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09 화 – 끝난 뒤의···.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자한테 누군가가 봐준다는 것이 참 힘이 되고 고마운 것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제 209 화 – 끝난 뒤의···.
레쉬아 왕국의 왕궁.
그 구석진 정원에 자리한 2층 구조의 아담한 오두막.
그곳에 햇볕이 따뜻하게 창문으로 들어와
오두막의 안을 밝혔다.
그리고 그 햇볕은
거실 소파에 누워 낮잠에 빠져 있는
죽은 피의 색을 연상케 하는 검붉은 머리카락의 전쟁의 신.
워스만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햇볕으로 인해 눈이 부실 수도 있었으나,
얼굴 쪽으로 누군가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며
눈부심은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햇볕을 가려준 그림자 덕분에
워스만은 인기척을 느끼고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는
동그래진 두 눈을 깜박거렸다.
환한 햇볕을 등지고 상체를 살짝 숙인 채,
밤하늘 같은 검고 긴 머리카락을 늘어트리고
고양이의 눈을 닮은 짙은 회색 눈동자에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모습의 소년.
“······? 류안?”
어린 신 류안이
워스만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리아인이 이런 상황이었으면
동양 고전적 공포물의 한 장면을 떠올리며
순간 식겁했을 테지만,
워스만은 겨우 이 정도에 놀랄 리는 없었다.
그러나 그거와는 별개로
자신을 빤히 보는 류안의 모습에 의아함이 들었다.
그것도 옆에 껌딱지처럼 붙어 있는
리아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더 의아했다.
워스만은 평안하게 누운 자세를 일으켜
소파에 바로 앉으면서 말했다.
“왜?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
“그보다 리아인은?”
“옆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더니··· 혹, 어디 안 좋은 건가?”
“어? 아냐, 자고 있어.”
“뒤틀림이 완전히 사라지고 몸은 안정되어 있지만, 뭔가 허전한지 적응하느라 잠자는 중이야.”
“그래?”
워스만은 리아인의 지금 상태가
어쩌면 지금의 자신과 비슷한 상태일 것이라 여겼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큰 자극을 주던 것이 어느 순간 사라지면서
컸던 만큼의 허전함이 오기 마련이었으니까.
워스만은 소파 등받이에 기대고
천장을 바라보다가 문득,
거실이 오두막 안이 유독 조용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쇼트와 살쾡이 수인 키사는 시장으로 장[場]을 보러 갔고,
벨드라엔은 아직 타지헤 왕국에 있는 레쉬아 왕국의 국왕 레이쉴 대신 재상들한테 붙잡혀 국정 업무를 보는 중이었으며,
쌍둥이 네우는 방전된 체력과 기력을 회복하기 위해 따로 요양 중,
쌍둥이 제우는 그런 네우를 옆에서 돌봐주고 있었다.
그리고,
잔소리하면서 당장이라도 듀아 왕국의 수호신으로서 역할을 하라며 왔을 다미엔도
레이쉴과 같이 타지헤 왕국에 남아있었다.
타지헤 왕국의 모든 권한을 위임받았으니,
세 왕국에서 관리한다 해도
정리하고 처리할 것들이 많은 터라 한동안은 그곳에 있어야 했다.
2층 방에서 잠자고 있는 리아인을 제외하고
오두막 거실에는 류안, 워스만
둘만 있는 상태.
“············.”
“·········.”
안 그래도 조용한데
침묵이 내려와 앉으면서 더 조용해졌다.
류안은 그런 와중에
워스만을 계속 빤히 바라보고 있었고
워스만은 그 시선을 마주하면서 말없이 가만히 있었다.
워스만은 이대로 있어도 별 불만 없었으나,
의문이 들어 먼저 입을 움직여 말했다.
“할 말 있는 것 아냐?”
“음-, 리아인이 일어나면 잠시 상대해 줄 수 있어?”
“어?”
너무 예상 밖의 말에
워스만은 의아함을 넘어 어리둥절해졌다.
리아인을 상대해 주라니···
무슨 상대?
워스만은 자신이 ‘전쟁의 신’인 것은 감안해
류안의 말 의미를 추측해 보았다.
“리아인한테 개인 훈련이라도 부탁하려는 건가?”
“뭐, 해줘도 상관은 없지만.”
“그 녀석 기본은 잘되어 있던데, 이유를 알 수 있을까?”
“음-···.”
“리아인 없이 나 혼자 좀 갔다가 올 데가 있는데, 리아인한테 말하기에는 좀 그래서.”
류안의 얼굴에 드물게 난감함이 있었는데
리아인이 혼자 어딜 갈 때는 말하고 가라고 한 부탁 때문이었다.
“잠깐 갔다 올 동안 리아인이 나 신경 쓰지 않게 상대해 주었으면 하거든.”
“너 혼자?”
“응.”
이번에는 워스만이
류안을 빤히 보면서 잠시 생각을 하다가
입을 움직였다.
“얼마 동안 상대해 주면 되지?”
“길게는 할 필요 없고, 한 시간 정도?”
“한 시간?”
“응.”
“진짜 한 시간?”
“응, 왜 힘들어?”
“아니, 그건 아닌데.”
류안은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우며 갸웃했고
워스만은 그런 모습에 다시 의문이 생겼다.
한 시간.
어디 옆집에 가는 것이나
동네 혹은 공원 산책하는 것도 아닐 텐데.
왕궁 안,
그것도 구석진 곳에 있는 이 오두막에서
어딜 갔다가 오는 시간으로
한 시간은 턱없이 짧다고 할 수 있었다.
텔레포트를 이용한다면 모를까.
워스만은 류안한테
이유를 더 자세히 묻고 싶었으나,
이내 그만두었다.
류안이 자신한테 처음(?)으로 부탁하는데
괜히 말 많이 했다가 날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지금 바로 갈 건가?”
“응.”
“그렇군. 그럼 리아인은 네가 이 오두막에 있는지 없는지 알지 못할 정도로 내가 한 시간 동안 잘 상대해 주고 있을 테니.”
“잘 갔다 와.”
“응.”
류안은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발걸음의 소리도 없이 조용히 오두막 밖으로 나갔다.
“하─···.”
워스만은 웃음 섞인 옅은 한숨을 쉬고는
소파에서 일어나 2층으로 올라갔다.
마침,
리아인이 잠에서 깨어나 일어나는 인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리아인은 침대에서 일어나고
찌뿌둥한 몸을 기지개로 쭉 피고는
옆 침대에 있을(없지만) 류안이 일어났나 확인하려 움직이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덜컹──!
“일어났나?”
“???”
대뜸 문을 열고 들어오는 워스만의 모습에
리아인은 순간 얼이 나가 움직임이 멈췄고
그 모습을 본 워스만은
아주 온화하면서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소소소──···.
리아인은 그 미소에
발끝 저 밑에서부터 머리털 끝까지 소름이 쫘악- 돋아나면서
혐오로 인해 얼굴이 있는 대로 구겨졌다.
못 볼 거 봤다는 듯이.
평소에도 리아인의 저 표정에
워스만은 별 신경 쓰지 않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다분히 의도된 행동으로
온화하면서도 인자한 미소를 유지한 채
성큼성큼 리아인한테로 다가갔다.
그에 따라
리아인은 류안이 있을(없지만) 침대 쪽으로는 발자국도 가지 못하고
소름을 넘어 공포에 질린 상태로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그러다,
텅-. 하는 소리와 함께
테라스 창문에 몸이 부딪히면서
더 이상 뒤로 물러서지 못하게 되었다.
워스만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리아인의 바로 코앞까지 다가가서는 손을 움직여 뻗었고,
리아인은 그 움직임에 움찔했다.
그리고,
놀란 토끼 눈이 된 리아인은
균형을 잃고 뒤로 벌러덩 넘어져야 했다.
철컹─.
워스만의 손에 의해 테라스 창문이 열리면서
리아인이 뒤로 넘어간 것이었고
그렇게 테라스 바닥으로 쓰러지기 직전,
워스만이 리아인의 허리를 낚아채 들더니
그대로 테라스 밖 허공으로 가볍게 던졌다.
테라스 밖 허공에는
워스만의 전용 이동통로가 열려 있었으며
리아인은 그 통로 안으로 던져진 것이었다.
“야익─, 이게 뭔 짓이야?”
“이 XXX 같은 자식아───······!!!”
리아인은 도플러 효과가 일어나는 욕과 함께
통로 안으로 완전히 들어가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 뒤,
워스만은 테라스 난간에 가볍게 올라서고는
폴짝거리며 통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후,
통로는 스르륵 닫히며 사라졌다.
그 상황을
양손 한가득히 장을 보고 돌아온
쇼트와 살쾡이 수인 키사가 어리둥절하며 보고 있었다.
* * *
펄럭─.
쏴아아아아───······.
검은 날개가 한번 펄럭이면서 일어난 바람에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먼지 같은 빛의 알갱이들이 흩날리면서
반딧불을 연상케 했다.
그리고
그런 빛의 알갱이들 사이로
류안이 유려하게 발을 내디디고 있었다.
자박─.
금방이라도 꺼질듯한 빛의 알갱이들이
류안의 발에 밟히며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듯이 반짝거렸다.
“흐음···.”
류안은 침음을 한 뒤,
검은 날개를 거둬들이고는
선명한 어둠이 아닌 흐릿한 어둠 속에서
빛의 알갱이들로 겨우 주변을 밝히고 있는 공간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이 공간에서
세 가지 권능의 기운이 느껴졌다.
복제, 재생, 차단.
특히,
‘차단’의 권능 기운이 강하게 느껴지며
누군가가 이 공간을 인지하는 것을
차단하고 있었다.
류안한테는 별 소용없는 것이었지만.
류안은 권능의 기운들이 시작되는 곳으로
발을 움직였다.
자박. 자박. 자박.
류안의 발걸음에 따라
빛을 잃어가던 알갱이들이 반짝였다.
하지만,
이것은 류안의 힘이 작용한 것이 아닌,
밝은 곳보다 어두운 곳에서 더 잘 보이는
상대적인 빛 효과일 뿐이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류안이 이미 지나쳐온 곳의 알갱이들은
빛을 다하고 하얗게 침묵하고 있었다.
마치,
빛과 온기를 얻기 위해
다 불태우고 남게 된 하얀 재 같았다.
자박. 자박. 자박─.
류안은 한참 동안을 말없이 걷다가
한 존재를 볼 수 있었다.
힘겹게 복제된 몸체를 재생시키고 있는
‘마찰의 신’이었다.
마찰의 신은 부속적인 힘까지 끌어모아
신의 몸체 및 인형을 재형성하고 있었으나,
파직. 파직. 파지직.
반동에 의한 마찰이 일어나고 있었고
그로 인해 생겨난 백색 빛의 전류 파편들이
겨우 형성되어가고 있는 몸체와 인형을 부수고 있었다.
마찰의 신은 완전히 부서지기 전
몸체와 인형을 복제하고는
다시 재생시키며 몸체와 인형을 형성하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하지만,
또다시 일어난 반동에 의한 마찰.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권능인 ‘마찰’로 인해 생겨난
백색 빛의 전류 파편들에
겨우 재생 형성한 몸체와 인형은 허무하게 부서져 갔다.
“젠장-···.”
마찰의 신은
뒤틀린 아이 리아인의 하얀 창에 의해
소멸당하기 직전,
권능 ‘복제’를 이용해 자신을 복제한 후
맞부딪힌 백색의 빛 전류 번개와 백금빛 전류의 충격 여파 틈 속에 교묘히 숨어 도망쳤었다.
그리고,
다행히 아직 남은 권능들을 이용해
그 누구도 접근하지 못할 영역을 펼치고
망가지고 있는 신의 몸체와 인형을 복구하려 했으나···
잘되지 않고 있었다.
아무리 복제하고 재생을 하려고 했지만,
계속 부서져 갈 뿐이었다.
“·········.”
마찰의 신은 이대로 무너질 수 없어
이를 악물고 계속해서
권능 ‘복제’와 ‘재생’의 힘을 발휘하려고 했다.
하지만,
뒤틀어진 권능의 틀이 그 상태로 굳어지면서
권능들의 힘을 발휘하는 것이 점점 힘들어져 갔다.
그러던 그때,
“도와줄까?”
마찰의 신은
자신 말고는 들어오기는커녕,
그 누구도 인지할 수 없는 영역에서 들리는 선명한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네가 왜······?”
마찰의 신은 자신의 영역에 들어와 있는
류안의 모습을 보면서
그 어떤 느낌이나 영향도 없이 영역에 들어온 것에 대한 의문보다는
다른 감정이 먼저 온몸에 휩싸이고 있었다.
그 감정은 공포인지···
아니면 희망인지···.
마찰의 신 본인도 알 수 없었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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