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48 화 – 이왕 이렇게 된 것.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자한테 누군가가 봐준다는 것이 참 힘이 되고 고마운 것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제 48 화 – 이왕 이렇게 된 것.
아침이 밝아오면서
테라스 창문으로 햇빛이 드리우고 있었다.
류안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와 동시에 낯선 천장을 맞이하면서
미간이 일순 구겨졌다.
잠들어 있는 동안 뭔 일이 있었던 것을 인지한 류안은 침대에서 일어났으며,
맞은편 침대에 한숨도 못 잔 얼굴의 리아인이 걸터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잘 잤어?”
“응.”
“그래, 다행이네.”
리아인은 안도하면서도 씁쓸한 한숨을 쉬었다.
그때.
똑. 똑. 똑.
“들어가도 돼?”
옆방과 바로 통하는 문 쪽에서
쇼트의 피곤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와
리아인이 답해주었다.
“···어, 들어와.”
끼익─···.
방문이 열리며 쇼트가 차 한 잔과 냉수 두 잔이 있는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그도 간밤에 한숨도 못 잔 듯
목소리만큼이나 얼굴에도 피곤함이 가득했다.
쇼트는 탁자에 쟁반을 올려놓은 후,
의자에 앉아 한숨을 쉬었다.
류안은 두 눈을 깜빡이며 리아인과 쇼트를 번갈아 보고는 입을 열었다.
“지금 뒤엎을까?”
류안의 말에 리아인은 눈이 커지며 말했다.
“어─ 그럴까? 그래 그러자. 난 찬성.”
격하게 반기는 리아인의 반응에
이번에는 쇼트가 놀라며 다급히 입을 열었다.
“아, 안돼. 지금은 참아.”
그 말에 류안과 리아인이 쇼트를 바라봤고
그 시선에 쇼트는 바로 뒷말을 이었다.
“적어도 투명한 돌 다 찾고 뒤엎어야 해.”
그는 진심이었다.
“먼저 뒤엎으면 돌 찾을 때 이래저래 걸림돌이 많이 생길 거야. 그러니, 얌전히 숨죽이는 척하고 은밀히 할 것 다 하고 나서 해도 늦지 않아.”
“오───!”
리아인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래, 그렇게 해야겠다.”
리아인은 짜증과 분노로 흥분한 자신과 달리 냉정한 판단을 내린 쇼트한테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고
쇼트는 쑥스러운 듯 볼을 긁적였다.
그렇게 리아인, 쇼트가 은밀히 뒤엎을 계획을 세우며 음침하게 히죽거리고,
류안은 그 모습을 보며 미소짓고 있을 때.
똑. 똑. 똑.
문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듀아 왕국의 1 왕자 다미엔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쇼트가 조용히 의자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자
눈 밑에 다크서클이 가득한 다미엔이 보였다.
“크흠, 간밤에 잘 주무··· 시지 못하셨군요.”
류안을 뺀 피곤함에 찌든 둘의 모습을 본 그는 허리를 숙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자세를 바로 하고는 세 명의 반응을 조심히 살피며 다시 허락을 구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쇼트는 고개를 돌려 류안과 리아인을 봤다.
리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오십시오.”
“감사합니다.”
쇼트는 옆으로 비켜서면서 방 안쪽으로 정중하게 손을 향해 보였고
다미엔은 천천히 방안으로 들어왔다.
상석의 자리는 비워둔 채,
리아인과 류안은 나란히 소파에 앉았고
맞은편 소파에 다미엔이 앉았다.
쇼트는 조금 떨어진 곳에 대기하듯 의자에 앉아 있었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다미엔이 이방에 온 용건을 말하기 위해 입을 움직였다.
“다시 사과드립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번에 저희 측 결례로 원치 않게 이곳에 오시게 된 것이니···.”
이번 일의 화근인 수호신이자 전쟁의 신인 워스만을 생각하며 속이 아려왔으나,
다미엔은 수습하기 위해 말을 이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레쉬아 왕국으로 돌아가길 원하신다면 바로 조치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초대 또한 원하지 않으시면 없었ㄷ···.”
“여기 당분간 있을 거야.”
“네?”
“병사훈련도 참관할게.”
“어···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류안의 예상 밖의 말에
다미엔은 놀라 화답하면서 안도했다.
“머무르시는 동안 불편한 것이 없도록 가능한 범위 내에서 원하시는 것은 모두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그럼, 여행용 마차를 준비해 주십시오.”
다미엔의 호의적인 말에
리아인이 바로 요구사항을 말했다.
“또한, 돌을 찾으러 다니는 동안 필요한 경비 일체를 지원해 주십시오.”
거침없는 요구에 다미엔은 아주 잠깐 당혹해하는 척하다가 이내 답해주었다.
“아, 알겠습니다. 그 정도는 당연히 지원해 드리는 것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더 필요하신 것은 없으십니까?”
미소지으며 말하는 다미엔의 모습을 보며
리아인은 더 뽑아먹을 것 없나 곰곰이 생각하던 중.
“돌의 소유권.”
“네?”
류안이 요구사항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곳 듀아 왕국의 그 어떤 곳에서든 내가 찾은 돌은 내 것이라는 소유권. 거기에 더해 언제 어디든, 어떤 상황에서도 간섭받지 않고 돌아다닐 수 있는 자유권[自由權].”
평소와 다르게 진중하게 말하는 류안을 보자
리아인과 쇼트는 묘해지던 가운데.
“이 두 가지를 인정하고 보장해줘.”
곧 평소 말투로 돌아온 류안 이었다.
다미엔은 잠시 고민했다.
자유권[自由權]은 별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돌. 투명한 돌의 소유권은 쉽게 답해줄 수가 없었다.
허나, 그 돌을 왕실 측에서 소유하고 관리할 여건도 되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소년 외에는
현재로서는 그 돌을 다룰 수 있는 자가 전무[全無]했으니···.
심지어 전쟁의 신인 워스만 님조차도
투명한 돌을 일시적으로 봉인은 해도 다룰 수는 없다고 했다.
다미엔은 깊은 고민 끝에 답을 내놓았다.
“그 돌로 인해 듀아 왕국에 피해가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약조해 주시면 소유권을 인정해 드리겠습니다.”
“걱정할 거 없어. 날 먼저 건드리지 않는 한 그런 일은 생기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이곳의 수호신이 저지른 일로 나와 우리로 인해 문제가 생겨도 레쉬아 왕국에는 책임을 묻지 않는다고 했잖아?”
류안의 말에
다미엔은 순간 움찔했다.
레쉬아 왕국의 국왕 레이쉴과 한 통신 내용을 알고 있었기에.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돌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이런 다미엔의 말을
류안은 무시한 채 뒷말을 이었다.
“난 왜 그 말이 다르게 들릴까?”
“네···?”
류안은 다미엔을 지그시 바라봤다.
그 시선에 다미엔은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레쉬아 왕국에는 책임을 묻지 않겠지만. 이곳 자체 내에서 우리한테 책임을 물어 그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말로 들리는데, 안 그래?”
류안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배려해 주는 척, 자신을 낮추는 척하면서 네 맘대로 휘두르고 싶었겠지만. 돌이나 창, 그 녀석들과 관련해서 너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나한테 뭐라 할 수 없어. 내가 허락하지 않을 테니까.”
오싹─.
다미엔은 류안의 말과 눈빛에 오싹함이 밀려왔다.
그 모습에 류안이 다시 말했다.
“돌 소유권과 자유권[自由權] 어떻게 할 거야?”
순진한 소년의 모습인 류안을 보면서
다미엔은 떨리는 입술을 애써 감추고 답했다.
“예, 인정하고 보장해드리겠습니다.”
“잘 생각했어, 고마워.”
“···더 필요하신 것 없으십니까?”
“음, 지금은 없어.”
리아인과 쇼트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원하신 것 최대한 빨리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다미엔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그리고는
쇼트의 배웅을 받으며 방에서 나왔다.
방문이 닫히고,
호위 기사도 없이 혼자 아무도 없는 텅 빈 복도를 따라 자신의 집무실로 향해 걸어가던 다미엔은 류안과 그 일행이 있는 방에서 멀어지자 벽에 손을 짚었다.
그리고 벽에 기대며 바닥으로 스르륵 주저앉았다.
그는 잘게 떨리며 식은땀으로 가득한 두 손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레이쉴 국왕과 긴급 통신으로 나눈 대화 내용을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이지? 영상통신 장치 같은 것을 챙겨 올 여유나 정신이 없었을 텐데···. 설령 챙겨 왔다고 해도 외부 특히, 타 왕국과의 영상통신은 금지마법으로 연결할 수 없는데······.’
다미엔은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런 의문은 지금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류안이라는 소년과 시선을 마주했을 때 느낀 온갖 감정들이, 침착함을 유지하기 위해 억눌렀던 감정들이 댐이 무너지듯 온몸을 덮쳐오고 있었다.
전쟁의 신에 못지않은 위압감과 공포.
그러면서 그와는 다른
자신을 바라봐주지 않을 것에 대한 두려움.
또한,
왕자인 자신한테 격식은커녕,
기본 예의도 없이 막대하듯 말하는 행동.
겉으론 절대 드러내지 않고 있으나,
자신의 본[本] 성격상 그런 것들에 경멸과 혐오와 불쾌감, 짜증 등이 밀려와야 했다.
그런데.
‘왜··· 거슬리지 않지?’
아무렇지 않게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있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제쳐두고 자신의 감정에 대한 의문에 휩싸이며 두 눈을 깜빡이고 있을 때.
“생각대로 잘되지 않았나 보군.”
“워스만··· 님.”
전쟁의 신 워스만이 그의 앞에 서 있었다.
워스만은 다미엔의 모습에 대략 어떤 상태인지 짐작이 되었다.
‘자존심 세고 욕심 많은 녀석인데 제 생각대로 안 되니 어리둥절하겠지. 게다가 그 아이가 신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저 이능력[異能力]을 가진 자신의 신분보다 아래에 있는 자라고만 여겼을 테니까.’
워스만은 다미엔한테 류안이 ‘천사가 아니다.’라는 것만은 알려주었다.
“워스만 님, 류안이라는 저 소년 어떤 존재입니까?”
“글쎄,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힘드네.”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었다.
‘신[神]’.
하지만,
신조차도 정체를 눈치채지 못하는
'비장의 수'가 될 류안이 ‘신’이라는 것을 철저히 숨겨야 했기에 알려주지 않고 있었다.
“왜?”
워스만의 물음에
다미엔은 떨림과 식은땀이 수그러진 손으로 얼굴을 쓸면서 답했다.
“···욕심이 납니다. ···이곳 듀아가 아닌 레쉬아에 모습을 드러낸 것에 짜증도 나고요.”
“욕심은 이해하겠는데, 뒷말은 뭔 소리야?”
“···눈에 띄는 외모를 가졌는데도 그 소년에 관한 것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나마 반년 전쯤부터의 흔적만 겨우 찾을 수 있더군요.”
‘이야~, 요 녀석 그새 뒷조사 싹 했네. 행동 참 빨라.’
“마치, 반년 전쯤에 이곳 세계에 홀연히 모습을 드러낸 것 같았습니다.”
그 말에 워스만은 잠시 생각했다.
‘어린 신이니까 그럴지도. '방'에서 신으로서 준비하고 있다가 반년 전쯤에서야 움직이기 시작한 것일 수 있으니.’
그리고 의문이 들었다.
‘근데, 최근에 신이 태어난 기록이 있던가? 딴 건 몰라도 신의 탄생과 소멸은 ‘기록의 신’에 의해 기록이 남는데···.’
“그 모습을 드러낸 곳으로 레쉬아가 아닌 듀아였으면 어떠했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이 말에 생각하던 것을 멈춘 워스만은
여전히 얼굴을 손으로 감싸고 있는 다미엔을 무심히 내려다봤다.
“···예, 압니다. 억지···라는 것.”
다미엔은 손을 내리고 한숨을 크게 내뱉고는 바닥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그리고 매서운 눈으로 워스만을 바라봤다.
“검은 옷 조직과의 일이 마무리되면 그 일도 바로 추진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미엔의 결의를 품은 말에
워스만은 흡족하면서도 묘한 미소를 지었다.
* * *
“내 뒷조사를 했나 보네.”
“뭐?”
잠시 허공을 멍하니 보던 류안의 말에
늦은 아침 식사를 하고 있던 쇼트가 놀라 샐러드 접시 위로 포크를 떨어트렸다.
그리고 걱정하며 황급히 말했다.
“그··· 괜찮은 거야? 대응 안 해도 돼?”
“어, 괜찮아. 알아봐야 근래 반년 정도일 것이고, 별것 없어. 그전 것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알아낼 수 없거든.”
류안의 말에 리아인은 웃음을 띤 채 고개를 끄덕였다.
둘만의 공통점이 있었으니.
“그렇지, 이곳 세계에 있지도 않은 것을 알아낸다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니까.”
뒤이은 리아인의 말에 쇼트는 뭔가 싶었다.
하지만,
전혀 신경 쓸 것 없다는 둘의 말과 행동에 쇼트도 신경을 끊고, 포크를 들어 다시 샐러드를 먹었다.
류안은 차를 마시며 곰곰이 생각했다.
‘투명한 돌이 그렇게 갖고 싶었나?’
투명한 돌의 소유권에 난색[難色]을 보였던 다미엔의 모습에
자신의 과거를 조사해 꼬투리라도 잡아 돌을 요구하려는 것인가 싶었다.
‘매개체가 있는 투명한 돌 발견하면 워스만한테 봉인하라고 하고 하나 줘야 하나?’
이런 생각을 짐작한 ‘---’의 사념체는
그것이 아니라고 알려줘야 하나 하다가도 이 어린 신이 제대로 알아들을까 싶어 조용히 있었다.
참 설명해주기 까다로운 상대였다.
‘그래, 하나 주자. 관리는 저들이 알아서 하겠지.’
류안은 인심[人心]? 써서 다미엔한테 투명한 돌 하나를 주기로 하고는 느긋하게 차를 마셨다.
그 모습에
사념체는 체념한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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