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72 화 – 뒤틀려버린···.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자한테 누군가가 봐준다는 것이 참 힘이 되고 고마운 것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제 72 화 – 뒤틀려버린···.
슈화아아─악────.
찰나의 빛과 함께 뒤틀린 기운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드러난
움푹 파인 공터.
그 광경을 본 벨드라엔은 재차 광원[光源]을 만들어 쏘려던 것을 멈칫했다.
멸[滅]의 신. 벨드라엔.
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멸[滅]할 수 있는
벨드라엔이 제약을 풀지 않은 이유.
그가 제약을 풀고 권능의 힘을 사용하여 뒤틀린 기운을 멸[滅]하게 되면
그 일대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휩쓸어 멸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속되게 표현하면
빈대 잡다 초가집 태우는 그런 사태가 벌어지게 될 수 있었다.
쩌적─···.
제약을 풀지 않고 힘을 쓴 탓에
벨드라엔의 ‘인형’에 미세한 균열이 다시금 생겨났다.
행동을 멈춘 벨드라엔을 본 페디로스는
워스만도 그렇고
벨드라엔 역시 자신이 다루는 뒤틀림에 겁을 먹고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여겼다.
그런 착각에
페디로스는 얼굴에 드리운 흉상을 거두고는
입가에 미소를 만개 지어 보이며
이 주변 모든 것을 뒤틀어 버릴 듯
자신 안에 있는 모든 뒤틀림을 방출하기 시작했다.
그 뒤틀림으로 인해
발을 디디고 있는 땅은 물론이고
주변에 있는 건물들과 나무들이 뒤틀렸으며
페디로스 근처에 있던 검은 옷 조직의 일원들도 휩쓸려 몸이 기이하게 뒤틀리면서 소리 없는 비명과 고통에 몸부림쳤지만
그들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듯이
페디로스는 더욱더 뒤틀림을 광범위하게 내뿜어대고 있었다.
그리고
뒤틀림은 두 신을 향해 검은 마수[魔手]를 펼치듯 뻗어갔다.
그 마수에는 페디로스의 탐욕 또한 스며있었다.
전쟁의 신 워스만은
자신이 왈가왈부할 것 없이 누구나 인정하는 최상위급 신.
멸[滅]의 신 벨드라엔은 좀처럼 영역을 펼치지 않고 도망자같이 돌아다녔기에 권능의 진가를 모르는 이들이 많았으나,
멸[滅]의 권능 자체는 함부로 무시할 것이 못 되었다.
벨드라엔은 인정하지 않아도
권능 자체는 인정하는 페디로스였다.
그렇기에
두 신의 권능 ‘전쟁’과 ‘멸[滅]’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면 어마어마한 영역과 영향력을 펼칠 것은 안 봐도 자명[自明]할 거라 여겼다.
“크크크크───······.”
기괴한 웃음을 흘리는 페디로스를 보며
벨드라엔과 워스만은 그저 안쓰럽기만 했다.
그건 그렇고,
벨드라엔은 제약 때문에 ‘인형’이 부서질 것을 감수하면서 뒤틀림을 없애려 했지만
일정한 형태가 없는 것만 없애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워스만 역시 뒤틀림을 봉인해 가두기에는 농도와 범위가 커 난항을 겪고 있었다.
페디로스 저 망할 놈이
뭔 생각으로 이런 짓을 벌이는 것인지
워스만은 죽이고 싶어도 죽일 수 없는 적을 보며 답답해하던 그 순간.
쉬이이이이─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품은
하얀 잔상이 긴꼬리를 그리며 날아왔다.
“······───!”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는 가운데
그 하얀 잔상은
벨드라엔과 워스만 그리고 페디로스.
그들이 있는 곳 중앙지점에 떨어져 박히며 모습을 드러냈다.
하얀 창.
벨드라엔과 워스만은 하얀 창의 주인이 누구인지 바로 인지하는 사이.
페디로스는 만에 하나 생길 뒤통수를 대비해 검은 옷 조직의 창술사와 사냥꾼은 대동하지 않은 상태에서 누구의 것인지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슈르르르르─르─────.
주변에 퍼져있던 뒤틀림은 일제히 하얀 창의 창촉에 박혀 있는 투명한 돌 안으로 빠르게 흡수되어갔다.
“이 무슨─······!!!”
페디로스는 상위급의 두 신도 어쩌지 못한
자신만만하게 퍼트려 놓았던 자신의 뒤틀림이 너무나 쉽게 사라지는 것에 당황하며
하얀 창을 던진 장본인을 찾아 하늘을 바라봤다.
하늘에는 태양을 등진 채,
커다란 한 쌍의 날개를 펼치고 있는
검은 천사의 모습이 보였다.
페디로스는 검은 천사가 이곳에 모습을 보인 것에 놀라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그 시건방진 어린 것의 모습을 하는 것에 한 번 더 놀라고 말았다.
“어째서 저것이······.”
페디로스가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에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사이,
시건방진 어린 것.
류안은 뚱한 표정으로 아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솔직히 이곳이 어떻게 되든
워스만과 벨드라엔이 뒤틀림에 휩쓸리든 말든 깡그리 무시하려고 했지만,
자신의 ‘방’에 더부살이 중이라
이곳 상황을 보게 된 ‘---’의 사념체가 분노하며 시끄럽게 외쳐대고 통에
이 시끄러움을 잠재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온 것이었다.
혹,
시끄러운 사념체를 쫓아내 버리면 되는 것 아니냐고 물어볼 수도 있겠으나,
류안은 자신을 대신해 ‘---’의 사념체가 해줄 일이 있어 필요했기에 그냥 두고 있었다.
그 외에 류안도 인지 못 한 이유도 있었지만···.
류안은 한숨과 함께 날개를 거두며
워스만과 벨드라엔 바로 앞에 가벼이 착지했다.
류안과 세트로 늘 함께 다니는 리아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신에 의한 뒤틀림이라
혹시라도 리아인한테 영향을 주면 안 되었기에 떼놓고 온 것이었으며
리아인도 걸림돌이 되기 싫었기에 얌전히 기다리기로 했다.
대신 리아인은 류안과 시각 및 청각을 공유해 이곳의 상황은 알 수 있었다.
류안은 워스만과 벨드라엔을 힐끗 보고는
곧 주변을 보았다.
뒤틀림으로 인해 엉망이 된 주변과
검은 옷 조직의 일원이기는 하나 기이하게 뒤틀린 채 죽지도 못하고 있는 자들을 보며
류안의 미간이 미세하게 구겨졌다.
머릿속에서 ‘---’ 사념체가 ‘신의 만행[蠻行]’에 분노한 외침으로 인해 더 시끄러워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를 모르는 워스만과 벨드라엔은
좋지 않은 광경에 어린 류안이 마음을 써 표정이 안 좋아진 것이라 여겼다.
그리고 그 착각은
류안의 이어진 행동으로 더 깊어졌다.
류안은 한 손으로 얼굴을 감싸았다.
너무 시끄러웠던데다가,
-자네, 절대 저자를 그냥 둬서는 안 되네. ‘---’의 사념체로서 부탁하네. 저자를 심판해 주게.
“하아─···.”
사념체로부터 부탁의 주문을 들은 류안은
한숨을 깊게 내쉰 후,
얼굴을 가린 손을 내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신의 자격을 잃은 페디로스. 심판자의 권한에 따라 그대를 심판한다.”
류안의 말을 들은
워스만과 벨드라엔은 적잖게 놀랐다.
늘 신의 상식을 뛰어넘는 상황을 보여주어
주변인들을 놀라게 하더니
이번에도 놀람의 수준을 갱신한 류안을 보며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모순되게도 할 말이 없었다.
류안이 한 말은
오래전 ‘대학살’이 일어났을 때,
그 중심에 있었던 ‘심판자’가 한 말과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페디로스 또한 놀라며 한 가지를 인지했다.
“그래, 그런 것이었군. 벨드라엔, 네 녀석이 심판자의 뒤를 이은 것이었어.”
“?????”
벨드라엔, 워스만, 류안까지
셋은 머리 위에 물음표를 잔뜩 띄우며 페디로스는 봤다.
“저 시건방진 어린 것이 내 권능을 어떻게 없앨 수 있었는지 이제야 이해가 돼.”
페디로스의 말에
벨드라엔과 워스만은 류안을 봤다.
‘권능을 없애? 그게 가능해? 대체 이 아이는 얼마나 더 놀라게 해야 끝이 보이는 거지?’
워스만이 류안에 대한 감정이 깊어지고 있을 즈음,
페디로스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거기에 ‘손길’도 주지 않은 아이를 곁에 둔 이유가 천사를 ‘처형자’로 선택했기 때문이었군. 그래, 천사의 선택을 받은 것이면 ‘손길’ 따윈 필요 없지.”
페디로스의 ‘천사의 선택’이란 말에
벨드라엔과 워스만은 순간 움찔하며 류안의 반응을 살펴봤다.
다행히도 아직 저기압이 발동하지는 않은 듯했다.
벨드라엔은 자신을 ‘심판자’로 착각한 것도 그렇지만······
그보다 아주 위험한 ‘천사’이니 ‘처형자’이니 해대며 류안의 심기를 더 건드리기 전에
페디로스의 입을 막아야 했으나,
곧 그가 한 행동으로 인해 한발 늦었음을 인지하고 경계하는 것에 집중해야 했다.
“시건방진 것! 심판자의 처형자의 뒤를 이었다 한들, 네놈들한테는 날 심판할 자격도 처형할 자격도 없다!! 내가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격분하며 외쳐댄
페디로스는 자신의 썩어가는 몸 안에 손을 집어넣더니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뒤틀림을 잔뜩 머금고 있는 인공 투명한 돌이었다.
페디로스는 돌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콰직─!!!
인공 투명한 돌이 부서지며
그 안에 머금어져 있던 뒤틀림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그로 인해
손은 기이하게 뒤틀려가면서 썩어가는 속도 또한 더 빨라졌지만,
페디로스는 개의치 않았다.
그 어떤 뒤틀림보다도 진하게 응집된 자신의 것도 포함된 뒤틀림이기에
눈앞의 저 시건방진 어린 천사를 뒤틀어 버릴 것이고
천사인 처형자를 잃어 심판자로서의 명맥을 이을 수 없게 되어 낙심하며 좌절할 벨드라엔을 보는 즐거움의 대가라면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
껍데기야 그 조직으로부터 하나 더 받아내면 되는 것.
페디로스는 이제 곧
뒤틀림에 괴로워 몸부림칠 어린 검은 천사의 모습을 눈에 담기 위해 류안을 보며 한껏 입꼬리를 올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오히려 표정은 점점 굳어져 가고 있었다.
페디로스. 그의 예상과 달리
뒤틀림은 류안의 주변을 맴돌기만 할 뿐,
그 어떤 영향도 주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뒤틀림마저도 이내 사라졌다.
류안한테 이런 뒤틀림은 아무런 해를 주지 않았지만,
페디로스의 행동은 분명 류안을 해[害]하려 한 지켜볼 가치가 없는 행위.
존재의 가치를 스스로 버린 것.
죄를 저지른 신을 심판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제약으로 걸어두었던
신을 죽일 이유가 충족되었다.
류안의 짙은 회색 눈동자가
투명함을 품은 옅은 청회색으로 변하면서
미미하게 풍기던 기운 또한 변하기 시작했다.
-그래, 저런 자는 봐줄 것 없이 심판ㅎ··· 어?
사념체는 뒷말을 잇지 못하고 어벙한 소리를 냈다.
류안의 기운을 느낀
워스만과 벨드라엔은 또다시 놀라며 류안한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대학살’이 일어났을 당시,
워스만, 벨드라엔 둘이 아직 어린 신이었을
그때 느낀 신을 심판한 ‘심판자’의 권능 기운이 똑같이 느껴지고 있었고
그 기운에 더해진 또 하나의 기운.
“─!!!!!!!”
류안이 분명 부속적인 힘이라 했던···
그 힘의 기운이 어째서인지 권능으로서의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두 권능의 공존.
또다시 상식을 넘어버린 상황이 벌어짐과 함께.
워스만, 벨드라엔, 페디로스까지
두 권능의 기운에 신의 본능이 경고를 울리기 시작하면서
류안의 목소리가 들렸다.
“처형해.”
류안의 명령과 동시에
언제 놀라서 말을 멈췄냐는 듯이
‘심판자’의 사념체도 본래 ‘신’이었을 때의 권능에 따라 진중하게 명령을 내렸다.
-죄를 지은 신을 처형하라.
그 명령으로 류안 주위에
이미 불러내 사용하고 있는 하얀 창 외에
심판자가 자신의 아이.
처형자한테 각각 하사한 두 개의 창이 자리하면서 하얀 자태를 뽐냈다.
그리고 명에 따라
세 개의 하얀 창은 각을 잡고는
죄를 지은 신 페디로스를 향해 날을 세우며 뻗어갔다.
“───!!!!!”
몸속의 투명한 돌까지 꺼내 사용해 뒤틀림이 거의 사라진 페디로스는
썩어가는 껍데기와
자신을 처형하러 오는 창들을 보며 망연자실 대응조차 하지 못하던 그 순간.
페디로스의 주변이 흡사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것처럼 일렁이기 시작하더니
그 일렁임 속으로 세 개의 하얀 창이 흡수되듯 말려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워스만, 벨드라엔, 류안의 뒤로 각각의 일렁임이 생겨났으며
그 일렁임에서 하얀 창들이 그들을 향해 각각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예상 밖의 허를 찔린 워스만과 벨드라엔은 놀람은 뒤로 한 채 바로 대응할 자세를 잡았고
세 개의 하얀 창은 그런 그들을 당장이라도 처형할 듯이 움직이는 듯했으나,
덤덤하게 뒤를 돌아보는 류안의 시선에
이내 움직임을 멈췄다.
“·········.”
그 광경에
워스만과 벨드라엔. 페디로스까지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있는 사이.
“호오~.”
페디로스 주변의 일렁임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역시 심판자의 정식 ‘처형자’라 그런 것인가? 처형자의 뒤를 이었다는 ‘그분’이란 자가 창을 다루는 것과는 수준이 확실히 다르군.”
류안이 목소리가 흘러나온 일렁임을 주시하자
곧 그 일렁임에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시각,
류안과 시각 및 청각을 공유 중인
일렁임에서 나온 누군가의 모습이 비친 리아인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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