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33 화 – 홀로 선 그릇.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자한테 누군가가 봐준다는 것이 참 힘이 되고 고마운 것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제 133 화 – 홀로 선 그릇.
중립지역 중 한 곳인 죽음의 사막.
웬만한 왕국보다 큰 면적을 자랑하면서
오아시스 하나 없이 짐승은커녕 벌레 한 마리도 살 수 없고 풀 한 포기도 자랄 수 없는
명칭 그대로 생명체가 살 수 없는 곳.
이런 곳에서
리아인과 류안 그리고 벨드라엔과 쌍둥이가
당혹스러움에 가만히 서 있었다.
“음··· 저 녀석들하고 한바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좋은데, 저건 어떻게 해야 하지?”
벨드라엔이 류안을 보며 의견을 물었다.
이들이 이 죽음의 사막에 온 이유는
다름 아닌 대량 발생한 뒤틀림 때문으로,
이 허허벌판 사막 한가운데에
시추기인 듯한 것이 뒤틀린 채 망가져 있고
검은 옷 조직원들도 모두 기이하게 뒤틀려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쓰러진 채 이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검은 옷 조직이
사막 아래 깊숙이 묻혀 있는 뒤틀린 기운을 어떻게 알아내고는
시추기를 이용해 뒤틀림을 채굴하려 했다가 잘 못 건드렸고
폭주한 뒤틀린 기운에 화를 당한 듯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뒤틀린 기운을 담기 위한 그릇들도 빈 자루처럼 모래 위에 널브러져 있었는데,
유일하게 서 있는 그릇 한 명.
그 한 명 주위로
검은 뒤틀린 기운이 맴돌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릇인 한 명은 천천히 고개를 움직였고
류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우연인가 싶었지만,
그 그릇은 스스로 발을 움직이면서 류안이 있는 곳으로 느릿하게 다가오고 있었고
그릇 주변을 맴돌던 뒤틀린 기운도 움직이며 따라오고 있었다.
사박. 사박. 사박.
모래 밟는 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리는 사이
그릇은 류안 바로 앞에 멈춰 섰다.
예전 듀아 왕국의 검은 호수에서 만났던
그때의 그릇처럼 인조 투명한 돌로 인해 영혼이 억지로 묶인 그릇인가 했지만,
아니었다.
투명한 돌도 영혼도 없었다.
혹시,
누군가가 조정하는 것인가 추측도 해봤지만,
이 역시 아니었다.
오히려
그릇 몸 주변에 맴도는 뒤틀린 기운이 막이 되어 조정할 수 없는 상태였다.
기이하고 묘한 상황에
류안은 고개를 한번 갸웃거리고는
그릇한테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마치 마구잡이로 아무렇게나 집어넣어 제대로 수납되지 못하고 흩어져 나와 있던 것들이
잘 정리되면서 제대로 수납되듯이
그릇의 주변을 맴돌던 뒤틀린 기운 일부가
그릇 안으로 담겨 들어갔다.
“와───.”
류안의 입에서 감탄사가 나왔다.
엄청난 양의 뒤틀림을 담을 수 있을 정도로
눈앞에 있는 자의 그릇 크기는 상당했다.
거기에 더해
뒤틀림이 빈 영혼의 자리를 대신 채워주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러다가
검은 뒤틀린 기운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그릇의 얼굴을 볼 수 있게 되었고
그 첫인상.
하얗다?
정확하게는
그릇의 머리카락과 피부, 눈동자 모두가
색이 없이 반투명했다.
그래서
검은 뒤틀린 기운에 둘러싸인 부분은
그 색이 투영되어 어둠처럼 검게 보였고
반대로 드러난 얼굴은
빛과 사막의 하얀 모래색이 투영되어
하얗게 보였던 것이었다.
마치,
인간 형태를 한 반투명 색의 보석 그릇 같았다.
그릇을 본 모두가 이런 생각을 하던 그때.
부우웅───······.
류안의 목 옷깃에 달린 붉은 브로치가 요란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브로치 아공간과 연결된 ‘방’에 있는
투명한 물방울 다이아몬드 병에 담겨 있는 액체형태의 투명한 돌이 진동하고 있었다.
어찌나 요란한지
류안의 몸까지 진동할 정도였다.
“하─···.”
류안은 한숨을 쉬고는
액체형 투명한 돌이 들어있는 병을 꺼내 들었다.
부우우─웅. 웅. 붕웅──···.
물방울 다이아몬드 모양의 투명한 병이 신났다는 듯 진동하고 있었다.
류안은 병과 그릇을 한 번씩 바라봤다.
그릇의 반투명한 눈동자는 흐릿하긴 해도
초점이 있었고 관심도 있어 보였다.
뽁-!
류안은 병뚜껑을 열었고
병 안에서 액체형태의 투명한 돌이 고개를 내밀었다.
그런데,
요놈이 바로 그릇한테로 갈 줄 알았더니
류안과 그릇을 번갈아 보면서 고민하는 것이 보였다.
류안은 입을 꾹 다문 채,
병 입구를 그릇의 입에 쑥 들이밀었다.
───!!!
순간,
그릇의 눈이 동그래지면서 커졌고
꿀꺽- 하고 목젖이 움직이면서 액체형태의 투명한 돌이 넘어가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꿀꺽─ 꿀꺽──···.
목젖은 계속 움직였고,
그에 따라
그릇의 흐릿했던 눈동자 초점이
뚜렷해지고 선명해지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액체형태의 투명한 돌을 모두 마신 후,
그 주변에 맴돌며 남아있던 뒤틀린 기운이 그릇의 몸속으로 티끌도 남기지 않고 모두 스며 들어갔으며,
뒤틀린 기운으로 몸속을 꽉 채운 그릇은 두 눈을 몇 번 깜박이더니
멍하니 류안을 바라봤다.
“·········.”
“손.”
류안의 이 말에 모두가 그러했듯,
그릇도 반사적으로 손을 공손히 내밀었으며
그 손위에는 빈 투명한 병이 올려졌다.
“네 몸속의 그것이 이유 없이 제멋대로 널 조정하려고 하면 이 병에다 담아.”
그릇이 여전히 멀뚱히 눈만 깜박이고 있자
류안은 말을 덧붙였다.
“꺼내는 방법은 쉬워. 그냥 웩하고 토하면 돼.”
“···─아.”
그릇은 알아들었다는 듯 반응을 보였고
빈 병을 소중하게 두 손으로 꼬옥 잡았다.
그러던 중.
“류안···.”
리아인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류안은 지금 이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음, 나도 처음 보는 거라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지만, 보이는 대로 설명하자면 타고난 그릇이라고 해야 하나?”
꽤 긴 설명이 이어져갔다.
“아마, 빈껍데기 그릇이 되는 과정에 사라진 영혼의 자리를 뒤틀린 기운이 메꾸게 되며 변화시켰고, 그동안은 그릇의 크기를 모르고 있으면서 다 채우기도 전에 놈들한테 도로 뺏기게 되어 빈 그릇으로 늘 있다가, 거기에 충분한 양의 뒤틀린 기운이 있어도 서툴러서 제대로 담지 못하던 것을 액체형태의 투명한 돌이 조율해주어 이번에 제대로 그릇을 채우게 되면서 영혼 없이도 살 수 있는 특이 상황이 되었다고 설명하면 되려나?”
줄줄 설명을 끝낸 류안은 고개를 갸웃했다.
설명을 들은 모두의 표정이 묘했기 때문이고
리아인, 벨드라엔과 쌍둥이는
뒤틀림에 관해선 어떻게 저리도 잘 알고 있는 것인지 매번 신기했다.
“저······.”
류안이 설명이 끝내고 잠시 침묵하는 사이
그릇이 약간 어눌하긴 했지만,
말을 했다.
“전··· 이제 어떻게 하면··· 되···나요?”
어디선가 많이 듣던 말.
“넌 어떻게 하고 싶은데?”
“저··· 그게···.”
리아인의 물음에
그릇이 바로 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대로 두었다가 잘못해서 운 나쁘게 검은 옷 조직한테 끌려가면 안 되었기에,
어쩔 수 없이 데리고 가야 하나 생각하던 중.
“여행을··· 다니고 싶···어요.”
반응이 좀 느린 것이지
다행히도 자신의 의사는 확실히 내비치고 있었다.
그런데,
무엇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으니.
그릇으로서 끌려다니기만 했을 것이기에 가진 게 없는 것은 물론일 터이며
홀로서기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을 리가 만무하다는 것이었다.
류안은 리아인을 봤고,
리아인은 벨드라엔과 쌍둥이를 봤다.
그리고
벨드라엔도 쌍둥이를 보고 있었다.
“음, 혼자 여행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이···.”
쌍둥이 제우가 중얼거리면서
자신의 아공간을 뒤적거리며 물건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활, 검, 단검, 표창, 창, 철퇴, 도끼 등등
온갖 각종 무기가 튀어나왔고
이것은 미래 SF용 무기인가 싶은 희한한 것도 몇 개 보이던 중.
“아, 찾았다.”
제우가 밝은 표정으로 꺼낸 것.
그것은 바로
벨드라엔과 쌍둥이 둘이 여행할 때 사용한 장비들이었다.
벨드라엔이 레쉬아 왕국의 수호신이 되어 왕궁에 안착하고 한동안은 사용하지 않았지만
잘 관리가 되어있어 아주 멀쩡한 상태였다.
제우는 아공간 마법진이 새겨진 작은 가방에
1인용 텐트, 침구와 식기 세트.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의약품과 함께
호신용 무기도 몇 개 챙겨 넣어주었고,
거기에 더해
네우가 편의용 마법 장치를 더 챙겨주면서 며칠간은 쓸 수 있는 돈도 적당히 주었다.
그리고 금전이 필요해질 때,
아르바이트하기 좋은 일자리에 관한 정보와 그에 따른 요령, 대처법이 적힌 수첩도 챙겨주었다.
그릇은 당황했다.
처음 보는 자신한테
살아있다 하기엔 모호한 그릇인 자신한테
세심한 배려와 친절이 낯설기만 했다.
그릇의 표정을 읽은 리아인이 말을 했다.
“공짜로 주는 것 아니니까 부담 갖지 마. 뒤틀림을 담는 그릇으로 네 능력을 인정하고 잘 활용할 수 있게 지원해 주는 것뿐이야.”
리아인의 말을 들은
그릇의 눈이 커지면서 눈동자에는 이채가 감돌았다.
그릇으로서 인정받은 능력.
리아인의 말에
벨드라엔과 쌍둥이 둘도 동감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껏 엄청난 양의 뒤틀린 기운은
류안만이 다루고 잠재울 수 있었다.
그러했는데,
다루지는 못해도 상당한 양의 뒤틀린 기운을 몸에 담아 주변에 영향이 가지 않게 해주는
그릇의 존재가 눈앞에 나타나 줬다.
“검은 옷 조직에서 너 같은 인재를 못 알아보는 엄청난 실수를 했어.”
밝게 웃으며 말하는 리아인의 말에
벨드라엔과 쌍둥이는 다시 동감을 하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 덕에 그 녀석들은 좋은 인재를 잃고 뒤틀림도 얻기 힘들어져 저력에 타격을 입을 것이고, 우리는 뒤틀린 기운을 다루고 잠재워야 하는 수고를 덜 수 있으니 좋고.”
그 말에 그릇은 류안을 봤다.
정확히 누구인지 말하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거의 강제적이긴 했으나,
류안이 먹인 그 투명한 액체 덕분에
자신의 몸이 안정되고 뒤틀린 기운 또한 제대로 담을 수 있게 된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류안은 그릇의 시선에 질문이 있나 여겼다.
“뒤틀린 기운이 부족해져서 의식이 흐려져도 걱정할 것 없어.”
“·········?”
류안은 손가락으로
무슨 말인지 의아해하는 그릇의 가슴 중앙을 꾹 눌렀다.
“···──!”
그 행동에 그릇은 몸속에 자리한 그것이 반응하는 것을 느꼈다.
“네 안에 있는 투명한 돌이 알아서 뒤틀린 기운이 있는 곳으로 널 이끌고 갈 거야.”
“······네.”
류안은 할 말이 끝나 손가락을 치웠다.
그런데,
그릇은 여전히 손가락이 누르고 있었던 가슴 쪽을 보고 있었다.
‘반응이 확실히 느리네. 뭐, 문제 될 것은 없겠지만···.’
리아인, 쌍둥이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살짝 답답함은 있었다.
“뒤처리 구경하고 갈 거야?”
“···네?”
류안의 말에 그릇은 고개를 들었다.
“저기 널브러져 있는 것들 처리할 거라서.”
“······아.”
그 말에
그릇은 고개를 천천히 돌려서는
뒤틀린 채 모래 위에 쓰러져 있는 검은 옷 조직원들과 빈껍데기 그릇들을 봤다.
“···그렇군요.”
왠지 씁쓸한 표정의 그릇이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을 본,
“아, 갈 곳을 정하지 못한 것이면 이곳으로 가.”
쌍둥이 네우가 지도와 함께
텔레포트 스크롤을 한 장 건네주었다.
“이곳은 초보 모험가들의 시작점이라고 불리는 곳이라 여행할 때 필요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으니 참고하면 돼.”
“···네, ···고맙습니다. 그리고···, 제 이름은··· ‘도프’입니다. 그럼···, 전··· 이만 가겠습니다.”
그릇인 ‘도프’는 감사와 함께 어눌하게 이름을 밝히고 꾸벅하고 인사를 한 후,
바로 텔레포트 스크롤을 찢어 이동해갔다.
인사과 함께 이름을 밝히고는 훅 가버려 아무도 없는 허공을 보며
쌍둥이 둘은 절로 한숨이 나왔다.
“하아─···, 이건 꼭 물가에 애 하나 내놓은 것처럼 괜히 신경 쓰이네···.”
“걱정 안 해도 돼.”
“응?”
쌍둥이의 말에 류안이 말했다.
“도프라는 그릇이 뭔 짓을 하거나, 혹 뭔 일이 생기면 몸속에 있는 액체형 투명한 돌이 이지를 죽이고 그 몸을 장악할 거야. 그리고 행여나 검은 옷 조직으로 돌아가거나 혹은 도울 경우, 액체형 투명한 돌에 깃든 물 원소의 기운이 그릇을 바로 파괴할 것이거든. 아니면, 내가 있는 곳으로 강제로 오게 될 테니···, 내가 처리해도 돼.”
뭔가 무시무시한 말을 끝낸
류안의 표정은 급! 떨떠름해져 있었다.
기껏 떨궈 보낸 것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였다.
“신경 끊고 뒤처리하고 돌아가자.”
리아인이 말하면서 양손 한가득 백금빛 전류 파편들을 모았다.
그리고는 이내.
콰르르릉─── 콰광!! 파지직─!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역으로 솟구쳐 오르듯
상당수의 백금빛 전류 줄기들이 펼쳐지며
검은 옷 조직원들과 빈껍데기 그릇들을 태워 흔적을 모두 없애버렸다.
벨드라엔이 멸[滅] 기운을 담은 투명한 돌 탄환으로 금방 없앨 수 있었지만,
굳이 과하게 전류 줄기들을 펼친 이유는
일부러 눈에 띄게 하여
검은 옷 조직에서 찾지 않게
그릇 ‘도프’ 역시 흔적도 없이 처리된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함이었다.
* * *
사막에서 재미있는 그릇을 만났지만,
별 어려움 없이 싱겁게 뒤처리하고 돌아온
리아인과 류안, 벨드라엔과 쌍둥이 둘.
그런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자가 오두막에 와 있었으니,
까마귀 수인 ‘쿠우카’였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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