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10 화 – 두 가지 선택지.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자한테 누군가가 봐준다는 것이 참 힘이 되고 고마운 것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제 210 화 – 두 가지 선택지.
공포··· 아니면 희망.
마찰의 신은 자신도 알 수 없는 두 감정에
무너져가는 신의 몸체와 인형을
복제, 재생하던 것을 멈추며
멍하니 류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복제와 재생을 멈춘
마찰의 신 몸체와 인형은 급속도로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류안은
마찰의 신한테로 손을 뻗으며 말했다.
“일단은 그것부터 멈춰야겠네.”
류안의 손끝이 마찰의 신 가슴 쪽에 닿자
순간 시간이 멈춘 듯이
신의 몸체와 인형이 무너지던 것이 멈추었고
돌봄의 가호가 마찰의 신을 감싸며
엉망이 된 몸체와 인형이 조금은 안정이 되면서 고통도 사라졌다.
멍하니 류안을 보던
마찰의 신은 일시적이나마 고통이 사라지고 안정된 것에 놀라며
정신을 차리고는 조심히 입을 움직여 말했다.
“어떻게 한 거냐···.”
“왜··· 날 도와주겠다는 거지?”
“글쎄, 왜일까?”
류안의 의문형 대답에 마찰의 신 미간이 구겨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류안은 팔짱을 하고 한 손을 들어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였다.
“난 너한테 두 가지 선택지를 줄 거야.”
“두 가지 선택지라고?”
“아, 그전에 물어볼 것이 있어.”
“···뭐지?”
“이대로 소멸이 되고 싶어? 아니면 살고 싶어?”
“뭐-?”
“소멸하고 싶다면 바로 소멸시켜 줄 거고.”
“살고 싶다고 하면 조건부로 살려줄게.”
“하─···?”
당연히 소멸이 되기 싫고
살고 싶기에 이러고 있는 것인데,
마찰의 신은 눈앞에 소년의 모습을 한
류안의 말이 장난하는 것인가 싶어 울컥 울화가 올라오고 있었다.
하지만,
희망의 감정이 입을 움직이게 했다.
“···난 살고 싶다.”
“그래? 그럼, 이제 너한테 두 가지 선택지 줄게.”
양미간을 구긴 마찰의 신은
희망의 감정에 얼떨결에 말하긴 했으나,
공포의 감정으로 인한 경계를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류안의 이어질 말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류안은 검지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첫 번째 선택지.”
“신으로서 살고 싶다고 하면 난 너를 소멸시킬 거야.”
“하──?”
류안의 말에 마찰의 신은 어이가 없어
크게 탄성을 내질렀다.
살려주겠다는 듯이 말하더니,
결국에는 소멸시키겠다는 저 말이
마찰의 신한테는 말장난하는 것으로만 들렸다.
“그 말은··· 구질구질하게 연명[延命]하며 늘어지지 말고.”
“신의 존엄성을 지키고 소멸하라는 거냐?”
“응? 아냐.”
“그럼, 뭐냐?”
“네가 기껏 뒤틀림에서 벗어난 그 아이한테 ‘신의 손길’을 또 내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야.”
움찔.
마찰의 신은 ‘신의 손길’이라는 말에
미세하게 동요를 보였다.
신의 몸체와 인형이 원래대로 복구되면
다시금 뒤틀린 아이를 만들어
그 뒤틀린 기운으로 절대자가 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류안은 마찰 신의 그런 낌새를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두 번째 선택지를 말했다.
정말 살고 싶다면
마찰의 신은 이 두 번째 선택지를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러면 더 이상 리아인뿐만 아니라
그 외 누구한테도 ‘신의 손길’을 내밀지 못하게 될 터였다.
“신이 아닌 그 외의 존재로서라도 살고 싶다면 내가 새 삶을 살 수 있게 도와줄게.”
“뭐─?”
마찰의 신은 첫 번째로 제시한 선택지보다
더 어이없고 황당했다.
신 이외의 존재라니···.
“···날 인간으로라도 되게 하겠다는 거냐?”
원래 인간이었던 ‘신의 아이’라면
힘들고 복잡하긴 해도 인간으로 되돌릴 수 있었다.
신으로부터 받은 모든 것을
되돌려 주거나 없애면 되는 것이었다.
류안은 이렇게 쉽게
신의 아이였던 ‘마스’를 인간으로 되돌리긴 했으나,
이것이 결단코 쉬운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애초에 인간과는 다른 그 상위 존재인 신을
인간 혹은 그 이외의 존재로 바꾼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눈앞 존재의 입으로부터 흘러나온 대답에
마찰의 신은 놀라야 했다.
“맞아.”
“아, 혹시 인간 이외에 되고 싶은 존재 있어?”
류안의 뒤 이어진 물음에
마찰의 신은 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가능하다고···?’
‘정말 인간 혹은 그 이외의 존재로도 바꿔줄 수 있다는 말인가···?’
마찰의 신은 자신이 잘 못 들었던가,
눈앞에 서 있는 자가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것이라 여겼다.
단순히 신의 권능을 없앤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이건 ‘세계’급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세계’라 할지라도 하기 힘든 것이었다.
그런데··· 왜···
불가능한, 이 말도 안 되는 말이
가능하다고 느껴지는 것인지···
그러면서도
마찰의 신은 류안의 말에 반박하려고 하다가 멈칫했다.
“···너 정체가 뭐냐?”
류안이 질리도록 들은 말.
“음-, 그런 물음을 많이 들어서 그런가?”
“이젠 나도 헷갈리네.”
“분명히 ‘신’으로 태어난 것은 맞는데···.”
류안은 눈을 감고 갸웃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자신은 ‘신’으로 태어났다.
태어나기 직전이라고 해야 하나?
그 과정에서
우연히 리아인의 뒤틀린 기운에 뒤틀리고
그 뒤틀림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권능을 뒤틀어 바꾼 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영향력조차 없는
어찌 보면 하찮다 할 수 있을 정도의 최하위 신으로 지내고 있었는데.
지금은 ‘신’이 아닌
다른 존재로 뒤틀려 바뀌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도 끝이 없는 현재진행형으로···.
하지만,
그건 지금 굳이 따져야 할 중요한 일은 아니었기에 저 구석 귀퉁이로 치웠다.
“그래서, 선택할 거야? 말 거야?”
이 물음에
마찰의 신은 또다시 대답하지 않은 채,
류안을 빤히 보고 있었다.
눈앞의 존재를 ‘신’이라고 인지하게 되자
느껴지는 수많은 권능.
자신이 소유했던 권능보다도 많은
자신처럼 본래의 권능 안에 억지로 욱여넣은 것은 불안정한 상태가 아닌
하나하나 안정되게 독립된 채 있는 권능들.
그중에서도 눈에 띄게 느껴지는
5대 원소의 권능과 생[生]과 사[死]의 권능.
이 일곱 가지의 권능만 있어도
신의 영역을 넘어서는
하나의 세계를 만들 수 있는 수준이었다.
“·········.”
그저 멍하니 자신을 보는 마찰의 신 모습에
류안은 고개를 갸웃거렸고
그러던 중.
마찰의 신 입 밖으로 의문이 나왔다.
“···어떻게 네가?”
“???”
마찰의 신은 류안한테서 느껴지는 권능 외에
뒤틀린 기운도 느꼈다.
외부에서 들어온 뒤틀림을 다루는 것이 아닌
뒤틀림 자체를 가지고 있는 존재.
절대자가 되기 위해
모든 신의 권능을 아우르기 위해
고정된 권능의 틀을 무엇으로든 변화할 수 있는 점토와 같은 형질로 바꾸기 위해
뒤틀린 기운이 필요하고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끝없이 뒤틀린 기운이 보충되어야 했기에
뒤틀린 아이를 곁에 두어야 했다.
“뒤틀린 아이의 뒤틀림을 가진 것이냐?”
“대체 언제···?”
마찰의 신 물음에
류안은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음, 덕분에 뒤틀리긴 했지만.”
“뒤틀린 기운을 가져온 것은 아니야.”
말그대로 였다.
하지만, 마찰의 신은
류안의 말이 뭔가 이해가 되지 않았고
그렇다고 의심할 수는 없었다.
억지로 뒤틀린 기운과는 질이 달랐으니까.
자연적인 돌연변이의 뒤틀림보다 더 순수한
마치,
뒤틀림 자체가 순리라는 듯했다.
“···애초에 네가 ···절대자였던 것이냐?”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것을 가지고 있는 존재.
자신처럼 억지로 약탈하듯 취득한 것이 아닌
자연스럽게 자리하고 있는···
자신과는 너무나도 다른 존재.
마찰의 신은 처음부터 ‘절대자’가 되려고 하지 않았다.
‘마찰’이라는 것이
움직임에 의한 모든 에너지의 근원이 되기에
상위급의 신으로 제 권능에 충실했다.
그런데,
이것이 단순한 물질적인 것이 아닌
심리적인 마찰에 부딪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심리적인 마찰은 자신이 통제하기 버거웠고
그로 인해 견디기 힘든 반동을 받아왔다.
그런 심리적인 고통과 반동에서 벗어나려고
그 심리적인 마찰을 없애기 위해
절대자가 되고자 했다.
모든 신을 아우를 수 있는 '절대자' 되면 가능할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이룰 수 없는 바람이었다.
신으로서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심리적인 마찰을 거부했기에.
거부한 순간
신의 자격을 잃어가고 있었을 것이고
그래서 절대자가 되려는 헛된 꿈을 꾸게 된 진짜 이유일 터.
인정해야 했다.
자신은 자격도 없는, 안되는 것을···.
눈앞에 있는 존재가 진정한 ─임을···
인정해야 했다.
“그래서 선택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군.”
“······하.”
마찰의 신 얼굴이 일그러지는가 싶더니,
류안 앞에서 마지막을 맞이한 신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이내 허탈한 웃음을 보였다.
“하하··· 하···.”
그러다,
마찰의 신은 한가지 깨달았다.
“하··· 이런 어이없는···.”
“신이란 자들이 결국에는 이룰 수 없는 욕심에 눈이 멀어 그 문서에 농락당한 것이군···.”
마찰의 신이 말한 문서는 ‘운명의 예언서’였다.
문서를 접한 존재들을 금빛 실로 엮으면서
운명의 마리오네트로 만들려고 한
운명의 예언서.
“하···아··· 정말 살려주는 것이냐?”
진정한 절대자를 맞이한 듯
마찰의 신은 류안을 보며 말했다.
그 모습에 류안은 미간이 구겨졌다.
“음-, 뭘 착각한 것 같은데, 난 아냐.”
“네가 생각하는 그거 아냐.”
류안은 재차 강조하면서 아니라고 말했으나,
소용없었다.
“그래, 진정한 ─라면 그것마저 자신의 맘대로 할 수 있는 거겠지···.”
‘뭐지? 일렁임의 신도 ‘─’라고 칭하던데···.’
류안은 구겨진 미간이 더 구겨지려 할 때,
마찰의 신 말이 이어졌다.
“다른 신들과는 달리 나한테는 왜 이런 기회를···.”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지?”
“따지고 보면 제일 처음 그 아이를 뒤틀어 버린 나의 죄가 가장 무거울 것인데···.”
마찰의 신 물음에
류안은 별 고민 없이 말했다.
“별거 아냐.”
“그냥 네가 운이 좋은 것일 뿐이야.”
“운이 좋다고?”
“그래, 그 운[運] 덕에 기회가 생긴 거지.”
류안은 담담한 표정으로 마찰의 신을 봤다.
일렁임의 신이 좀 예외가 되긴 했으나,
눈앞 마찰의 신도 조금 다르지만,
비슷한 이유로
더 이상 리아인과의 연관이 없어졌기에
굳이 귀찮게 소멸시키지 않아도 되게 된 것이었다.
그런 와중에 선택지를 준 것은
만의 하나를 없애버리기 위해서였다.
“할 말 끝냈어?”
“어떻게 하고 싶어?”
“선택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난 그냥 내 권능대로 하면 그만이니까.”
류안은 팔짱을 낀 양팔을 펼쳐 보이며
말을 이었다.
“강요하지는 않아.”
강요하지 않는다 라···.
틀린 말 같으면서도 맞는 말이었다.
류안은 ‘신의 학살자’이기에
신을 소멸시키는 것에 이유가 필요 없었다.
그러면서도
조건을 단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마찰의 신이 그 기회를 선택하면
살 수 있게 도와줄 것이고
아니면 소멸시키면 되는 것이었다.
일종의 변덕이었다.
류안은 이 영역 안으로 들어왔을 때만 해도
마찰의 신이 더 이상 ‘손길’을 내밀지 못하게
빨리 처리하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살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는
마찰의 신의 처절한 모습 때문이었는지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류안은 굳이 줄 필요도 이유도 없는 기회를
선택지를 마찰의 신한테 주었다.
그리고,
마찰의 신은 그 기회를
두 가지의 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했다.
“인간이 되어서라도 살고 싶다.”
“그래, 알았어.”
류안은 그 선택에 따라
마찰의 신 가슴 쪽에 다시 손을 갖다 대었다.
그 손길에
마찰의 신 안의 뒤틀어져 굳어가던 권능이
흐물거리며 녹아내리더니
맑은 액체가 된 듯이
류안의 손을 통해 빠져나왔고
그대로 류안의 안으로 스며 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류안은 잠시 미간을 구겼으나
손을 떼지 않고 다음 단계에 들어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묘한 기운이
따뜻하면서 포근함을 주는 아련한 기운이
마찰의 신 몸에 감돌기 시작하면서
엉망으로 망가진 신의 몸체와 인형 대신
인간의 육체가 형성되어 가기 시작했다.
겉모습, 형태뿐 아니라
기본 골격을 시작으로 내장, 혈관, 근육 등
완벽하게 인간의 육체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것을 느낀 마찰의 신은
이로 말할 수 없는 경이로움에 눈이 커질 뿐이었고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흐른 후,
류안은 마찰의 신 가슴 쪽에 댄 손을 떼었다.
“후우─···.”
조금 힘이 들었는지
류안은 숨을 옅게 한번 내쉬고는
이제는 ‘신’이 아닌
20대 중 후반의 청년 모습인 한 ‘인간’을 바라봤다.
신이 아닌 평범하디 평범한 인간이 된
마찰의 신은 가진 것 없이
이제 밑바닥부터 시작해야 했지만,
류안은 상관할 바 없었다.
이 이후는 본인이 알아서 할 일이었으니까.
류안은 더 볼일 없어
오두막을 돌아가기 위해 발을 움직였다.
그때, 목소리가 들렸다.
“페리지.”
“내 이름은 ‘페리지’이다.”
마찰의 신··· 아니,
‘페리지’는 류안한테 자신의 이름을 밝혔고
류안은 별 반응 없이 두 눈만 깜박거렸다.
“···그냥 말하고 싶었던 것뿐이니.”
“신경 쓸 것은 없다.”
페리지가 머쓱함을 보이며 말하든 말든
류안은 신경 쓰지 않았으며
목소리가 들려 그냥 돌아본 것뿐이었기에
다시 몸을 돌려 오두막으로 돌아갔다.
류안이 돌아간 후,
‘신’이 아닌 ‘인간’이 된 페리지를 대신해
류안이 유지하고 있었던 영역이 사라지면서
울창한 숲이 모습을 보였다.
하늘을 가득 덮고 있는 나뭇잎들 사이로
빛이 반짝이면서 비추어졌고
페리지는 눈이 부셔 한 손으로 그 빛을 가렸다.
그리고,
류안이 있었던 곳을 잠시 보고는
인간으로서 살기 위한 첫걸음을 움직이며
어딘가로 향했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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