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52 화 – 투명한 물.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자한테 누군가가 봐준다는 것이 참 힘이 되고 고마운 것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제 52 화 – 투명한 물.
리아인과 류안, 쇼트, 워스만.
그리고 살쾡이 수인 한 명이 더 추가된 마차는 밀림을 지나가고 있었다.
분명,
빽빽하게 자리한 굵은 나무들.
땅 위로 드러나 두꺼운 나무뿌리들.
서로 얼기설기 뻗어있는 나뭇가지들.
나뭇가지 사이사이 늘어져 있는 넝쿨들.
이러한 것들로 인해 크기에 상관없이 마차[馬車] 자체가 지나갈 수 없는 곳인데도 불구하고
여행용 대형 마차가 별다른 무리 없이 여유롭게 지나가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밀림 숲이 길을 터주고 있었다.
마부석에 앉아있는 쇼트와 살쾡이 모습의 키사는 숲이 길을 열어주는 진귀한 광경에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으며,
워스만도 마차 안에서 창문을 통해 그런 풍경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려서는
1층 침대에 잠들어 있는 류안을 봤다.
류안은 위세라가 넘겨준 힘을 온전히 받아들였는지 찡그림 없이 평소처럼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힘이 작용해 숲이 길을 터주고 있었으며
워스만은 그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참 희한한 아이야.”
‘위세라’의 권능 ‘길잡이’의 힘을 이렇게 바로 아무렇지 않게 발휘하고 있는 것에 놀라면서 감탄하던,
워스만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신이 신의 힘을 받아들인다 라···.’
신이 자신의 ‘아이’에게 권능이나 힘을 물려주는 일은 드물지만 있었다.
레쉬아 왕국의 국왕 레이쉴의 누나인 세이지가 그러한 사례였으니까.
하지만,
신이 다른 신의 권능 혹은 힘을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서로 다른 권능.
아니, 비슷한 계열의 권능이라고 할지라도 서로 거부반응을 일으키며 그로 인한 충돌로 얼마 가지 못하고 자멸하기 일쑤였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경우가
권능 남용으로 인한 반동으로 권능을 잃기 직전이 되었을 때인데······.
‘이 경우도 엄청난 대가와 희생이 필요하지. 그래서··· 오래전 그때 이 때문에 그 '사태'가 벌어지는 결과를 초래했었고···’
그 사태란 바로 ‘대학살’이었다.
이렇게 생각에 잠겨있던
워스만은 곧 신의 상식을 벗어난 쓸데없는 잡생각이라 여기며 떨쳐내려는 듯 머리를 손으로 툭툭 쳤다.
그런 뒤,
따가운 시선을 인지했다.
류안이 누워있는 침대 옆에
시종일관 앉아있는 리아인이 시선 치우라는 의미의 째림을 하고 있었다.
“하─, 참나.”
워스만은 기가 찼다.
하지만
워스만은 저런 건방진 시선을 좋아했기에
리아인의 째림을 정면으로 마주해주며 미소 지어 보였다.
그 모습에
리아인은 등줄기에서 소름이 솟아올랐지만,
굴하지 않고 더 째려봤다.
그렇게 둘의 눈싸움 아닌 눈싸움을 하고 있을 때 즈음.
덜컹, 끼익─.
유유히 움직이던 마차가 멈춰 섰고,
똑. 똑.
“도착한 것 같은데요.”
마부석에서 쇼트가 창문을 두들기며 도착했음을 알렸다.
그 말에 류안이 눈을 뜨며 일어났고
그 기척에 리아인은 바로 고개를 돌려 류안을 봤다.
“일어나도 괜찮은 거야?”
“응, 괜찮아.”
류안은 양손을 쥐었다가 피며 살펴봤다.
몸은 괜찮은 듯했다.
하지만, 머릿속은 그렇지 못했다.
짜증으로 가득했으니까.
류안은 양손으로 마른세수하듯 얼굴을 한번 쓸어내리고는 침대에서 나와서는
곧바로 마차 밖으로 나왔다.
그 뒤로 리아인, 워스만도 마차에서 나왔고
쇼트와 살쾡이 모습의 키사도 마부석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다들 어미 오리를 뒤따라가는 새끼 오리처럼 류안의 뒤를 따라갔다.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빽빽한 나무 사이를 지나갔고
그렇게 얼마 가지 않아
나뭇가지에서 수많은 넝쿨 줄기가 늘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이런 곳을 그냥 지나가게 되면 넝쿨 줄기들에 의해 몸이 뒤엉키며 위험해지기 일쑤였으니.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넝쿨 줄기들 사이로 몸과 목이 졸려 죽은 것 같은 백골 시체 몇 구가 매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를 해결하고 앞으로 나가기 위해
워스만은 중간 길이의 검을 소환해 손에 쥐었다.
그런데,
넝쿨 줄기들을 자르기도 전에
앞으로 발을 내딛는 류안을 보고는 황급히 잡아 말리려고 하던 그 순간.
스르르───륵─.
축 늘어져 있던 넝쿨 줄기들이
마치 연극무대의 장막이 열리듯 맨 앞 가운데부터 시작해 순차적으로 나뭇가지 위로 올라가며 길을 터주었다.
다들 그 광경에 눈이 동그래지며 놀랐으며
류안도 어리벙벙해져 두 눈을 깜박이고 있었다.
그렇게 넝쿨 줄기들이 모두 걷히고 보인
작고 아담한 공터.
공터 맨 안쪽 끝에는
거대한 나무가 벽처럼 자리해 있었고,
나뭇가지들은 지붕을 이루듯 얼기설기 뻗어있었으며 그 사이로 햇빛이 들어오면서
땅 위로 드러난 나무의 뿌리 틈에 있는 작은 옹달샘을 비추고 있었다.
신비한 풍경을 감상하며 공터 안으로 들어온 모두는 곧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투명한 돌은 코빼기도 보이지가 않았다.
그 비슷한 것은 물론,
흔하디흔한 돌멩이조차 안 보였다.
이곳에 오는 동안 우연히 생긴 차원의 틈에 빠져 사라졌나 생각하고 있는 와중에,
류안은 조그마한 옹달샘으로 다가갔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옹달샘의 투명한 물이 찰랑거리고 있었다.
‘응? 찰랑거려?’
바람이 부는 것은 아니었다.
미세한 진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한데,
투명한 물이 찰랑거리는 것에 이상하다고 느낄 찰나.
촤─악!
투명한 물이 솟구쳐 오르더니,
순식간에 류안의 옆을 지나쳐가서는
리아인과 쇼트가 있는 곳을 향해 뻗어 나갔다.
“─────!!!”
뒤틀림이 있는 두 사람.
류안은 황급히 뒤돌아 뻗어 나가는 투명한 물을 향해 손을 뻗어 잡았다.
그러나······
물이었기에 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주먹 쥔 손가락 틈 사이로 투명한 물은 스르륵 빠져나갔다.
“이런···!!”
그 상황을 본 워스만이 빠르게 방패를 소환해 그 물을 막아섰다.
쿵─! 촤아아───악─!!!
방패에 부딪힌 투명한 물은 방사형으로 퍼지며 주변으로 흩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흩어지던 상태 그대로
리아인과 쇼트를 향해 다시 뻗어 나갔다.
류안은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이리와─!!!”
이 외침에
류안의 휘날리는 검고 긴 머리카락 사이사이에서 밤하늘의 별처럼 작은 빛들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리아인과 쇼트를 향해 거침없이 뻗어가던 투명한 물은 둘의 얼굴 바로 앞에서 아슬하게 멈춰서더니,
잠시 둘을 보는 듯 갸웃거리다가
곧 방향을 틀어서는 류안한테로 향했다.
투명한 물은 작은 빛들에 반응하며 류안의 몸 주위를 맴돌았다.
류안은 입을 꾹 다문 채 손으로 미간을 꽉 잡았다.
마치 간택을 간절히 원하는 동물처럼 주위를 맴돌던 투명한 물은 담길 그릇이 되어 달라는 듯,
류안의 꾹 다문 입 근처를 톡톡 두드려댔다.
“·········.”
이런 모습을
리아인과 쇼트, 워스만, 살쾡이 모습의 키사까지 그저 멍하니 보고 있었다.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에.
‘후우─···.’
속으로 한숨을 내쉰 류안은
이 투명한 물이 귀나 코로는 들어가지 않고 있는 것에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목 옷깃에 달린 작고 붉은 브로치의 아공간에서 물병을 하나 꺼내 들었다.
그리고,
행여나 틈을 이용해 들어오지 못하게
입과 물병의 입구 틈 사이를 손으로 정교히 막은 후, 물병 안의 물을 원샷 했다.
“콜록─!”
급히 마셔서 살짝 사레가 걸린 것인지,
한 손으로 여전히 입을 가린 상태로 기침을 한번 하고서는 빈 물병을 쥔 손의 검지로 입구를 톡톡 두들겼다.
그 행동에
투명한 물은 류안의 입과 몸 주변을 맴돌던 것을 주춤거리면서 멈추더니,
류안은 응시하듯 가만히 있었다.
뭔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처럼.
그러거나 말거나
류안은 다시 검지로 물병 입구를 두들겼고
그때에서야 투명한 돌은 마지못해 빈 물병 안으로 슬금슬금 들어갔다.
류안은 투명한 물이 한 방울도 남긴 없이 물병 안으로 완전히 들어간 걸 확인한 후,
얼른 뚜껑을 닫았다.
아주 꽉 닫았다.
그 상황을 멍하니 보던 모두는 인지했다.
액체 형태의 투명한 돌.
모순되었으나,
달리 표현할 마땅한 문장이 없었다.
부우우웅───.
투명한 물이 담긴 물병이 불만이 많다는 듯 진동하고 있었다.
“하아─···.”
류안은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좀 기다려, 나중에 예쁜 유리병 찾아서 담아줄게.”
이 말에 일단은 만족했는지 진동하던 물병은 조용해졌다.
류안은 물병을 브로치 아공간에 넣고는 다시 미간을 잡았다.
“······가까운 마을에 좀 가도 돼?”
다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그들은 공터를 나와 마차로 향했고,
그들이 지나가자 넝쿨 줄기들이 막을 내리듯 나뭇가지에서 스르륵 내려와서는 원래의 풍경으로 돌아갔다.
백골 시체들을 매달은 채 그대로.
* * *
밀림에서 좀 떨어진 작은 마을, 가느.
우연인지 아닌지···
나름 유리공예 특산품으로 이름이 알려진 마을이었다.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마차에서 내린 류안은 투명한 물이 담긴 물병을 손에 들고는 이 가게 저 가게 찬찬히 그리고 신중하게 둘러보면서
병 안 투명한 물의 반응을 살펴봤다.
리아인, 쇼트, 워스만.
덤으로 쇼트의 팔 품에 있는 살쾡이 모습의 키사도 함께 류안의 뒤를 따라다니며 유리 공예품을 구경했다.
그렇게 온 마을을 차근차근 돌아다니다가
마지막으로 들어간 가게.
딸랑~♪.
“어서 오세요.”
부우우우────웅─!
가게 문 종소리,
가게 주인의 환영 인사와 동시에
투명한 물이 든 물병이 짙게 진동했다.
류안은 드디어 투명한 물이 반응하는 병을 찾을 수 있다는 것에 안도하면서 병들이 진열된 곳으로 갔다.
그리고,
진동의 강도를 주시하며 병들을 하나하나 살펴봤다.
그런 류안의 뒤로
이 손님을 절대 놓치면 안 된다는 듯,
한껏 미소 지은 가게 주인이 조용히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든가 말든가
류안은 진열된 병들을 꼼꼼히 살펴보던 중,
아무 색도 첨가되지 않은 투명한 색의 물방울 형태의 병과 마주쳤다.
류안은 그 병을 검지로 가리켰고
가게 주인은 더욱 환한 미소를 지으며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최고급 수정[水晶]으로 만든 제품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류안은 그 말은 무시, 병을 다시 가리켰다.
가게 주인은 가격을 얘기하며 류안의 반응을 조심히 살폈다.
재료인 수정[水晶]의 값인지, 디자인 및 수공값인지 가격이 꽤 높은 편이었으나,
듀아 왕국의 1 왕자 다미엔한테 청구할 것이었기에 걱정도 상관도 없었다.
“이거 줘.”
류안의 거리낌도 망설임도 말에
가게 주인은 지을 수 있는 최대의 밝은 미소를 보이며 병을 정성껏 예쁘게 포장해 정중히 건네주었다.
류안은 그것을 받아 들었고
워스만이 알아서 신분 보증패를 보여주며 계산을 했다.
그리고,
가게 주인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듀아 왕실의 문장이 있는 신분 보증 패.
계산을 마친 류안과 일행들은
고가의 병을 사준 거물급 귀인들을 향해 기쁨과 정성을 다해 허리 숙여 인사한 후,
과한··· 가능하면 꽃가루까지 뿌려줄 기세로 팔을 흔들어 보이는 가게 주인의 배웅을 뒤로한 채,
한적한 공터로 갔다.
류안은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후,
포장을 풀었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병의 마개를 뽑았다.
퐁─♬.
수정 마개 특유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부웅─ 부웅─ 부우우우웅─────.
이 소리에 흥분해 진동해대는 물병을 보며
류안은 속으로 한숨을 쉰 후,
물병의 뚜껑을 열었고
그 안에서 투명한 물이 스르륵 빠져나와서는 찰랑거리며 입을 꾹 다문 류안을 잠시 보는 듯하다가
이내 물방울 형태의 병으로 들어가 담겼다.
한 방울의 남김없이 들어간 것을 확인한
류안은 수정 마개로 입구를 꾹 막았다.
투명한 물로 가득 찬 수정[水晶] 병은
환한 햇빛을 받아 반짝이면서
마치, 물방울 다이아몬드인 듯 영롱하게 빛났다.
이렇게 이 마을에서의 볼일이 끝난 그들은 투명한 돌이 있을 다음 장소로 향하기 위해 움직였다.
* * *
다각. 다각. 다각. 다각···.
이동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마차 안에 있는 이들은 아무 말 없이 있었다.
“·········.”
여행을 시작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이동과정에서도 별 무리 없었으며,
갑작스러운 사건이 좀 있기는 했으나,
잘 해결되면서 나름 순조롭게 투명한 돌이 모이고 있었다.
그런데,
마차 안 리아인, 워스만과 마부석에 있는 쇼트와 키사까지 벌써 피곤함이 몰려오고 있었다.
특히,
류안은 처음으로 투명한 돌로 인한 피곤함을 느꼈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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