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00 화 – 바다 위에서 하룻밤.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자한테 누군가가 봐준다는 것이 참 힘이 되고 고마운 것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제 100 화 – 바다 위에서 하룻밤.
밤하늘에서 네 명의 존재가 떨어지는
이런 상황이 되기 몇 시간 전.
레쉬아 왕국의 항구에서
리아인과 류안, 쇼트, 제드마는 폐기 직전의 작은 배를 구해 바다로 나갔고
항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나온 후,
류안이 알려준 좌표로
드래곤 제드마가 배 갑판 위에 텔레포트 진을 형성해 다음 배가 있는 곳으로 첫 번째 텔레포트 이동을 했다.
그리고 잠시 후,
망망대해에 버려진 작고 낡은 배에 무사히 도착했다.
원래는 드래곤의 힘을 빌리지 않고
텔레포트 스크롤을 이용할 예정이었는데,
불필요한 물자 낭비하지 말고 놀고 있는 힘 맘껏 이용하라며 루카테르가 떠밀었고
드래곤 제드마도 흔쾌히 승낙해 주어 동행하게 된 것이었다.
거기에 육지에서라면
루카테르와 드래곤 수장이 텔레포트 한 것이 감지되어 검은 옷 조직에서 경계할 수 있지만,
오히려 그쪽으로 경계가 집중되면서
바다 쪽으로는 크게 경계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같은 방식으로
두 번째, 세 번째도 별문제 없이 텔레포트로 이동했으며
네 번째 텔레포트를 발동하던 중,
배 위 갑판으로 짠내 가득한 바닷바람이 불어와서는 제드마의 민감한 코끝을 간지럽혔다.
“에─···, 에취-!”
간지럼을 참지 못한 제드마가 재채기했고
일순 좌표가 어긋나버리게 된 채 텔레포트가 발동되어 버렸다.
“으악-, 죄송합니다!!!”
제드마의 당황하며 사과하는 목소리가 허공에 메아리처럼 허무하게 울려 퍼지면서
리아인과 류안, 쇼트 그리고 제드마의 몸은 텔레포트 되어 배 갑판 위에서 사라졌고
그 뒤로 아무것도 없는 망망대해 위 하늘에서 모습을 보이게 된 것이었다.
휘이이이이─잉────······.
떨떠름한 표정의 리아인.
멍하니 있는 류안.
그냥 그러려니 하는 쇼트.
이 셋이 당황함 없이 자유낙하 하는 사이.
“···─죄송합니다.”
제드마는 여전히 사과하면서도 원래 모습인 소형 드래곤 모습으로 돌아가서는
떨어지는 상황에서 한가로이 여유를 보이며 아공간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비행 마법 장치를 찾고 있는
리아인의 목덜미 옷을 힘껏 움켜잡은 뒤
날개를 낙하산처럼 펼쳐 멈췄다.
“!!!!!”
펄럭──!!
후우우─웅─────······.
텔레포트는 누구보다 잘하고
혼자 날아다니는 것도 잘하지만
다른 자한테 비행 마법을 걸어주는 것은 서툰 제드마였다.
제드마는 류안과 쇼트를 붙잡기 위해 서둘러 손을 뻗던 중, 눈이 동그래졌다.
밤하늘의 어둠이 모여 생긴 것 같은···
검은 날개가 유려하게 펼쳐지는 것이 허공에 있는 모두의 눈동자에 비쳤다.
류안은 펼친 검은 날개를 펄럭이며
쇼트의 양 겨드랑이 쪽을 잡으며 떨어지는 것을 멈춰 세웠다.
제드마는 미안함을 덮을 정도로 밀려오는 놀람에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곧 정신을 차리고 입을 움직였다.
“어, 저기··· 괜찮으세요?”
“···괜찮아.”
그 물음에 리아인은 괜찮다 했지만,
포식 동물에게 뒷덜미가 물린 듯한 자세가 된 그의 표정은 썩 좋지가 않았다.
제드마는 다시 자리한 미안함에 가슴 쪽이 저릿해지며 주변을 살펴봤지만,
작은 섬은커녕 난파선 하나 보이지 않았다.
착지할 만한 곳이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실수로 길을 잃고
망망대해 위에서 오도 가도 못 하는 상황에
더 이상 사과하는 것도 사치라 느낀 제드마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 모습을 말없이 본 류안은 고개를 돌려 한쪽을 가만히 응시하더니
이내 그쪽으로 날갯짓하며 움직였다.
그 와중에 여전히 자책하며 멍청하게 가만히 있는 제드마를
리아인이 재촉했다.
“뭐 하십니까? 움직이세요.”
“네···? 네.”
류안을 따라 날아가던 제드마는
얼마 지나지 않아
소형 유람선이 옅은 파도에 흔들리며 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제드마는 서둘러 유람선으로 다가갔고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파도에 가라앉지 않고 떠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낡은 소형 유람선.
그런 유람선에 류안은 망설임 없이 내려가
갑판 위에 쇼트를 살며시 내려놓고는 날개를 거두어 사뿐히 착지했다.
타닥. 탁.
불만을 제기할 입장이 못 되는 제드마도
묵묵히 유람선으로 다가가 갑판 위에 조심히 리아인을 내려놓은 후,
인간 모습으로 변해 착지했다.
탁─.
누군가 일부러 버린 것이 아닌
정말 오래전에 난파되어 표류한 유람선이라는 것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용케 안 가라앉고 있었네요.”
제드마는 찬찬히 주변을 살펴보았고
딱히 위험한 상황은 없는 것을 확인했다.
거기에다가 옅게 파도가 치던 것이 잠잠해져서는 유람선의 흔들림도 가라앉았다.
이 무슨 때맞춘 행운인지.
리아인과 류안, 쇼트, 제드마는 문짝이 떨어져 나가 안이 훤히 보이는 갑판실 안으로 들어갔다.
언제 변할지 모를 바다 날씨에
비가 올 것을 대비하고 하룻밤 지내기 위해서였다.
제드마는 갑판실 안으로 들어와서는 순간 당황했다.
잘못 본 것인가 싶었다.
문짝과 창문이 소실된 것을 제외하면
겉모습과는 달리 갑판실 내부는 난파선인 것을 믿기가 힘들 정도로 지붕과 벽에는 구멍 하나 없이 멀쩡했고 바닥도 홈이나 꺼진 곳이 없었다.
이끼와 수초 같은 게 구석에 있긴 했지만,
오히려 멀쩡할 것을 넘어 물청소를 한번 한 듯이 깨끗했다.
꼭 누군가가 바다 위에서 오래 방치된 난파선을 쓸 수 있게 손본 것 같았다.
“·········.”
리아인과 쇼트도 의아함이 생겼으나,
하품하는 류안의 모습을 보고는
피로를 푸는 것이 먼저임을 인지하고는 의아함 따위는 멀리 던져버렸다.
그리고
아공간에 저장해둔 간편식으로 늦은 저녁을 간단히 해결한 후.
간이 침구 용품으로 각자 잠자리를 만들었다.
밤바다의 찬 습기가 바닥을 통해 올라오는 것을 막기 위해
제드마는 열심히 야전 침대를 조립했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거라 좀 버벅거리긴 했어도 이내 완벽히 완성하고는 뿌듯함에 세 사람을 도와주려 움직이려고 했으나,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미 조립을 끝낸 침대에는 류안이 곤히 잠들어 있었으며
그 옆에서 리아인이 모포를 덮어주고 있었고
쇼트는 피로 회복에 효과 있는 아로마 향을 피운 뒤 습기 제거용 마법 장치를 설치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한 명을 지극정성 돌보는 것을
두 눈을 말똥거리며 보고 있던 제드마는
무슨 동화에 나오는 잠자는 공주를 지키고 돌보는 기사와 시종을 보는 것 같았다.
‘카르티아님이 잘 지켜보라고 했는데···. 저 류안이라는 소년한테 진짜 뭔가가 있긴 있나 보네.’
류안에 대해 들은 것 없이
잘 지켜보라고만 지시를 받은 제드마는 그들을 유심히 바라봤다.
그러던 중,
“그럼, 불침번을 서야 하는데···.”
할 일을 말하며 주변을 둘러보는 리아인과 제드마의 시선이 마주쳤으며,
그 시선에 제드마는 보고 있던 것을 감추기 위해 얼른 입을 움직였다.
“아, 제가······.”
그러나,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두 사람의 표정에
제드마는 입을 다물었다.
“텔레포트 하느라 고생하셨고, 날 밝으면 또 텔레포트 해야 하니까. 도착할 때까지 다른 것에는 신경 쓰지 마시고 체력관리에 신경 써 주십시오.”
“네···.”
리아인의 말이 제드마한테는
마치, 호기심이든 뭐든 쓸데없는 관심과 신경 접고 제 할 일에만 집중하라는 것 같이 들렸다.
게다가 그 옆에 조용히 있는 쇼트의 시선 역시 빨리 자라는 듯이 느껴졌기에
제드마는 좀 전 직접 완성한 야전 침대에 누웠다.
─────·········.
잔잔한 바다의 소리가 자장가처럼 흘러 퍼졌다.
“·········.”
“스──·········.”
“도로롱─···.”
나지막한 숨소리와 코 고는 소리를 울리며
리아인과 류안, 제드마가 잠을 자는 동안,
쇼트가 불침번을 서면서 밤바다를 보고 있었다.
밤이 점점 깊어져 감에 따라
바다에서는 밤안개가 서서히 피어오르는가 싶더니 소형 유람선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쇼트는 단순한 자연현상인가 싶어 별생각 없이 보고 있었는데,
밤안개가 소형 유람선에 가까지 다가올수록 졸음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딱히 피곤할 일이 없었기에 이상하다고 여기던 중.
“흐아아아···암─······.”
쇼트는 결국,
긴 하품과 함께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아 갑판실 외부 벽에 등을 기댄 채 잠들어 버렸다.
스르르르으────·········.
밤안개는 소형 유람선을 숨기기라도 하려는 듯이 전체를 감싸며 덮었고
안개가 가득 찬 갑판에 낡고 색바랜 검은 로브를 입은 자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색바랜 검은 로브의 그자는
리아인과 류안이 처음으로 검은 옷 조직의 무리와 마주쳤던 작은 산 공터에서 우연히 보고는
그 뒤로 스토커처럼 류안이 가는 곳마다 몰래 따라다니고 있었던
어떤 사건으로 인해 ‘퇴물 신’이 되어버린
‘테즈’였다.
퇴물 신 테즈는 갑판실 안으로 들어가
잠자고 있는 류안한테로 조용히 다가가더니
빛을 머금은 잔 균열이 가득한 손으로 류안의 머리를 조심히 쓰다듬었다.
그러자,
테즈의 손에 있던 빛이
검은 어둠이 빛을 흡수하듯이 류안한테로 스르르 스며 들어가는 듯했다.
그러나,
파─앙─···.
빛은 허락되지 않았다는 것처럼 튕기며
테즈의 손으로 도로 스며 들어갔다.
“이런··· 당신이 가져줬으면 했는데··· 역시 허락 없이는 안 되는 거군요.”
테즈는 아쉬움에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조용히 삼켰다.
그러던 그때.
스며들던 빛이 튕길 때의 충격 때문인지
류안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으···응? 누구?”
짙은 회색 눈동자에 붉은색이 도는 검은색의 머리카락이 비치고 있었으며
류안은 일순 워스만이 따라왔나 생각했다.
워스만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으니까.
하지만, 아니었다.
워스만의 짧고 빳빳한 힘 있는 검붉은 머리칼과는 결이 다른
상대방한테는 미안한 표현이지만
라면 면발을 닮은 힘없이 곱슬한 붉은색이 도는 검은색의 긴 머리카락이었다.
“·········.”
류안은 잠결에 별생각 없이 손을 뻗어
대답 없는 테즈의 붉은색이 도는 검은색의 곱슬한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
테즈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만지는
전혀 예상치 못한 류안의 행동에 움찔했다.
그리고 색바랜 검은색의 로브와 머리카락에 가려진 금색 눈동자의 눈이 커졌다.
오래전의 그 어떤 사건.
믿었던 ‘아이’들한테 배반을 당하고
그 절망과 배신감에 가슴 한편이 무너져 텅 비어버린······.
그로 인해 금이 가고 망가지고 있는 몸에
무언가가 스며들면서 텅 빈 그곳이 채워지고 금 간 곳이 메꿔지는 것을 느꼈고
불안정한 몸 또한 안정되는 것이 느껴졌다.
상처가 어루만져지고
허해진 속이 달래져 가는 것이
보듬어지는 느낌이었다.
‘대체··· 이 소년은 어떤 신인 거지? 어떻게 이런···.’
분명 눈앞에 잠들어 있는 소년의 행동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한데도 불구하고
그 행동은 테즈 자신이 원하는 바람에 따라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마치,
본질이 없는 무언가가 염원[念願]에 맞혀 뒤틀리듯 변화하는 것 같았으며
뒤틀려 변화된 그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염원[念願]을 채워주었다.
원하는 그 무엇이든 되어줄 수 있는 존재.
“·········.”
말 없는 테즈는 오랜 세월 동안 무뎌졌던 감정들이 다시금 가슴 속에서 움직이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그 사이 류안은 눈이 감기며 다시 잠들었고
붉은색을 띤 검은 머리카락을 만지던 손이 힘을 잃으며 툭 하고 떨어지려는 것을
테즈가 조심히 잡아 살며시 침대에 내려놓았다.
그러고
잠시 류안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테즈는
안개가 사라지면서 함께 사라졌다.
시간이 흐르고
수평선으로 일출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소형 유람선의 그림자가 바다 위 수면에 길게 그렸다가 서서히 짧아져 갔으며
창문틀만 남은 곳으로 햇빛이 안으로 들어오면서 갑판실 안을 밝혔다.
“음─······.”
리아인은 눈부심에 몸을 뒤척이다 눈을 떴고
익숙한 상황과 마주쳤다.
류안이 상체를 숙인 자세로
침대에 누워있는 리아인을 빤히 보고 있었다.
하지만, 리아인은 놀라지 않았다.
햇살이 류안의 얼굴을 정면으로 비추고 있어
특유의 동양 공포영화 속 연출은 일어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리아인은 평소처럼 아침 인사를 했다.
“···류안, 일찍 일어났네. 잘 잤어?”
“빨리 다음 배로 이동해야 해.”
“어? 응. 그래야지.”
평소의 화답 대신 재촉하는 류안의 말에
리아인도 스체스 왕국 수도로 서둘러 지원물자 전해주러 가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의외의 말을 들었다.
“배가 곧 가라앉는데.”
“응?”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 환영합니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