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43 화 – 한판 붙은···.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자한테 누군가가 봐준다는 것이 참 힘이 되고 고마운 것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제 43 화 – 한판 붙은···.
고요함을 깨는
선명하고도 묵직한 금속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그 중심에서 일어나는 충격 여파로 인해 검은 긴 머리카락과 검붉은 짧은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워스만은 매섭게 바라보는 류안을 보았으며
짙은 회색 눈동자가 워스만의 눈동자에 맺혔다.
“이런 격한 인사, 난 환영이기는 한데─.”
워스만은 류안한테 말을 걸려고 했다.
그러나, 대답 대신 다른 반응이 보였으니
류안의 하얀 창이 뒤로 빠지는가 싶다가, 추진력을 얻은 듯 이내 다시 워스만을 향해 맹렬히 뻗어왔다.
워스만은 한 발만 뒤로 물려 몸을 지지한 후, 손에 든 단검에 맞부딪힌 하얀 창의 힘을 역이용해 원을 그리듯 옆으로 흘려보냈고,
끼─리릭.
찌릿한 금속 긁히는 소리가 나면서
하얀 창은 워스만의 옆으로 빗겨나갔다.
“얘기 먼저 할 생각은 없나?”
워스만의 말에 어김없이 침묵하며
류안은 피스링 마을에서 반사신경이 없어 운동해야 하는지 고민하던 그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놀라운 반사신경과 몸의 움직임을 보이며 워스만을 몰아붙였다.
채──앵─!
챙─────!!
카─앙──────!!!
워스만은 큰 움직임 없이 한두 발씩 움직이며 손에 든 단검을 최소한으로 움직여 하얀 창을 아슬하게 쳐내면서 공격보다는 방어하고 있었으며,
그에 비하여
류안은 몸을 크게 회전시키거나 바닥에 착지하는 순간 힘껏 박차는 등, 상대적으로 왜소한 몸에 힘을 실어 하얀 창을 날카롭게 뻗어댔다.
카─강─────!
챙───!!!
그렇게 류안의 하얀 창과 워스만의 단검이 계속해서 부딪히며 불꽃들을 튕겼다.
그런 둘의 모습을
오두막 거실 창문으로 숨죽이며 보고 있던 쇼트는 그 둘로부터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우아해 보일 정도로 절제된 동작을 선보이며 유려하게 움직이는 워스만.
거칠면서도 부드러운 동작을 보이는 류안의 모습과 그 움직임에 따라 찰랑거리며 흩날리는 검고 긴 머리카락.
둘의 모습은
격전 중이라 격렬한데도 불구하고 마치,
군사 무용을 하듯
무도회장에서 춤을 추듯
멋있으면서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오두막 2층 테라스에서 이를 보고 있는 리아인 역시 쇼트와 같은 감정을 느끼면서도 표정이 묘해졌다.
-이야~, 이거 아주 장관인데~♬.
리아인의 머릿속 심연의 목소리가 연신 감탄사를 내뱉고 있었다.
-이요~ 전쟁의 신을 상대로 저 정도라니~ 웬만한 신 녀석들은 깝도 안 되겠어. 멋있네~♪
호들갑스러운 심연의 목소리는 무시한 채,
리아인은 자신의 손바닥을 펼쳐 보았다.
식은땀과 함께 미세한 떨림이 있었다.
이 현상이 증명하듯
리아인은 지금 불안감과 초조함을 억누르느라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으니···.
“하─아···.”
리아인은 깊은 한숨을 쉬고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다시 테라스 밖.
오두막 앞마당에서 격전하고 있는 류안과 워스만을 바라봤다.
그때,
다시 심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허한 공간에서 여기저기 울리는 듯 들려왔다.
-받아들여.
-심연 밑 깊숙한 곳에 네가 묻어 둔 그것 이제는 받아들여야 할 때라고.
-너의 신한테 약한 모습 보일 수 없잖아.
-이대로 가만히 있을 거야?
류안이 뒤틀림을 가려주었기에
심연 밑바닥 깊숙한 곳에 묻어 둘 수 있었던 그것.
리아인은 어금니를 꽉 물었다.
그리고,
그런 리아인의 심경을 흔드는 현실의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채───앵─!!
챙─!!!
길지는 않지만, 짧지도 않은 시간 동안.
둘의 격전은 계속되고 있었으니.
신한테도 허용되는지 알 수 없으나,
류안은 인간으로 치면 급소가 되는 곳을 정확히 골라 창을 휘두르며 계속 공격을 했고,
워스만은 그 공격을 여유를 보이며 유유히 받아넘겼다.
그러는 사이,
무표정한 얼굴에 살짝씩 짜증이 비치는 류안과는 다르게
워스만의 얼굴에는 즐거움이 충만했다.
그래서였을까.
워스만은 그답지 않게 긴장을 놓으며 일순 방심을 했다.
그리고 그 순간.
채앵─!!!
휘리릭───··· 푹!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류안은 거침없이 하얀 창을 휘둘러 단검을 위로 쳐냈으며
워스만의 단검은 손에서 벗어나 회전하면서 호선을 그리듯 날아가 마당 한구석 잔디에 떨어져 박혔다.
그리고 바로 자신의 목을 향해오는 하얀 창을 피하려던 워스만은 발밑의 작은 돌을 잘 못 밟아 균형을 잃고 뒤로 넘어지며 어이없게 엉덩방아를 찧었다.
“───···!”
그는 바로 일어나려고 했지만,
자신의 한쪽 어깨를 거칠게 밟는 발과 목을 겨누고 있는 하얀 창을 볼 수 있었고,
싸늘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는 류안을 보았다.
격전이 잠시 중단되고
오두막 마당에는 고요함이 내려앉았다.
“하, 이런···.”
워스만은 위험할 수 있는 이 상황을 바로 뒤집을 경험과 능력이 충분히 있었으나,
이후 어떤 행동을 보여줄지 궁금하고
흔하지 않은 지금의 상황을 은근히 즐기기 위해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류안을 보며 장난기가 살짝 섞인 미소를 지으려던 워스만은 잠시 멈칫했다.
서로 격전하는 동안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고요함이 감도는 이곳에서 권능의 힘에 의한 영역이 느껴지고 있었다.
‘내가 보고 있는 이곳이 나의 영역. 나의 허락 없이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불허한다.’
류안이 워스만이 오두막에 오기 위해 펼친 탐색하는 힘을 튕겨내는 동시에 펼쳐놓은 영역이었다.
영역을 느낀 워스만은
벨드라엔의 ‘천사가 아니다’라는 말이 단순히 몰랐기 때문에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했다.
영역을 펼칠 수 있는 존재는 자신과 같은 존재뿐이었으니.
“너··· 시ㄴ.”
“야─!”
워스만이 말을 하려던 그때
류안이 그 말을 끊으며 말을 했다.
“날개만 있으면 다 천사냐?”
목소리에는 짜증이 가득하다 못해 넘쳤다.
“여기저기서 뭔 놈의 천사 타령을 그따위로 해대고 난리야? 그렇게 천사가 필요하면 새 수인한테 천사가 되어달라고 해! 상관없는 나한테 천사니 뭐니 선택이 어쩌고 귀찮게 하지 말고!!!”
류안이 짜증으로 화내든 신경질 부리든
워스만은 전혀 개의치 않고 오히려 그 모습을 가만히 보며 더 맘에 들어 하고 있었다.
이 전쟁의 신은 ‘M’인 건가···?
“가만히 있었더니 내가 가마니로 보이나 뭘 양보해라 말라야? 아우- 이걸 다 뒤엎고 없앨 수도 없고···.”
류안은 끓어오르는 짜증에 창을 쥐지 않은 손으로 얼굴을 쓸면서 고개를 숙였다.
“하─ 하하하.”
“???”
류안은 호쾌하게 웃는 워스만의 모습에 의아함이 생겨 그 자세 그대로 힐끗 그를 봤다.
“그래, 뒤엎는 것 좋지. 아주 좋아~.”
‘왜 이래?’
류안은 이상한 느낌에 워스만의 어깨를 밟고 있던 발과 목을 겨누고 있던 하얀 창을 치우면서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워스만은 천천히 일어나서는
어깨와 엉덩이에 묻은 흙먼지를 느긋하게 툭툭 털어냈다.
“그래, 짜증은 좀 해소됐나?”
워스만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류안을 봤다.
“아니!!!”
그동안 무덤덤하게 넘겼지만,
예전 피스링 마을에서 점술가가 한 말을 생각해서 버려진 신전을 찾았다가 원치 않게 ‘---의 힘’을 받아들이느라 생긴 여파로 고생한 적도 있고,
이래저래 괜히 엮이는 바람에 귀찮은 일에 휘말리면서 알게 모르게 쌓여있던 것들이
듀아 왕국에서 천사의 선택이니 절대자의 선물이니 해댄 포로의 말이 도화선이 되고,
천사 타령을 하며 양보해라 해댄 워스만의 행동이 불씨가 되어
이번에 제대로 짜증이 폭발한 류안이었다.
“그렇군. 나중에 다시 원하는 만큼 상대해 줄 테니, 일단은 나와 얘기 좀 하는 것이 어때?”
류안은 다시 불량한 자세를 취했다.
“왜? 연회장에서처럼 이용하게?”
“하, 이런. 알고 있었나?”
“네 탐색하는 힘이면 진즉에 분수에 있는 그걸 발견했을 거 아냐?”
“그렇긴 하지만 오해는 하지 말아줘. 신이라도 뒤틀린 것을 함부로 만질 수 없는 것 너도 알고 있잖아.”
류안의 표정이 아니꼬워지고 있었다.
“봉인하거나 폐쇄하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
워스만의 눈이 살짝 동그래졌다.
“너, 내 부속적인 힘도 다 아는 거냐?”
“내가 본 적도 없는 것을 어떻게 알아? 너 정도 되는 신이 그런 힘이 없다는 것이 더 웃겨서 하는 소리다.”
류안은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보듯 쳐다봤다.
“일부로 방치를 한 것이 맞네. 초대한 신이나 아이들의 저력을 알아볼 요량으로 말이야.”
“하··· 하. 하. 하.”
“그 꼼수에 내가 걸려들었던 거고.”
워스만은 류안의 시선을 피해 다른 곳으로 시선을 잠시 옮겼다.
“크흠, 틀린 것은 아니지만, 검은 옷 조직 녀석들을 잡기 위해서 한 것이기도 해.”
워스만은 장난기 없는 진중한 표정으로 류안을 바라봤다.
“그리고, 전쟁에 있어서 적의 저력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아군으로 협력관계가 될 자들의 저력을 파악하는 것 또한 중요하지.”
류안의 여전히 아니꼬운 표정이었다.
“그러셔? 그럼, 벨드라엔과 레이쉴하고 잘 얘기해 보셔.”
이제는 비아냥거리기까지 했지만,
워스만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호─, 이것이 진짜 너의 모습인가?”
류안의 한쪽 눈썹이 들썩였다.
“내 진짜 모습이 뭔데? 날 몇 번이나 봤다고 진짜 모습 타령이야?”
“음···, 하긴 그것도 그렇군.”
워스만은 진중한 표정은 집어던지고
다시 장난기가 살짝 드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모습에 류안은 왠지 소름이 돋아
슬금슬금 움직이며 워스만으로부터 거리를 뒀다.
하지만,
워스만은 귀여운 고양이를 보듯 미소가 더 짙어지고 있었다.
류안은 더 거리를 두며 뒤로 물러났다.
뭐가 좋다고··· 계속 저런 미소를 짓는 저놈한테 짜증을 해소해 봤자 이제는 역효과가 날 것 같았다.
류안은 손에 쥔 하얀 창을 붉은 브로치 아공간에 넣고는
발을 돌려 오두막으로 향했다.
그렇게 둘의 격전은 일단락된 것 같았다.
쇼트는 오두막으로 들어오는 류안을 위해 얼른 차를 준비해 거실 탁자에 올려놓다가 흠칫했다.
류안은 쇼트의 모습에 뒤를 돌아봤고
워스만이 헤실헤실 웃으며 뒤따라 들어오려 하고 있었다.
“호오~, 꽤 괜찮은 곳에서 지내고 있었군.”
워스만은 오두막 안을 찬찬히 둘러보고는
탁자에 차를 내려놓고 있는 쇼트를 보면서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도 차 한잔 부탁하지.”
“네?”
쇼트가 놀라며 당황하던 그때.
“차는 무슨, 꺼져─!!!”
퍼억──! 쾅!!!
류안은 아직 거실로 완전히 들어오지 않은
현관 입구에서 발을 들이미는 워스만의 배를 발로 힘껏 차 밖으로 쫓아내고는 현관문을 거칠게 닫았다.
그 정도 발길질에 넘어질 리가 없는 워스만은 닫혀있는 문을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지금이라도 짜증 풀릴 때까지 더 상대해 줬어야 했나? ···아쉽네.”
워스만은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발길을 돌려 왕궁으로 향했다.
쇼트는 거실 창문으로 멀어져가는 워스만을 확인하고는 한숨 돌린 후,
류안을 위해 놓아둔 차 옆에 얼음을 띄운 냉수도 한잔 챙겨주었다.
류안은 그 냉수를 들어 한 번에 들이마시고는 뚱한 표정을 하며 의자에 앉았다.
쇼트는 그래도 류안의 저기압이 조금은 사그라지는 것 같아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전쟁의 신과 격전을 벌인 것과는 별개로
짜증을 부리며 보인 모습이 누군가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리아인.
리아인이 드래곤 루카테르로 인해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났을 때 보인 모습과 많이 닮아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사람들은 물론이고
리아인 조차도 모르고 있는 것.
류안은 태생적으로 서툰 것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감정표현을 잘하지 못했는데···.
일부 감정이 결핍되어 있어서였다.
평소 사람들 사이에서나, 대화하면서도 멍하니 있고 무덤덤한 표정을 하고 있었던 것도 이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고,
그러다가
이번에 정말 짜증이 치밀어 오르면서
이 짜증을 어떻게 표출을 하고 해소해야 할지 잘 알지 못했기에,
늘 가까이 있어 봐왔던 리아인의 모습을 흉내 내어 짜증을 드러낸 것이었다.
류안은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차도 마저 마시며 짜증을 누그러뜨렸다.
계속 짜증을 내고 있어 봐야 좋을 것이 없었으니까.
쇼트는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는 류안을 맞은편 의자에 얌전히 앉아 조용히 보며 안심했다.
차를 다 마신 류안은 빈 찻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고는 고개를 들어 거실 천장을 바라봤다.
짜증도 짜증이지만
현재 신경이 쓰이는 존재.
요 며칠 리아인은 여행을 가자는 말도 안 하고, 2층 방에서 잘 나오지 않고 있었다.
거기에 리아인의 기운에 묘한 변화 일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받아들이려는 건가?”
“응? 뭐라고?”
작게 중얼거리는 류안의 말을 들은 쇼트는 반사적으로 물었다.
류안은 별말 아니라며 고개를 가로저었고
탁자 위에 팔꿈치를 올리고 손에 턱을 괴면 거실 창밖을 봤다.
창밖으로 빛이 사라지면서
어두워 지고 있는 하늘이 보였다.
* * *
국왕 레이쉴의 집무실.
레이쉴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양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어제 전쟁의 신 워스만이 이곳에 오고 벌어진 사태.
오두막 앞마당에서 있었던 류안과 워스만의 일을 쇼트가 집무실에 있는 국왕 레이쉴, 벨드라엔과 쌍둥이 둘, 드래곤 루카테르한테 알려주고 있었다.
류안과 리아인은 오두막 2층 방에 틀어박혀 있어서 집무실에는 오지 않았다.
쇼트의 얘기를 들은 레이쉴은 얼굴에서 손을 떼었다.
“···그래, 두 신이 한판을 하긴 했지만, 별일이 없이 끝났다고?”
“네.”
“···다행이군.”
레이쉴은 소파 등받이 기대었다.
어찌 됐든
류안의 저기압도 일단은 물러간 듯하니 한시름 놓을 수 있었고,
이젠 전쟁의 신만 잘 구슬리면 될듯했다.
그러던 중.
쇼트의 얘기를 들은 벨드라엔의 표정이 묘해졌다.
“희한하네···. 류안은 분명 운동신경이나 반사신경이 별로라고 했는데, 워스만하고 격전을 해?”
신을 죽일 수 있는 능력을 사용하는 것과 격전을 하는 것과는 별개라 생각했다.
“그 자식이 봐주면서 할 성격이 아닌데.”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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