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06 화 – 숨통이 트였다.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자한테 누군가가 봐준다는 것이 참 힘이 되고 고마운 것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제 106 화 – 숨통이 트였다.
깜박. 깜박.
류안은 천장을 보면서 두 눈을 두 번 깜박였다.
“·········?”
잠이 깬 것에 의아함이 들긴 했지만,
다시 잠이 들 것 같지 않아 일단 일어나 침대에 앉았다.
그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바로 옆 간이침대에는 당연히 리아인이 잠자고 있었고
그 옆으로는 쇼트가 잠들어 있었으며
시선을 돌려 앞쪽을 보자
레쉬아 왕국 국왕 레이쉴, 듀아 왕국 1 왕자 다미엔도 이곳에서 간이침대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
병사들한테는 익숙한 숙소의 형태이지만
왕족인 둘에게는 좁을 수 있고 낯선 형태의 숙소.
물론, 스체스 왕국 측에서 두 사람을 위한 각각의 1인실 숙소를 따로 마련해 주었었다.
그러나,
레이쉴과 다미엔은 지금은 전쟁 중이고
병사들이 편안하게 누울 공간을 뺏기 싫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리아인과 류안도 같은 배려를 받았으나,
역시나 거절하면서
이들은 한곳에 모여 자고 있었던 것이었다.
조금 덧붙이자면
1인실 숙소를 거절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병사들과 같은 방이나 막사를 이용할 수는 없었다.
레이쉴과 다미엔의 신분과 위치,
류안과 리아인이 보인 모습에
병사들이 눈치를 보며 신경 쓸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스─, 스으─···.”
“스─······.”
“············.”
“──···.”
피곤으로 인해 깊이 잠든 이들의
나지막하면서 규칙적이고 건강한 숨소리들이 숙소 안을 잔잔하게 메우고 있었다.
류안은 그 소리를 잠시 귀 기우려 듣고는
옆 간이침대의 리아인을 지그시 바라봤다.
‘어디 갈 때 꼭 얘기하고 가. 부탁이야.’
리아인이 류안한테 부탁한 말.
류안은 잘 자는데 깨워서 말해야 하나 하다가.
목 옷깃의 붉은 브로치 아공간에 종이와 펜을 꺼내 끄적거린 후,
『바람 쐬러 나갔다 옴.』
이라고 적은 쪽지를 리아인 손에 쥐여주고는 숙소에서 나왔다.
달은 구름 뒤에 숨은 것인지
별빛만이 간간이 보이는 까만 하늘 아래,
류안은 쪽지에 남긴 글 그대로
잠을 깬 김에 바람이나 쐬러 나온 것이었다.
휘이이이잉────······.
밤바람이 불어와
류안의 검고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면서
하얀 입김도 따라 흘러 흩어졌다.
“밤바람이 생각보다 많이 찹니다.”
누군가의 목소리에 류안은 뒤를 돌아봤고
잠이 깨서 나온 것인지 어떤지 모르겠으나,
다미엔이 바로 뒤에 서 있었다.
다미엔은 손에 들고 있는 모포를
바람에 휘날리고 있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류안의 어깨에 살포시 걸쳐주고는
본인의 몸에도 모포를 걸쳤다.
스체스 왕국 측에서 마련해 준 것으로
북쪽의 왕국답게 차디찬 바람을 든든하게 막아줄 양털 가죽으로 된 모포였다.
류안은 모포의 털을 만지작거리다가
시종일관 잔잔히 미소짓고 있는 다미엔을 잠시 본 후,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다 한 곳을 응시했다.
중상자 중에서도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치료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부상이 심해
따로 분류된 병사들이 있는 막사였다.
그것을 아는 다미엔의 얼굴이 일순 어두워지며 무표정해졌다.
그런 막사 안에는
일렁임의 농간에 제일 먼저 희생된···
옆구리를 심하게 다치고 의식불명 상태로 누워있는 병사 B가 있었으며,
그 옆에서 전우 덕분에 경상[輕傷]에 그친 병사 A가 간호하면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병사 B는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에 신체 기능이 최악으로 약해진 상태로
치료용이나 회복용 포션이 더 이상 효과를 주지 못하고 있었다.
목숨만 겨우 간당간당 버티고 있는 상태.
의식이라도 돌아오면 다시 치료를 재개할 수 있겠으나,
그렇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할 수도 있었다.
병사 A는 병사 B의 손을 꼭 잡았다.
피가 모자라 떨어진 체온이라도 채워주고 싶었다.
“·········.”
그런 병사 A의 모습에
간호 병사들은 지금으로서는 도와줄 수 있는 것이 없어 그저 안쓰럽게 바라볼 뿐이었다.
거기에 다가
간호 병사들은 몸도 몸이지만, 심리적으로 많이 지쳐있었다.
이곳에는 치료 불가하다는 판정으로
애석하지만··· 치료가 중단된 의식불명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는 병사들이 상당수 있었기에
간호 병사들은 그런 그들한테 돌발상황이 생기지 않는지 지켜보면서 피와 고름으로 얼룩진 붕대나 거즈를 깨끗한 것으로 갈아주는 것이 해줄 수 있는 전부였고,
간호하던 병사의 죽음을 눈앞에서 마주하게 될 수도 있다는 불안함에 지쳐가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
똑. 똑.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아, 예. 들어오십시오.”
간호 병사는 익숙한 목소리에 대답했고
다미엔이 문을 조용히 열며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그 뒤에서 류안이 빼꼼히 고개를 내밀어 보다가 뒤따라 들어왔다.
막사 안은
공기 정화 마법 장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상자 병실 특유의 냄새로 가득했다.
일반인이었다면 그 누구라도 저도 모르게 인상을 구겼을 지독한 냄새였으나,
다미엔은 고생하고 있는 이들을 배려해 표정 변화를 보이지 않았으며
류안은 딱히 자극될 것이 없었기에 평소 표정 그대로였다.
위생상 당연히 해야 하는 거긴 하나,
역한 냄새 때문에 의료용 천으로 코와 입을 가린 간호 병사 한 명이 감탄하며
그 둘을 맞이했다.
“다미엔 왕자님. 그리고, 검ㅇ··· 합!!!”
검은 천사라고 뒷말을 이으려던 간호 병사는 황급히 손등으로 입 쪽을 막았다.
레이쉴이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에게
류안을 보고 ‘검은 천사’라고 칭하지 말 것을 간곡하면서도 철저히 당부해 놓았기 때문이었다.
어찌나 강하게 부탁하던지 무서울 정도였다.
간호 병사는 입을 꾹 다문 채 허리 숙여 인사를 하려고 했으나,
다미엔이 손을 들어 보이며 사양했다.
그사이 류안은 막사 안을 가만히 훑어보았다.
공기 정화용 마법 장치 외에도
빛과 냄새에 민감할 부상병들을 위해
냄새가 나지 않는 마법 등불로 은은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으며,
적정온도와 습도도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는
류안이 별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한 행동에
간호 병사들은 이 늦은 밤 부상병들 상태를 살피러 와준 것이라 여기고 감동하면서
검은 천사라고 불리기 싫어하는 것 역시 겸손과 상대방을 위한 배려라고 여겼다.
이런 오해를 모르는 류안은
병사 A가 간호하고 있는 의식불명의 병사 B한테로 다가갔다.
다미엔도 뒤따라 다가가면서 미리 손을 내보여 병사 A가 일어나 인사하려는 것을 막았다.
새애- 색, 쌔-···.
불규칙하고 힘없이 희미한 숨소리.
창백한 것을 넘어 파리해지고 있는 피부.
거즈로 가려져 있기는 하지만,
응급조치로 봉합해 막아놓기만 한 옆구리의 상처가 류안의 눈에 보였다.
“·········.”
류안은 그런 병사 B를 말없이 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고
묘한 고요함이 흘렀다.
의식불명의 부상병 옆에 있는 검은 천사의 모습은 마치······
죽음의 안내자 같았기에.
심지어 다미엔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병사 B의 영혼을 맞이하러 온 듯한 모습에
병사 A는 불안함을 느꼈고,
그런 오해를 알 리 없는 류안이 의식 없이 누워있는 병사 B 쪽으로 손을 움직이자
병사 A는 잘게 떠는 두 손을 질끈 쥐며 순리[順理]를 받아들이기 위해 애썼다.
그런 오해가 더 깊어져 가던 사이,
병사 B 상처 위 거즈가 떨어지려 하기에
류안은 별생각 없이 손으로 그 거즈를 살며시 눌러 고정되게 했다.
그런데, 그 행동으로 인해
막사 안에 있는 모두의 눈이 놀라 커지는 상황이 벌어졌다.
류안의 손끝에서 따스함과 부드러움을 품은 기운이 흘러나오더니
병사 B의 옆구리 상처를 보듬듯이 감싸며 스며 들어간 것이었다.
스르으으으───······.
그리고
그 기운은 이내 막사 안 전체에 가득 퍼졌다.
“──···!”
류안은 자신의 의도와 전혀 상관없이 일어난 상황에 놀라며 황급히 손을 치웠고
그 바람에 상처 위의 거즈가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병사 B의 상처 부위가 드러나게 되었다.
그것을 본 간호 병사는 커진 눈 그대로 떨리는 손을 겨우 움직여서는 통신 장치를 이용해 치료 술사한테 긴급 알림을 넣었다.
아주 잠깐의 시간이 지난 후,
후다닥─ 우당탕.
헐레벌떡 들어오는 치료 술사와 함께 스체스 왕국의 지휘관, 참모장이 왔으며
어떻게 알았는지
루카테르와 카르티아, 레이쉴과 쇼트.
그리고 리아인까지 막사로 왔다.
병사 A와 간호 병사들, 다미엔까지
갑자기 많은 인원이 막사 안으로 들이닥친 것에 당황하는 것도 잠시,
들이닥친 그들 모두도 막사 안에 감도는 포근하고 부드러운 기운에 놀라며 일시 정지되었다.
할 말을 잃고 굳은 그들을
류안도 살짝 당황하며 보고 있었다.
“·········.”
“·········.”
“어─······.”
류안이 뭔가 말해야 하나 싶어 내는 소리에
치료 술사가 먼저 정신을 차리고는,
“죄송합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양해를 구한 후,
황급히 병사 B한테로 다가가 상태를 면밀하게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놀랐다.
“이, 이럴 수가─!!!”
치료가 불가할 정도였던
봉합 틈으로 상처가 썩어가면서 흘러나오던 피고름이 멈춰있었다.
치료 술사는 어떻게 된 것인지 상처를 더 자세히 살피던 그 순간.
“으윽─···.”
병사 B의 얼굴이 일순 구겨지며 신음을 내더니, 의식이 돌아왔는지 눈을 가늘게 뜨기 시작했다.
“어이! 괜찮아? 정신이 든 것 맞지? 그렇지?”
병사 A는 기뻐하며 말을 걸었고
병사 B는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두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뜨는 것으로 의식을 차렸다는 것을 표현했다.
그 모습을 본
치료 술사는 지체할 틈 없이 바로 병사 B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
아무리 해도 더 이상 치유되지 않고 있었던··· 그래서 포기해야만 했던
옆구리의 상처가 느리긴 했으나,
조금씩 치유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사경을 헤매던 다른 부상자들도 호흡이 좋아지고 혈색이 돌아오면서 안정기에 들어간 것을 볼 수 있었으며,
치료를 재개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인지했다.
“오오─··· 세상에, 이런 기적과도 같은 일이.”
치료 술사는 연신 감탄사를 연발했고
간호 병사들과 병사 A, 다미엔은 류안을 뚫어지게 봤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는
레이쉴, 리아인, 쇼트 그리고 지휘관과 참모장도 그저 모두의 시선에 따라
류안을 멍하니 볼 뿐이었고,
그 시선에 류안도 이게 뭔 일인지 제대로 인지되지 않아 두 눈만 깜박거렸다.
그러한 가운데,
루카테르와 카르티아는
류안한테 희미하게 남아있는 기운을 읽었다.
특히,
루카테르는 자신한테 있는 기생 마수 때문에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는 기운이기에 확실하게 인지했다.
“······───!!!”
류안도 뒤늦게 눈치를 챘다.
돌봄의 신 ‘에니’의 권능 기운.
‘이건··· 대체 또 언제 받아들인 거야?’
류안은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으나
속으로는 절규하듯이 울분을 토하듯 외쳐대고 있었다.
그러면서
검은 옷 조직 때문에 돌봄의 신 에니를 도와주러 벨드라엔과 워스만이 그녀의 영역으로 갔을 당시,
류안도 불 원소의 매개체가 있는 투명한 돌을 찾으러 따라갔다가 그 과정에서 얼떨결에 도움을 주게 되었고
그때, 에니가 감사의 인사로
류안의 이마에 입맞춤을 해주었던 그 행동으로 인해서 받아들이게 된 것이라고 짐작은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웃긴 것이
분명 가호[加護]로서 내린 행동이었는데,
권능으로써 받아들였다는 것이었다.
“······하. 하하.”
류안은 너무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고
다미엔, 병사 A와 간호 병사들은
그 모습을 사경을 헤매던 병사들이 위기를 넘기고 치유되어 나아가는 상황에
기뻐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말았다.
이젠 익숙하다고 할 수 있는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는 상황에서
계속 허탈한 웃음만 나오고 있는 류안은
이곳을 빨리 벗어나 잠이 오든 말든 도로 자고 싶었다.
그런데
너무 어이가 없어서 몸이 굳어 버린 것인지··· 발이 잘 떨어지지 않고 있었는데,
그것을 눈치를 챈 리아인과 쇼트가 다가와
류안을 데리고 막사 밖으로 나갔으며
레이쉴과 다미엔도 뒤따라 나갔다.
루카테르와 카르티아는 막사에 남아서는
의식을 찾은 병사 B가 치료되고 있는 모습과 다른 중상 병사들의 호전[好轉]되어가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루카테르는 오른쪽 눈가에 있는
기생 마수의 표식을 조심히 매만졌다.
돌봄의 신 에니가 도와주기는 했지만
실패했던 그 일을
류안이라면 성공해 줄 것만 같은 희망이 머릿속과 가슴 속에 깊이 박혔다.
그 때문인지
루카테르는 저도 모르게
류안이 나간 막사 출입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 * *
환한 햇살과 함께
성벽 안의 수많은 병사의 웅성거림으로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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