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77 화 – 필요에 의한···.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자한테 누군가가 봐준다는 것이 참 힘이 되고 고마운 것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제 177 화 – 필요에 의한···.
부서지고 내려앉은 벽면과 천장,
위태위태하게 서 있는 기둥들.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검은 옷 조직의 지하 근거지 내부.
그런 상황 속에서
부서져 쌓인 잔해들 위에 곧은 자세로 서 있는 검은 가면을 쓴 짧은 흑발을 한
류안의 모습에,
리아인, 워스만, 벨드라엔과 쌍둥이
그리고
금발의 남성과 회색 로브의 마법사는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혼자 다른 세계에 있는 듯한 모습의 류안 이었다.
시선들을 느낀 류안은 주변을 둘러보고는
한마디 했다.
“뭐 하고 있어?”
“·········!”
“제대로 대응 안 할 거야?”
류안의 말에
멍하니 있던 이들은 자신들이 하고 있던 상황을 인지하고 몸을 움직였다.
현재 누가 봐도
침입자들이 승기를 잡은 상태이기에
적당한 틈을 만들어 후퇴하면
아무런 의심 없이 자신들이 세운 계획, 목적을 달성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끝까지 방심해서는 안 되는 법.
금발의 남성과 회색 로브의 마법사는
거짓 없이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
침입자인
리아인, 워스만, 벨드라엔과 쌍둥이 둘에
맞서며 대응했고,
이들 역시 그에 호응하며 진지하게 맞서주었다.
그러던 중,
또다시 시선을 사로잡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콰르르르- 파지지직-!
리아인이 광범위하게 퍼트린
백금빛 전류 줄기들이 한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고
그 중심에 흑발의 남성.
류안이 있었다.
콰르륵- 파직! 파직!
피뢰침처럼 백금빛 전류들을 끌고 와 잔뜩 머금은 긴 막대는
선명하고 환한 백금빛을 발하며
류안의 검은 머리카락과 위장용 검은 옷을
백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류안은 거칠게 백금빛 전류가 튀고 있는 막대를 수직으로 높이 들어 올렸다가
그대로 발밑 잔해더미에 꽂았다.
파직- 파라라라라-락!!!
막대가 꽂힌 곳을 중심으로
백금빛의 전류 줄기들은
잔해더미를 지나 바닥에 퍼지면서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파지리지리-직!
“우악-!!!”
벨드라엔은 순간 위협을 느끼며
자신의 발밑으로 뻗어가는 백금빛 전류 줄기들을 피해 몸을 움직였고
이는 워스만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이나 그 외 존재들한테는
가벼운? 감전으로 끝날 수 있으나,
신인 존재들한테는 다분히 위험성을 지닌 백금빛 전류.
“───!!!”
“─···!!”
검은 옷 조직의 지하 근거지 외진 곳에서
누군가가 놀라 외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지하 근거지에서 은닉하며
가만히 현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던
신들이 움직이는 것이 류안의 눈에 비추어졌다.
그것을 본 류안은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백금빛 전류 줄기들을 교묘히 움직여서는
리아인한테 손길을 주어 뒤틀리게 한 신과
그와 상관없는 신들을 분류해 떨어트려 놓았다.
류안은 리아인한테 고갯짓하며 움직였고
리아인은 그 고갯짓에 따라 움직였다.
그러다,
다시 움직임을 멈춘 이들을 보며
류안은 또 한마디 했다.
“뭐해? 하던 것 마무리해.”
“·········.”
하지만,
이번에는 좀 전과는 달리
다들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어렴풋이 소리가 들린 곳으로 유유히 향하는
류안과 리아인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쿠르릉- 쿵! 쿵! 쿠앙-!!
잔뜩 금이 간 천장이 무너져 내리면서
자신들 주변으로 떨어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 * *
타다다다─.
균열로 뒤덮인 천장과 벽면이 가득한 통로에
두 사람의 내달리는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리아인과 함께
검은 옷으로 위장해주었던 그림자 정령이 제자리인 그림자로 돌아가면서
원래의 옷과 검고 긴 머리카락을 한 류안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둘의 앞에
신비로우면서 남다른 기운을 풍기고 있는
신들의 공동 영역이 눈에 들어왔다.
리아인은 망설임 없이
그 영역 안으로 발을 움직여 들어갔다.
영역 안은 옅은 안개가 드리워져 있었고
몽환적이면서도 흐릿한 풍경들이 자리해 있었다.
뭔가 이곳에 오래 있으면 홀려
넋을 뺏길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류안이 준 하얀 창의 기운 덕분인지
리아인은 불쾌감은 좀 있었으나
홀린다거나 불편함, 움직임에 제약 같은 영향은 받지 않았다.
“잘 마무리하고 와.”
류안의 말에
리아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류안은 그런 리아인의 어깨에 손을 가볍게 얻었다 떼면서 다른 방향으로 발을 옮겼다.
리아인은 자신한테 손길을 준 신들한테
뒤틀림을 되돌려주기 위해.
류안은 다른 신들이
리아인을 방해 못 하도록 해주기 위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 향해갔다.
길지 않은 짧은 고요함이 내려앉은
검은 옷 조직을 조력해 주고 있는
신들의 공동 영역 안.
콰르르릉-.
백금빛 전류 줄기들이
거대한 나무를 연상케 하며 솟구쳐 오르더니
가지를 넓게 펼치듯
몽환적인 하늘을 가득 채우며 퍼져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관을 보이던
백금빛 전류 줄기들은 스르르 사라져 갔다.
“후우-···.”
리아인은 숨을 한번 내쉰 후,
신이 소멸이 되면서 잔재로 날리는 가루들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신 자기들끼리 매긴 등급 기준에서
낮은 등급이라 그런지 두 명이기는 했지만,
‘작음의 신’을 상대했을 때보다
그리 힘들지 않았다.
뭐, 작음의 신도 그렇게 힘들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어찌 되었든 간에
일단 이곳에서의 자신이 할 일은 끝났으니
류안을 데리고 돌아가기 위해
리아인은 발을 움직였다.
그렇게 류안과 갈라졌던 곳을 지나서
몇 걸음 더 움직이자,
저 멀리 누군가의 처절한 외침이 들려오고 있었다.
“─···!!”
“-···하는 짓이냐?”
“대체 네놈한테 무슨 자격이 있어서 이런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르냔 말이다!!!”
은닉하고 있던
다른 몇몇 신들은 모두 소멸하고
혼자남은 신이 류안을 향해 울분을 터트리면서 소리치고 있었다.
“네 녀석이 벌인 짓으로 이 세계에 어떤 악영향이··· 재앙이 올지 알기는 하냔 말이다!!”
역설을 토해내는 신을 보면서
류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는
바닥에 볼품없이 엉덩방아 찧고 앉아 있는 신 앞에
무릎을 굽히고 쪼그려 앉았다.
“으음-, 잘 이해가 안 되는데.”
“무슨 재앙이 온다는 거야?”
류안의 물음에 신은 어이가 없었다.
“그걸 정녕 모르고 하는 소리냐?”
“아무리 하찮은 신이라 할지라도 각자 세계를 움직이며 조율하기 위한 역할이 있다.”
“그런 신들을 네놈이 함부로 건드리는 바람에 자리가 비워지고 그로 인해 세계는 틀어지게 될 것이란 말이다!”
“·········.”
목소리가 갈라지도록 외쳐대는 신의 말은
얼핏 별생각 없이 들으면 맞는 말 같았다.
다른 생명체, 존재들과는 달리
신들은 필요와 염원으로 인해 탄생하는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근데 말이야.”
“네 말대로라면 이상하지 않아?”
“······?”
“내가 근래에만 소멸시킨 신이 수십 명이거든.”
근래에 류안이 소멸시킨 신들.
레쉬아 왕국의 마을 ‘뉘스’에서
침입한 적들을 상대하며 소멸시킨 신만 해도 스무 명이 넘었고
그 외에도
이래저래 소멸시킨 신들이 있었다.
거기에 더해
리아인이 하얀 창으로 뒤틀림을 되돌려주면서 소멸시킨 신도 있었고.
심지어는 검은 옷 조직 내에서도
존재가치를 들먹이면서
하얀 창을 이용해 소멸시킨 신이 있었다.
그렇다 한들,
현존하는 신의 수에 비하면
그다지 많은 수는 아니었지만,
표정 없이 담담하게 말하는 류안의 모습에
신은 극한의 공포감이 올라오고 있었다.
“정말 네 말대로라면 이미 몇십 명의 신이 소멸이 되어 그만큼 많은 빈자리가 생겼는데, 왜 세계는 틀어지지 않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을까?”
류안은 굽힌 무릎 위에 팔을 올리고
한 손에 턱을 괴면서 고개를 갸웃하면서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네 말대로라면 나 역시 필요하니까 태어났다는 건데-.”
“무슨 헛소리를-!!!”
류안의 말에
신은 공포를 넘어선 분노에 외쳤다.
“세계가 세계를 구성하는 데에 필요한 존재들을 학살하는 존재를 필요로 했을 리가 없다!”
“너 같은 녀석이 세계가 필요로 해 태어난 ‘신’일리가 없단 말이다!!”
“이제껏 학살과 관련된 신이 태어나지 않은 것이 그 증거다!”
신은 눈앞의 존재를 부정하며
흡사 저주와도 같은 말을 내뱉어댔다.
“넌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다!!!”
“-!!!!!”
신의 외침에 류안이 아닌
근처까지 와 모두 들은 리아인이 격분하면서
하얀 창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그것을 본
류안은 손을 들어 보이며 제지했고
리아인은 바라봤다.
리아인은 류안의 시선에
감정을 추스르고 손에 들어간 힘을 뺐다.
하지만,
경계는 늦추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허튼 말이나 행동을 하면 바로 하얀 창을 휘두를 생각을 했다.
그런 리아인을 보던 류안은 시선을 돌려서
앞에 있는 신을 바라봤고
아무런 동요 없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음, 뭔가 착각한 것 같은데.”
“난 ‘학살의 신’이 아니야.”
“무슨 억지를-.”
“억지 아냐.”
“난 ‘신의 학살자’이긴 하지만.”
“‘학살의 신’이 아니란 거지.”
신은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장난인가 싶었다.
“같은 신들끼리도 서로를 죽이는, 소멸시킬 수 없는데.”
“어째서 난 신들을 소멸시킬 수 있을까?”
“그건···.”
신은 류안의 물음에 아무런 말도 못 했다.
‘대학살’을 일으켰던 심판자도
신을 직접 소멸시키지는 못했으며
‘심판’이라는 명목하에 하얀 창을 만들어
자신의 다섯 아이한테 처형을 맡겼었다.
그러한데,
눈앞에 있는 검은 천사···
아니,
어린 신은 아무렇지 않게 신을 소멸시켰다.
신은 인정할 수 없는 눈앞의 존재를 봤고
류안 역시 눈앞의 신을 바라봤다.
‘흠, 묘하네.’
류안은 묘했다.
자신이 신을 학살할 수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막 소멸시키는 것은 아니었다.
딱히 학살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어찌하다 보니,
소멸을 당한 신들이 자신의 심기를 건들려 그렇게 된 것이고
그리고 그런 신들을 보면
이 세계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들이었다.
이는 류안이 말한 것처럼
수십 명의 신이 소멸을 당했는데도
이 세계에 별 영향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거 알아?”
“순리의 신이나 전쟁의 신, 멸[滅]의 신은 내 존재에 별말 없어.”
“미래의 신은 좀 걱정하는 것 같긴 하지만.”
“5대 원소의 신도 별말 없었고.”
류안의 말에
신은 믿을 수 없다며 흉상을 들어내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보며
류안은 고개만 갸웃거리고 있었다.
‘초대 심판자의 사념체와 융화의 신 사념체도 내 존재를 부정하는 말은 없었지.’
그런데 왜 눈앞의 신은 저런 말을 하는지
류안은 의문이었다.
그렇게 말한다 한들 아무런 타격도 받지 않는데.
“음, 내가 한가지 알려줄까?”
“·········?”
“넌 신들의 빈자리에 의해 이 세계가 틀어질 거라 했는데.”
“그 반대의 경우는 생각해 본 적 있어?”
“···!!!!!”
“필요 이상으로 너무 많은 신으로 세계가 틀어질 위험에 처해 그런 신들을 없애기 위해 태어난 존재.”
“그게 ‘신의 학살자’이거든.”
그러면서
류안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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