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84 화 – 끈기와 인내가 필요한 작업.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자한테 누군가가 봐준다는 것이 참 힘이 되고 고마운 것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제 84 화 – 끈기와 인내가 필요한 작업.
에니한테 다가간 류안은
활화산 용암 안에서 습득한 투명한 돌을 보여줬다.
투명한 돌 내부 중심에는
용암을 닮은 금빛이 감도는 붉은색의 불이 조용히 맴돌고 있었다.
“내가 가져도 돼?”
활화산이 있는 이곳은 엄연히 에니의 영역.
그러했기에
류안은 에니한테 허락을 구했다.
“물론, 가져도 돼. 다른 거 더 필요한 것은 없니?”
에니는 두말없이 허락했음은 물론이고
더 갖고 싶은 것 없냐고 줄 수 있는 것은 다 퍼 줄듯이 물었다.
류안은 불 원소가 매개체로 있는 투명한 돌이면 충분했고 딱히 더 필요한 것도 없기에
다른 말을 했다.
“활화산 안에 남아 있는 뒤틀린 기운은 조만간 용암에 의해 사라질 거야.”
세 명의 그릇이 뒤틀림을 담은 것도 있지만
대부분 뒤틀린 기운은 류안이 투명한 돌을 습득하는 과정에서 사라진 상태로
남은 뒤틀린 기운은 용암으로 인해 자연적으로 소멸할 정도로 양이 적었다.
“뒤틀림이 모두 사라지면 역할이 끝난 활화산[活火山]은 휴화산[休火山]이 될 거고, 뒤틀림을 보관할 장소로는 부적합해지니까. 음······.”
류안은 말을 하다말고 고민했다.
뭘 고민하는 것인지 짐작이 가는 에니는
자신을 도와주기 위해 애쓰는 어린 소년의 모습에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신경 써주지 않아도 돼. 이곳은 내 영역이니 내가 잘 알아서 하면 되는 것이고. 적당한 장소도 이미 있으니 걱정하지 마.”
그러고는 벨드라엔을 봤다.
매우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말했다.
“벨드라엔이 정기적으로 이곳에 와서 도와주면 되니까, 아무런 문제 없어. 그렇지?”
부르면 와서 뒤틀림을 멸[滅]하라는 의미로
벨드라엔은 한 곳에 잘 모아둔 뒤틀린 기운이면 굳이 머스킷과 투명한 돌 탄환을 사용할 것 없이
제약을 풀어도 주위에 영향을 주지 않게 멸[滅]할 수 있었다.
거기에다가
에니가 오래전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정말 힘들었던 쌍둥이 둘을 돌봐준 빚이
이번 도움으로 갚을 수 있는 것이 아닐 정도 크고 고마운 것이었기에.
“그래, 그 정도는 얼마든지 부려먹어도 돼.”
벨드라엔은 화답했다.
“고마워.”
에니는 모든 것이 잘 마무리되어
자신을 도와주러 온 이들이 돌아갈 수 있게 통로를 열었다.
“조심히 잘 돌아가. 그리고,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얘기해, 도와줄 테니까.”
에니는 류안의 이마에 가볍게 입맞춤을 하며
작별 인사를 했다.
“???”
그녀의 뜻밖의 행동.
‘신의 가호[加護]’를 내리는 모습에
통로 안으로 들어간 모두가 놀라는 가운데
류안은 의문과 함께 왠지 모를 기시감에 이마에 손을 갖다 대었다.
그러는 사이,
리아인이 황급히 에니한테서 류안을 떨어트리고는 가리듯 팔로 감쌌다.
그리고 얼른 통로 안으로 들어갔다.
에니는 그 모습을 귀엽게 바라보며
손을 흔들어 보였고
통로의 입구가 닫히면서 반대쪽에 오두막으로 통하는 출구가 열렸다.
그 출구 쪽에서
쇼트와 키사, 루카테르까지 마중 나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 *
에니의 영역에 무사히 다녀온 이틀 후.
오두막의 거실.
레쉬아 왕국의 국왕 레이쉴.
그의 눈동자에 선물을 앞에 둔 아이처럼 기대감이 가득 차 있었다.
“이것이 용암의 불 매개체인 투명한 돌이라고?”
레이쉴이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 탁자 위
용암을 품은 듯 불길을 맴도는 투명한 돌이 있었다.
류안이 이제껏 보여 준 투명한 돌중
극히 이례적인 액체형 투명한 돌은 제외하고
대체로 매개체가 투명한 돌을 봉인하듯이 겉면을 감싸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이 투명한 돌은 매개체를 품고 있었다.
“이 돌을··· 나한테 주겠다고?”
레이쉴의 눈동자는 이젠 순정물에 나오는 왕자처럼 과하다 싶을 정도로 반짝이고 있었다.
“지금은 아니고 완성되면 줄게.”
류안은 그러면서 붉은 브로치의 아공간에서
불 원소의 신이 준 부싯돌을 꺼냈다.
레이쉴 뿐만 아니라
리아인, 세이지, 벨드라엔과 쌍둥이 제우와 네우, 쇼트와 살쾡이 수인 키사, 루카테르.
이젠 빠지면 아쉬울 것 같은 워스만까지
이름 나열하기 힘들다···
오두막에 있는 모두의 시선이 투명한 돌에서 부싯돌로 옮겨졌다.
따닥★!
류안은 부싯돌을 치며 불씨를 만들었고
불씨는 곧 불 원소의 기운이 되어
투명한 돌 속 불길로 스며 들어갔다.
그리고는,
화아아아─악───······.
투명한 돌에서 금빛을 품은 빛이
불타는 태양처럼 밝게 빛났다가 이내 사그라들었다.
류안은 투명한 돌을 손바닥에 올리고
레이쉴한테 내밀었다.
“만져볼래?”
“어?”
국왕 레이쉴은 품위는 어디 맡겨둔 듯
저도 모르게 어벙한 소리를 냈다.
자신이 불의 힘을 가지고 있고, 불 원소가 매개체가 있는 투명한 돌이라고 한들,
다룰 수 있을 리가 만무했으나···
다루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별문제 없이 만질 수는 있는 것 같았다.
레이쉴은 마른 침을 조용히 삼키고는
류안 손바닥 위의 불길을 품은 투명한 돌에 조심히 손 갖다 대었다.
레이쉴의 손끝이 닿은 그 순간,
투명한 돌 속 불길에 깃든 불 원소 기운이
레이쉴의 불 속성 능력과 공명하면서 자연스럽게 어울림을 이루었다.
그리고 이에 반응하며
레이쉴의 선명한 붉은 머리카락이 타오르는 불처럼 일렁거렸다.
그 모습을 류안을 뺀 모두가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며 침묵하고 있을 때.
“음, 잘 조화[調和]되었네.”
류안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이젠 만들기만 하면 되겠어.”
그러고는 돌을 브로치 아공간에 넣었고
레이쉴의 불처럼 일렁이던 붉은 머리카락은 원래대로 돌아갔다.
“다미엔 것도 만들 것ㅇ···.”
“잠깐, 류안. 뭐를 만든다는 거야?”
워스만이 물음을 하던 중
리아인이 치고 들어와 물음을 던졌다.
그리고
놀람을 넘어서는 답을 들어야 했다.
“하얀 창.”
“······만들 수 있는 거야?”
류안한테 심판자 권능이 있는 걸 안 시점에서
워스만은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던 방면,
벨드라엔을 포함한 모두가 상상치도 못한 말에 경악하고 있었다.
“아마도.”
“아마도?”
“응, 처음 시도하는 것이라 확실하지 않아.”
류안은 만들어 봐야 알 수 있다고 했지만
모두가 의심 없이 확신했다.
‘만들 수 있구나.’
눈앞의 어린 신.
류안은 늘 상식을 뒤엎어버리는 신이었으니까.
참고로 설명을 덧붙이자면,
하얀 창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류안이 듀아 왕국의 검은 호수에서 투명한 돌과 함께 세 번째 처형자의 하얀 창을 습득했을 당시,
‘심판자’의 사념체가 알려 준 것이었다.
그리고
리아인은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말을 또다시 들었다.
“리아인 네 것도 만들고 있어.”
“응? 내 것?”
리아인의 능력은 마찰을 이용한 전류
전기계열이었고
속성을 굳이 따진다면
부싯돌이 불의 신 신물[神物]이듯이
불 원소 속성에 속한다고 할 수 있었다.
“불 원소 매개체 투명한 돌이 또 있어?”
“응? 찾아보면 어딘가에 있겠지만. 지금 나한테는 한 개뿐이야.”
“그럼, 무엇으로 내가 쓸 창을 만든다는··· !!!!!”
있었다.
리아인과 이미 공명한 투명한 돌.
힘을 폭주시키는 돌.
하지만,
그 투명한 돌은 매개체가 없었다.
리아인의 표정을 본 류안은
리아인의 의문에 답을 해주었다.
“리아인. 네 것은 레이쉴하고는 다른 방식으로 만들 거야.”
‘다른 방식? 무슨 이유가 있나?’
리아인은 새로운 의문이 들었고
레이쉴과 자신의 다른 점을 비교하던 중,
가장 큰 차이점을 인지했다.
뒤틀린 아이.
자신은 뒤틀린 불안정한 상태라는 것.
그동안 류안이 뒤틀림을 가려주고 있어서 잊고 있었던 사실.
리아인의 표정이 가라앉고 있었다.
갑자기 풀죽은 리아인의 모습에
류안은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자신이 한 말 중에 원인이 있나 싶어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다른 말을 했다.
“난 레이쉴만 불렀는데, 다들 왜 여기 있어?”
류안이 고개를 갸웃하며 하는 말에
아무도 답하는 자가 없었다.
류안이 뭔가 하는 것 같아
구경하러 왔다고 하기에는 좀 그랬으니까.
괜히 잘 못 말했다가는
구경거리 취급하는 오해가 생길까···
부르지도 않았는데도 온 이들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다들 바쁜 일 없어?”
“어? 어.”
류안의 물음에 벨드라엔이 어벌쩡하게 답했다.
“그래? 그럼 좀 도와줘.”
“어? 뭔데? 말만 해. 도울 수 있는 것이면 최선을 다해서 도와줄게.”
다들 뭘 도우면 되는지 기대하고 있었고
좀 과한 반응에 류안은 왜 이러나 의아했다.
잠시 후,
톡. 톡. 톡. 토독. 톡─.
오두막 거실에는 침묵이 깔린 가운데
잘 마른 해바라기 꽃에서 씨앗을 떼어내는 소리만이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류안과 리아인, 벨드라엔과 쌍둥이 둘, 국왕 레이쉴과 누나인 세이지, 워스만이 탁자에 둘러앉아 조심히 씨앗 탈곡작업을 하고 있었고
자리가 좁아 쇼트와 키사, 루카테르는 주방의 식탁에서 열심히 씨앗을 떼어내고 있었다.
톡. 톡. 톡···.
얌전히 말없이 씨앗을 한 알씩 떼어내던 워스만이 손을 멈췄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갈퀴처럼 구부리고는
과감히 해바라기 꽃으로 향하던 그때.
“그런 식으로 억지로 씨앗을 긁어서 떼어내려고 하면 껍질에 흠집이 날 수 있어서 안 돼.”
작은 투명한 돌을 품은 해바라기 씨앗.
아무리 작다 해도 엄연한 투명한 돌이기에
매개체인 껍질이 부서지는 경우 뭔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었다.
류안의 말에 움찔한 워스만은
갈퀴 형태로 힘을 주던 손을 스르륵 펴고는
다시 얌전히 씨앗을 한 알씩 조심해서 떼어냈다.
그와 더불어
벨드라엔과 쌍둥이 제우, 레이쉴.
주방에 있는 루카테르도 움찔하며 손을 멈췄다가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톡. 토독. 톡. 톡. 톡─.
열다섯 송이에 달하는 해바라기 꽃.
한 송이당 맺힌 씨앗은 적게 잡아도 천 개 이상.
다들 아무런 불만도 표하지 않고
묵묵히 씨앗 떼어내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지금 제일 고생하는 것은
그 누가 봐도 류안 이었으니까.
류안은 떼어낸 수많은 씨앗을 일일이 감별하고 있었다.
머스킷 탄환으로 쓸 수 있는 크기의
투명한 돌이 제대로 영글어 있는 씨앗.
돌은 있지만 크기가 작은 씨앗.
혹은 너무 큰 씨앗.
빈껍데기 씨앗.
류안만이 할 수 있고
제일 신경 써서 해야 하는 작업.
단순 반복작업일 뿐인 이들은 말없이 열심히 조심히 해바라기 꽃에서 씨앗을 분리해 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면서
탁자와 식탁 위에는
수백? 수천 개를 넘어선 씨앗들이 쌓이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창문 밖의 하늘이 붉게 물드는 것을 넘어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씨앗 떼어내기가 끝났다.
“으그극─···.”
레이쉴이 국왕의 체면 따윈 잊고 앓는 소리를 내며 팔을 쭉 뻗어 기지개를 꼈다.
장장 몇 시간을 한 자세로 손만 움직였으니 온몸이 찌뿌둥한 것은 당연한 거였다.
인형을 몸에 두른 벨드라엔과 워스만도 몸이 굳는 것 같아 스트레칭을 했고
주방에서는 루카테르는 기절한 듯 식탁 위에 머리를 얻은 채 잠들어 있었으며
그 위에 살쾡이 모습의 키사도 엎어져 잠들어 있었다.
리아인, 쌍둥이 네우, 세이지, 쇼트는
요령 있게 중간중간 몸을 풀어가면서 해
그나마 멀쩡해 보였지만···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한가득했다.
그렇게 할 일을 끝낸 이들이지만,
자리에서 쉽사리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류안은 아직 감별 작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꿰뚫어 보는 힘을 가진 세이지가 도움을 줄 수도 있었으나···,
그녀가 힘을 사용하면
힘의 영역 안에 있는 자들은 모두 꿰뚫어 보는 시선의 여파에 불쾌감을 느껴야 했고
그냥 넘길 수 있는 수준의 불쾌감이 아니라
차마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가 없었다.
그러했기에
몇 명은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움직였다.
쇼트는 평소처럼 류안과 고생한 이들을 위해 차와 간단한 야식을 준비했고,
레이쉴과 벨드라엔은 씨앗을 떼어내고 남은 해바라기 꽃을 소각하고 멸[滅]했다.
쌍둥이 제우는 류안이 분류해 놓은 씨앗 중
가장 많은 개수의 씨앗 크기에 맞혀 머스킷을 개량하는 작업을 하면서
크기 때문에 버려지는 씨앗이 없도록 여러 구경의 소형 머스킷도 제작했다.
네우는 그 옆에서 보조했다.
세이지는 그런 그들을 미소지으며 보다가
국왕 레이쉴과 수호신 벨드라엔을 찾아 눈물짓고 있을 국정 업무에 진심인 재상들을 달래주러 왕궁으로 돌아갔다.
“하아암─···.”
류안의 하품 소리가 들렸다.
리아인이 바로 반응하며 류안의 안색을 살폈다.
“···다 끝났어?”
“응, 다 했어. 하암─···.”
류안은 눈을 비비며 벨드라엔과 쌍둥이 둘을 봤다.
“씨앗··· 누가 보관할 거야?”
“내가─!!!”
쌍둥이 제우가 얼른 손을 들어 보였다.
그 모습에
예전 여행자금을 맡았다가 잃어버린 전적이 있는 벨드라엔은 뚱한 표정을 했지만
스스로 인정하는 부분이라 가만히 있었다.
아예 못 쓰는 씨앗을 제외한
약 만오천 개의 투명한 돌 씨앗 탄환은
제우가 만든 보관함에 넣었고
네우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보호막을 한 겹 씌워주었다.
그리고 소환마법을 걸은 뒤,
벨드라엔한테는 탄환이 든 보관함을 소환할 수 있는 마법 장치를 하나 건네주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워스만이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신’과 ‘아이’.
그리고 시선을 돌려 류안과 리아인을 봤다.
류안은 어느새 탁자 위에 팔베개한 채 잠들어 있었고
리아인은 그런 류안을 2층 방으로 옮기기 위해 조심히 업으려고 하다가 인기척에 뒤를 돌아봤다.
뒤에 워스만이 있었다.
리아인은 인상을 구기며 경계를 하는 사이
류안을 잠시 보던 워스만은 손을 뻗더니
리아인의 머리를 한번 툭 치고는
말없이 오두막 밖으로 나가서는 전용통로를 열어 듀아 왕국으로 돌아갔다.
‘뭐야···?’
리아인은 종잡을 수 없는 워스만의 행동에
그의 손이 닿은 머리카락을 손으로 거칠게 털어내며 의아해했다.
그 모습을 이번에는
벨드라엔이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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