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94 화 – 움직이기 시작한 폭풍.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자한테 누군가가 봐준다는 것이 참 힘이 되고 고마운 것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제 94 화 – 움직이기 시작한 폭풍.
류안의 본 적 있냐는 의문에
쿠우카와 오딜, 하츠는 방 입구에 멈춰선 채 류안을 보고 있었다.
“날 ‘어둠의 신’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렇고, ‘역시’라는 표현을 쓰는 것과 도와주겠다고 하는 것 하며, 자신들의 터전에 데리고 오는 것 등. 아무리 신이라도 처음 보는 자한테 보일 행동은 아닌 것 같은데.”
이렇게 말한 류안은 힐끗 워스만과 벨드라엔을 봤다.
신이라면 자신 말고도 두 명이나 더 있다.
그런데,
그 두 명의 신인 워스만이나 벨드라엔한테는 아무런 관심도 행동도 보이지 않고 있었고
벨드라엔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도망자 신으로 존재를 드러내지 않아 그렇다 치지만,
전쟁의 신 워스만은 검은 옷 조직과 한바탕할 계획을 하고 준비 중이기에
뜻을 따라 힘을 보태고 도와준다고 한다면
자신보다는 워스만한테 의지를 보여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류안은 생각하고 있었다.
“아, 예, 어둠의 신님께서는···”
“류안.”
“네?”
“그냥 이름 불러. 존칭어도 빼고.”
류안의 말에 검은 새 수인들이 당혹해하자
같은 경험이 있는 쇼트가 그 심정을 안다는 듯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을 거들었다.
“류안은 신이라는 것을 숨기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얘기하지 않아도 아시겠죠?”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크흠.”
쿠우카는 헛기침을 한번 하면서
존칭어를 빼고 말할 준비를 한 후,
조심히 입을 움직였다.
“류안···은 우릴 본 적이 없겠지만, 몇 달 전 미지의 숲에 있는 저택에 하얀 돌연변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혹시, 검은 옷 조직의 꼬임에 넘어간 저의··· 크흠, 내 동족인 하얀 까마귀 ‘카밀’인가 싶어서 은밀히 찾아가 봤다가 우연히 널 봤고 그때, 그곳에 네가 보인 그 엄청나고 경이로운 광경을 보게 되었어.”
쿠우카가 회상하면서 경외에 찬 얼굴로 말하는 모습에
류안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응···? 그때 영역을 펼쳤었는데, 이미 영역 안에 들어와 있었던 건가?’
“그 후, 우리 까마귀 수인족이 검은 옷 사냥꾼의 습격을 받아 널 찾고 싶어도 그럴 겨를이 없다가··· 네가 다시 그 저택이 있는 곳에 일행과 함께 간 것을 여기 천리안의 눈을 가진 하츠가 보고 알려주어서 널 만나기 위해서 갔고.”
쿠우카는 한 손으로
검은 독수리 하츠를 가리키며 말을 계속했다.
“그러다 또다시 습격을 받았는데, 네 덕분에 위기를 모면하게 되었고 널 언제 또 만날 기회가 올지 몰라 납치하듯 데려온 거야.”
쿠우카는 미안함과 머쓱함을 보이며 말을 끝냈다.
‘하이고······.’
류안은 속으로 탄식을 삼켰다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확! 은둔해 버릴까···.”
“·········─!!!”
그 말에 일순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으며
모두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류안은 순간 이상해진 분위기에 의아함이 밀려왔다.
‘뭐지? 내가 뭐 잘 못 말했나?’
-자···, 자네 안 되네!
‘응? 뭐가 안돼?’
-정말 힘들어 그런 것이라면··· 내가 뭐라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안 되네!!!
‘그러니까, 뭐가 안 되는데?’
류안을 걱정하면서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던
심판자의 사념체는 침묵했다.
신[神]이 은둔한다는 것은 결코 좋은 모습이 아니었으며,
최악의 경우는 스스로 소멸을 선택하는··· 그런 상황이 될 수 있었다.
“저, 저희가 아니, 우리가 힘내서 열심히 할 테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무리하지마.”
“···? 그래, 알았어.”
류안의 얼굴에 의아해하면서도 알아서 한다는 말에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것을 본
쿠우카는 안도했다.
은둔할까 말하기는 했지만,
류안은 그냥 짜증이 나서 한 말이었고
본인이 스스로 벌인 일이 있어 그것을 끝내야 했기에 당장은 은둔할 생각은 없었다.
표정이 굳어있던 모두의 얼굴도 풀어져 가는 와중에
리아인과 쇼트는 류안이 정말 괜찮은 것인지
또 엉뚱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고 있었고
워스만, 벨드라엔의 표정에는 알 수 없는 복잡하면서도 묘함이 자리해 있었다.
‘···지친 건가? ······지칠만하긴 하지.’
방안에 흐리는 기묘함과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모습들이 영 보기 좋지가 않아
류안은 졸리지는 않았지만,
얼른 오두막으로 돌아가 쉬고 싶었다.
“여기 언제까지 있을 거야?”
“아, 곧 갈 거야.”
류안의 물음에 리아인이 답해주었고
류안이 침대에서 내려와 움직이자
방 안에 있던 모두는 함께 밖으로 나갔다.
방 풍경이 그러했듯
밖으로 나와 보인 마을은
동남아시아 오지의 잘 발전된 휴양지 같은 풍경이었다.
그리고
까마귀, 흑고니, 검은 독수리 외에도
검은 날개를 가진 수인족 몇몇이 보였다.
검은 새로 특정된 수인족은 아니나
검은 옷 사냥꾼이 검은 날개를 가진 수인들 위주로 사냥하고 다니는 상황에서
혹여나 자신들의 종족에 피해가 갈까 두려워
따로 나와 이곳에 온 새 수인들이라고
쿠우카가 류안한테 말해주었다.
류안은 굳이 몰라도 되는 것을 말하는 쿠우카는 무시하고
별생각 없이 마을 풍경을 보다가
방 안에서 검은 새 수인들과 얘기하는 동안 보이지 않아 잊히어져 있던 두 사람.
쌍둥이 제우와 네우가
열 살 안팎의 어린 새 수인들한테 둘러싸여서는 놀아주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모습이 꼭 유치원 보모 같았다.
“둘은 저기서 뭐해?”
“아, 새 수인들은 난생. 알에서 태어나다 보니 일란성 쌍둥이가 거의 없다고 하더군. 그래서 똑같이 생긴 제우와 네우를 보고 어린애들이 신기해하며 둘 옆을 떠나지 않아서 놀아주고 있는 거지.”
류안의 물음에 벨드라엔이 답해주었고
아이들과 한창 놀아주고 있던 쌍둥이 제우는
벨드라엔과 일행들, 새 수인들이 방에서 나온 것을 보고는 어깨에 꼬마 새 수인이 올라탄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벨드라엔한테로 왔다.
“얘기 끝났습니까?”
“응.”
벨드라엔의 대답에
제우는 어깨에 올라탄 꼬마를 조심히 내려놓았다.
“이잉─···.”
헤어져야 할 시간이라는 것을 눈치챈
꼬마 새 수인은 안 떨어지려고 떼를 썼고
제우는 그런 꼬마의 손에 작은 대포 모양 장난감을 주었다.
“우잉······.”
꼬마는 시큰둥하며 장난감을 받았다.
그 모습에 제우는 대포에 달린 줄을 살짝 당겼다.
장난감 대포에서는 콩알 같은 작은 대포알이 펑★ 소리를 내며 발사되었고,
그 광경에 꼬마 새 수인은 언제 싫어했냐는 듯 눈을 반짝이며 엄청나게 좋아했다.
그리고는
자랑하기 위해 쌍둥이 네우와 있는 또래들한테 달려갔다.
“와아아아─아────.”
“와~ 신기하다.”
“나도··· 갖고 싶다.”
“·········.”
대포 장난감을 본 아이들은 신기함과 부러움을 숨김없이 내보였다.
꼬마 새 수인들은 어느새 눈을 말똥거리며 네우를 보고 있었으며
몇 명은 제우한테로 왔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에
쌍둥이 둘은 귀찮은 기색 없이
네우는 별 위험 없는 초급용 마법 장치를
제우는 어린아이들을 위한 연습용 활과 검을
각각 선물로 나누어 주었다.
“감사합니다.”
오딜이 쌍둥이 제우와 네우한테 감사의 인사를 했다.
비록 장난감 같은 것이라고는 해도
앞으로 있을 위험에 대비해 자신을 지키기 위한 준비와 연습하기에는 충분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린 새 수인들은 해맑게 웃으며 각각 선물 받은 것을 꼭 쥔 손을 흔들어 보였고
쿠우카, 오딜, 하츠와 함께 어른 새 수인들은 허리 숙여 작별 인사를 했다.
잠시 후,
리아인과 류안, 쇼트, 벨드라엔과 쌍둥이 둘, 워스만이 마을 밖으로 나오자
마을 출입구는 안개에 가려지면서 사라져 갔다.
공간에 관련된 꽤 실력 좋은 능력자가 있는지 결계로 인해 마을의 존재는 더 이상 인지되지 않았다.
그렇게 검은 새 수인들의 마을을 떠나서
레쉬아 왕궁의 오두막으로 돌아온 그들은
쉴 틈도 없이 엄청난 소식과 마주해야 했다.
* * *
레쉬아 국왕 레이쉴의 집무실.
요즘 들어 잠이 유독 많이 늘어난 류안과 껌딱지 리아인은 오도막에 있는 상태에서
레이쉴, 벨드라엔과 쌍둥이 둘, 루카테르까지 자리하고 있는 가운데
집무실의 공기는 무거웠으며
다들 표정이 심각했다.
“듀아 왕국의 왕실로 지원요청이 왔다고 하더군요.”
“지원요청? 어디서?”
“스체스 왕국이라고 합니다.”
“스체스 왕국?”
벨드라엔은 레이쉴의 말에 확인차 되물었다.
“류안하고 워스만이 인공 투명한 돌에 대해 알아보러 간 그곳?”
“네, 그리고 듀아 왕국 왕실과는 별개로 1 왕자 다미엔한테 스체스 왕국의 유예누 후작이 비밀리에 개별 지원요청을 했다고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그와 비슷하게 스체스 왕국 왕실에서는 우리 측에도 지원요청을 하면서, 유예누 후작이 개별로 헨즈 공작 가문한테도 지원요청을 했더군요.”
참고로 유예누 후작은
얼마 전 검은 옷 조직의 투명한 돌 거래로 함정에 빠진 것에 거듭 사과를 했으며,
왕국과는 별개로 영주로서 후작 가문으로서 검은 옷 조직과의 거래는 완전히 끊은 후,
선을 확실히 그었다.
전쟁의 신 워스만은 유예누 후작의 사과에
전쟁 중 함정에 빠지는 것은 흔한 일이고
유예누 후작 역시 검은 옷 조직으로부터 뒤통수 맞은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리고 그때 이래저래 일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검은 옷 조직의 계획은 무산, 실패하게 된 것이라 크게 연연하지 않았다.
앞으로 나갈 일이 더 중요하다고 하면서,
벨드라엔도 동의하는 바였다.
“지원 요청한 이유는?”
“짐작하시겠지만, 검은 옷 조직의 전쟁 선포가 있었습니다. 검은 옷 조직은 광업 왕국인 스체스 왕국을 손에 넣어 투명한 돌 생산 근원지로 만들려는 속셈일 겁니다.”
“흐음─···.”
벨드라엔은 잠시 생각에 빠져있다가 말을 했다.
“다른 왕국들은 어떻지? 여기와 듀아 왕국 쪽에만 지원요청을 하지는 않았을 것 아냐?”
“예, 정보통에 의하면 다른 왕국들에도 지원요청이 갔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예의주시만 할 뿐 눈에 띄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고 하더군요.”
“···워스만이 통신 알람을 듣자마자 듀아 왕국으로 돌아간 이유가 이거였군.”
워스만은 오두막에 온 직후 울린 통신 장치의 특이한 알람 소리를 듣고는
평소 뭉그적거리던 것과 달리 바로 듀아 왕국으로 돌아갔다.
“헨즈 공작 가문 쪽에 한 지원요청이 정확히 뭐지?”
“헨즈 공작부인이 알려준 바에 의하면 가능하다면 병력지원도 바라고 있었지만, 자금과 전쟁 물자 지원을 원하고 있다고 합니다. 덧붙여 다미엔 측에는 식량 및 의약품 지원을 요청했다고 하더군요.”
“음, 이렇게 개별 요청한 것을 보면 각 왕국의 왕실 측에 한 지원요청은 눈가림용인가 보군.”
“네, 그렇게 각 왕국 왕실의 저조한 반응을 앞세워 검은 옷 조직의 눈을 돌리고 뒤에서 은밀히 전쟁에 대응할 준비를 하는 것일 테죠.”
“그렇지, 그것들이 각 왕국에 교묘히 포진되어 있을 건데 방해 공작을 안 할 리가 없지. 괜찮은 수이긴 한데, 레이쉴 넌 어떻게 할 예정인가?”
“저야 뭐, 검은 옷 조직하고 적을 뒀다는 것은 알만한 자들은 다 아는 사실이니, 병력지원을 해줄 생각입니다. 아주 대놓고 말이죠.”
레이쉴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자신감이 깃든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면서도
검은 옷 조직과 조력하는 신들을 알고 있기에
결코, 만만히 보고 있지도 않았다.
정확하게는 대놓고 지원한다는 것 자체가 역시 눈 속임수용으로
검은 옷 조직을 적대하는 왕국이 아무런 대응조치를 하지 않고 있으면 이에 의심하면서 오히려 더 견제할 터였기에,
보여 주기용으로 적당한 병력을 지원해주고
그 뒤에서 제대로 든든하게 지원을 해줄 요량이었다.
“헨즈 공작 가문은?”
“아, 예 그것이···.”
레이쉴은 바로 답하지 못하고 말하기를 조금 주저하고 있었다.
“왜? 지원요청에 난색이라도 표했나?”
타 왕국을 지원하는 것은 강제가 아닌
개인 가문의 자유의사, 선택에 따른 것이라 지원하지 않는다고 해도 책임 물을 일은 아니었다.
“아뇨, 그런 것은 아닙니다. 단지···.”
“단지?”
헨즈 공작 가문 쪽에서 대체 뭐라고 했길래
레이쉴이 저러는 것인지 벨드라엔은 의문과 불안감이 밀려왔다.
“헨즈 공작 가문에서··· 류안 군과 리아인 군의 미래를 위해서 검은 옷 조직을 섬멸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했습니다.”
“잉─?”
말을 끝낸 레이쉴은 뻘쭘함을 보였고
벨드라엔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어벙한 소리가 나왔다.
‘지원해주는 것은 좋은데. 거기서 류안과 리아인이 왜 나오는 거지?’
전쟁 지원요청에 대한 논의로 진지하던 집무실에는
어색한 미소와 침묵이 흘렀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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