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11 화 – 신과 맞섰다.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자한테 누군가가 봐준다는 것이 참 힘이 되고 고마운 것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제 111 화 – 신과 맞섰다.
붉게 물들어버린 땅만 보일 뿐,
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 류안의 모습.
전장은 아직 남아 있는 적과 아군의 무기들이 맞부딪히는 소리로 시끄러웠으나
적막이 무겁게 내려앉은 분위기 속,
눈앞에서 벌어진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레이쉴은 넋을 놓고 있던 것도 잠시 황급히 시선을 돌려 리아인의 상태를 살펴봤다.
지금 그 누구보다 충격을 받았을 자는
리아인 이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리아인의 얼굴은 온몸에 피가 빠져나간 듯이 하얀 것을 넘어 파리하게 질려있었으며
눈동자에는 생기가 없이
류안이 있던 붉게 물든 땅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리아인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이성을 잃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신경을 집중하며 노력하는 중이었다.
“······─!”
그것을 본 레이쉴도 상황을 이성적으로 판단해 나갔고
한 가지 사실을 직시할 수 있었다.
신[神]은 신[神]을 죽일 수 없다.
이것은 몇몇 신이 증언해준 명확한 사실이었다.
그래서
류안이 신을 죽일 수 있는 걸 알았을 때,
‘신’인 벨드라엔과 워스만이 경악하며 놀라지 않았던가.
거기에 더해
신[神]은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
자신의 ‘방’으로 피신한다는 사실도 떠올렸다.
‘진정하자, 진정해. 류안은 분명 위험을 감지하고 ‘방’이나 어디 안전한 곳으로 피신했을 것이다···.’
레이쉴은 자기 자신을 진정시키듯,
붉은 눈동자의 커다란 눈에서 쉴새 없이 눈물방울을 떨구는 기생 마수의 조막만 한 머리를 쓰다듬으며 달래고 있었다.
그 손길에 기생 마수는 눈을 질끈 감을 뿐,
여전히 눈물방울을 흘리고 있었다.
“·········.”
“·········.”
후방에서 이를 지켜본 다미엔은 굳어 있었고
성벽 위 스체스 왕국의 지휘관과 참모장은
무슨 상황이 벌어진 것인지··· 뇌가 상황을 인지하는 것을 거부라도 하는 것인지
상황판단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루카테르는 보이지 않는 류안도 걱정이었지만,
지금 당장 리아인이 폭주하지 않을까 조마조마해 심장이 아주 쫄깃해지고 있었다.
저번 오두막에서 폭주한 리아인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고 위험했기에.
그러나, 그런 걱정은 할 필요 없이
리아인은 가만히 선 채 떨림 없이 자신의 몸 상태를 찬찬히 살펴봤다.
망할 신[神] 놈들의 ‘손길’에 의해 뒤틀린···
그런 뒤틀림을 가려준 류안.
자신의 뒤틀림이 여전히 잘 가려져 있는 것을 리아인은 인지할 수 있었다.
“후우─···.”
숨을 한 번 천천히 내쉰 후,
리아인의 얼굴에 생기가 돌며 결심이 깃들어 갔다.
류안이 돌아왔을 때 귀찮은 일이 없게
이 전장의 상황을 정리해 놓던가,
아니면 빨리 마무리해 버리고 류안을 찾아 나서기로.
세계를 넘어가서라도 반드시 찾을 것이라고 다짐하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전장의 상황은 이미 마무리되고 있었다.
검은 옷 전투원들은 세 왕국의 병사들한테 거의 다 섬멸되어가고 있었으며,
하늘에서 대기 중이던 검은 천사 카밀과 키메라 검은 천사들은 퇴각했는지 보이지 않는 동시에
마수와 키메라 마수들도 도망친 지 오래였다.
그리고, 검은 옷의 창술사들.
리아인과 레이쉴은 창술사들의 모습에
더 이상 이들과 맞대응하는 것은 무의미함을 인지했다.
검은 옷의 창술사들은 우두머리로부터 모스 신호를 받고 퇴각하려고 했으나,
바닥에 퍼져있는 안개에 발이 묶인 상태에서
안개 속 분노한 사념체들은 자신들이 당한 원한을 그대로 되돌려 주었다.
그로 인해
뒤집어쓰고 있던 껍데기는 사라져 버린 채
창술사들은 한순간에 세월을 뺏긴 노파들이 되어 있었다.
죽이지는 않은 것은
남은 인생 고통과 후회에 괴로워하라는 복수의 의미였다.
이제 남은 것은 민트색 로브를 입고 있는 부식[腐蝕]의 신.
리아인의 빛의 창이 감정에 반응하여 빛 파편을 튀기며 거칠게 요동치고 있었으며
레이쉴도 자신의 하얀 창을 고쳐 잡았다.
일개 인간이 신을 죽일 수 있을 리가 만무했지만,
죽기 직전··· 아니, 죽는 것보다 더한 처지로 몰아붙이리라 결심하고 다짐했다.
세 왕국의 병사들도
기적과 희망의 존재인 검은 천사가 화를 입고 사라진 것에 분노해 힘을 보태고 싶은 맘은 굴뚝같았으나,
수준 차이를 잘 알고 있기에 남은 적을 깨끗이 마무리하고 정리하는 것에 집중했다.
리아인과 레이쉴의 눈빛을 본
부식[腐蝕]의 신은 가소롭다는 듯이 웃어 보이며 부식의 영역을 더욱 강하게 펼치기 시작했다.
츠즈즈즈즈────······.
약자부터 공격하는 부식의 기운에 가장 먼저 희생된 자들은 세 왕국의 병사들이 아닌,
노파가 된 검은 옷의 창술사들과 얼마 남지 않은 전투원들이었다.
“커걱···, 컥!”
“커헉!!”
“왜······ 쿨럭─!!!”
피를 토하며 바닥에 쓰러진 창술사들과 전투원들은 부식[腐蝕]의 신을 향해 손을 뻗어 보였으나 고통에 괴로워하며 숨이 끊어졌으며
곧 육체마저도 부식되어 형체를 알 수 없게 잃어갔다.
부식[腐蝕]의 신은 아군이라 할 수 있는 검은 옷 조직원들의 안위 따윈 관심 없는 것을 넘어
하찮은 쓰레기를 보듯이 하다가 시선을 돌렸다.
부식의 기운에 다음으로 희생될 자들.
“크윽-!”
병사들의 신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안개 갑옷이 어느 정도 막아주고 있었지만
짙은 부식의 기운으로 막아주는 것에 한계가 와 있었다.
“이런─···!!!”
루카테르는 재빨리 갖가지 막[膜]을 겹겹이 펼치며 부식의 기운이 다가오는 것을 막았다.
푸화악────!
부식의 기운은 막[膜]에 부딪히며 검푸른 색의 연기처럼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레이쉴은 금발로 염색한 짧은 머리카락을 거칠게 휘날리며 불꽃의 용오름을 일으켰고
불꽃의 용오름은 한 마리의 화마[火魔]가 되어 주변에 퍼지고 있는 부식의 기운을 거침없이 태워버렸다.
파롸라라라라─────!!!
리아인은 빛의 번개를 일으키면서
그와 동시에 빛의 창을 휘두르며 부식[腐蝕]의 신을 공격했다.
콰르르르르─릉────!!!!!
그러는 사이
세 왕국의 병사들은 눈치껏 잘 알아서 루카테르가 펼친 막[膜] 안쪽으로 퇴각하였고
이를 확인한 루카테르는
다미엔이 있는 곳까지 퇴각한 병사들과 부상병들한테 비행 마법을 걸어 성벽 안쪽으로 옮겼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부식 기운의 농도나 강도에 따라 펼칠 수 있는 영역의 거리 제한이 있는 것인지
성벽 쪽으로는 부식의 기운이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었다.
“방어에 보조하라!”
스체스 왕국 지휘관 텀스의 말에
성벽 위에 있는 군청색 로브의 마법사들은 펼쳐두고 있던 방어막, 보호막, 결계막 등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막[膜]을 더 강하게 펼쳤고
드래곤 수장 카르티아가 보조해 주었다.
루카테르는 마지막으로
부상병들을 돌보고 지키느라 지쳐있는 다미엔한테도 비행 마법을 걸어 성벽 안으로 옮긴 후,
리아인과 레이쉴한테 합류하기 위해 전장 한가운데로 갔다.
스스스슥───.
루카테르는 몸에 드래곤 비늘을 둘렀다.
그런데, 전장 한가운데로 다가가자.
치이이이─익───······.
부식의 기운은
그 어떤 것보다도 방어력을 자랑하는 드래곤의 비늘을 부식시켜갔다.
“망할 신 놈 XX─.”
루카테르는 거친 욕을 하며 부식[腐蝕]의 신을 바라봤고
리아인과 레이쉴이 신에 맞서 공격하고 있는 모습을 봤다.
슈화아아─악────.
구름처럼 뭉쳐진 부식의 기운은
여러 마리의 야수가 된 것처럼 아가리를 벌려 리안과 레이쉴을 잡아먹을 듯 덮쳐왔으며
레이쉴은 그 아가리로 자신의 하얀 창을 뻗었다.
푸─화앙!!!
마치, 가스 폭발이 일어나듯이
부식의 야수는 붉은 불길에 휩싸이며 터졌고
레이쉴은 그 불로 ‘불의 야수’를 만들었다.
불의 야수는 다른 부식의 야수를 공격하고 목덜미를 물어뜯으며 소각시켰다.
또한,
리아인은 백금빛의 전류 줄기를 사방으로 펼쳤다.
덩어리처럼 뭉쳐있었기에 더 맞추기 수월했으며 거침없이 부식의 야수를 관통하며 찢어발기며 없애버렸다.
콰라라라라락─!!!!!
너무나 잘 맞서고 있는 리아인의 모습에
부식[腐蝕]의 신은 침음을 내며 말했다.
“흐음, 희한하군. 분명 천사를 제거해 가호도 사라졌을 터인데, 어째서 너의 힘은 그대로 인 것이지?”
그 말에
분노와 짜증을 가까스로 다루고 있던 리아인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렸고 이가 갈리면서 으득 소리가 났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콰과─앙─!!!
화르르르륵────!
리아인의 빛의 번개가 땅에서 솟구쳐 오르며
부식[腐蝕]의 신을 덮쳤고
그 뒤 바로 붉은 용오름의 화마[火魔]가 휘감아 버렸다.
하지만.
치이이이─이───······.
부식의 기운에
빛의 번개와 붉은 화마[火魔]는 상쇄되어 사라져버렸다.
백금빛과 붉은빛이 사라지면서
부식[腐蝕]의 신의 몸 중심으로 돌풍이 일어나는 듯하더니 주변으로 강하게 휘몰아치며 퍼져 나갔다.
후아아아아아─앙────!!
콰르르릉─── 콰광!!!
화라라라라─락────!
쩌정!!!
리아인은 백금빛 전류 줄기들을 수없이 내리꽂으며 퍼져 나가는 부식의 기운 돌풍을 막으려 했고,
레이쉴은 붉은색 화염의 장벽을 펼쳤으며
루카테르도 금빛의 수정체 장벽을 펼쳤으나
얼마 버티지 못하고 돌풍에 의해 붉은 화염과 금빛 수정체의 장벽이 부서져 버리며
레이쉴과 루카테르도 튕기며 날아가서는···.
쿠궁! 쿵─!!
성벽에 둘러쳐진 막[膜]에 부딪히고는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레이쉴과 루카테르는 극심한 통증이 몸과 뇌리를 강타했으나 몸을 추스르고 뭐고 황급히 일으켜 세우며 앞을 바라보던 중,
둘은 놀라야 했다.
“─!!!!!”
“이런···!!!”
부식[腐蝕]의 신 손에 리아인이 멱살이 잡힌 채 붙들려 있었고,
부식의 기운이 잔뜩 구겨진 얼굴의 리아인 몸을 덮쳐가고 있었다.
치이이이──···.
하지만,
리아인의 겉옷이 부식되어 가면서 드러난 피부에 생채기 같은 옅디옅은 상처만 날 뿐,
그 외에는 그 어떤 반점이나 물집 하나 생기지 않고 있었다.
“···네 녀석의 정체는 뭐냐?”
부식[腐蝕]의 신은 정말 궁금했다.
제거한 천사의 가호가 설령 남았다 한들,
고작 천사의 가호 따위가 신[神]의 기운을 이길 리가 만무했다.
부식[腐蝕]의 신 미간이 일순 구겨지더니,
“너··· 어떤 ‘신[神]’의 가호를 받은 것이지?”
목소리가 점점 격양되어 갔다.
“‘아이’도 아닌 주제에 대체 어떤 신이 네놈을 지켜주고 있는 거냔 말이다!”
“·········.”
리아인은 대답 없이
눈앞에 있는 자를 하찮다는 듯 노려봤다.
그에 감정이 더 격해지던 부식[腐蝕]의 신은
리아인의 특이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눈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네 놈··· 설마······.”
부식[腐蝕]의 신이
리아인의 특이점이 무엇인지 알아채려던
그 순간.
훅────────·········!
인지할 틈도 없이
전장 전체에 짙은 어둠이 순식간에 내려와 앉았다.
“·········.”
“············.”
“······?”
갑작스러운 상황에
주변을 둘러보던 이들이 날이 저물지도 않았는데 어두워진 것을 뒤늦게 인지했을 때는
밤하늘의 영역에 들어온 것 같은
순순한 어둠 속에 있었다.
이 현상에
부식[腐蝕]의 신한테 멱살이 잡힌 리아인의 구겨져 있던 표정이 풀어지면서 입꼬리가 슬금슬금 올라가고 있었다.
류안과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어둠이었기에.
리아인은 넘쳐 흐르는 안도와 기쁨에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감추지 않고 있었다.
“이─··· 건방진.”
제 처지를 인지 못 하고
환한 얼굴을 보이는 리아인을 모습에
부식의 신은 불쾌감을 드러내며 부식의 기운을 더욱 끌어모았다.
그러나,
“·········무슨?”
어둠이 드리워진 것과 함께
짙게 퍼져있던 부식의 기운이 모두 사라져 버린 상황에
부식[腐蝕]의 신은 얼이 나간 충격을 받았으며 이내 한 곳을 응시했다.
리아인도 고개를 돌려 그곳을 봤다.
붉은 흔적만을 남기고 류안이 사라진 곳.
그곳 허공에
밤하늘의 어둠이 모여 인간의 현상을 만들 듯이 누군가의 모습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그 광경은 신비스럽고 경이롭기까지 해
다들 시선을 떼지 못하던 중,
인지할 수 있었다.
류안 이었다.
서서히 드리워지고 있던 류안의 모습이
완전히 형태를 갖춰지더니
검고 긴 머리를 휘날리며 바닥에 발을 디뎌 착지했다.
퐁──···.
수면 위에 발을 디딘 것처럼 물 파장이 일렁이면서 주변으로 잔잔히 퍼져 나갔으며
그에 따라 류안은 천천히 눈을 떴다.
짙은 회색 눈동자가 아닌
투명하다 싶을 정도의 옅은 청회색의 눈동자가 보였다.
그리고
어린 소년의 모습이 아닌
성장을 끝낸 성인 모습의 류안이 보였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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