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62 화 – 목격담.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자한테 누군가가 봐준다는 것이 참 힘이 되고 고마운 것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제 62 화 – 목격담.
바다 지평선으로 해가 떠오르며
아침이 밝았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갑판을 열심히 청소하는 선원들.
선실에서 바다의 상태를 보며 항해상태를 살피는 선장과 부선장 그리고 항해사.
무역선 장비를 살피는 정비공들.
식당 주방에서 오늘 하루 책임질 음식을 조리하는 요리사들.
간밤에 있었던 상황을 전혀 모르는
무역선의 일원들은 평소처럼 각자 제 할 일 하느라 바빴다.
평소의 평범한 무역선의 아침 풍경에
제대로 잠을 못 잔 듯 퀭한 얼굴의 무역상인 비크는 선실 복도의 출입구에 서서 멍하니 그들을 바라봤다.
간밤에 있었던 일이···
정말 눈앞에서 일어났던 현실인지
그 소년의 목소리에 홀려서 본 환상인지
아니면 꿈을 꾼 것인지
아직도 감을 잡지 못하고 있을 때.
“좀 비켜주겠나?”
“아, 네. 네. 죄송합니다.”
뒤에서 들린 워스만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비크는 얼른 옆으로 비켜섰다.
워스만은 유유히 갑판으로 나왔고
그 뒤로 리아인과 류안, 쇼트도 갑판으로 줄줄이 나왔다.
루카테르는···
간밤에 크라켄의 다리들에 목과 온몸이 졸려있었던 대다가 리아인의 백금빛 전류에 하도 감전되어 경직성 근육통이 심하게 오는 통에 선실 안 침대에 뻗어있었다.
비크는 간밤에 있었던 상황을 되새기면서 갑판으로 나온 네 명을 바라보다가
류안과 시선이 마주쳤고
검고 긴 머리카락이 아닌 짧은 백발의 모습을 보며 움찔했다.
“왜?”
류안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보였다.
그러나,
비크는 아무런 대답 없이 있었다.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있었다.
짧은 외마디이나,
잔잔하게 스며드는 목소리에···
정말 저 목소리에 홀린 것인가···
검고 긴 머리카락과 검은 날개를 되새기며
어쩌면 눈앞에 있는 소년이 정말 세이렌이지 않을까?
지금의 저 모습은 정체를 숨기기 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엄청난 착각에 빠지고 있는 비크였다.
참고로 류안의 머리카락은
한번 형태를 잡았던 것이기에 몸에 인식이 되어 고양이가 털을 털 듯 머리를 가로젓자
의지에 따라 검은 장발에서 짧은 백발의 형태로 가볍게 바뀐 것이었다.
“???”
기다려도 대답 없는 비크의 모습에
류안은 관심 끊고 리아인과 다른 일행을 따라 움직였다.
* * *
달그락 달각. 웅성웅성. 왁자지껄.
무역선 식당 안에서 선장, 선원들이 한창 아침 식사 중이었다.
“······─파도도 잠잠해 이대로라면 순조롭게 도착할 것 같습니다.”
“그렇군, 하지만 바다란 존재가 언제 변덕을 부릴지 모르니, 경계 늦추지 말게.”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순항[順航]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선장과 부선장은 식사 중에도 이렇게 운항에 관련된 얘기를 하고 있었고,
“나 어제는 정말 간만에 완전 숙면을 했지 뭐냐.”
“너도 그래? 나도 푹 잠들었어.”
“얌마! 너 아직도 편식이냐? 먹기 싫다고 내 식판에 몰래 올려놓지 말라니까.”
“이번에 가는 곳이 스체스 왕국이지? 가면 마누라님을 위한 보석 장식 하나 사야겠어.”
“왜? 죄라도 지었냐?”
“죄는 무슨─, 곧 생일이 다가오기 때문에 그런다 쨔샤.”
“어? 여기 식판 안 치운 놈 누구야?”
“내가 그래서 이번에 말이야······.”
“어쩌고저쩌고──···.”
이런저런 잡담 및 담소를 나누는 선원들로 시끌벅적했다.
그와 함께
리아인과 류안, 쇼트, 워스만, 루카테르.
무역상인 비크도 같이 한쪽에 자리하고 식사를 하고 있었다.
비크는 워스만이 술만 마시고 있는 것에는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으면서
류안이 차만 마시고 있는 모습에 쓸데없는 걱정을 하며 의문을 가졌다가,
다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식사를 하고 있기에 의문을 접으려고 했다.
그러다 문득,
요정은 이슬만 마신다는 전설이 생각이 나서
류안이 바다의 요정 세이렌일 수 있다는 착각에 다시금 더 빠져들고 있었다.
이 비크라는 무역상인 왜 이러는 것일까···.
한번 생각의 틀이 뒤틀려지자
혼란과 착각 속에 허우적거리고 있는 모양새였다.
그런 가운데
옆자리에서 식사 중이던 나이 지긋한 노령의 항해사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야~, 내가 어젯밤에 아주 진귀한 것을 봤어.”
“뭔데요? 달밤에 체조하는 고래라도 보셨어요?”
노령의 항해사 맞은 편에 앉아 식사 중인 선원이 그의 말에 호응을 해줬다.
‘응? 달밤에 체조하는 고래가 있어?’
옆자리에서 노령의 항해사 말을 들은
리아인, 쇼트, 루카테르는 황당하면서도 의문이 들었다.
“뭐 그것도 충분히 진귀하긴 하지. 하지만, 그것과는 비교할 것이 못 돼.”
노령의 항해사 눈이 번뜩였다.
“내가 평생을 가도 한 번 볼까 말까 하는 바다의 파수꾼과 하늘의 드래곤이 한판 하는 것을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는 것 아니겠냐.”
“네? 에이─, 아저씨 또 꿈꾸셨나 보네.”
“아냐, 인마!!”
자신의 말을 믿지 못하고 있는 선원한테 노령의 항해사는 역정을 내며 말을 이었다.
“어젯밤, 하늘에서 백금빛 번개가 바다로 콰르릉 내리치더니, 드래곤이 모습을 보였어. 그러자 이에 분노한 바다의 파수꾼이 제 하수인들을 데리고 나타나서 한바탕하는 거야.”
그 얘기를 옆자리에서 듣고 있던
류안을 제외한 다섯 명은 노령의 항해사가 간밤의 상황을 본 것은 맞으나,
많이 각색되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그 각색된 간밤의 얘기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바다의 영역을 침범당한 파수꾼이 이를 제지하기 위해 움직이자, 드래곤이 칼바람을 일으키며 파수꾼의 하수인들을 조각조각 내버렸지.”
파수꾼의 하수인들은 워스만의 검기에 의해 조각난 바다 수인들의 얘기이고,
앞서 얘기한 번개는 리아인의 백금빛 전류 줄기들인 것 같은데··· 순서가 왜 저리 뒤섞여서 각색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파수꾼과 드래곤의 싸움이 한창 치열해지고 있을 때.”
치열했다고 할 수 있나?
일방적으로 크라켄의 다리들에 몸통 조르기 당하고 있었던 것 같던데···.
이렇게 얘기에 딴지 거는 생각을 하면서
리아인, 쇼트, 워스만, 비크까지
아직 풀리지 않은 온몸의 근육통에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루카테르를 잠시 봤다가 시선을 돌리고는
노령의 항해사가 하는 얘기에 집중했다.
또 어떤 식으로 각색되었을지 궁금해서였고
나름, 재미가 있었다.
“우리가 타고 있는 이 무역선이 위험하다고 판단한 밤하늘의 별빛들이 모여들며 아름다운 검은 천사가 되어서는···. 아니, 아니지. 그 존재는 세이렌.”
노령의 항해사는 재차 강조하며 말했다.
“맞아, 바다의 요정. 세이렌이었어.”
이 얘기에 다섯 명의 시선이 일제히 류안한테로 모였다.
류안이 그 시선에 갸웃거리는 와중에
노령의 항해사가 말하는 얘기는 뒤를 이어 계속되고 있었다.
“밤하늘의 검은 날개를 달은 세이렌은 정말 이래서 홀리는 것이구나─ 하는 청아한 목소리로 아름답게 노래하기 시작했지.”
노령의 항해사는 그때의 상황을 되새기듯 눈을 감으며 뒷말을 이었다.
“그 노래는 잔잔하게 스며드는 것이··· 정말 아름다운 선율이었고, 그 노래에 파수꾼과 드래곤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진정을 하더군. 그렇게 대격돌의 싸움은 끝나 바다와 하늘에는 평화가 찾아왔지.”
눈을 감은 노령의 항해사 얼굴에 환희가 가득할 때.
푸훗! 풋─···!!
워스만, 루카테르는 그 얘기에 마시던 술과 음료를 뿜었고,
리아인, 쇼트는 어이가 없어 얼이 빠져나갈 듯 어벙한 표정을 지었다.
류안이 검은 천사도 아닌 세이렌으로 착각된 것은···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오카리나를 닮은 투명한 돌을 그저 호루라기 불 듯 딱 한 번 불었을 뿐인데,
어떻게 하면 노래한 것으로 각색될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노령의 항해사와 얘기를 들어주던 선원은
뜬금없이 술과 음료를 뿜어댄 둘의 모습에 왜 저래? 라는 눈으로 잠시 보고는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노령의 항해사는 마지막 마무리 얘기를 했다.
“바다의 파수꾼은 바다의 평화를 지킬 수 있게 해준 세이렌한테 감사의 표시로 바다의 가호를 내려주고는 바다 밑 깊은 심해로 돌아갔고. 세이렌은 드래곤을 데리고 하늘 너머로 홀연히 사라졌지.”
바다의 가호.
이 말에 류안은 이제껏 무덤덤하게 있던 것과는 다르게 반응을 보이며 노령의 항해사를 응시했다.
“바다의 가호요?”
선원이 궁금해하며 묻자.
“그래, 파수꾼이 세이렌의 머리에 손길을 주며 바다의 가호를 내린 것이지.”
류안은 크라켄이 톡 치며 쓰다듬었던 자신의 머리를 만지며 살짝? 당황하고 있었다.
딱히, 몸이 힘들거나 괴롭지 않았는데···
또 원치 않았던 것을 저도 모르게 받아들인 것은 아닌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
눈만 깜빡거리고 있는 류안의 모습에
류안의 ‘방’에 더부살이 중인 ‘---’의 사념체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떠냐? 대단하지 않냐?”
두 눈을 반짝이며 말하는 노령의 항해사를 본 선원은
“네, 대단하네요. 아저씨 항해사 은퇴하고 나서 소설 작가로 전향하셔도 되겠어요. 분명 대성하실 거예요.”
라면서 호응을 해줬다.
그리고
식사를 마치고 빈 식판을 반납하기 위해 식판 수거대로 향했다.
“야, 인마! 소설이라니? 거짓말 아냐, 정말이야. 사실이라고!”
그러면서
노령의 항해사도 빈 식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선원 뒤를 따라갔다.
“네, 네, 알겠어요.”
선원은 건성건성 호응해 줬으며
빈 식판을 반납한 선원과 노령의 항해사는 제 할 일을 하기 위해 식당을 나갔다.
리아인은 그 둘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판타지 세계에서 이 얘기는 장르가 어떤 거지? 일상을 다룬 에세이[Essay-수필]?’
그러면서
한 가지 더 생각했다.
‘보통 크라켄은 바다의 괴수 취급받는데, 이곳에서는 바다의 파수꾼이었구나. 어쩐지 모습이 근엄하고 위엄있어 보인 것이 그런 이유였던 거군.’
그리고
비크는 많이 각색되었긴 했지만,
간밤에 자신이 본 것이 꿈을 꾼 것도 홀린 것도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면서
한 가지 의문만이 남았다.
자신과 눈앞에 있는 이들.
그리고 노령의 항해사를 제외하고는
왜 아무도 간밤에 일어난 일을 모르는 건지···.
그로서는 알 수가 없었지만,
그 이유는 간단했다.
류안이 작은 섬에서 오카리나를 닮은 투명한 돌을 갖고 오기 전,
섬에 부는 바람에 의해 투명한 돌에서 울린 미세하고 묘한 소리가 밤바람을 타고 무역선에도 흘러들어와 모두를 잠재운 것이었다.
덧붙여
바람 소리에 영향받지 않은 이유.
류안은 오히려 바람 소리가 깨운 것이며,
워스만은 전쟁의 신이라 별 영향 없음.
리아인과 쇼트는
예전 검은 옷 사냥꾼 엘라의 세이렌 목소리에 한 번 당한 적이 있어 면역이 생긴 상태.
루카테르는 드래곤이니 뭐,
그냥 잘 자다가 소란에 깨어난 것일 뿐.
비크는 청력이 남들과 조금 달랐기에
모두를 잠재운 그 바람 소리의 영향력을 받지 않았던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노령의 항해사는
참았다가는 큰일이 나는 배뇨감에 잠이 깨었고 화장실에 갔다가 우연히 그 상황을 창문을 통해 보게 된 것이었다.
그 후,
그리 오랜 시일이 지나지 않은 때.
노령의 항해사 목격담으로 인해 세이렌에 대한 새로운 전설이 만들어지고 널리 퍼진다는 것을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채,
무역선은 스체스 왕국을 향해 순항 중이었다.
아,
노령의 항해사는 은퇴 후,
소설책을 출판했고
그 소설은 나름 성공해 알찬 노후를 보냈다.
그 소설책의 제목은······.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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