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08 화 – 끝이 나다.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자한테 누군가가 봐준다는 것이 참 힘이 되고 고마운 것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제 208 화 – 끝이 나다.
상식을 뛰어넘는
상식을 뒤트는 류안의 힘이라면
확실히 이 사태가 벌어질 것을 안 시점에서
그 누구의 도움 없이도
초현실적인 공간 미로와 육각 방미로, 프렉탈[Fractal]의 무한 반복 지옥에 빠져 허우적거릴 것 없이
찰나의 시간도 흐르기 전,
이 사태가 인지되기도 전에
아무도 모르게 아무런 영향도 없이
해결할 수 있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이 사태를 계획하고 벌인 검은 옷 조직만이
계획이 귀신이 곡할 노릇으로 무산된 것에 어안이 벙벙해질 뿐.
하지만,
류안은 하지 않았다.
왜?
할 이유가, 해야 할 의무 및 책임이 없으니까.
눈에 보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나마 이런 사태를 알려주고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나선 일행들과 같이 움직인 것은 부탁받은 것들을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모든 마무리가 끝난 후,
이곳 세계에서 앞으로 지낼 아이를 위해
최악의 상황은 생기지 않게 곁다리로만 도와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최악과도 비슷한 사태가 벌어져서
뒤처리, 마무리는 알아서 할 거라 여기고
급한 불만 꺼준 것이었다.
이러한 것을 은연중 인지한
루카테르를 포함해
쌍둥이 네우와 드래곤 수장 카르티아는
그 뒤처리, 마무리인 마법진 제거에 최선을 다했다.
그러면서, 마찬가지로
그 뒤처리 및 마무리해야 할 이들.
워스만과 벨드라엔은 수식의 신 처우를,
레이쉴, 다미엔, 뮤리나는
세 왕국 각각의 대표로서 검은 옷 조직의 ‘그분’이라는 자와 인간으로 돌아온 마스의 처우를 결정하는 것과
이곳 타지헤 왕국에 관한 처우도 결정해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나 류안은 더 할 일 없는데, 먼저 돌아가도 될까?”
경이롭게 펼쳤던 밤하늘을 닮은
세 쌍의 날개를 모두 거두고 잠들어 있는 류안을 한쪽 어깨에 업은 리아인이 말했다.
“여기에 더 있을 이유 없으니 먼저 돌아갔으면 하는데.”
“·········.”
무슨 이유에서인지 말없이 있는 이들.
왠지 가려고? 라는 듯한 표정에
리아인은 뒷말을 이었다.
“류안도 편히 쉬게 해줘야 하니까.”
“아──.”
리아인의 말에
류안을 편히 쉬게 해줘야 한다는 것에 모두 동의했다.
신전은 처참하게 부서지고
수식의 신을 제외한
이곳에는 영역을 펼칠 신들이 없는 상황으로
방해할 것들이 없기에
워스만은 레쉬아 왕국에 있는 오두막으로 통하는 자신의 전용 통로를 열어주었다.
리아인은 류안을 업은 채
바로 통로 안으로 유유히 들어갔고
그때.
“자··· 잠깐─···!!!”
수식의 신이 다급히 그 둘을···
정확히는 류안을 불러세우려 했으나,
워스만의 검붉은 검이 목에 겨눠지면서
수식의 신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멈춰야 했다.
“공포에 질려 도망갈 때는 언제고.”
“무슨 할 말이 있는 건가?”
“·········.”
수식의 신은
자신 목을 찌를 듯 겨눈 검붉은 검이 아닌
뻗다가 멈춘 자신의 손을 가만히 봤다.
본인도 스스로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의아해하고 있는 표정이었다.
그리고는 모든 것이 끝난 것을 인지하면서
허무감이 깃든 표정으로 변하더니
뻗었다 멈춘 손을 내리고 얌전히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워스만은
수식의 신 목에 겨눈 검붉은 검을 치우고
다른 쪽 손을 들어서는
허공에 문 두들기듯이 똑똑-거리는 손짓을 했다.
그러자,
그 손짓에 허공에는 문이 생겨났다.
끼이익─.
겉으로 봤을 때,
평범하디 평범한 나무문이 열리면서
잠시 환한 빛이 비추어지는가 싶더니,
곧 빛은 사라지면서
원형 형태의 신전이 모습을 드러냈다.
예전 초대장으로 신들을 불러모아
탁상공론 회의를 펼쳤던 그곳이었다.
워스만과 벨드라엔은
단둘이서 수식의 신 처우[處遇]를 결정할 일이 아니었기에
신 중에서 가장 상위 위치에 있는
5대 원소 신들과 그다음의 12명의 신한테
수식의 신 처우를 맡기기로 했다.
원형의 신전에 자리하고 있는 신들한테
워스만과 벨드라엔은
신으로서의 할 일을 제대로 하라는 무언의 압박을 준 후,
워스만이 수식의 신 목덜미 옷자락을 잡고는
하찮은 짐을 던지듯이 던졌다.
“이런, 그 소년한테 밉보이지 않으려면 제대로 일해야겠군요.”
5대 원소의 신중,
불 원소의 신이 미소지으며 엎어지듯 앉아있는 수식의 신을 보며 말했고
말이 끝남과 동시에 문은 닫았다.
탁-.
나무문은 닫히자마자 스르륵 사라졌다.
자, 이제 할 일은 무엇이냐.
검은 옷 조직의 ‘그분’이라는 자는
테러를 일으킨 범죄자로서 죄를 묻고
그에 합당한 벌과 처우를 하면 될 것이고,
류안에 의해
‘신의 아이’로서의 능력을 잃은 마스 역시
테러에 가담한 인간으로 그에 맞춰 처우하면 될 것이었다.
그럼, 남은 것은 타지헤 왕국
정확히는 타지헤 국왕에 대한 처리인데,
이야- 아주 약삭빠른 놈이었는지
워스만이 탐색해 보았으나
도망간 것인지 그 어디에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류안한테 부탁해서 찾아봐야 할 것 같았다.
“흐음─···.”
“국왕이라는 녀석이 도망간 것 같은데.”
“너흰 어떻게 할 생각이지?”
“···음, 차라리 잘 됐습니다.”
“그래?”
“네.”
워스만의 물음에
레쉬아 왕국의 국왕 레이쉴이 답했다.
“패전국에 보상 및 무역 재건을 합의하러 온 것인데.”
“검은 옷 조직과 무관하다는 거짓말이 들통이 난데다가, 국왕도 도망간 상태에서 반박하지 못할 터이고.”
“저희 측에서 강하게 몰아붙여도 타지헤 왕실 쪽에서는 저희 조건에 따라야 할 것이니.”
레이쉴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왕국 간의 일 처리는 오히려 쉬어졌다 할 수 있는 상황이죠.”
그리고 레이쉴은
워스만을 지긋이 보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워스만님께서 증거 영상을 모두 저장해주지 않았습니까?”
“뭐, 그렇지.”
그 말에
워스만은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레이쉴의 말대로
위스만은 이곳에서 벌어졌던 상황을 모두
소형 영상장치를 이용해 저장해두고 있었다.
“혼란이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기에, 공개할 생각은 없으나,”
“왕국 시민 전체를 제물로 바치려 한 증거로 가볍게 협박할 건수도 있으니.”
“아주 좋습니다.”
“호─, 그렇군.”
“네, 그래도 왕국 간의 일이라 이래저래 골치 아픈 일이 있겠지만.”
레이쉴은 엄지로 자신을 가슴팍을 가리키며
자신만만하게 뒷말을 마저 이었다.
“칼자루를 쥔 쪽은 저희.”
“역공 따윈 용납되지 않는, 할 수 없는 이 상황은 제대로 이용해야죠.”
“그럼, 이 사태는 끝났다고 보면 되겠군.”
“네, 끝났습니다.”
확신이 아닌 결론을 내린 레이쉴의 이 말에
다른 일행들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끝났다’라는 말에 크게 동요하면서
굳어있는 한 사람.
검은 옷 조직의 ‘그분’이라는 자.
평범한 모험가였다가
처형자의 하얀 창을 소유하게 되면서
인간과 신의 우위가 없는 동등한 위치의
평등한 세계로 바꾼다는 이상향을 품고,
운명의 예언서에 따라
그 이상향을 이루는 때가 바로 코앞에 있었는데···.
높디높은 곳에 있던 이상향 바로 뒤는
깎아지를··· 까마득한 낭떠러지였고,
지금까지 노력해 온 것들이
자신의 가치가 한순간의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허망함만이 남은···.
이제껏 검은 옷 조직과 관련된 자들.
자신 뜻을 이루고자 했던 이들의 그 뜻은
결국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 되어
대부분 모두가 그렇게
허망, 허탈, 공허함에 넋을 놓았듯이
검은 옷 조직의 ‘그분’이라는 자 역시 마찬가지로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그렇게 다미엔의 넝쿨 줄기에 포박되면서도
‘그분’이라는 자는 반항 없이 가만히 있었고
마스 역시 순순히 포박되었다.
이로써,
검은 옷 조직과 조력하는 신들과의 전쟁은
완전히 끝이 나고 막을 내렸다.
* * *
먼저 레쉬아 왕국의 오두막으로 돌아간
리아인과 류안을 제외한,
레쉬아 왕국의 국왕 레이쉴.
듀아 왕국의 1 왕자 다미엔.
스체스 왕국의 수호자 뮤리나.
각 왕국의 수호신인
전쟁의 신 워스만과 멸[滅]의 신 벨드라엔.
그리고,
쌍둥이 제우와 네우, 드래곤 수장 카르티아는
모든 마무리가 끝난 뒤의 수습을 하기 위해
타지헤 왕국에 남아있었다.
참고로 루카테르와 드래곤들은
왕국 전체에 둘러쳐진 마법진을 티끌도 남기지 않고 완벽하게 제거하고는 뿌듯해하며
각자 있던 곳으로 돌아갔고.
까마귀 수인 쿠우카도
오카리나를 닮은 투명한 돌의 힘
‘세이렌의 자장가’로 재운 시민들과 동물들의 잠을 모두 깨우고는
자신의 마을로 돌아갔다.
타지헤 왕국의
주인 없는 국왕의 집무실에 모인 이들.
그런 이들 중에
도망간 국왕 대신 자리한 왕족 중 한 명이
바들바들 떨면서
레이쉴이 내민 협의서에 서명하고 있었다.
협의서의 주 내용은
타지헤 왕국 처우에 관한 모든 권한을
레쉬아, 듀아, 스체스 세 왕국에 넘긴다는 것이었다.
국왕이란 자가
어마어마한 대형사고를 치고 도망간 마당에
왕족, 왕실 측에서는 뒤처리하느라 속 앓느니
차라리 모든 권한을 넘겨주고 손을 떼는 것이
속 편하고 옳은 선택이라 판단했고,
협의서에는
시민들을 위한 구호 활동의 유지를 넘어
더 체계적이고 강하게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서
시민들의 반발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었다.
그리고, 이 구호 활동은
스체스 왕국의 수호자 뮤리나와
빈민 도시 ‘디누’를 잘 관리하는 영주
‘아미스’ 백작이 총관하기로 했다.
이렇게 타지헤 왕국의 일도 일단락된 상태로
세 왕국의 국왕, 왕자, 수호자는 남겨두고
워스만, 벨드라엔과 쌍둥이, 드래곤 수장은
레쉬아 왕국의 오두막으로 돌아갔다.
타지헤 왕국에 남아있는
레이쉴, 다미엔, 뮤리나는 걱정할 것이 없었다.
뇌를 가출시킨 것이 아닌 이상,
5대 원소 신의 기운이 깃든 하얀 창을 가진 이 세 명이
전쟁 중 보여준 능력, 실력을 봤다면
함부로 덤빌 자는 없을 테니까.
* * *
오두막으로 돌아온
워스만, 벨드라엔과 쌍둥이
그리고 드래곤 수장 카르티아는
너무나도 뻔하다고 해야 하나
너나 할 것 없이
반가이 맞이해주는 쇼트와 살쾡이 모습 키사의 마중에 가볍게 호응해 준 후,
2층으로 류안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올라갔다.
그리고는
자고 있는 류안 방해하지 말라는
리아인의 따갑고 날카로운 눈총으로
문 안으로 한 발자국도 들이지 못하고 쫓겨나면서
1층으로 터덜터덜 내려와야 했다.
그렇게 내려온 그들을
쇼트가 향긋하게 우려낸 허브차와 차갑게 얼음을 띄운 술로 다시금 맞이해주면서
밝게 미소지었다.
“수고들 하셨습니다.”
워스만은 자신을 위해 준 시원한 술을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어, 뭐. 다들 수고를 했지.”
그리고는
오두막 거실에는 침묵이 내려와 앉았다.
큰일 끝난 후의
긴장감이 풀리면서 오는 늘어짐으로 인한
묘한 침묵이었다.
그중에서도
전쟁의 신 워스만이 가장 침묵하며 멍하니 있었다.
이대로 평온하게 늘어져 있어도 되나 싶은
낯설음으로 인한 것이었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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