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61 화 – 바다 위에서 생긴 일.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자한테 누군가가 봐준다는 것이 참 힘이 되고 고마운 것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제 61 화 – 바다 위에서 생긴 일.
워스만은 짜증이 났다.
무역선이 잘 못 해서 파손되면 안 되기에
최대한 힘 조절하면서 검을 휘둘러야 했고
힘도 없는 것들이 계속해서 기어 올라오는 모양새에 짜증이 올라왔다.
“후───···.”
워스만은 인내하기 위해 숨을 고르고는,
서걱─.
바다 수인들을 향해 검을 다시 휘두르면서
드래곤 모습의 루카테르와 힘겨루기 중인 크라켄을 봤다.
‘차라리 여긴 리아인. 저 녀석한테 맡기고 저 바다 괴수하고 맞짱 떠?’
하지만,
그 생각은 곧 접었다.
이놈의 바다 수인들은 인해전술[人海戰術]인지, 어디서 이렇게 몰려오는 건지 끝도 없이 갑판 위로 기어 올라오고 있었으며
리아인도 무역선이 파손되지 않게 힘 조절하며 백금빛 전류 줄기들을 펼치고 있는 와중에 양쪽에서 기어오르는 저놈들을 혼자 상대하기에는 당연히 무리가 있었다.
“하아──···.”
워스만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짜증은 두말할 것도 없고
이런 식으로 상대하다간 정말 끝없이 시간만 허비할 것이며··· 그렇다고 한 방에 처리하려고 하다 무역선을 부술 수는 없었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지고 있는 그때.
저 멀리 보이는 작은 섬 전체에 회오리가 감싸듯 하다가 금세 사라지더니,
섬에서 검은 존재가 무역선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 존재는 바로 류안으로,
작은 섬에 뭘 했는지
원래의 형태로 돌아간 밤하늘을 닮은 검고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날아오고 있었다.
류안은 검고 긴 머리카락과 잘 어울리는 검은 날개를 한번 펄럭이며 공중에 멈춰 섰다.
“어? 뭐 하고 있는 거야?”
크라켄의 다리들에 목과 온몸에 휘감겨 있는 드래곤 모습의 루카테르는 끊어지지 않는 다리 하나를 입에 물고 잘근거리며 씹어대고 있었다.
그러던 중.
파지르르르─르────!
“크헉─!!!”
무역선에서 백금빛 전류들이 뻗어 나오더니
그대로 바다 수면에 쫙─ 퍼지며 크라켄과 루카테르를 덮친 것으로.
파직 거리며 검게 그림자 진 몸체.
하얗게 드러나는 골격.
고전적인 만화 연출이 눈앞에 펼쳐졌다.
“야, 인마! 조심하라니까─!!!”
루카테르는 다시 리아인한테 소리쳤으나,
무시당했다.
이런 식으로 아군으로부터 공격 아닌 공격을 당하니 루카테르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풍덩. 풍덩. 풍덩─···.
그렇게 무시당하는 루카테르는 뒤로한 채,
바닷물에 뭔가가 빠지는 소리에
류안은 시선을 돌렸고
워스만의 검에 의해 조각나 바닷물 속으로 빠지는 바다 수인들을 보았다.
그와 동시에
바닷물 속에 빠진 바다 수인들의 조각들이 각각 한 명의 바다 수인이 되어 무역선에 기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플라나리아 같네.”
류안의 중얼거리는 듯한 말을 들은 리아인은 무슨 의미인지 바로 인지하고
워스만한테 공격을 멈추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공격을 멈추는 순간
저 바다 수인들은 무더기로 갑판 위로 기어 올라올 것이고
자신들은 둘째 치더라도
무역선 선실 안에 있는 일반 사람들이 위험해지기 때문이었으며
그들을 일일이 지켜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워스만도 그런 상황을 짐작하고 있었으나,
어쩔 수 없이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다른 것이 있다면
절단시키지 않고 단순히 배 간판 밖으로 밀어내기 위해 힘을 더 절제했다는 것.
휘잉─···. 퍼벅! 풍덩─.
전쟁의 신인 만큼
다른 공격 능력들이 있기는 했다.
각종 마법과 함께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전쟁 무기를 소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바다 위의 무역선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무엇보다 무역선이 부서지지 않게
그와 함께 안에 있는 일반 사람들도 피해당하지 않도록 하려니,
거기에 한 가지 더
검은 옷 조직의 엿보는 눈을 피해야 하기에
최대한 힘을 자제하면서 원거리 및 다중 공격을 할 수 있게 선택한 것이 검기[劍氣]였다.
그런데···,
그 검기가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
플라나리아 같은 적의 수를 늘려 놓았다.
그로 인해 다른 방법으로 일일이 상대하기에는 그 수가 너무 많아졌다.
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생긴 실책.
“젠장, 빌어먹을─···.”
크라켄은 둘째 치더라도
이 짜증 나는 바다 수인들을 단순히 멈춰 세우고 떨구어내는 것에 그치지 않는
재생할 틈 없이 단숨에 해치워 없앨 힘이 필요했다.
무역선과 사람들을 지키면서···.
이 까다로운 상황에 맞는 그 힘이 뭘지
워스만 뿐만 아니라 리아인도 고민하고 있던 그때.
“류안, 피해─!!!”
루카테르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크라켄의 다리 하나가 류안을 향해 뻗어가고 있었다.
그 상황에 대처하지 않고
멍하니 가만히 있는 류안을 본 모두는 걱정과 함께 의아함이 밀려왔으나,
이내 곧 사라졌다.
크라켄의 다리는 공격 의사가 없다는 듯
천천히 류안한테로 뻗어가 멈춰서는 그의 손에 들린 물체를 가리켰다.
류안은 고개를 갸웃하면서
크라켄의 초점 없는 눈동자를 보고는
다리가 가리키고 있는 자신의 손에 들린 물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저 멀리 있는 작은 섬에 갔을 당시.
류안은 그 중심부에 있는 바위틈에 끼여져 있던 것을 가볍게 빼내고는 옷깃에 달린 작은 붉은 브로치의 아공간에 넣으려던 중,
일순 회오리바람이 섬 전체에 휩쓸고 사라지는 통에 손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았고
무역선과 크라켄의 모습이 보여
손에 들린 것을 아공간에 넣는 것도 미룬 채, 곧바로 섬을 나온 것인데.
크라켄 다리의 반응을 보니
섬에 불은 회오리바람이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을 뒷받침하듯이
크라켄의 다리는 여전히 류안의 손에 들린 물체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다리들에 휘감겨 있는 루카테르도 보면서 류안의 손에 있는 것 또한 봤다.
‘투명한 색의 오카리나?’
이렇게 루카테르가 그것의 정체를 파악해가던 사이.
류안은 손에 들린 것을 찬찬히 보다가
입에 갖다 대고는 후-하고 불었다.
삐이잉──···♪.
청아한 피리 소리가 바다에 밤하늘에 얕게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리아인, 워스만, 쇼트와 함께 선실 복도 출입구에 있는 비크도 류안한테로 시선을 옮겼다.
그와 함께
갑판으로 계속해서 기어오르던 바다 수인들이 일제히 움직임을 멈추고는 공포에 떠는 것을 볼 수 있었으며,
그 이유 또한 바로 알 수 있었으니.
크라켄의 초점 없는 눈동자에 초점이 돌아오고 있는 것이었다.
완전히 눈빛이 돌아온 크라켄은
드래곤 모습 루카테르의 목과 몸에 휘감고 있던 다리들을 풀었다.
그런 뒤,
류안을 한번 힐끗 보고는 무역선을.
정확하게는
무역선에 기어오르다 멈춘, 그 주변 바다에 있는 바다 수인들을 쳐다봤다.
─────···.
분노에 찬듯한 소리 없는 울림이 울렸다.
얼마 전,
크라켄이 우연히 세이렌의 섬 근처 바다 수면 위로 나왔다가 섬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에 순간 홀려 있던 그때,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바다 수인들이 어떻게 알았고 무슨 수를 쓴 것인지··· 그 순간을 파고들어 교묘히 크라켄을 조정하는 것에 성공한 것이었다.
분노를 표현하듯이
크라켄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기 시작했으며
그에 따라 몸도 크게 부풀었다.
그 모습을 본 바다 수인들은 모두 겁을 집어먹고 혼비백산 도망치려고 하던 그때,
촤아아아아───······!
크라켄이 내뿜은 검은 먹물을 뒤집어 섰다.
그 먹물은 무역선 전체와 주변 바다까지 뒤덮어 까맣게 물들였으며
당연히 갑판에 있던 네 명도 먹물에 뒤덮어져 몸 전체가 완전히 새까매졌다.
기분 나쁘고 비릿한 향에
새까맣게 변한 몸에서 유일하게 보이는 눈만 멀뚱히 뜬 채, 네 명의 얼굴이 점점 구겨지고 있는 사이.
치이이이─익────······.
거친 소리와 함께 크라켄의 먹물은 검은 연기로 변하며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무역선도 갑판에 있는 네 명의 몸에도 아무 변화와 이상도 없이 먹물만 사라져 갔다.
그러나,
바다 수인들은 강한 산성 액체에 녹아 없어지듯이 온몸이 흘러내리며 사라지고 있었다.
치이이익───···.
길지 않은 시간이 흐른 후,
옅은 비린 향만을 남긴 채,
먹물도 바다 수인들도 깔끔히 사라졌다.
짜증 나고 위험했던 상황이
아무런 피해 없이 단숨에 해결 일단락되었다.
허무하다 싶을 정도로
너무 쉽게 상황이 정리되어 갑판 위에 있는 이들이 잠시 멍하니 있는 사이.
검은 날개를 펄럭이며 류안이 갑판 난간에 발을 디디며 내려왔다.
크라켄의 다리들에서 벗어난 드래곤 루카테르도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 갑판 바닥에 착지했다.
그 둘의 모습은 마치,
악을 멸하고 강림하는 바다의 신화 속 존재 같았다.
류안은 날개를 거두고는
난간에서 깡총하고 갑판 바닥으로 내려오는 동시에 자신의 머리를 톡 치며 쓰다듬는 무언가를 느꼈다.
“???”
류안이 머리를 만지며 뒤를 돌아보자
크라켄이 다리 하나를 살랑 흔들어 보이며
바다 밑 깊숙한 곳으로 자신이 있을 곳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류안은 두 눈을 깜박이며 바라봤고,
크라켄의 모습이 심해 깊숙이 들어가 겉으로는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을 즈음,
몸을 돌려 선실 쪽으로 향하려 했다.
그리고, 움찔했다.
화가 난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묘한 표정의 리아인과 마주했기 때문이었다.
리아인은 류안의 얼굴을 보고는
시선을 움직여 그의 손에 들린 것을 봤다.
다른 네 명.
워스만, 루카테르, 쇼트, 비크의 시선도 손에 들린 것에 집중되고 있자
류안은 잘 보이게 손을 올려 보였다.
오카리나를 닮은 투명한 돌.
신기한 듯 보던 그들이 충분히 봤는지
다들 시선이 멀어지기에 류안은 투명한 돌을 옷깃에 달린 붉은 브로치 아공간에 넣었다.
그러던 중,
자신의 양어깨를 잡는 손힘이 느낀 류안은
리아인이 어깨를 잡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이 보았다.
목소리가 들려왔다.
“류안.”
“응?”
“어디 혼자 갔다 온다고··· 막지 않을 테니까. 다음부터는 어디 갈 때 꼭 얘기하고 가. 부탁이야.”
겉으론 괜찮은 척하지만,
불안함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알았어, 얘기하고 갈게.”
바로 대답해주는 류안의 목소리에
리아인은 안도하면서도 왠지 허탈감이 들었다.
‘후─우──···.’
리아인은 속으로 깊은 한숨을 쉰 후,
잡고 있던 류안의 어깨를 놓더니 이번에는 그의 등을 밀었다.
“···졸리지 않아?”
“응? 아니, 괜찮아. 안 졸려.”
류안은 정말 졸리지 않았다.
뒤틀린 기운을 다룬 것도 아니고
투명한 돌도 작은 섬의 바위틈에 껴있는 것을 그냥 그것도 손쉽게 빼냈을 뿐이었으며
크라켄이나 바다 수인들을 상대로 하얀 창을 사용한 것도 아니었다.
굳이 한 것을 밝히자면
단순히 오카리나를 닮은 투명한 돌을 피리처럼 한번 분 것이 다였다.
졸릴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리아인은 곧이곧대로 듣지 않았다.
투명한 돌을 가지고 온 데다가 작은 섬 전체에 휘몰아친 회오리바람도 봤기에
그곳에 뭔 일이 있었고
분명, 그로 인해 졸릴 것인데···
걱정하지 않게 괜찮다고 하는 것이라 여겼다.
리아인은 류안의 등을 미는 손에 힘을 조금 더 주며 밀었다.
“들어가서 자.”
“어? 괜찮아. 안 졸려.”
류안은 재차 ‘안 졸리다’라고 말했지만
리아인이 미는 힘에 선실로 향해야 했으며
그러는 와중에 의아함을 보이려 했으나.
“자─.”
리아인의 단호한 외마디 말에
선실 안으로 들어간 류안은 잠을 자야 했다.
그런데 웃기게도
류안은 침대에 누워 말똥한 눈을 잠시 깜박거리다가 눈을 감자 바로 잠이 들었다.
그 모습에 리아인은 흡족해했다.
갑판 위에서 선실 안으로 들어간 둘의 모습을 멍하니 보던 비크는
‘분리 불안증이 심한가 보네.’
라고 생각했고,
류안이 왜 비밀이라고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러던 중,
비크는 워스만, 쇼트, 루카테르가 별말 없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각각 선실로 향해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류안의 짧은 백발이 긴 흑발로 바뀌어 있는 모습에 의문이 드는 것은 자신뿐 인가하는 생각도 하다가
갑판에 혼자 남게 되었다.
“·········.”
바람 부는 소리도 없이 고요한 가운데
비크는 앞서 엉뚱한 생각을 한 것과는 달리
중요한 사실을 인지했다.
‘왜 조용하지?’
크라켄에 바다 수인들, 드래곤까지 나타나 그 난리가 법석을 쳤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도, 무역선의 선장이나 선원 중 그 누구도 갑판으로 나오지 않았으며
웅성거림조차 들리지 않았다.
의아함과 왠지 모를 감정이 자리하던 중,
서늘한 바다 밤바람이 불어와서는 비크를 스쳐 지나갔다.
휘이이─잉───······.
비크는 그 바람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고
그 순간,
류안의 목소리가 세이렌의 목소리 같다고 생각했던 것이 떠오르면서
정말 그 목소리에 홀려 좀 전의 환상을 본 것인가 싶었다.
비크는 온몸에 돋은 소름을 양손으로 문지르며 후다닥 자신의 선실로 들어가 침대의 이불 속에 몸을 파묻고는 잠을 청했다.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몸에 이롭다고 여기면서···.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 환영합니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