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73 화 – 빛을 가리다.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자한테 누군가가 봐준다는 것이 참 힘이 되고 고마운 것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제 73 화 – 빛을 가리다.
일렁임에서 완전히 모습을 보인 그자는
자신을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는 류안과 시선을 마주했다.
“검은 천사여. 그리 경계할 것 없다. 난 너와는 싸울 생각 없으니.”
그러나, 그 말에 상관없이
류안은 노려보듯 미간을 구겼고
그자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 했다.
“너의 선택을 방해하는 존재들은 내가, 우리가 제거해줄 터이니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고 있거라. 그리고 진정한 선택을 준비하거라.”
이 말과 함께 페디로스와 그자의 몸 전체에 일렁임이 퍼져 덮었으며
“선택하는 날. 그때 다시 보자꾸나.”
이내 일렁임이 사라지는 동시에
그 둘의 모습도 함께 사라지려던 그때.
콰─직──!!
“으아아─악───!!!”
일렁임을 찢으며 페디로스의 몸을 뚫고 지나가는 검은 창이 보였다.
그리고, 그로 인해
페디로스의 썩어가던 껍데기의 절반이 무너져 내리며 망가진 신의 몸체가 드러나고 있었다.
“크으으으─······.”
고통에 부들거리는 페디로스를 뒤로하고 일렁임을 만든 자는 류안을 바라봤다.
류안은 창을 던진 자세에서 몸을 바로 세우고
이 주변의 뒤틀림을 모두 흡수하고 검게 변한 하얀 창을 불러들였다.
그런 뒤 다시 창을 둘을 향해 던지려 자세를 잡았으나,
그러는 사이 이미 일렁임이 사라짐과 함께
그 둘의 모습도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
류안은 잠시 일렁임이 사라진 곳을 보고는
창에 의해 떨어져나온 일렁임의 잔재와 페디로스의 썩은 껍데기의 찌꺼기가 남은 곳에 다가가서는 창을 내리꽂았다.
콰곽───!!!
그러자,
일순 그 주변이 뒤틀어져 버리더니
그 뒤틀림은 다시 검게 변한 하얀 창의 투명한 돌에 스며들어 가면서
일렁임의 잔재와 썩은 찌꺼기는 애초에 없었다는 듯이 말끔히 사라졌다.
류안의 온기 하나 없는 눈동자로 시선을 돌려 한곳을 응시했다.
워스만과 벨드라엔도 류안의 시선에 따라 시선을 옮긴 그곳에는
마치, 쓰레기처럼 버려진 모습으로
페디로스의 뒤틀림에 휩쓸려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기이하게 뒤틀려있는 검은 옷 조직의 일원들이 죽지도 못한 채 꿈틀거리고 있었다.
류안은 다시 고개를 돌려 워스만과 벨드라엔을 봤다.
그 시선에 워스만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적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구하기에는 너무 많이 뒤틀려져 손 쓸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저 죽음의 안식을 맞이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최선의 배려.
워스만은 옆에 있는 벨드라엔을 봤다.
봉인은 할 수 있으나
뒤틀림을 없앨 수 없는 자신과는 달리
뒤틀림을 멸[滅]하여 없앨 수는 있는 ‘멸[滅]의 신’ 벨드라엔을.
‘너 설마 저 아이한테 뒤처리까지 하게 하려는 것은 아니겠지?’
워스만의 눈빛을 읽은 벨드라엔은 움찔했다.
“후우──···.”
긴 한숨으로 속을 정리한 벨드라엔은
뒤틀린 채 널브러져 있는 검은 옷 녀석들을 멸[滅]해주기 위해 손을 움직이려던 중.
류안의 손이 먼저 움직이는 것을 봤다.
파박! 팍!! 콱─!!!
투명한 돌이 박힌 하얀 창이 다수 보이더니
각각 하나씩 형체로 알아보기 힘든 검은 옷 녀석들의 몸에 정확히 박혔다.
그리고,
그들의 뒤틀림이 하얀 창의 투명한 돌에 먹혀가면서 몸은 부서지고 서서히 가루가 되어 사라져 갔다.
그렇게 적인 자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자비를 행해 준···
류안의 얼굴에는 그 어떠한 감정도 없이 무표정했다.
감정을 죽인 것과는 달랐다.
“·········.”
그런 모습에 워스만은 표정은 묘해져 갔다.
표정 변함없이 뒤틀린 존재들이 모두 사라진 것을 확인한 류안은 하얀 창들을 수거하려고 했으나,
콰창───!!! 콰득! 콰작─!!
신의 뒤틀림이 섞인 응집된 뒤틀림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사용한 하얀 창들이 진짜가 아닌 모조품이었기 때문일까.
하얀 창들이 뒤틀리며 부서짐과 함께
자연석 투명한 돌임에도 불구하고 뒤틀림을 감당하지 못해 갈라지며 부서져 버렸다.
그로 인해
모여있던 뒤틀린 기운이 뿜어져 나왔고,
뒤틀림은 부서진 하얀 창과 투명한 돌의 파편들을 뒤틀어버리며 주변으로 흩어지려 움직였다.
그러다 곧 뭔가에 반응하듯이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그곳에는 역시나 류안이 있었으며,
류안의 검고 긴 머리카락 사이로 길을 안내하는 별빛 같은 작은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그의 손에는 뒤틀림을 봉인하고 스스로 소멸한 신 ‘위세라’의 유품이자 신물인 나침판이 들여있었다.
뒤틀림은 낡은 콤팩트형 나침판 안에 있는 별을 닮은 투명한 돌 안으로 거침없이 스며 들어갔으며
모두 스며 들어간 것을 본 류안은 나침판의 뚜껑을 닫았다.
탁─!
그와 동시에
뒤틀림이 사라진 창과 돌의 파편들은 가루가 되어 주위로 흩날리며 사라졌다.
좀 전까지만 해도 뒤틀림으로 아수라장과도 같았던 상황이 거짓이었다는 듯
주위는 안정을 되찾았고 조용했다.
조용히··· 가만히 서 있는 류안을
벨드라엔은 걱정 어린 눈을 하고는 다가갔다.
근래 뒤틀림과 투명한 돌을 다루면서
그 뒤틀림에 희생된 자들의 심히 좋지 않은 모습을 너무 많이 접하는 바람에
심신이 지쳐 쉬고 싶어 했던 류안이,
또다시······
이런 끔찍하다 할 수 있는 상황을 접했기에
벨드라엔 뿐만 아니라
워스만도 걱정하고 있었다.
둘은 저 어린 신을 어떻게 다독여야 하나 고민하던 중.
무표정하던 류안의 눈이 커지는 것이 보였다.
“리아인.”
“뭐?”
류안은 리아인과 감각을 공유 중이었기에
리아인한테서 일어나는 내부적 변화를 바로 인지하고는 그에게 돌아가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순간 몰려오는 졸음으로 인해 휘청였고
그 모습에 워스만과 벨드라엔은 황급히 동시에 류안을 부축했다.
워스만과 벨드라엔은 당혹감에 빠졌다.
류안의 얼굴에 가득 찬 불안감 때문에···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리아인한테 가야 해.”
“어? 어,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
졸음도 참으며 다급히 말하는 류안을 보며
워스만은 자신의 전용 통로를 열기 위해 기운을 모았고
벨드라엔은 통신 장치를 이용해 네우한테 연락하려던 그때.
“───!!!!!”
류안한테서 뒤틀린 기운이 느껴진다 싶은
그 순간,
이내 공간과 차원을 뒤틀어버렸으며
그로 인해 생긴 균열 속으로 대비할 틈도 없이 워스만과 벨드라엔은 류안과 함께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뒤틀린 균열은 사라지며 그 흔적을 지웠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 * *
왕궁 구석진 정원에 있는 오두막.
앞마당에서 쌍둥이 네우와 루카테르는 당혹감을 억누른 채, 힘겹게 침착함을 유지해가며
이곳에서 벌어진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진땀을 빼고 있었다.
둘은 보호막, 방어막, 결계막 등등
막이란 막은 다 펼치며 눈앞에 벌어진 위험한 상황이 주위로 퍼지지 않게 애쓰고 있었다.
살쾡이 모습의 수인 키사는 거실 구석에 숨어 몸을 웅크리고 털을 부풀린 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거실 내부는 날카로운 무언가에 찔리고 긁힌 듯한 흔적으로 가득했다.
쇼트는 거실 창문으로 앞마당의 상황을 보며
류안이 빨리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를 막을 수, 진정시킬 수 있는 것은 류안 뿐이었기에···.
“·········.”
대체 리아인이 류안을 통해 무엇을 봤기에 저렇게 폭주했는지
쇼트는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조금 전만 해도
리아인은 불만은 많았으나
류안과 시각 및 청각을 공유한 채
눈을 감고 조용히 저쪽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눈을 뜨고는
호흡이 거칠어지면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이내 날카롭고 거친 빛을 뿜으며 폭주한 것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리아인은
주위에 피해 주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오두막 밖 앞마당으로 나갔고
때마침 있던 네우와 루카테르가 바로 막들을 펼치며 막았기에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리아인의 폭주는 멈추지 못한 채
날카롭고 거친 빛은
신의 아이와 드래곤이 펼친 여러 겹의 막을 무자비하게 깨버리고 있었다.
“젠장─!!!”
허무하게 깨지는 막과
점점 체력의 한계가 오는 몸.
무엇보다 자신의 폭주를 어쩌지 못해 괴로워하며 몸을 웅크리고 있는 리아인의 모습에
루카테르의 입에선 결국 거친 욕이 튀어나왔다.
네우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든 겹겹이 친 막들을 유지해 폭주한 힘을 막아야 하는 상황에서
네우와 루카테르는 더 긴장해야 했다.
“뭐야? 왜─······ 빌어먹을···.”
자신들의 뒤에서 공간이 뒤틀리는 것이 느껴졌고 보였다.
차원이 뒤틀려 균열이 열리려 하고 있었다.
대체 왜 이 순간에···
뒤틀림은 어떻게 할 수 없는 데다가
폭주하고 있는 리아인을 막고 있는 막들도 거의 다 깨져지고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네우와 루카테르는 한순간 어벙해졌다.
차원의 균열이 완전히 열림과 동시에 거칠게 토해 내어지듯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바닥에 주저앉듯 착지한 세 명의 신.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사라지는 차원의 균열.
그런 상황 뒤로
워스만과 벨드라엔의 부축을 받고 있던 류안이 둘의 손을 뿌리치며 황급히 움직였다.
워스만과 벨드라엔, 네우과 루카테르 그리고 쇼트가 무슨 상황인지 인지할 겨를도 없이
리아인을 감싸고 있던 마지막 막이 깨지며
거친 빛은 일제히 세 명의 신한테로 뻗어 나갔다.
“─!!!!!”
그 거친 빛의 강한 기운은
‘인형’ 내부의 ‘신의 몸체’를 찌를 듯이 예리하고 날카로웠다.
류안은 그런 기운에 아랑곳없이
리아인한테로 다가가 웅크리고 있는 그를 품 안으로 감싸 안았다.
피빅─! 픽──!!
“!!!!!”
품 안의 리아인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거칠고 날카로운 빛이 류안의 얼굴과 팔, 몸 곳곳에 상처를 냈지만,
류안은 리아인을 더 감싸 안으며 가만히 있었다.
류안을 상처 내며 빠져나간 빛은
곧장 워스만과 벨드라엔을 향해 뻗어가서는
둘의 ‘인형’에 상처를 내었다.
그런데도
워스만과 벨드라엔은 움직이지 않고 류안과 리아인한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류안한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
둘은 신이면서도 마치 경이로운 것을 보듯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폭주하는 빛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와중에
류안의 몸에 검은 무언가가 날개를 펼치듯이 드러나고 있었다.
검은 무언가는
기생 마수의 날개도
그림자 정령의 그림자도 아닌
밤하늘을 닮은 순수한 어둠이었다.
어둠은 난폭하게 날뛰는 빛을 조용히 가리며
류안과 리아인을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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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
두근두근 두근두근─.
생명의 소리가 잔잔하게 들려왔다.
불안해하는 아이가 따뜻한 체온과 편안함을 주는 심장박동 소리에 안정을 되찾아가듯
리아인은 포근한 어둠 속에서 폭주하던 기운이 가라앉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눈을 뜨고 고개를 들었다.
리아인의 눈동자에 류안의 얼굴이 서렸다.
반가움을 느낄 새도 없이
그의 얼굴과 몸에 생긴 상처가 보였다.
“어─······!!!”
리아인이 당황하는 사이
류안은 손으로 리아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빛은 더 이상 널 괴롭히지 못해.”
류안은 괜찮다며 말했으나,
리아인은 자신을 괴롭히던 빛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 빛 때문에 류안이 다쳤다.
리아인은 떨리는 손으로
류안의 얼굴에 난 상처를 조심히 어루만졌다.
“걱정할 것 없어. 상처는 금방 없어져.”
류안의 말대로 얼굴과 몸의 상처는 붉은 연기와 함께 빠르게 사라졌다.
하지만
리아인의 표정은 여전히 좋지 못했다.
빛을 가려주는 포근한 어둠.
리아인은 류안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도 지금처럼 빛에 괴로워할 때
어둠으로 빛을 가려주고
뒤틀림마저 가려주었던 류안.
리아인은 그때의 감정이 밀려오면서
울컥 나오려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그림자에 얼굴을 묻은 리아인의 귀에
류안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널 뒤튼 신들을 죽일 수 있게 도와줄게.”
“!!!!!!!”
그 말에
리아인은 놀라며 고개를 다시 들었다.
혼란에 빠진 리아인의 모습에
류안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 혼란을 잠재울 주문을 말했다.
“나··· 졸려.”
“어─?!!!”
주문을 제대로 효과를 나타냈고
리아인은 황급히 류안을 들쳐메고는 오두막으로 향했다.
서둘러 오두막 거실로 들어간 리아인은
흠칫했다.
거실은 완전 난장판이었다.
이대로 2층에 올라갔다가는 무너져내릴 것 같았다.
당황하고 있는 리아인의 모습에
쇼트는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 입을 열었다.
“다친 사람은 없어. 네가 그 상황에서도 밖으로 나가준 덕분에 이 정도로 끝날 수 있었어.”
리아인은 말없이 쇼트를 봤다.
“루카테르 님이 금방 고칠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뭐─? 내가?”
문밖에서 쇼트의 말을 들은 루카테르가 기겁을 했다.
못할 것은 없었지만,
자신을 막 부리는 듯한 대우에 투정 부렸고
무시당했다.
명색이 드래곤인데
이 레쉬아 왕국의 수호 드래곤인데···
루카테르는 자신의 대우가 왜 이러나 싶었다.
그러다
뒤에 움직임 없이 가만히 서 있는 두 명의 신을 봤다.
그중에서도 벨드라엔.
인간보다 드래곤보다 상위존재이면서도
걸핏하면 재상들한테 붙잡혀 고생하는 신.
루카테르는 이래저래 농땡이라도 피우는 자신이 차라리 낫다 여기며 벨드라엔을 측은하게 바라봤다.
루카테르의 시선이 어떻든 말든
벨드라엔과 워스만의 머릿속은 놀람의 연속강타로 혼란스러웠다.
류안이 뒤틀림을 다룬다는 것은 모른다고 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주변에 그 어떤 영향을 주지도 않은 채
공간과 차원만을 아무렇지 않게 뒤틀어 균열을 열어버렸다.
그것이 가능한 것이었던가?
상식을 벗어나···
상식을 뒤틀어버리는 존재가
눈앞에 있었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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