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89 화 – 기록을 찾아서….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자한테 누군가가 봐준다는 것이 참 힘이 되고 고마운 것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제 89 화 – 기록을 찾아서···.
신의 처형식이 있고 난 후,
그것을 본 각 왕국은 겉으로는 별 반응 없이 평소처럼 흘러가는 듯했다.
그러나,
수호신을 들인 몇몇 왕국의 분위기가 묘해지는 흐름이 있었다.
과연 수호신이 자신의 왕국을 지켜줄 수 있을지 하는 의문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면서···.
‘신[神]’이기에 함부로 할 수 없었던 것도 있지만,
체면으로 인해 차마 수호신을 내치지 못하는 애물단지 취급하는 왕국도 있었다.
그러한 흐름 속에도 그와 상관없이
수호신이 건재한 왕국.
초대 수호신을 영입한 ‘레쉬아’ 왕국과
전쟁의 신을 영입한 ‘듀아’ 왕국.
이런 상황과 함께
대부분 왕국이 검은 옷 조직과 연관이 있다고 추측만 할 뿐인 기이한 사건, 사태로 골머리를 앓는 방면,
레쉬아 왕국과 듀아 왕국은 그런 사태들을 잘 처리하고 대응하고 있었기에
이 두 왕국은 어느새 다른 왕국들이 눈치 보며 예의주시하는
강국으로서 높은 입지를 다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로 인해
안 그래도 고생 중인데 더 고생하는 신.
레쉬아 왕국의 수호신 벨드라엔.
걸핏하면 재상들한테 붙잡혀 국정을 보느라
인형을 두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눈 밑에 다크서클이 드러나고 날이 갈수록 진해지고 있었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수호신 전용 집무실까지 생겼으며,
이제는 외교 관련 업무까지도 하게 되어 환장하고 펄쩍 뛰기 일보 직전에 있는
멸[滅]의 신 벨드라엔 이었다.
그러면서 더 환장하겠는 것이
자신의 ‘아이’인 쌍둥이 제우와 네우가 너무나 흐뭇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주 적극적으로 보좌하고 있었다.
‘뭐야···? 얘들 왜 이래? 무서운데···.’
그런 그에게 구원의 손길이 내려왔으니.
덜컹─!!!
“기록의 신 만나러 갈 건데, 너도 갈 테냐?”
느닷없이 집무실 문이 열리면서
워스만이 류안 아닌 벨드라엔을 만나러 왔고
벨드라엔은 정말 생전 처음으로 워스만이 반가웠으며 바로 승낙했다.
“그래, 가자!”
덕분에 신[神]과 관련된 일이라는 핑계를 대며 재상들로부터 도망칠 수 있게 되었다.
* * *
벨드라엔과 쌍둥이 둘. 그리고 워스만은 드물게 리아인과 류안이 없는 상태로
‘기록의 신’을 만나기 위해 움직였다.
그리고 도착한
듀아 왕국에 있는 한적한 시골 마을.
그곳에 있는 작은 서점.
『세월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곳.』
벨드라엔, 워스만은 눈을 가늘게 뜨고 무표정한 얼굴로 서점의 간판을 보고 있었다.
‘언제봐도 오글거리는군···.’
워스만은 서점 문을 밀었다.
딸랑♪.
끼익──···.
“어서 오세요. 손님 예약하신 책 찾으러 오셨나요?”
서점 점원이 깔끔한 복장에 앞치마를 두르고 손에는 먼지떨이를 쥔 모습으로 맞이했다.
“네, 세월의 일기장을 예약했습니다.”
워스만은 닭살이 올라오는 것 같은 오글거림을 꾹꾹 누르고 웃어 보였다.
그 모습을 벨드라엔이 몰래 안쓰럽게 봤다.
“네, 알겠습니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점원의 안내에 따라
워스만, 벨드라엔과 쌍둥이는 서점 구석 끝에 있는 창고로 들어갔다.
창고 안쪽에 있는 낡은 나무문을 열자
아담한 서재가 있었다.
“이곳에서 기다리고 계시면 곧 예약하신 책을 들고 오실 겁니다. 기다리시는 동안 차라도 드시겠습니까?”
“음─, 술은 없나?”
점원은 눈에 호선을 그리며 미소를 지었다.
감정 없는 예의상의 미소였다.
“죄송합니다. 서점에 술 냄새가 배게 되면은 안되기에 드릴 수 없습니다. 차를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점원은 공손히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서재를 나가면서 문을 닫았다.
탁─!
문이 완전히 닫히자
서재 안의 공기가 달라지고 있음을 알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느낌과 동시에
서재 벽 쪽에 새로이 문이 생겼다.
끼이익───.
문이 열리면서
네모난 안경에 도서관 사서 복장의 남자.
‘기록의 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왔냐?”
피곤함에 쉰듯한 목소리의 기록의 신.
‘모제’는 손에 든 책 한 권과 병 하나를 탁자 위에 놓으며 의자에 앉았다.
“서 있지 말고 앉아.”
모제가 손을 움직이자
나무 의자가 조용히 움직이며 자리했고
워스만, 벨드라엔과 쌍둥이 둘은 각자 의자에 앉았다.
뾱-!
병 입구 코르크 마개가 뽑히는 소리와 함께
모제는 어디서 꺼낸 것인지 컵을 꺼내더니 그 컵에 병 안에 든 액체로 채웠다.
“오랜만인데, 한 잔 마셔야지?”
서재 안으로 은은히 퍼지는 알코올 향에 컵을 채운 액체는 술인 것을 알 수 있었으며
모제가 퀭한 얼굴로 컵을 들어 입에 대려는 순간.
“차 가지고 왔습니다.”
“─!!!!!”
차를 들고 온 점원의 모습에
모제는 흠칫하면서 어색한 미소를 지은 채,
입에 댄 컵을 얌전히 내려놓았다.
“·········.”
“·········.”
아이가 보호자 몰래 간식 먹으려 하다가 들킨 것처럼 어색한 침묵이 흐르던 중,
점원은 가지고 온 홍차 다섯 잔을 탁자에 내려놓고 모제를 한번 뚫어지게 바라본 후.
말없이 서재를 나갔다.
점원이 나간 것을 본 워스만이 입을 열었다.
“너, 여전히 네 ‘아이’의 눈치를 보느라 술을 제대로 못 마시고 있나 보군.”
“하. 하. 크흠. 그렇긴 하지만···, 오늘은 너희가 왔다고 그냥 넘어가 주려나 봐.”
그러면서 모제는 내려놓았던 컵을 다시 들어 꿀꺽꿀꺽 시원하게 들이켰다.
“푸하──···.”
탁, 쪼르르륵──.
탁자에 놓인 빈 컵에는 다시 술이 채워졌고
모제는 술이 채워진 컵을 워스만한테 들이밀면서 말했다.
“그래서, 뭘 알고 싶은 것이 있기에 두 신께서 오랜만에 이곳에 행차하신 건가?”
“예언서를 찾고 있다.”
워스만은 모제가 건넨 컵을 들며 말하고는
컵 안의 술을 원샷 했다.
“예언서? 예언서는 내 분야가 아닌데.”
모제는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난 과거에 있었던 일을 기록, 관리하는 신이지. 일어날지 어떨질 모르는 미래에 관한 건 기록할 수 없다고. 나보다는 미래를 보는 신한테 직접 얘기해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은데.”
“미래를 보는 신 미후라는 예언서 같은 미래의 일을 기록해 남기는 행동은 할 수 없어. 권능 남용에 해당이 되어 반동이 오게 되니까. 뭐, 현존하는 점술가나 예언자들한테 미래의 일부를 슬쩍 보여주는 꼼수는 부리지만.”
모제는 워스만이 한 말의 의미를 알았다.
“음···, 그럼, 그 미래를 본 존재 중에 예언서를 만든 기록이 있나 보면 되는 건가?”
모제는 조끼 주머니에서 작은 통신 장치를 꺼내 들어 작동시켰다.
“아아─, 전 지점에 있는 ‘아이’들한테 알린다. 지금부터 기록 열람 준비를 하도록.”
모제는 말을 끝내고 손을 허공에 휘저었다.
그러자
벽 쪽 책장이 옆으로 움직이며 서재 벽면이 보이더니 이내 투명해지면서 사라졌고,
그 너머로 넓은 공간이 펼쳐져 보이면서
각 왕국에 있는 모제가 영역으로 둔 서점들이 연결되어 보이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공간 움직이는 소리가 서재 가득 채웠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규모의 기록관의 형태를 갖추었다.
그와 함께
각 구역 서점에 있는 아이들이 대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신 중 가장 많은 ‘아이’를 거느린 신.
기록의 신 모제였다.
“주제어는 ‘예언서’이다.”
모제의 명이 떨어지자.
수십? 아니, 수백 명이 넘는 아이들이 일사불란하게 각자의 능력을 이용해 예언서와 관련된 기록들을 찾기 시작했다.
“오호오~.”
“오──···.”
조용히 절제된 움직임을 보이며 기록을 찾는 아이들의 모습에 워스만, 벨드라엔은 절로 감탄이 나왔다.
그렇게 짧지 않은 시간이 흘러
아이들이 찾은 예언서와 관련된 기록들이 모제 앞에 있는 탁자에 하나둘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많군.”
워스만은 탁자뿐 아니라, 그 주변으로도 한가득 쌓인 관련 문서들을 보며 놀라면서
순간 질려버렸다.
“점술가와 예언자들이 은근히 많아. 그리고 돈벌이용으로 점을 친 것이나 예언한 것들을 책으로 만들어 여기저기 뿌려대곤 하거든. 거기에 가짜들도 가세해 거짓 예언서를 만들어 재껴서 양이 꽤 되나 보네.”
모제는 쌓인 문서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여기서 너희가 찾는 것이 있는지 다시 추려야 할 텐데, 무엇으로 추려줄까?”
“그럼, 이 중에서 ‘절대자’와 ‘검은 천사’가 있는 것을 추려줘.”
워스만의 말에
모제는 잔뜩 쌓인 문서들 위에 손을 뻗어 닿을 듯 말 듯 얹었다.
모제의 손에서 옅은 빛이 감돌더니
그 빛은 곧 문서들 전체로 퍼져가면서 겹쳐진 문서들이 한 장 한 장 분리되듯이 사이가 아주 옅게 벌려지며 떠 올랐다.
그리고는.
팔랑─··· 팔랑팔랑 팔랑─.
문서들 사이사이에서 몇 장이 빠져나와 허공에 자리해 쌓여갔다.
대략 50장의 문서.
모제는 손으로 문서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확인해 봐.”
워스만, 벨드라엔과 쌍둥이 둘은 문서를 한 장씩 들어 살펴보기 시작했고
한 장 한 장 꼼꼼히 잃어 본 그들은 한숨을 쉬었다.
“하아─···.”
“·········.”
“······.”
⅔이상은 예언서를 빙자한 절대자와 검은 천사 단어만 나오는 소설에 가깝거나,
아예 소설인 것도 있었다.
나머지는 예지몽으로 본 것을 기록한 것으로
찾고 있는 예언서와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무엇보다 절대자 후보인 ‘다른 세계의 신’에 관한 것이 어디에도 없었다.
“···찾는 것이 없나 보군.”
모제는 병에 남은 술을 마저 컵에 따라 마시며
문서들을 살펴본 신 두 명과 아이들의 표정이 시큰둥한 것을 보고 짐작했다.
“단서나 실마리라도 있지 않을까 했는데, 기대가 너무 큰 것이었나?”
워스만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손에 들고 있던 문서를 내려놓는 그때,
팔랑거리면서 문서 한 장이
새로이 쌓인 문서 사이에서 빠져나와 탁자 위에 자리했다.
워스만은 그 문서를 들어 봤고
간략한 문장이 있었다.
┌─────···∴∵∴···─────┐
절대자가 되고자 하는 후보들이여.
검은 천사와 함께
‘운명의 예언서’를 찾아라.
거기에 그대들이 나아갈 길이 있나니.
└─────···∵∴∵···─────┘
“운명의 예언서?”
문서에서 묘한 기운을 느낀 모제는
“아아─, 전 지점의 아이들한테 알린다. 기록의 알람을 마치고 각자 맡은 본 일에 돌아가도록. 모두 수고했다.”
아이들한테 임무가 끝났음을 알렸고
그와 동시에 연결되어 있던 각 지역의 서점들이 차례로 사라지면서 원래의 아담한 서재로 돌아갔다.
“흐음─···.”
모제는 눈앞 문서의 글귀를 뚫어지게 보며 침음을 삼켰다.
“운명의 예언서.”
한 번 더 글귀를 읊조리더니
모제는 뭔가 생각이 난 듯 말을 더했다.
“운명이라···, 그러고 보니 ‘운명의 신’이 있었지.”
“운명의 신?”
워스만, 벨드라엔과 쌍둥이는 생소했다.
“아, 너희는 잘 모르겠구나.”
모제는 안경을 치켜들며 자세를 고쳐 앉아
‘운명의 신’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영역과 영향력이 큰 나름 유명한 신이었는데, 여러 존재들한테 미래에 관한 예언, 각자 정해진 운명이 있다고 권능을 펼치고 다녔지.”
“정해진 운명이라고? 미래는 고정된 것이 아닌 언제라도 변할 수 있는 유동적인 것 아닌가?”
벨드라엔이 의문을 내보였다.
“그렇지, 그런데 운명의 신은 미래 중 하나를 운명으로 고집했고 운명대로 흘러야 한다며 권능을 과하게 펼치는 바람에 결국, 미래를 보는 신 미후라와 한바탕 영역싸움을 했지. 결과는···.”
“졌나 보군.”
워스만이 모제의 뒷말을 이어 말했고,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맞아. 운명의 신은 미후라한테 패하고는, 자신의 ‘방’에 들어가 은둔했지. 대학살이 일어나기 전의 일이라 지금은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거야.”
모제는 병에 남은 술이 없나 확인하고는
한 방울도 남지 않은 것을 보고는 아쉬워하며 병과 컵을 치우고 말을 마저 했다.
“아무도 찾지 못하게 자신의 ‘방’을 자체적으로 폐쇄한 것인지··· 어떻게 지내는지 아는 신도 이젠 없어.”
“혹, 이 문서가 그 예언의 신과 관련이 있는 건가?”
워스만의 말에
모제는 문서가 만들어진 시기와 만든 자의 기록을 알아보려 했다.
“어라? 기록이 뒤죽박죽이야. 이상한데···.”
모제의 표정이 묘해지면서 심각해졌다.
그리고는
재차 문서의 기록을 확인해 봤다.
“마치, 알 수 없도록 기록을 뒤틀어 놓은 것 같아.”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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