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69 화 – 드러나게 하다.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자한테 누군가가 봐준다는 것이 참 힘이 되고 고마운 것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제 69 화 – 드러나게 하다.
깊고 깊은 밤.
달 또한 몸을 숨겨 어두운 밤.
유령도시 야누를 구경하기 위해 외곽 쪽에 마련된 임시숙소에서 류안과 리아인, 워스만이 은밀히 빠져나와 사전답사한 광산으로 향했다.
“후우─······.”
확실히 북쪽에 자리한 왕국에 밤이라서 그런지 옷을 따뜻하게 잘 챙겨입었음에도
쌀쌀한 기운에 리아인과 류안의 입에서는 하얀 입김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킵스트 도시에서는 이 정도까진 아닌 것 같았는데,
어쩌면 이곳 ‘유령도시’ 야누 특유의 적막함 때문에 더 그런 것인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는 가운데.
폐광된 광산 안 깊숙이 들어온 그들.
류안은 낮에 안내인이 알려 준 접근금지구역 중 한 곳으로 곧장 향해갔다.
그 뒤를 따라 리아인, 워스만도 움직였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 ─··· ─··· ──···.
낮에도 그랬듯이 발걸음 소리가 통로 전체에 메아리치듯 울리고 있었다.
혹, 이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 문제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할 필요 없었다.
류안이 주변에 영역을 펼쳐
허락 없이는 보고 듣고 느낄 수가 없었기에.
그건 그렇고,
접근금지구역치고는 바닥이 잘 조성되어 이동하기가 편한 상태에서
성인 한두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통로를 따라 한참을 들어가자 철문이 보였다.
그 철문에는 봉인 및 결계가 둘러 있었으며
이 두 가지를 건드는 경우 울리는 경보장치도 설치되어 있었다.
누가 봐도 뭔가를 감추기 위한 모양새였다.
아니면······
가두기 위해서인지도.
“제대로 온 모양이군.”
워스만은 대견하다는 눈으로 류안을 봤고
류안은 그 시선은 무시한 채 봉인과 결계나 풀라는 듯 손가락으로 문 쪽을 가리켰다.
워스만은 그 모습에 얕은 웃음을 보이고는
경보장치는 교묘히 피해 봉인과 결계를 해제시켰다.
끼이이익──···.
철문이 열리자
그 안으로 다시 통로가 보였고
그리 길지 않은 통로 안쪽에 또 다른 문이 보였다.
그리고
그 문틈으로 뒤틀림이 미세하게 흘러나오는 것이 류안의 눈에 보였다.
그런데, 뒤틀림이 새어 나오는 문에서는
이전에 열었던 철문과는 달리 그 어떤 마법도 장치도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급하게 문만 닫고 나온 상태에서 새로 문을 설치해 봉인과 결계를 씌워 막아놓은 것인가 본데, 그렇다면 이 문 뒤에 우리가 찾는 것이 있을 확률이 높다는 거겠지.”
워스만의 말에
류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손잡이를 잡았다.
새어 나오던 뒤틀림은 일순 사라졌지만
류안이 문을 열자 그 안에는 어두운 기운의 뒤틀림이 거칠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냥 봐도 그 양이 심상치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옅은 한숨을 쉰 류안은 그 안으로 들어갔고
뒤틀림은 이제껏 그래왔듯이 류안 주위로 모이며 응집되더니 그의 손에 들린 투명한 돌로 스며 들어갔다.
그와 함께
어두운 기운에 가려져 있던
넓은 공간의 공장 내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래전에 작동을 멈춘 듯한 폐공장으로
내부에는 기괴한 형태의 기계들이 즐비했으며
만들다 실패한 듯한 투명한 돌 잔해들이 바닥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것과 함께
눈여겨봐야 보일 정도의 작은 뼛조각들도 있었다.
류안은 그 뼛조각이 어떤 것들이 알았으며
말을 할까 고민하던 중.
워스만이 말을 했다.
“어린 생명체의 것이군.”
워스만은 그 작은 뼛조각을 집어 들었다.
브슥──···.
여리고 작은 뼛조각은 오랜 세월 방치되었던 듯이 삭아 가루로 부서지며 흩어졌다.
“시간을 빼앗겼어.”
류안은 실패작 투명한 돌 하나를 집어 들며 말했다.
“아직 어린 생명체의 ‘삶의 시간’ 자체를 뺏어 투명한 돌이 생성되는 데 필요한 시간을 대체했나 봐.”
“허, 그래서 다미엔한테 갑자기 세월을 뺏긴 듯 늙은 사람이나 동물들을 조사하라고 했을 때, 조사결과 그런 기괴한 사건은 없다고 한 것이군. 일부가 아닌 ‘삶’을 통째로 뺏었으니 흔적이 남지 않았던 거였어.”
리아인은 류안, 워스만의 말을 들으며 얼굴이 구겨지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
퍼벙! 펑!! 펑─!!!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실패작 투명한 돌의 잔해들이 하나둘 터지면서 가루로 변하더니
안개 같은 형태가 되어 류안의 주의로 모여들었다.
“윽─···!”
류안이 갑자기 짧은 신음을 내며 자리에 주저앉아 몸을 웅크렸다.
그 모습에 놀란
리아인, 워스만이 류안한테로 가려 했지만
류안이 손을 뻗어 보이며 오지 말라는 의사를 표현했다.
그러는 사이,
자욱하게 몰려든 안개에 휩싸이면서 류안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
리아인, 워스만은 정체불명의 안개에 함부로 움직일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기다리고 있어야 했다.
안개에 감싸진 류안의 눈에
이곳 유령도시를 ‘야누’를 스쳐 지나갔을 때 본 사념체가 아닌 사념체가 안개 속에서 모습을 보였다.
‘이런······.’
류안은 직감했다.
예전 리아인과 단둘이 여행 다닐 당시
안개비 사이로 모습을 보인 뒤틀림 사념체들의 부탁을 들었을 때와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을···.
투명한 돌 잔해로 생긴 안개 속에서 사념체의 입술이 움직였다.
그때처럼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입술의 움직임을 읽을 수 있었다.
· ∎∎∎ 신께 부탁드립니다.
· 어린 생명체의 안식을 찾게 도와주십시오.
‘역시나···.’
이번에는 단호히 거절하기로 다짐할 때.
사념체의 들리지 않는 말이 이어졌다.
· 전 힘이 미약하여 그들의 만행을 막지 못했습니다.
· 하지만 어린 생명체의 안식이라도 찾아주고자 이렇게 사념으로나마 남아 힘을 빌려줄 존재를 기다려 왔습니다.
류안은 사념체의 강한 원념이 느껴졌다.
· 전 그들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 이곳을 나갈 수 있게 길만 열어주십시오.
사념체의 말에 류안은 일단은 안심했다.
길만 열어주면 직접 알아서 하겠다는 의미였기에.
“후─···.”
류안은 긴 한숨을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천장을 한번 보고는
공장 실내도 전체적으로 훑어보았다.
그리고 출입구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리아인, 워스만은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나,
안개에 가려져 류안이 뭘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음에 초조함이 생기고 있을 그때,
류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아인 문 좀 부숴줘. 곧 손님이 오실 거야.”
그 말에 ‘손님’이 누군지 알 수 없으나,
리아인은 백금빛 전류 줄기를 문을 향해 쏘았다.
파지직─── 콰광─!!!
화르르르──···.
문이 부서지면서 그 안에 숨겨져 있던
류안이 마법과 장치만 염두에 두고 있어서 보고도 미처 인지하지를 못했던
부적들이 타들어 가며 모습을 드러냈다.
공장에서 만행을 저지른 그들이
희생된 자들의 원념[怨念]은 두려웠던 건지
원념을 막는 부적이었다.
완전히 타 재가 되어 사라지는 부적들 뒤로
손님들의 모습이 보였다.
“───!!!!!”
검은 옷의 세 명과 로브 차림의 한 명.
그들은 방치된 후 쌓여있을 뒤틀림과
실패작이긴 하나 재료로 재활용할 투명한 돌의 잔재를 수거하러 온 것이었다.
“너흰 누구냐? 여기서 무슨 짓을 하는······.”
검은 옷의 세 명 중 한 명이 소리쳤다.
하지만 말을 끝맺지 못했다.
류안은 둘러싸고 있던 안개가 빠르게 검은 옷의 세 명한테로 달려들 듯 흘러가더니
이내 창의 형태가 되어 그 세 명의 몸을 관통하며 지나갔다.
슈화아아아─악────.
“크헉─···!!!”
안개의 창에 몸을 관통당한 세 명은
삶의 시간이 뺏기듯이 근육과 살이 빠지고 주름이 지면서 급속도로 노화가 진행되며
저항할 틈도 발버둥 칠 틈도 없이
끝내 죽음을 맞이했다.
류안은 그 광경을 무덤덤하게 본 후,
이제 저 안개는 알아서 제 갈 길 갈 것이라 여겼으나···.
착각이었다.
안개의 창은 방향을 틀더니
류안 쪽으로 스르륵 다가와서는 손에 자리했다.
원념을 막는 부적이 사라져서인지
류안의 머릿속에 안개의 창에 스며있는 사념체의 목소리가 울리면서도 선명하게 들려왔다.
· ···죄송합니다. 문만 열리면 바로 갈 길을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 염치 불고하지만, 저와 아이들이 길을 찾을 때까지만 곁에 머무르게 해주십시오. 그 대신이라 하기엔 많이 부족하나···.
· 당신의 뜻을 이룰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보좌하겠습니다.
류안은 미간을 손가락으로 세게 집었다.
‘염치를 알면 부탁을 하지 말던가···, 그리고 대체 내 뜻이 뭐길래 이러는 거야?’
자신도 모르는 뜻을 따르겠다느니 이루게 도와주겠다느니 하는 사념체들 때문에 미간을 집은 손가락에 힘이 더 들어가고 있는 류안의 눈에
로브 차림의 한 명이 들어왔다.
“이제는 그릇으로 빈 껍데기를 이용하고 있나 보네.”
로브 차림의 그 자는 동공이 풀려있었으며
가슴팍에는 인공 투명한 돌이 박혀있었다.
류안은 그자한테로 다가가
인공 투명한 돌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톡’하고 건드렸고, 돌은 얇은 유리막이 부서지듯 힘없이 가루로 변하며 사라졌다.
그러던 중,
분명 생명과 영혼이 없는 빈 껍데기인 자의 초점 없는 눈동자가 일순 류안을 향해 움직이는 것과 함께
입가에 미소가 맺히는가 하더니
곧 줄이 끊어진 마리오네트처럼 풀썩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
류안은 새삼 놀랐는지 말없이 있는 리아인과
흥미로운 것을 봤다는 표정의 워스만을 보며 말했다.
“여기 천장 부숴줄 수 있어?”
리아인, 워스만은 순간 당황했다.
“여길 무너트리자는 거야?”
이곳은 일반 건물이 아닌
땅속 깊숙이 있는 광산 안이었기에
천장을 부수자는 것은 ‘무너트리자’로 밖에 해석되지 않았다.
“아, 잘 못 말했다. 천장에 구멍만 뚫으면 돼.”
‘그러니까, 그 구멍만 뚫는 것이 힘들다고. 무너진다고.’
류안은 자신을 바라보며 의문을 보이는 둘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했다.
설명이 부족해서 그런가 싶었다.
“이곳을 외부에 드러나게 해서 어떻게 대응하는지 보려고. 은폐하려고 할지 진상 조사를 할지에 따라 검은 옷 조직과의 연관성을 추측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건 그렇지.”
류안의 말에 리아인, 워스만도 같은 생각이었다.
“이 공장 내부가 땅속 깊이 있어서 이 안에서 소란을 피워봤자 외부에는 들리지 않아.”
맞는 말이라
리아인, 워스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외부에 확실히 인지할 수 있도록 천장을 뚫어 이곳을 드러내려고 하는 거야.”
“···류안.”
“응?”
리아인은 류안의 양어깨에 살며시 손을 얹었다.
“네가 뭘 하려고 하는지는 그렇게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아.”
외부인이 이곳에 대해 말해봤자
검은 옷 조직과의 관계 여부와는 별개로
별일 아니라고 치부해 그냥 넘어갈 확률이 높았다.
거기에다가
오히려 한밤중에 접근금지구역에 출입한 것에 대해 추궁당할 수도 있었기에
예전 피스링 마을에서 엘프인 에피의 친구들을 찾았을 때 했던 방법처럼
소란을 피워 모두의 시선이 모이게 해
이곳을 발견하게 하는 것이 적절한 방법이었다.
또한,
귀빈인 듀아 왕국의 1 왕자 다미엔도 와 있었기 때문에 그냥 조용히 넘어가지는 못할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으니.
“류안, 이곳이 땅속 깊이 있다는 것은 너도 잘 알잖아.”
“응.”
“그럼, 천장을 뚫기 위해 건드는 순간, 압력과 무게에 무너져 버린다는 것도 알지 않아?”
류안은 리아인의 말에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말했다.
“무너지게 않게 뚫으면 돼.”
“뭐?”
“리아인 네 힘이면 충분히 가능해.”
‘응? 내 힘? 가능하다고? 이곳을 무너뜨리기 딱 좋은 자신의 힘이 무너뜨리지 않고 천장을 뚫을 수 있다고? 어떻게···?’
리아인의 머릿속에 의문이 가득 차고 있을 때.
류안이 답을 해주었다.
“드릴처럼 뚫으면 돼.”
“─!!!!!”
가능했다.
심연 밑에 묻어 두었다가 다시 받아들인 그 힘이면 충분하고도 남았다.
단지······.
“반동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리아인의 걱정을 알고 있다는 듯이
류안이 말했고
리아인은 그 말에 이유 모를 안도가 되었다.
“알았어. 해볼게.”
리아인은 행여나 자신의 힘의 여파에 휩쓸리지 않게 류안을 벽 쪽에 있게 하고는
걸음을 옮겨 공장 내부 중앙에 자리했다.
그러고는 천장을 올려다봤다.
라이인의 양손에 백금빛의 전류 파편들이 하나둘 생기며 모여들었고
모여든 전류 파편들을 꽉 쥐었다.
그러자
그의 손가락 틈 사이로 찌르는 듯한 빛이 보이더니 몸 전체에 퍼졌다가
이내 몸을 타고 아래로 흘러내려 바닥에 스며들듯 사라졌다.
리아인은 잠시 숨을 고르고는
눈을 감았다.
그와 동시에 그의 발밑에 원형의 백금빛이 감돌더니
곧 천장을 하늘을 뚫어버릴 듯
회오리치며 매섭게 솟구쳐 올랐다.
츄아아아─악────.
백금색의 빛줄기가 천장에 부딪히며 약간의 진동만이 있었을 뿐,
충격의 여파는 더 이상 없었다.
치이이이─익────!
강한 마찰음.
열에 물질이 지져지는 소리와 함께
천장은 마그마처럼 녹아내리면서 서서히 위로 뚫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녹아내린 잔해마저도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전에 빛과 열에 연기로 변하며 증발해 사라졌다.
마치, 위로 올라가는 빛의 통로 안에 있는 듯한 모습의 리아인은 능력을 쓰면서 반동이 없는 것에 의아해하면서도 천장을 뚫기 위해 계속 빛을 회전시켰다.
그러는 그때,
워스만의 눈에 벽에 기댄 채 무언가 참는 듯 미세하게 미간을 구기고 있는 류안의 모습이 비쳤다.
이를 모르는 리아인은 빛의 힘에 집중했으며
워스만은 류안을 예의주시하는 사이.
치이이이익────··· 슈확───!!!
그리 길지 않은 시간 구멍을 뚫던 빛은
천장 위로 원형의 통로 같은 구멍을 일직선으로 완전히 뚫어버렸고
그와 동시에
백금빛은 광산 위 하늘로 솟아올랐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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