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14 화 – 만찬 후···.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자한테 누군가가 봐준다는 것이 참 힘이 되고 고마운 것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제 214 화 – 만찬 후···.
류안은 평소처럼 자고 눈을 뜬 것인데
다들 걱정이 어린 시선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것에 의아함이 들었다.
“···왜 그래?”
평소와 같은 모습과 목소리.
리아인은 일단 안심하면서 류안의 물음에 답했다.
“너, 일주일 만에 일어났어.”
“일주일?”
“그래.”
류안은 생각보다 오래
심연과도 비슷한 그곳에 있었음을 인지했다.
그곳에서는 시간의 흐름은
유독 둔하게 느껴지는 경향이 있었기에
얼마나 있었는지 알기가 쉽지 않았다.
‘음-, ···찾는 것은 마무리 끝내고 난 후에 해야겠다.’
류안은 마지막 개인적 일로
···을 빠르게 찾으면 좋기는 하지만,
당장 급하게 찾지 않아도 되기에 일단은 뒤로 미뤄두었다.
그러고는
방이 좁은 것은 아니었지만,
인구밀도가 확 올라갈 정도로 모여있는 이들을 보며
류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런 전조, 증상 없이 일주일 동안 잠들어 있었던 것에 걱정해서 모여있는 거라고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많이 모여있는 것은 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인구밀도를 올리는 한 명이 더 추가로 방안으로 들어왔다.
“아, 일어났나? 마침 잘 됐군.”
레쉬아 왕국의 국왕 레이쉴 이었다.
“?????”
레이쉴은 깨어난 류안을 보며 말을 이었다.
“큰일 때문에 다들 고생했고.”
“다 같이 만찬을 하면 좋겠다 싶었거든.”
“그런데 류안 군. 자네가 잠들어 있어 미뤄야 하나 했는데, 깨어났으니 오늘 바로 저녁 만찬을 즐기면 되겠군.”
“응? 오늘?”
갑작스럽기는 했으나, 나쁠 것 없었고
‘쇠뿔도 단김에 빼라’라고 했던가.
그렇게 저녁 만찬을 위해
오두막 앞마당에 자리가 마련되었다.
만찬을 위한 음식 준비는 쇼트가 주도했고
보조로는 살쾡이 수인 키사가 도왔으며,
통신 장치로 초대를 받고 텔레포트로 온
스체스 왕국의 수호자 뮤리나와
까마귀 수인 쿠우카도 한 손 건들고 있었다.
앞마당 만찬 테이블 배치는
루카테르, 쌍둥이 제우와 네우가 같이 담당했고,
초대 연락을 보낼 것도 없이
이제는 일상의 빈대처럼 오두막에 붙어있는
워스만을 찾으러 온 다미엔이
두 팔 걷어붙이고 만찬 분위기를 돋우기 위한 조경에 힘쓰고 있었다.
다들 만찬을 위해 열심히 준비하는 모습에
벨드라엔도 한몫 도와주려고 했으나,
쌍둥이 둘이 가만히 있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라고 아주 완강히 말리는 통에
벨드라엔은 아쉬워하며 오두막 거실 소파에 쭈그려 앉아있었다.
그 옆에서 워스만이 한심하게 보는가 싶더니
축 처져 있는 벨드라엔의 어깨를 토닥여 주고 있었다.
그리고,
리아인은 류안 옆에 착 붙어있었다.
왠지 준비하는 것을 돕느라
류안을 혼자 두면, 그 사이 어딘가로 홀연히 없어질 것 같은 불안함이 들어서였고
다른 이들도 그것을 느낀 것인지
리아인의 그런 행동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류안은 평소처럼 멍하니 만찬 준비하는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시간은 흘러가고
하늘이 푸른색에서 붉은색으로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을 즈음,
만찬 준비가 모두 마무리되었다.
레이쉴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다미엔이 꾸민 조경 사이사이 자리한 조명 등불에 불을 붙였다.
포봉. 퐁. 퐁. 퐁─.
등불이 하나하나 순차적으로 밝혀지면서
화사하고 보기 좋은 장관이 연출 되었다.
그런 장관 뒤로
뷔페식으로 차려진 먹음직한 음식들이
시선을 사로잡았고,
쿠우카의 하얀 창에 있는 오카리나를 닮은 투명한 돌을 이용한 잔잔한 음악 소리가 앞마당에 울려 퍼지면서
앞마당에 모인 모두의 귀가를 즐겁게 두들겼다.
향긋한 차향과 맛있는 음식들의 내음과
잔잔하게 울리는 음악 소리.
그리고,
테이블 의자에 도란도란 앉아 즐겁게 만찬을 즐기고 있는 이들.
그 광경을 류안은 옅은 미소를 지은 채
묘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최후의 만찬 같네.’
류안의 그런 모습을 제일 먼저 본 것은
쇼트였다.
평소였다면
차려진 음식을 먹느라 바빴을 기생 마수가
마치, 미련을 놓은 듯
다미엔이 가지고 온 고급 과자.
꿀에 절인 쿠키 하나만 음미하듯이 먹고는
류안을 본 후,
류안의 쓰다듬을 받으며 손안으로 조용히 스며 들어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상했다.
너무나도 묘하고 이상했다.
모두가 즐거운 가운데
류안 혼자 이곳이 아닌 다른 세계에 홀로 있는 것 같았다.
쇼트는 자신이 느낀 것을 리아인이나 다른 이들한테도 알려줘야 하나 했으나,
이 좋은 분위기를 망칠 수는 없어
아랫입술을 꾹 물면서 가만히 있었다.
허나,
비단 쇼트만이 그렇게 느낀 것이 아니었다.
다른 이들도 류안의 묘하고 이상한 분위기를 느끼고 있었으나
쇼트와 같은 이유, 심정으로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고 만찬을 즐겨야 했다.
* * *
선명한 어둠 속 별빛들이 빛나는 밤하늘.
오두막 만찬을 즐긴 흔적만 조금 남아있을 뿐
조경과 조명들이 모두 치워지고
만찬을 위해 마련된 것들이 모두 정리되면서
평소 앞마당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뮤리나와 쿠우카의 도움으로
설거지 및 뒷정리를 모두 끝마친 쇼트는
오두막 1층 자신의 방으로 가다가
다미엔이 끌고 가려다 실패, 포기한
워스만이 거실 소파에 만취한 아저씨처럼 한 손에 술병을 쥔 채 뻗어 잠자고 있는 것을 봤다.
그 맞은편 소파에는 다미엔도 애벌레처럼 이불로 몸을 감싸고 잠들어 있었다.
이 모습을 보고 과연 누가
한 왕국의 수호신과 왕자라고 생각할까.
나쁜 의미는 아니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모습이 보기 좋다는 의미였다.
“흐아아─암.”
만찬 준비하고 뒷정리하느라
피곤한 것은 당연한 거라 할 수 있겠지만,
쇼트는 이렇게까지 하품이 나고 졸린 것은 처음이었다.
“흐··· 흐아··· 흐아암─···.”
쇼트는 나오려는 하품을 참아보려 했으나,
참을 수 없었고
졸음만 더 몰려올 뿐이었다.
쇼트는 방으로 가기 전
뭔가 확인해 보려 한 것이 있었는데···
밀려오는 졸음에 뭐였는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쇼트는 결국 졸음을 못 이기고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맞은 편에 있는 침대에는
살쾡이 모습의 키사가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잠들어 있었고
그 위에 까마귀 모습의 쿠우카가 몸을 옹크리고 깊이 잠들어 있었다.
두 수인이 사이좋게 잠든 모습에
쇼트도 이불을 목까지 덮었고
이내 아늑하고 깊은 잠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만찬을 끝내고 업무를 조금 더 보려고 했던
자신의 집무실에 와있는
레이쉴은 무거운 눈꺼풀을 이기지 못해
소파에서 잠이 들어 있었고,
뮤리나는 왕궁 내 손님용 방에서 수면을 취했다.
벨드라엔과 쌍둥이 둘도 자신들의 방에서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잠들어 있었다.
오두막 2층 방.
리아인도 다를 것 없이 침대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고
그런 리아인을
류안이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달빛 없이 별빛만이 잔잔히 비추는
그 빛을 뒤로 검고 긴 머리카락의 고양이 눈을 닮은 소년이 가만히 서 보고 있는 그 모습은
리아인 뿐만 아니라, 다들 이들이 봤어도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릴 수 있었으나
그러면서도 아련함이 흐르고 있었다.
리아인이 완전히 잠든 것을 확인한 류안은
테라스 창문을 조용히 열고는
테라스로 나왔다.
그리고 난간 위로 올라선 후,
난간을 박차고 하늘 위로 올랐다.
펄럭──.
커다란 검은 날개를 펼친 류안은
밤하늘 위로 날아올라
오두막 정원을 지나 왕궁도 벗어나서는
어느 울창한 숲 위 허공에 자리했다.
밤하늘의 군주인 듯,
어둡고 선명한 밤하늘과 동화된 듯 자리한
류안은 자신의 영역.
지켜봄의 영역을 펼쳤다.
그 누구도, 그 어떤 신도 느끼지도 못하는
이곳 세계 ‘가쉬’ 전체에 지켜봄의 영역이 광활하게 펼쳐졌다.
그러는 동시에
류안의 주변으로 바람이 모여 들였다.
“바람의 자장가.”
휘이이이이───잉─.
류안의 목소리에 주변으로 모여들었던 바람은
잔잔하게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바람이 닿는 모든 곳을 넘어
공기가 있는 모든 곳에
바람의 자장가를 부르며 스쳐 지나갔다.
이미 상당수가 잠자리에 든 깊은 밤이지만,
생계를 위해 야간근무를 하는 일꾼.
늦은 밤 책과 씨름하며 공부하는 학생.
다음 날 장사를 위해 준비하는 가게 주인.
설렘에 잠 못 이루는 연인 등등
이런저런 다양한 이유로 깨어있던 사람들이
하던 것을 멈추고 잠이 들었고
나뭇가지에 앉아 사냥감을 찾는 부엉이.
야간 집회 중인 고양이들.
어린 새끼들을 지키느라 경계 중인 어미.
포식자를 피해 은밀히 움직이는 피식자 등등
야행성 동물들도 하나같이 하품을 하며 잠이 들었다.
심지어는 밤에 꽃을 피우는
달맞이꽃이나 박꽃 같은 야행성 식물들도
꽃망울을 피우는 것을 잊고 잠이 들어버렸다.
쿠우카의 '세이렌의 자장가'는
조금 강압적으로 툭 잠들게 했었다면
류안의 '바람의 자장가'는
자연스럽게 스르륵 잠이 들게 했다.
그렇게
세계 ‘가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
동식물뿐만 아니라
공기, 물, 돌 이 모든 것이 잠들어 있는 상황에
오로지 단 한 존재.
류안만이 깨어있었다.
류안은 지켜봄의 권능으로
모두가 깊은 잠에 빠진 것을 확인한 후,
세계 ‘가쉬’ 전체에 펼쳐진 영역에
권능 ‘망각’의 영역을 덧씌우기 시작했다.
스으으으으───···.
‘망각’은 영역 내에 있는
생명체, 무생명체 할 것 없이 모든 존재의
기억 속에서 류안의 흔적을 지워갔다.
애초에 이곳 세계 ‘가쉬’에
류안이라는 어린 신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모든 기억의 흔적을 지워갔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자장가를 부르던 바람도 멈춰버린 영역.
류안은 허공에서 높다란 나무 꼭대기에 발을 디디고
‘망각’이 모든 기억을 지운 것을 확인한 후,
나무에서 내려와 땅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누군가와 마주했다.
기괴한 마스크를 한 수련한 외모의 남성.
“·········.”
류안은 투명한 정도로 옅은 청회색 눈동자의 두 눈을 깜박거렸다.
뭐든지 예외가 있는 법이라 그런 것인지.
바람의 자장가에 잠들지 않은 채
망각하지 않고 자신을 찾아온 남성.
자신을 알아보는 것에 의문이 들었지만,
그 의문은 곧 풀렸다.
기괴한 마스크를 한 남성의 기억을
‘망각’의 힘이 지우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마스크의 남성은 류안과 만난 이후,
검은 옷 조직 내에서 은밀히
조직원들의 기억 속 검은 천사의 기억만 골라 먹어 오고 있었고
그렇게 먹어 쌓인 수많은 기억으로
‘망각’이 지우는 것에 시간이 더 걸렸기에
이를 인지한 남성은 그 기운을 따라
류안을 찾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
류안은 눈앞에 있는 남성한테 뭐라 말이라도 해야 하나 하던 중,
마스크의 남성이 먼저 말을 꺼냈다.
“기억이 완전히 망각이 되기 전.”
“인사드리러 온 것입니다.”
남성은 기괴한 마스크를 벗고
류안을 바라봤다.
수려한 외모 아래
귀밑까지 찢어지고 짐승의 이빨 같은 것이 돋아나 있는 입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지막 인사···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맘대로-.”
류안은 거절할 이유 없기에 말했고
그 말에 남성은 기쁨의 미소를 보이며
허리 숙여 인사했다.
그리고
남성은 귀밑까지 찢어진 입가에 따뜻한 손길을 느꼈다.
류안은 생각보다 많이 지닌 기억을
빨리 망각시키기 위해서 한 행동이었고
남성도 이를 알고 있었으나,
상관없었다.
다시 느끼게 된 따뜻하고 포근한 손길에
남성은 살며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시 후, 눈을 떴고
사라진 기억에 자신이 왜 이곳에 왔는지 의문을 가지며
잔잔하게 서늘한 밤바람이 불고 있는
숲 한가운데 홀로 서 있는 것을 인지했다.
남성은 왜 벗었는지 알 수 없는
타인한테 보이고 싶지 않은
자신의 입을 가리기 위해 마스크를 쓰려고 하다가
입가에 남아있는 온기를 느꼈고
마스크를 쓰려고 한 행동을 멈췄다.
잠시 멍하니 입가를 매만지면서
기괴한 형태의 마스크를 바라보던 남성은
마스크를 품 안에 넣고는
별빛만이 빛나는 밤하늘을 잠시 본 후,
숲을 나가기 위해 발을 움직였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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