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08 화 – 어리석은 행동.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자한테 누군가가 봐준다는 것이 참 힘이 되고 고마운 것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제 108 화 – 어리석은 행동.
레쉬아 왕국의 병사 이천 명.
듀아 왕국과 스체스 왕국의 병사 각각 천 명.
거기에 더해 성벽 위로 보이는 병사들과 보이지 않지만 대기 중에 있을 병사들 천 명 이상으로 추정.
검은 옷 무리의 이천 명.
거기에 새로 투입된 전투원 삼천 명.
키메라 검은 천사 백 명,
일반 마수와 키메라 마수 합쳐 대략 오백 마리.
이런 수가 의미 있는지 미지수인 가운데
수적으로는 어느 한쪽이 우세인지 열세인지 따지기가 모호한 수.
“호오-, 듀아 왕국과 스체스 왕국의 병사들 거의 다 전투 불능상태라고 하더니, 잘못된 정보였나요? 아니면 밤새 치료를 마친 걸까요?”
하얀 로브의 ‘일렁임 신’은 왠지 깐죽거리는 말투로 정보원이 아닌 옆자리에 있는 신을 향한 말로
민트색 로브의 신 표정이 좋지 않았다.
“밤새 치료? 하─! 그럴 리가. 아무리 실력 좋은 치료 술사가 몇십 명이 있고 포션이 대량으로 있다고 한들, 일개 인간들이 그 많은 중상자를 하룻밤 사이에 전장에 내보낼 수 있을 정도로 치료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신’이라도 힘을 빌려주면 모를까.”
민트색 로브의 신은 미간을 찌푸리며
전장에 나와 있는 상대측의 병사들을 봤다.
‘외상만 치료하고 멀쩡한 척 허세를 부리는 건가?’
전쟁 전략 중에는
허세와 과시를 이용해 없어도 있는 척,
다치고 망가져도 멀쩡한 척하면서
적을 기선 제압해 전의를 상실하게 만들어 항복을 받아내는 전략이 엄연히 있다.
이때의 장점으로는
아군이나 적이 큰 피해 없이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점.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상대방인 적이 속아 넘어갔을 때의 얘기고,
그렇지 못하면 오히려 역효과만 낳는 아주 위험한 전략이기도 했다.
그런데,
전장에 나온 상대측 병사들의 모습은 허세가 아니었다.
병사들은 모두 얼굴색이 멀쩡한 것을 넘어 생기와 혈기가 넘쳐흐르고 있었고
자세에도 흐트러짐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무슨 농간을 부렸길래···.”
신이 도와준다고 해도
아무 신의 도움으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생[生]’과 관련된 권능을 가졌거나
적어도 ‘돌봄의 신’의 가호가 있어야 가능할까 말까였다.
‘그리고 보니 뒤틀림을 수거하러 돌봄의 신 영역에 갔을 때 방해한 것들이 2대 심판자라는 신과 전생의 신이었고, 그 당시 검은 천사도 같이 있었다고 했···!!!’
민트색 로브의 신은 설마 했지만
이내 가능성이 거의 없음을 인지했다.
신이 소멸하기 직전에 자신의 아이한테 권능을 물려주는 경우라면 모를까.
자신의 아이도 아니고
계약도 하지 않은 천사한테 권능의 힘을 빌려주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으며
설령, 빌려준다고 한들 천사는 그 힘을 버티지 못하고 자멸할 수 있었다.
‘대학살’ 때 천사가 멸족한 이유 중 하나가 이거였다.
“그 ‘에니’라는 돌봄의 신은 인간들을 싫어해 관여하지 않을뿐더러, 제 영역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은 확인했어···.”
민트색 로브의 신이 혼자 중얼거리며 지금의 상황을 파악하려 하고 있을 때.
찌익-.
노란 치즈를 입에 문 야생 털쥐가 다가왔다.
야생 털쥐는 입에 물은 치즈를 검은 옷의 정보원한테 주려는 듯 몸을 꼿꼿하게 세우며 머리를 위로 향했다.
정보원은 익숙하게 치즈를 집어 안에서 작은 돌 구슬을 꺼내 들고는
치즈는 야생 털쥐한테 도로 주었다.
야생 털쥐가 치즈를 야무지게 갉아 먹은 후 대기하듯 가만히 있는 사이,
정보원은 돌 구슬에 깃들어 있는 기억을 읽었다.
그리고는 표정이 묘해졌다.
그 표정을 본 일렁임의 신이 물었다.
“새로운 정보라도 있는 건가요?”
“네. 생사기로에 놓인 의식불명의 부상자들을 검은 천사가 의식이 돌아오게 했습니다.”
정보원의 대답에
이번에는 민트색 로브의 신이 놀라며 물었다.
“뭐라고? 확실한 건가?”
“예, 거기에 더해 치료 불가한 자들 역시 안정기에 들어가게 해서 치료를 재개할 수 있게 하였고, 지금은 휴식 중인지 숙소에서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허─···.”
정보원의 말을 들은
민트색 로브의 신이 어이없다는 탄성을 뱉었다.
믿을 수 없었기에.
그것을 인지한 정보원은 돌 구슬의 기억을 두 신이 볼 수 있게 영상장치에 전이시켜 재생시켰다.
위이이이잉────······.
영상장치 작동음과 함께 비친 영상 속에는
막사 안에서 있었던 기적과도 같은 그 일들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영상을 본 민트색 로브의 신은 더 어이가 없었다.
‘이런 힘도 있다고? 대체 이 검은 천사의 정체가 뭐야?’
위험하다.
이 검은 천사는 위험해─!!
민트색 로브 신의 뇌리에 강한 경보음이 울리고 있었다.
“호오~ 역시, 절대자를 선택할 진짜 검은 천사는 다르긴 다르군요. 얼른 데리고 와야 하는데 방해꾼들이 너무 많아 쉽지가 않아요.”
하얀 로브의 일렁임 신이 검은 천사를 빨리 데려오고 싶은 생각에 조바심과 함께 설레고 있을 때.
절대자를 선택하는 검은 천사.
민트색 로브의 신은
진짜라고 칭하는 이 검은 천사는 예언과는 달리 다른 선택을 할 것 같았으며
지금까지 보고된 검은 천사의 행보에
곧, 확신으로 굳어졌다.
“다른 선택을 할 천사는 미리 없애는 것이 낫겠지.”
“무슨─, 검은 천사를 없애겠다고요?”
하얀 로브의 일렁임 신이 놀라 물었다.
“그럼 선택을 어떻게 하시려고?”
“아직 준비되지 않은 그쪽이나 검은 천사의 선택이라는 가능성에 기대는 것이지. 뒤틀린 아이만 찾으면 천사의 선택 없이도 절대자의 자격을 가질 수 있어.”
민트색의 로브 신은 일렁임의 신을 낮잡아 보며 말했고
일렁임의 신은 황당함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
말없이 있는 일렁임의 신 모습에
민트색 로브의 신은 비죽거리는 웃음을 보인 후, 말을 이었다.
“조만간 검은 옷 조직에서 만들어낸 검은 천사들 모두 절대자를 위한 밑거름이 되듯이 저 검은 천사 역시 밑거름으로 만들면 그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쟁도 길게 끌 것 없으니.”
민트색 로브의 신은
정보원한테 명령과 함께 무언가를 내밀었다.
“검은 천사를 없애라.”
“···알겠습니다.”
검은 옷의 정보원은 받은 그 무언가를
털쥐의 길고 풍성한 털 속에 교묘히 가려져 있는 목줄에 달아주며 말했다.
“네 주인한테 갖다 줘.”
찌익─.
털쥐는 대답처럼 울음소리를 한번 낸 뒤
성벽 쪽으로 재빠르게 내달려갔다.
그것을 본
하얀 로브의 일렁임 신은 다물지 못했던 입을 움직이며 말했다.
“검은 천사만 없애면 되는 건가요? 전쟁을 빨리 끝내려면 빛의 힘을 쓰는 자도 먼저 없애야 하지 않습니까?”
빈정거리는 말투였다.
그 말투에 민트색 로브의 신은 한심하다는 듯이 일렁임의 신을 봤다.
“천사의 가호로 발현된 힘이면 천사를 없애는 순간 힘도 사라지게 돼. 다른 세계에서 온 거라 그런가, 아는 것이 없군.”
그러고는 민트색 로브의 신은 의자에서 일어나서는 전장 쪽으로 향해 갔다.
그 뒷모습을 지그시 보던 일렁임의 신은 속으로 혀를 찼다.
‘뒤늦게 절대자의 후보에 오른 주제에 누구보고 아는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인지, 저러다 큰코다치지. 쯧-.’
일렁임의 신은 성인 크기의 일렁임을 만들었다.
그 행동에 정보원이 의문을 표했다.
“관전 더 하지 않고 가시는 겁니까?”
“그래, 난 검은 천사한테 밉보이기 싫거든. 전장 상황 잘 녹화해서 나한테 보내줘. 특히, 저놈이 어떤 최후를 맞이하는지 잘 녹화하도록.”
“알겠습니다.”
검은 옷의 정보원을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고
하얀 로브의 일렁임 신은 일렁임 속으로 들어가 사라졌다.
* * *
이불 속에 꼭 박혀 있던 류안이 부스스 일어났다.
“류안, 일어났어? 기분은··· 좀 괜찮아진 거야?”
쇼트가 옆에서 류안의 상태를 살펴봤다.
류안은 멍하니 두리번거렸고
리아인이 보이지 않았다.
“리아인은 도와주러 갔어.”
현재 성벽 밖 전장에서는
3차전이 시작되고 한창 진행 중이었다.
류안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침대에서 내려와 일어나려고 하던 그때.
똑똑.
“드실 차를 가지고 왔습니다.”
숙소 문밖에서 취사병 B의 목소리가 들렸다.
“???”
서로 다른 할 일로 인해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면
류안의 시중은 예외 없이 쇼트가 책임지고 해왔기에
둘은 의문이 들었다.
“들어가겠습니다.”
류안, 쇼트가 잠시 말없이 있는 것을
거부하지 않은 것으로 여겼는지 취사병 B가 미소 지어 보이며 문을 열고 들어왔고
손에는 맑게 우려낸 향긋한 민트 허브차가 담긴 고급찻잔을 들고 있었다.
“·········.”
류안은 그 찻잔을 빤히 보다가 손잡이 잡아들었다.
그리고 반쯤 마신 후,
취사병 B의 손에 들린 찻잔 받침에 올려놓았다.
류안은 취사병 B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고
취사병 B는 그 시선에 움찔했다.
“쌍둥이인가 보네.”
“네?”
“쌍둥이 형제의 껍데기를 쓰고 있어서 티가 나지 않고 있었구나.”
취사병 B는 다시 움찔했다.
“쌍둥이라니 무슨 말씀이신지···.”
그러면서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며 손에 든 받침 위의 찻잔을 봤다.
반밖에 마시지 않았지만, 효과가 나타나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하던 중.
류안이 다가와 다시 찻잔을 들더니 남아있는 차를 마저 마셨다.
그리고
받침 위에 빈 찻잔을 느긋하게 놓았다.
달각─.
빈 찻잔의 울림이 들리는 동시에
류안의 말소리도 들렸다.
“힘들게 준비한 것일 텐데. 미안, 나한테 독은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아.”
“─!!!!!”
차에 독이 있다는 말에
쇼트는 심히 놀라며 분노에 찬 얼굴로 취사병 B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하지만,
이내 평정심을 유지하며 화를 가라앉혔다.
류안이 가만히 있었기에.
그에 반면,
이미 모든 것을 아는 류안의 덤덤한 모습에
취사병 B의 몸은 공포로 잘게 떨고 있었고
그로 인해 빈 찻잔이 받침 위에서 달그락거렸다.
차에 탄 독은 일반 독이 아닌
민트색 로브의 신이 준 독이었다.
아무리 일반 인간이 아닌 천사라 할지라도 마시는 순간 즉사할 수준의 독이라 했는데
눈앞의 존재는 아무렇지 않게 느긋하니 미소짓고 있었다.
류안은 취사병 B의 옆을 스치듯 지나가면서
나지막하게 말했다.
“뒤틀림 잘 못 받아들여 섞어가는 몸은 괜찮아? 너의 쌍둥이 형제가 슬퍼하고 있어.”
“───!!!”
그 말에 취사병 B는 다시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검은 옷 조직의 창술사나 사냥꾼이 되기 위해 뒤틀린 기운을 받아들였으나,
실패하는 바람에 몸이 뒤틀리며 섞어가는 것을
자신의 곁에 있어 준 쌍둥이 형제를 희생시켜 그 껍데기를 뒤집어씀으로써 몸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의 쌍둥이 형제가 슬픈 선택을 하게 하지 마.”
류안은 취사병 B의 등 뒤로 보이는
눈물을 아니,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그의 쌍둥이 사념체를 봤다.
또한, 들리지 않는 입 모양을 읽었다.
사죄[謝罪]와 함께
자신의 형제인 만큼 자신의 손으로 직접 단죄하겠다는 것이었다.
또한, 이제껏 무력하게 형제의 만행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는데 힘을 빌려주어 감사하는 뜻도 표했다.
“·········.”
류안은 그런 사념체를 말없이 바라봤다.
그러고는 문을 열고 방을 나가면서
쇼트한테 부탁했다.
“뒤 잘 부탁해.”
“알았어, 조심하고 수고해.”
탁-.
문이 닫히고 숙소에는 쇼트와 취사병 B만이 남았다.
잠깐의 적막이 흐르고
쇼트의 표정이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죽이지는 않겠습니다. 제가 모시는 ‘신’께서 당신을 그냥 두었으니까. 그러니, 화 돋우지 말고 얌전히 계십시오.”
쇼트의 말에
취사병 B의 눈이 일순 커졌다.
‘시··· 신이라고?’
하지만
이 의문은 유지하지 못하고
쇼트의 붉은 눈동자 시선에 머릿속은 하얘져 갔다.
쇼트는 취사병 B가 부들거리며 떨어트릴 듯 들고 있는 찻잔과 받침을 대신 들고는
찻잔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향은 좋은 것으로 잘 고르셨군요.”
미소짓는 쇼트의 모습에서는 지금까지 보여준 적 없는 얼음처럼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고
취사병 B는 얼어붙어 움직이지 못했다.
그리고 그의 하얘진 머릿속이 한가지 생각만으로 가득 채워지며 어두워져 갔다.
‘이길 수 없다.’
* * *
3차전이 일어나고 있는 전장.
레이쉴과 다미엔이 앞장을 서 적을 막고 있었고
리아인이 보조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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