있었기에.
“그냥 '신'으로서 네 권능에 따라 지내면 되지 않아?”
“그러면 귀찮을 것 없이 편할 것 같은데.”
표정에 여러 감정이 일렁여 알 수 없는
얼핏 무표정하게 보였던
일렁임의 신 얼굴에 생기가 감돌고 있었다.
과잉반응하던 일렁임이 진정된 듯이
슬며시 미소짓는 일렁임의 신 뒤로
물 파장과도 같은 일렁임이 생겨나더니,
일렁임의 신은 스르륵 물 흐르듯이
그 안으로 스며 들어갔다.
그러면서 말했다.
“─의 명대로···.”
“응? 뭐라고?”
류안은 뭘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물으려 했지만,
일렁임의 신은 이미 이곳에서 벗어난 뒤였고
물 파장의 일렁임도 사라졌다.
그리고
제단 뒤 그 난리통에도 유일하게 부서지지 않은 채 있는 석상이 류안의 눈에 들어왔다.
류안은 그 석상을 보며
알 수 없는 찝찝함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뭐, 어쨌든
일렁임의 신은 소멸이 되고 싶지 않아 도망?
떠난 것으로 결론 내리고
신경 접었다.
리아인도 별 불만 없는 듯이
손에 쥐고 있던 하얀 창을 거두었다.
류안은 자신이나
리아인이 해야 할 일은 끝났으니,
뒷마무리는 일행들한테 맡기고
편안하게 잠자기 위해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류안의 표정이 뚱해졌다.
우우우──웅─.
힘들게 억지로 발동되는 마법진의 울림이
돌아가려던 자신의 발목을 잡을 것 같은
불길함이 스쳐 지나가면서
류안은 구겨지는 미간을 손가락으로 잡았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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