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97 화 – 되돌아가는···.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자한테 누군가가 봐준다는 것이 참 힘이 되고 고마운 것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제 197 화 – 되돌아가는···.
출입구를 막고 있는 빛의 실들을 없애고
신전 홀 안으로 발을 들인 후,
그들의 눈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맞은편 정면으로 보이는 제단 위에 있는···.
의식이 없는 상태로
금빛 실에 양팔이 묶여 허공에 매달려 있는
류안의 모습이었다.
그다음으로 보인
홀 중앙 바닥에 초점을 잃어가는 눈동자로
겨우 숨 쉬며 힘없이 엎어져 있는 리아인과
그 주변으로 보이는 수많은 마법진들.
거기에 더해
언제라도 공격할 듯 대기하고 있는 무수한 하얀 창.
그와 함께
처형자의 하얀 창 다섯 개 모두 곁에 둔
검은 옷 조직의 ‘그분’이라는 자.
마지막으로 보인 것은
하얀 로브 차림의 신들이었다.
“오-, 때맞춰 잘 왔군.”
제단 앞에 있는 마찰의 신이
워스만과 벨드라엔 그리고 그 일행들을 보며 말했다.
“이제 곧 절대자가 선택되는 숭고한 때에 이를 지켜봐 줄 증인이 있어야 했는데.”
“두 신과 세 왕국의 대표가 그 역할을 해주면 되니 이 얼마나 좋은가.”
마찰의 신은 환하게 웃으며
양팔을 펼쳐 보였다.
“아, 행여나 다른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 말에
‘그분’이라는 자가 손을 까닥거렸고
대기 중이던 무수한 하얀 창의 창촉들이
일제히 류안을 향해 날을 세웠다.
“─!!!!!”
카랑-.
그 광경에
벨드라엔은 들고 있던 머스킷을 놓았다.
레이쉴, 다미엔, 뮤리나도
자신들의 하얀 창을 불러 내려 한 행동을 멈췄고,
쌍둥이 제우도 무기 소환하려던 것을 그만뒀다.
워스만만이 검붉은 검을 쥔 손에
더 힘을 주고 있었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고 있는 워스만의 모습에
마찰의 신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손짓했다.
“시작해-.”
기이이이──잉.
우우우─웅.
그 말을 신호로
시계 톱니바퀴처럼 회전하고 있는
마법진들에서 금색 빛이 강하게 발했고
그 빛은 류안을 옭아매고 있는 금빛 실의 빛을 발하게 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의식 없는 류안의 등 뒤로 검은 날개가 모습을 보였다.
기생 마수의 검은 깃털 날개가 아닌,
검은 기운으로 이루어진 한 쌍의 날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흡사,
심연의 어둠으로 이루어진 듯한 검은 날개.
누구 하나 빠짐없이 그곳에 있는 모두가
류안의 펼쳐진
밤하늘을 연상케 하는 검은 기운의 날개를
경이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 * *
심연을 닮은 어두운 곳.
‘요즘 이곳에 자주 오네···.’
류안은 왠지 저번보다도 더 작아져 있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느껴지지도 않지만,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그것과
쪼그려 앉은 자세로 마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겁을 먹은 것처럼 많이 불안해하고 있어
류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탓 아니잖아.”
류안의 말에
그것은 움찔하며 반응을 보였다.
“음-, 혹시 리아인을 이곳 세계로 데리고 온 게 너야?”
이 말에
그것은 보이지 않았으나
아주 세차게 고개를 좌우로 젓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근데, 왜 주눅 들어 있어?”
류안은 더 쪼그라들어 작아진 그것을 보며
굽힌 무릎에 팔을 올리고
한 손에 뺨을 기대며 피곤하다는 어투로
말을 이었다.
“···솔직히 그냥 확 뒤엎어버릴까 생각하긴 했거든.”
움찔─.
“피곤하고 짜증이 나서 말이야.”
움찔.
“하지만, 전에도 말했듯이.”
“그 아이가 지낼 곳이기에 날 건들지만 안으면··· 이곳 세계에 손댈 생각 없어.”
류안은 뺨을 기댄 손에 더 기대며
눈을 감았다.
“부탁받은 건 마무리 해야 하기도 하고.”
“할 일은 할 것이지만···.”
상당히 지쳐 보이는 류안의 모습을
그것은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 확인할 것이 있는데.”
류안의 말에
조용히 있던 그것은 반응을 보였다.
“저 신전의 영역 너와 상관이 있어?”
“혹, 영향을 받는다 라던가···.”
“내가 이번엔 ─힘을 좀 쓰려고 하거든.”
그 물음에
그것은 상관없다는 듯이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젓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으나,
류안한테는 보였다.
“그래, 알았어.”
“대답해줘서 고마워.”
그렇게 살며시 미소를 보이며
쪼그려 앉은 자세에서 일어난 류안은
허공 위를 잠시 보다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 * *
류안의 검은 기운 날개가
깊고 깊은 심연을 불러낸 듯이
더욱 짙은 어둠의 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여전히 의식이 없는 상태였으나,
검은 기운의 날개는 빛마저도 삼켜버릴 듯
그 크기와 웅장함이 커지고 있었고,
남다른 위압감을 풍기고 있었다.
“오오오──.”
“저 검은 기운의 날개가 절대자를 선택하는 것인가?”
리아인의 뒤틀린 기운을 강제로 빼앗아
권능을 뒤틀어 바꿀 수 있을 정도로
자신들의 내부 안에 가득히 채운 신들은
자신이 절대자로 선택될 것이라 여기며
류안의 등 뒤로 펼쳐진 검은 기운의 날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워스만과 벨드라엔이
은밀히 눈빛과 수신호를 교환했다.
저 신들이 절대자로 선택되는 순간,
방심할 수밖에 없는 그 틈을 이용해서
워스만과 벨드라엔이 동시에 영역을 펼쳐서
이곳 영역에 교란을 일으킨 후,
리아인과 류안을 데리고 빠져나갈 계획과
그 뒤, 벨드라엔이 머스킷을 이용하지 않은
권능을 그대로 사용해 이곳을 멸[滅]할 예정이었다.
신을 멸[滅]하지는 못하고
다섯 개 처형자의 하얀 창 모두
검은 옷 조직의 ‘그분’이란 자한테 있어서
제대로 먹힐지는 모르나,
도망갈 시간은 충분히 벌 수 있으리라 여겼다.
두 신의 눈빛과 수신호를 읽은
레이쉴, 다미엔, 뮤리나, 쌍둥이 제우도
보조하기 위해 조용히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게 절대자가 되는 때를 기다리는
그때의 틈을 이용하여 계획을 실행하려는
이들의 눈앞에서 검은 기운의 날개가 펄럭였다.
그리고 그 순간.
그들은 믿기 힘든 광경을 보았다.
아니, 본 그 광경을 제대로 인지할 수가 없었다.
시간이 멈춘 듯, 사라진 듯···.
분명,
류안은 빛의 실들에 묶여 있었는데.
찰나라고 표현하기에도 부족한
마치,
영상필름에서 일어나는 중간 과정을
잘라내고 보여주는 듯.
류안을 묶어 옭아매고 있던 금빛 실들이
폭격을 맞은 듯 원형으로 뻥 뚫려 있었고
끊긴 금빛의 실들은 끼긱 거리며 뒤틀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검고 긴 머리카락에 얼굴이 가려져
표정을 알 수 없는 류안이
검은 기운의 날개를 펼친 채 유유히 내려오고 있었다.
제단 위에 발을 디딘 류안은
다른 이들이 그것을 인지하기도 전에
제단 앞 리아인이 있는 홀 중앙으로 향해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류안의 검은 기운의 날개는
발 디딘 곳에 있는 마법진의 검게 물들였고
빛이 사라진 마법진은
시계 톱니바퀴처럼 회전하던 움직임이 서서히 느려지기 시작하다가 이내 멈추었다.
그렇게
한발 한발 류안이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그에 따라 마법진들도 하나둘 빛을 잃고 검게 물들며 움직임을 멈춰갔다.
흡사,
공간, 차원과 함께 시간을 뒤틀어버린 듯
류안 혼자 다른 세계에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신전 안에 있는 모두가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상황을 인지하려 했을 때는
류안은 이미 리아인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모두가 아무런 반응을 하지 못하면서
그저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류안은 힘겹게 엎드려 있는 리아인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러는 사이
류안의 발밑에 있는 마법진도 검게 물들어가 멈췄고
리아인을 옭아매고 있는 빛의 실도
검게 물들어지더니 그대로 삭아 끊어지며 사라져 갔다.
리아인은 몸을 찌르고 내부를 헤집던 빛이 사라진 것을 느끼고
움직이지 않는 몸으로 겨우 시선만을 움직여
흐릿한 눈동자로 류안을 바라봤다.
초점이 돌아오는 것인지
흐릿했던 시야가 원래대로 조금씩 회복되어 가던 중,
리아인은 놀라며 눈이 커졌다.
눈앞에 가만히 서 있던
류안이 갑자기 다리의 힘이 풀린 것처럼
무릎 꿇고 주저앉아버렸다.
그로 인해
류안의 검고 긴 머리카락은 관성에 머물러 있다가 뒤늦게 중력에 따라 서서히 아래로 흘러 내려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리아인은 더 놀라야 했다.
얼굴을 가릴 정도로
축 늘어진 검고 긴 머리카락.
오랜만에 동양 공포물의 한 장면이 떠오를 수 있었으나,
“후우─···.”
그것보다는
한숨과 함께 어깨가 처지고 상당히 지쳐있는
기운 없어 하는 류안의 모습을 보았기에.
“류···.”
“······졸려.”
“!!!!!”
류안의 말과 모습에
리아인은 움직이기 위해 몸에 힘을 주었다.
꼼짝할 수 없었던 좀 전과는 달리
다행히도 몸에 힘이 들어가면서 조금씩 움직일 수 있었다.
류안이 다시 잠들어 쓰러지기 전에
부축하기 위해 애쓰던 그때.
리아인은 자신의 얼굴 쪽으로 향해오는
하얀 손을 보았다.
겨우 상체를 일으킨 리아인의 얼굴을
류안이 양손으로 살며시 받치듯 잡았다.
“···졸리고 피곤해.”
“류···안···.”
“그래서··· 빨리 끝내려고···.”
“어···?”
빨리 끝내다니 뭐를···?
리아인이 걱정과 함께 의문이 들고 있을 때
류안에 의해 의문은 곧 풀렸다.
“리아인, 네 몸에 부담되지 않게 천천히 돌려주게 하려고 했는데···.”
류안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면서
리아인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갖다 대었다.
“한꺼번에 방출되는 것이라 좀 아플 수 있어···.”
“어?”
류안의 말과 함께
리아인은 자신을 가려주고 있던 것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신들한테 모두 빼앗겼다고 생각한
뒤틀린 기운이 방출되기 시작한 걸 느꼈다.
이미 뺏긴 뒤틀린 기운도 상상을 초월했는데
'가림'이 사라지고 방출되는 뒤틀린 기운은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
리아인은 이런 어마어마한 양의 뒤틀린 기운이 자신한테 있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이것을 이제껏 전혀 인지할 수 없도록
가려주고 있던 류안에 놀랐다.
그러면서 그 놀람은 그대로 고통이 되었다.
“···크윽!!!”
하지만,
내부를 헤집어 억지로 방출되던 때와는 달리
자연스러운 방출에 고통은 있었지만
괴롭지는 않았다.
뒤틀려져 있던 자신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것을 느꼈다.
리아인은 고통 속에서도 몸을 움직여
다시 잠든 류안이 쓰러지지 않게
조심히 품에 안았다.
그리고
자신의 몸에서 방출된 뒤틀린 기운들이
뒤틀리게 한 주인들한테 향하는 것을 보았다.
손길을 내밀어 뒤틀리게 한 신들한테로 되돌아가는 것을.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 환영합니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