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84 화 – 그때를 위한···.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자한테 누군가가 봐준다는 것이 참 힘이 되고 고마운 것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제 184 화 – 그때를 위한···.
“·········.”
레쉬아 왕궁의 구석진 정원에 있는
오두막에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워스만이 듀아 왕국의 1 왕자 다미엔의 만류와 호통? 속에도 이곳에 와 죽치고 있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지금은 그 분위기가 묘했다.
워스만은 주방 식탁에서
아침 식사 중인 리아인과
기생 마수한테 쿠키가 아닌 식사용 빵을 주고 있는 류안을 빤히 보고 있었다.
물론,
식탁에는 쇼트와 살쾡이 모습의 키사도
함께 식사 중이었지만,
워스만의 안중에는 없었다.
리아인은 부담스럽고 짜증 나는 시선에
그릇에 남은 음식을 빨리 해치운 후,
숟가락을 내려놓고 말했다.
“용건 있어서 온 거면 빨리 말해.”
그러나,
워스만은 말없이 생각에 빠져있었다.
이틀 전에 만나러 간
기록의 신 모제가 해준 얘기를 생각하고 있었다.
‘태어난 신의 기록이 나타났다고?’
‘어디 딴 곳에 보관되어 있다가 뒤늦게 찾은 것 아니고?’
그 말에
기록의 신 모제는 안경을 살며시 내리며
워스만을 바라봤다.
노려보고 있었다.
기록의 신한테 기록을 잘못 분류, 보관했다는 말은 망언이었다.
그것을 인지한 워스만은 바로 사과했다.
‘이런 내가 말실수를 했군.’
‘미안하다.’
모제는 사과하는 워스만을
노려보던 것은 치우고 가만히 보고 있었다.
신은 이기적이기에
자신의 잘못이 확실해도 쉽게 사과하지 않는
아니,
아예 사과하지 않는 족속들이 많이 있었다.
벨드라엔 같은 별종이 몇몇 있기는 했지만,
눈앞에 있는 전쟁의 신도
웬만한 것에는 사과하지 않았는데
자신이 한 실수를 인정하고는
두 번씩이나 사과하고 있었다.
한 왕국의 수호신이 되고
인간들과 가깝게 지내며 변한 건가 싶었으나
이렇게 단기간에 변할 성격이 아니었기에
의아함과 신기함이 커지고 있었다.
모제의 그런 시선에 워스만이 말했다.
‘사과도 했는데, 하려던 말을 마저 하지?’
‘···그러지.’
모제의 말에 의하면
기록이 새로이 생겼다기보다는
약 70년 전의 기록이
어떤 이유로 인하여 폐기가 되어 없어졌다가
지금 다시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폐기되었다고? 그런 경우가 있나?’
‘어, 드물지만 있어.’
‘이곳 세계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폐기되기도 하거든.’
모제의 말에
워스만의 표정이 일순 심각해졌다가
곧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온 상태로 물었다.
‘혹, 그 말은 존재하면 안 되는 자가 태어났기 때문인가?’
‘응? 아냐.’
‘그런 모순된 존재가 있을 수 있나?’
‘설령 그렇다고 한들 기록은 남아.’
‘이유가 어떻게 되었던 이곳 세계에 태어났고 존재하고 있으니까.’
모제는 잠시 생각을 하고 말을 이었다.
‘근데, 이 경우는 태어나긴 했지만.’
‘이곳 세계에 소속되지 않아 폐기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아.’
‘음, 예를 들자면.’
‘한 왕국에 아기가 태어나서 출생신고서를 작성했지만, 제출하기 전에 다른 왕국으로 이민을 했다거나 사망해서 폐기된 경우라고 할 수 있지.’
모제는 신의 기록서를 워스만한테 보이며
계속 말을 이었다.
‘그 기록서의 경우는 전자라고 할 수 있어.’
‘다른 세계에 갔다가 돌아왔다는 건가?’
‘그래, 그래서 폐기가 취소되고.’
‘다시 기록이 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지.’
모제는 그러면서 다른 기록서 한 장을 보였다.
‘그리고, 그와 함께 새로이 나타난 기록이 있지.’
‘새로운 기록?’
‘응, 재밌는 것이 이 기록서에 탄생의 기록은 없어.’
‘······?’
‘쉽게 설명하면 이곳 세계로 이민을 온 자의 기록이 새로 나타난 것이지.’
‘참고로 이곳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의 존재가 이곳에서 행해 생기는 기록들은 직접 그 존재를 명시하지 않고 지나가는 어떤 아무개 식으로 기록되지.’
‘흐음··· 그렇군.’
워스만은 두 기록서를 찬찬히 살펴봤다.
그러다, 의문이 들었다.
‘신의 기록서를 이렇게 보여줘도 되나?’
‘반동이 오는 것 아닌가?’
‘아아,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
‘정말 신기하게도 마치 이곳 세계의 신이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이 기록서를 보는 권한 제한이 없어.’
‘그 누구도 부정[否定]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듯이 말이야.’
그 말에 워스만의 눈이 순간 커졌다.
부정[否定]하지 못하게 한다.
워스만의 표정 변화를 본 모제가
말을 이었다.
‘어때?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자네가 원하던 기록이 맞나?’
‘도움은 된 건가?’
‘그래, 내가 찾던 것이 맞는 것 같군.’
‘이것이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워스만은 어느 정도 흡족해하면서
기록서들을 모제한테 돌려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모제가 말을 덧붙였다.
‘이것이 도움이 될지 어떨지···.’
‘이 다시 나타난 이 신의 기록 자체는 별문제 없는데.’
‘······?’
‘탄생 기록이 미완성된 상태야.’
‘뭐랄까···, 아직 태어날 때가 아닌 신이 억지로 눈을 떠 기록이 된 그런 상태?’
워스만은 모제의 마지막 말을 생각하며
류안을 지그시 보고 있었다.
‘···내가 추론한 것이 맞고 그것을 저 아이가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흥미로우면서도 왠지 무섭군.’
“뭐야? 할 말 없어?”
리아인의 짜증 섞인 말에
워스만은 그제야 생각에서 벗어나고
시선을 돌려 리아인을 봤다.
그 시선에는 적의와 호의
모순된 두 감정이 거칠게 엮여있었다.
워스만은 다시 시선을 돌려서 말했다.
“하던 것은 잘 되어가고 있나?”
“응? 나?”
워스만의 물음에 류안이 답했다.
“으음, 일단은 계속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아.”
류안의 말에
리아인은 의문이 들었다.
하던 것?
뒤틀림과 관련된 건가?
아니면 ‘학살자’로서 신을 소멸시키는 것?
“···도움 필요한가?”
“응? 음, 아니. 괜찮아.”
“그래, 괜한 오지랖 도움은 오히려 방해될 수 있지.”
“그래도 힘들 것 있으면 말하도록 해.”
“알겠지?”
“어? 응.”
워스만은 아주 강압적인 어투로 말했고
류한한테는 그런 어투가 별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워스만의 표정이 평소와 달라기에
류안은 일단 답은 했다.
류안은 뭔가 싶어 눈을 말똥거렸고
리아인은 의아해하면서 경계를 드러내었다.
옆에서 이런 상황을 본
쇼트와 키사는 묵묵히 식사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워스만은 볼일이 끝났는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듀아 왕국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날 저녁.
자신의 의지와는 별개로
오두막에 다미엔과 함께 오게 되었다.
그런 후,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것이 맞는지 확인 차 물어보았다.
“지금 뭐라고?”
“어디를 가자고?”
* * *
타지헤 왕국.
레쉬아 왕국을 침략했다가 패전하고
모든 무역이 끊기면서 고립된 왕국.
자체적으로 해결하기에는
식량과 물자가 많이 부족했으나,
그런 와중에도
왕실에서는 뒷거래까지 하면서
서민들이 최소한 목숨은 부지할 수 있도록
구호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 뒷거래를 하는 곳이 검은 옷 조직이라는 것이 문제였지만.
“이것 봐봐. 우리가 얼마나 손해 보고 있는지 아는 건가?”
타지헤 왕국의 국왕이
제복 차림의 ‘그분’이라는 자한테 따지고 있었다.
“대체 그 ‘때[時]’라는 것은 언제지?”
“언제까지 이 빌어먹을 짓을 해야 하는 거냐고?”
국왕은 ‘그분’이라는 자한테
계속 그때를 얘기하며 따졌으나
‘그분’이라는 자는 묵묵히 발걸음을 옮겼고
국왕만이 초조하고 불안할 뿐이었다.
왕궁 내 화려하고 넓은 복도를 지나가고 있던 그들은 복도 끝,
웅장함을 풍기고 있는 거대한 문 앞에 섰다.
거대한 문에는
잠금장치와도 같은 톱니바퀴들이 얽혀있었다.
‘그분’이라는 자는 그 문에 손을 대었다.
끼리리-릭, 끼릭, 끼릭.
불규칙하게 얽혀있던 톱니바퀴들이
마찰음을 내며 제자리를 찾아갔고
그에 따라 잠금장치가 풀리기 시작했다.
끼리리리─릭.
모든 톱니바퀴가 제자리에 안착하며
거대한 문이 서서히 열렸다.
쿠르르-릉.
묵직한 울림과 함께 열린 문 안쪽으로
신전이 있는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푸르른 나무들과 싱그러운 풀들과 꽃들
그 사이로 반듯한 돌길이 있었고
그 끝에 빛으로 둘러싸인 새하얀 신전이 자리해 있었다.
흡사,
작은 유토피아를 보는 것 같은 풍경.
타지헤 왕국의 국왕 눈에는 그렇게 보인 방면,
검은 옷 조직의 ‘그분’이라는 자와
동행한 슈젠의 눈에는 전혀 다른
‘아마겟돈’처럼 보였다.
그런 그곳에 한 인물이 있었다.
“요-, 왔는가?”
“준비는?”
“성격 급하네. 인사도 없나?”
“수고했다, 고생했다는 인사치레 정도는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얀색의 간소한 복장을 한 자는
‘그분’이라는 자를 못마땅하게 봤다.
“하아-, 이래 봬도 ‘신의 아이’인데 너무 홀대하는군.”
신의 아이인 그 자는
한숨을 쉬며 머리를 절레절레 좌우로 흔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분’이라는 자는 다시 물었다.
“준비는?”
그 말에
신의 아이인 그자는 인상을 구겼으나
곧 밝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거의 다 끝났어.”
그러면서 양팔을 넓게 펼쳐 보였다.
그러자,
풍경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투명한 돌을 품은 수많은 하얀 창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제 처형자의 하얀 창 힘을 호환시키기만 하면 돼.”
신의 아이인 그자는 하얀 창들을 보며
기대에 가득 차 하면서 말을 이었다.
“그때가 되었을 때.”
“모두 모이면 준비는 완벽이 끝나는 거지.”
“제물들도 충분하니 문제 될 것 없어.”
“호오오─.”
하얀 신전과
어우러져 있는 수많은 하얀 창을 보던
슈젠은 감탄을 했다.
“누구지?”
“네가 데리고 온 것을 보면 일반 조직원은 아닐 텐데.”
“‘엿보던 자’ 중, 새로이 눈을 뜬 자다.”
“그래? 잘됐군.”
“주변 상황을 볼 수 있으면 그에 맞혀 더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을 테니 말이야.”
신의 아이란 자는
이러저리 주변을 둘러보는 슈젠을 보며 한마디 했다.
“허나, 적당히 둘러봤으면 하는데.”
“그 눈빛이 좀 별로라서.”
그 말에
슈젠은 주변을 둘러보던 것을 멈추고
허리 숙여 인사하며 물러나는 것으로
대신 대답을 했다.
슈젠의 하얀 눈동자와 달리
옅은 청회색을 띤 다른 쪽 눈동자가
서서히 원래의 푸른색 눈동자로 돌아갔다.
* * *
투명하다 싶을 정도로 옅은 청회색이던
류안의 눈동자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눈을 깜박이자
짙은 회색 눈동자로 돌아와 있었다.
그런 류안을
오두막에 있는 모두가 주시하고 있었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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