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54 화 – 대치하다.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자한테 누군가가 봐준다는 것이 참 힘이 되고 고마운 것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제 54 화 – 대치하다.
독단적인 행동.
“──!!!!!”
붉은 드레스의 여성은 검은 머리의 소년.
류안이 홀린 것이 아닌 것을 눈치챘다.
여성은 곧바로 주변을 경계하며 살펴봤다.
그리고,
이질적인 것을 한 가지 발견했다.
하얀 옷을 입은 ‘신’을 제외하고
냉기가 서려 있는 이곳에서 다들 입에서 하얀 입김을 내뿜고 있는 와중에
한 명한테서 그것이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런 경우는 시체이거나······
인형을 두른 ‘신’.
붉은 드레스 여성의 눈이 커졌다.
적이라고 할 수 있는 신과 대치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판국에 ‘손의 손길’이니 ‘뒤틀림’이 중요하지 않았다.
“멈춰─!!!”
여성은 하얀 옷의 신을 향해 소리쳤지만
이 망할 신은 말을 듣지 않았다.
“방해하지 마라! 이 아이는 내가 가질 것이다!!!”
“저 미친─···!”
여성이 짜증으로 뭐라 하든 말든
하얀 옷의 신은 류안을 향해 손을 움직였다.
새하얀 장갑 뒤로 붕대에 감겨있는 팔이 보였으며 그 붕대에는 검붉은 얼룩이 가득했다.
“이런 식으로 몇 명이나 뒤틀었어?”
이 말에 내밀던 손을 멈춘 하얀 옷의 신은
류안한테서 느껴지는,
미약하나 확실하게 느껴지는 기운에 흠칫하며 뒤로 한발 물러섰다.
“······아이여, 넌 ···누구지?”
하얀 옷의 신 말에
류안은 고개를 한쪽으로 갸웃했다.
“글쎄···.”
“곧 소멸하게 될 놈이 알아서 뭐 하려고 그러지?”
“───!!!!!!!”
“─!!!!!”
류안의 말 뒤로 워스만의 목소리가 들렸고
하얀 옷의 신과 붉은 드레스의 여성은 엄청난 위압감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 위압감에 워스만의 존재를 알아차린 신은 두려움에 떨었다.
전쟁의 신.
“네··· 네가 왜 여기에······?”
“왜긴, 수호신으로서 할 일 하러 왔지.”
워스만은 몸에 검붉은 갑옷을 두르기 시작했다.
“내가 수호하는 왕국의 영역에 침범한 것이니, 신과 신으로서 제대로 영역 싸움을 해야 하지 않겠어?”
“─!!!!!!!”
그때,
“막아─!!!”
붉은 드레스 여성의 고음이 화원 안에 울려 퍼졌다.
그에 반응해
눈동자에 초점 없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가만히 있던 자들이 움찔거리더니,
이내 좀비처럼 움직이며 워스만 쪽으로 몰려들었다.
“이런─···.”
워스만은 자신한테 덤비듯 달려드는 자들의 목덜미를 양손으로 하나씩 낚아채 화원 구석진 곳으로 차례차례 던졌다.
쿵─. 철퍼덕. 투악!! 쿠당! 콰당-···.
화단과 바닥에 떨어져 나뒹굴던 그들은 이내 다시 일어나 빠르게 달려들더니,
워스만의 다리를 붙잡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워스만이 검은 옷의 녀석들이 아니라
맘대로 죽일 수도 없어 난감해하며 제대로 못 움직이고 있는 사이,
붉은 드레스의 여성은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화원 문밖으로 빠져나가 미로 같은 복도를 내달렸다.
이렇게 된 것.
상대해야 하는 신의 발은 묶어 놓았으니,
썩어도 준치라고 하얀 옷을 입은 그놈도 신이니 알아서 잘 대처할 것이라 여겼고
한 녀석이라도 뒤틀어 놓으면 그로 인해 주변도 감염이 되듯 뒤틀릴 것이며
그렇게 되면 갑옷을 두른 신도 뒤틀림에 대응할 수 없기에 움직임을 완전히 막을 수 있다.
그 후,
뒤처리만 잘하면 되는 것이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그 녀석도 곧 올 것이라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오히려,
잘만하면 어마어마한 뒤틀림을 수거하는 쾌거를 거둘 수도 있었다.
이렇게 계획을 세운 여성은 속도를 올려 내달렸다.
다다다다─다─────.
긴 드레스를 입었음에도 미로 같은 복도를 빠르게 내달리던 여성의 눈에 건물 밖으로 통하는 문이 보였다.
여성이 손을 뻗어 문의 손잡이를 잡아 열려고 하던 그 순간.
“야옹~.”
고양이 소리에 흠칫하며 여성이 고개를 돌려 본 그곳에는 고양이 한 마리.
살쾡이 모습의 키사가 있었다.
“뭐야, 이 못생긴 것은?”
“!!!!!”
그 말에
평소 숲의 요정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심지어 처음에는 동행하는 것을 달갑지 않아 했던 리아인도 자신의 살쾡이 모습에 홀려 넘어갔는데···
키사는 엄청난 충격으로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굳어버렸다.
그런 것을 알 길 없는 관심도 없는
붉은 드레스의 여성은 무시하고는 문을 열었다.
달칵─.
“어······?”
여성은 놀라고 말았다.
문을 열고 보인 곳은 건물 밖이 아닌 화원이었기 때문으로,
키사가 이미 공간을 왜곡시켜 놓았기에 복도를 빙빙 돌다가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었다.
“이··· 무슨···.”
그리고
여성의 눈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소멸이 진행되고 있는 하얀 옷의 신과
하얀 창을 든 검은 긴 머리카락 소년의 뒷모습.
가루로 부서지며 소멸하는 신을 가만히 보고 있는 소년의 목소리가 들렸다.
“갈 때 가더라도 홀린 것은 풀고 가.”
“뭐─?”
여성은 당황하지 않고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는
곧 입가에 비웃음을 서렸다.
“내가 왜? 꼬마야 네 일행도 내 노래에 홀렸나 본데, 미안해서 어쩌나 난 풀어줄 생각 없는데.”
여성이 손짓을 보이자
리아인과 쇼트가 여성의 옆에 자리했다.
“너의 형들은 내가 아주 잘 써먹어 ㅈ···.”
여성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고개를 돌리고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소년.
류안의 시선에 오싹함이 밀려와 입이 저절로 다물어졌다.
특히,
투명하다 싶은 청회색 눈동자의 시선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이건 대체 뭐야··· 뭐냐고···?’
마치, ‘그분’처럼 거스르면 안 된다는 듯 몸이 움츠러들었다.
여성은 말도 안 되는 착각 따윈 뿌리치고,
곧 다른 이유를 찾았다.
이곳에 있는 또 한 명의 신.
전쟁의 신.
‘이런 젠장, 저 신이 저 꼬맹이한테 힘을 빌려줬나 보네. '아이'도 아닌 놈한테 힘을 빌려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
여성은 완전히 소멸한 신의 남은 하얀 옷을 힐끗 봤다.
‘신’이라 해도 ‘신’을 소멸시킬 수 없다.
이것을 알고 있는 여성은
하얀 옷의 신이 전쟁의 신 힘을 빌린 소년과 맞붙은 과정에서 결국, 반동을 이기지 못해 자멸한 것이라 여겼다.
“쳇, 쓸모없는 신 같으니라고···.”
그리고
소년이 손에 쥐고 있는 하얀 창으로 시선을 옮겼다.
‘기분 나쁘게 하얀 창을 흉내 내서는···.’
“쓸데없는 생각 그만하고 홀린 것이나 풀지 그래.”
워스만이 다리에 사람들이 매달린 그대로 아무렇지 않게 여성 가까이 걸어와 말했고,
여성은 자신을 덮치는 위압감을 애써 무시하며 미세하게 떨리는 입술을 힘겹게 열었다.
“···풀 수 없어.”
“뭐?”
“내가 죽는다고 해도 내린 명령을 완전히 수행하기 전에는 절대 풀리지 않아.”
워스만은 여성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그 말은 널 무사히 도망가게 해줘야 홀린 것이 풀린다는 것인가?”
“아니!”
여성의 눈이 순간 매섭게 변했다.
“방해하는 존재의 죽음♪! 너희가 죽어야 홀린 것이 풀린다는 거다♩♬!!”
여성의 목소리에서 노래할 때의 고음이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워스만의 다리에 매달려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갑옷을 두르고 있는 그를 향해 주먹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퍽. 퍽. 퍽. 빡. 퍽. 빠각─.
“허─···.”
워스만의 입에서 어이없는 탄성이 나왔다.
무기를 들고 덤벼도 갑옷에 흠집을 낼까 말까 하는데 일개 인간의 주먹질에 타격을 입을 리가 만무했다.
하지만,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눈동자에 초점이 없는 사람들은 손이 까지고 피가 나도 주먹질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자~♪ 너희들도 가서 날 방해하는 저 꼬마를 없애♩.”
여성의 말에 리아인과 쇼트는 움찔거리며 발을 움직이려 했으나,
이내 저항을 하듯 발을 멈추고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이런─··· 쳇.”
여성은 좀전의 명령도 그렇고,
분명 홀린 상태인데 자신의 공격명령을 듣지 않은 둘의 모습에 의문인 것도 잠시,
혀를 차며 빠르게 주변을 살펴봤다.
곧, 자신의 옆에 있는 두 녀석 때문인지 소년이 가만히 있는 것을 인지하고는
화원의 유리로 된 둥근 천장을 바라봤다.
‘이 자식은 왜 이렇게 안 와.’
“누구 기다려?”
류안의 말에 여성이 흠칫하려던 그때,
와장창───!!!
유리로 된 화원 천장이 깨지면서 긴 하얀 그림자가 날아왔다.
그 하얀 그림자는 창의 모습을 드러내며
류안의 바로 옆을 스치곤 정자 바닥에 박혔다.
콰직──!
하얀 창이 박힌 바닥 주위로 거미줄 같은 균열이 생겼다.
그리고 그 반동으로 인해
휘날리는 검은 긴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류안의 뺨에 한줄기 상처가 보였다.
그 모습에 리아인과 쇼트의 몸이 순간 움찔하며 동요를 보였으나,
이내 아무런 움직임 없이 있었다.
류안은 상처가 난 뺨을 한 손으로 쓸었다.
손이 지나고 간 뺨에는 상처 따윈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는 사이.
깨진 화원 천장을 통해 유유히 내려와 바닥에 발을 내디디는 하얀 창을 던진 남자.
오른쪽 뺨에 세 줄의 흉터가 있는 남자와 류안의 시선이 마주했다.
“야, 몬드 뭐하다 이제 온 거야?”
세 줄 흉터의 남자 몬드는
붉은 드레스 여성의 말에 뒤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엘라, 너야말로 뭐 하고 있었던 거야? 사냥감을 눈앞에 두고 뭘 멍청하게 있는 거지?”
“어? 뭐···?”
“저쪽에서는 그렇게 찾아도 안 보이더니, 이곳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군.”
붉은 드레스와 붉은 장미 안대를 한 여성.
사냥꾼 엘라는 놀라며 류안을 봤다.
검고 긴 머리카락.
자신들의 임무를 방해해 왔던 그 소년.
“아───!!!”
“지배인이 알려줬을 터인데, 또 노래하는 것에 심취해 까먹고 있었나 보군.”
“크흠, 뭐, 그래도 한 녀석은 이렇게 잡았잖아.”
엘라는 자랑하듯이 자신의 옆에 있는 밝은 갈색 머리카락의 소년.
리아인을 가리켰다.
“허─···.”
몬드는 실소를 내뱉으며 리아인을 보려던
그 순간.
휘이이이익───── 콰광─!!
몬드의 눈에 자신의 오른쪽 뺨을 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는 익숙한 하얀 잔상의 긴꼬리가 비추어줬으며,
그 하얀 잔상은 엘라와 리아인 사이를 통과해서는 화원 문을 뚫고 지나가 미로 같은 복도 벽을 부수었다.
그 바람에
문밖 구석에서 엘라가 한 말의 충격으로 아직도 굳어있던 키사는 갑작스러운 날벼락에 꼬리가 풍선처럼 부풀고 눈이 커지면서 더 굳어져 버렸다.
다행히 휩쓸리지 않아 다치지는 않았다.
“와씨-!! 저 꼬맹이가 일행이 다쳐도 상관없나? 조심해! 저 꼬마 신의 힘이 담긴 창을 쓰고 있어.”
엘라는 짜증이 섞인 고음으로 말했다.
“짜증 나게 하얀 창을 흉내서는···.”
“······저 창. 내 하얀 창이다.”
“뭐─?!!!”
엘라는 이제껏 본 적이 없는,
얼이 빠진 듯 부서진 문밖을 바라보는 몬드의 모습을 보고는 놀라 황급히 시선을 돌려서는 문밖 부서진 벽들 너머의 벽에 박혀있는 하얀 창을 봤다.
창이 박힌 벽에는 미세하게 거미줄 형태의 균열이 가 있었다.
엘라는 다시 고개를 돌려 검은 긴 머리카락의 소년.
류안을 봤다.
그리고,
그의 손에 들린 하얀 창을 봤다.
몬드도 고개를 돌려 류안을,
그리고 하얀 창을 봤다.
“·········.”
“············.”
둘의 눈동자가 말도 안 되는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에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몬드의 하얀 창을 아무런 장치도 없이 아무렇지 않게 다룬 것만도 이미 놀람의 수준을 넘어섰는데···,
소년의 손에 들린 창은 단순히 하얀 창의 겉모습을 흉내 낸 것이 아닐뿐더러
자신들의 창 같은 복제품도 아닌 것을 알았다.
“─!!!!!”
몬드와 엘라는 인지했다.
‘그분’의 하얀 창과 같은 기운을···
아니,
그 이상의 위압감과 강한 기운을 느꼈다.
“설마··· 처형자의 하얀 창?”
“뭐? 처형자의 하얀 창이라고? 말도 안 돼!!!”
몬드의 말에 엘라는 인지하고 있었지만
믿을 수가 없었다.
믿고 싶지 않아 부정하고 있었다.
‘처형자’의 하얀 창은 오직 ‘그분’만이 다룰 수 있었기에···.
그도 그럴 것이
류안이 지금 다루고 있는 하얀 창은
버려진 신전,
‘---’인 신의 의자에서 습득한 ‘처형자’의 하얀 창이었다.
“뭘 넋을 놓고 있어? 지금이라도 홀린 것 푸는 것이 어때?”
류안의 말에 몬드와 엘라가 흠칫했다.
“아, 홀린 것 풀 생각이 없다고 했지? 어째야 하나···.”
류안은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하는 듯하더니,
“그럼, 그냥 죽을래?”
그러면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미소에 몬드와 엘라의 표정이 공포로 일그러졌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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