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04 화 – 도착은 했다.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자한테 누군가가 봐준다는 것이 참 힘이 되고 고마운 것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제 104 화 – 도착은 했다.
하늘에서 들려오는 너무나 큰 외침에
전장에 있는 모두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으며
일시 정지가 된 듯이 움직임 또한 멈췄다.
하늘 저 높은 곳에서는 텔레포트 빛 잔상이 사라지고 있었고
네 개의 형체가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금발로 염색한 레이쉴은
성벽 난간에 바짝 기대며 하늘을 뚫어지게 봤다.
“왜··· 저기에서······?”
떨어지고 있는 네 개의 형체.
리아인과 류안, 쇼트 그리고 제드마였다.
제드마는 또 눈물을 공중으로 흩뿌리며 사죄했지만
이번에는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제드마는 류안이 알려준 좌표로 실수 없이 정확히 제대로 텔레포트를 했으나,
전장인 이곳 여기저기 있는 일렁임으로 인해 공간, 차원 일부가 일그러지면서 생긴 오류였다.
“죄송합니다······.”
여전히 사과하고 있는 제드마는 무시한 채,
리아인과 류안, 쇼트는 떨어지는 와중에도 발아래 땅 위의 전장의 상황을 살펴보고 있었다.
아군의 상황이 안 좋은 것 같았다.
“텔레포트.”
“네?”
리아인은 이미 볼 사람들은 다 봤으니,
숨길 것 없이 바로 스체스 왕국 성벽 안쪽으로 텔레포트 해서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펄럭──.
류안이 날개를 활짝 펼쳐 리아인을 붙잡고는
전장 한가운데 착지했다.
참고로 텔레포트로 이동했다면 일렁임의 방해로 제대로 이동하지 못했을 것이었으나,
그런 이유는 아니었다.
류안은 그저 착지하기 위해서 날개를 펼치고 하늘에서 그냥 일직선으로 내려온 것이었으며
그곳이 전장 한가운데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모습은
검은 천사가 강림하는 모습으로
전장에 있는 모두한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제드마는 하늘에서 눈치를 보다가
홀로 덤덤하게 떨어지고 있던 쇼트를 얼른 붙잡아 성벽 쪽으로 향해 날아갔다.
드래곤 모습이긴 했지만,
류안의 검은 날개에 모두의 시선이 옮겨져
제드마의 모습을 신경 쓰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전장 한가운데에서
류안은 전체적으로 주변을 둘러보았고
리아인도 다시 상황을 파악해 갔다.
아군의 ‘일방적인 열세’.
방어라기보다는 보호하기 위해 병사들한테 씌워진 반투명한 막[膜]들과 식물 줄기와 나무로 이루어진 돔 형태의 막[膜]들.
그런 막에 의존하며 힘겹게 버티고 있는 병사들의 모습이 가히 좋지가 않았다.
리아인은 허공에서 일렁이고 있는 것들을 봤다.
막[膜] 안의 병사들을 이 지경으로 만든 원인 중 하나가 허공에 무수히 보이는 저 ‘일렁임’임을 짐작했으며,
분명, 망할 ‘신’ 놈이 저지른 짓이리라 확신했다.
리아인의 악감정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류안의 표정이 처지면서 양손으로 얼굴을 쓸고 있는 것을 봤다.
“·········.”
말없이 무언가를 참는 듯한 류안의 모습에
리아인은 아차 했다.
전장의 참혹한 광경에···
또 마음을 써 힘들어하고 있는 것이라 여겼다.
비슷한 상황에 반복적으로 생기는 오해이나
류안은 그런 오해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여 풀릴 일이 없었기에
리아인의 오해는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런 오해는 리아인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류안의 행동을 본 아군들 모두
어린 소년의 모습을 한 검은 천사가 전장의 참상을 보고 괴로워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심지어는
검은 옷 무리 중에서도 같은 오해를 하며 심적으로 동요하는 이들이 있었다.
허나, 이번에도 역시
류안은 전장의 안 좋은 상황에 마음에 써 힘들어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우··· 시끄러워.’
류안의 ‘방’에 더부살이 중인 심판자의 사념체가 적에게는 들릴 리가 없는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고,
투명한 창의 사념체들도 가세해
온갖 욕을 해대며 아주 쌍으로 생난리를 치고 있었다.
“후우─···.”
류안은 한숨과 함께 얼굴에서 손을 내리고는 허공의 수많은 일렁임을 바라봤다.
리아인이 짐작하고 확신했듯이,
류안도 저 일렁임으로 벌어지는 상황을 대처하지 못해 열세 몰린 것임을 알고 있었다.
‘지원물자하고 창만 던져주고 가려고 했는데···.’
이런저런 안 좋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
평소에는 어떻게든 사태에 엮이지 않으려고 리아인이 류안을 데리고 빠져나가려고 했다면
이번에는 더 이상 전장에 엮이지 않기 위해 류안이 리아인을 데리고 빠져나가려 했었다.
하지만,
리아인이 빠져나가는 것에 실패하고 결국에는 엮이었듯이
류안도 빠져나가지 못할 것 같았다.
그 이유로 완벽하지는 않지만,
저 일렁임을 대처할 방법을 알고 있었고
그 방법에 리아인의 힘이 적합했으며
자신의 능력으로 조금 도와주면 웬만히 처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
류안은 고민스러웠다.
이 상황을 그냥 무시할지 말지···.
그래서 그 선택을 리아인한테 떠넘겼다.
“···리아인, 어떻게 하고 싶어?”
류안의 가라앉은 목소리에
마음을 써 힘들어질 것을 감수하면서 나설 각오를 하고 한 물음이라 생각한
리아인은 마음이 안 좋아졌다.
“도울 수 있으면 도와줘야지. 그놈 때문에 또 희생자가 나오게 할 수는 없어.”
리아인은 자신이 나서겠다는 의미로 말했고
류안은 리아인을 빤히 봤다.
정말 괜찮냐고.
이대로 엮여서 고생해도 되냐고.
류안의 무언[無言]의 물음에
리아인은 답했다.
“괜찮아, 폭주하지는 않아.”
서로 생각한 것이 좀 어긋나긴 했으나,
리아인의 말에
류안은 잔잔하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응, 알았어. 도와줄게.”
“고마워.”
이렇게 류안과 리아인이 둘만의 대화를 하고 있을 즈음.
류안의 모습을 오해한 것과는 별개로
레쉬아 왕국과 듀아 왕국, 스체스 왕국의 병사들이 안도와 희망을 품는 반면,
검은 옷 무리는 심히 동요하고 있었다.
충격으로 인한 동요.
검은 천사.
검은 옷 조직의 검은 천사보다도
더 선명하고 순수한 검은 날개에 가진 존재.
밤하늘을 품은 듯한 신비로움이 느껴지면서 황홀감과 함께 경외심마저 생기는···.
진짜 검은 천사는 저런 모습이구나.
라는 생각이 그들 머리에 강하게 각인되어 가던 그때.
“적을 사냥하고 섬멸하라!!!”
검은 천사 카밀이 목소리를 높여 명령했다.
그 명령에 류안을 멍하니 보고 있던 검은 옷의 사냥꾼들과 창술사들이 움직였고
리아인은 바로 대응할 자세를 잡았다.
파직. 파직─.
리아인은 양손에 백금빛 전류 파편들을 모은 후, 힘껏 꽉 쥐었으며
손안의 파편들은 거칠고 날카로운 빛이 되어
몸을 타고 아래로 흐르듯이 내려와 땅바닥으로 스며 들어갔다.
리아인의 ‘빛의 힘’은 땅 위 허공이 아닌 땅속에서 올라와 공격하는 것이었기에
일렁임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후우─.”
숨을 고르며 준비를 끝낸 리아인.
류안은 깜박한 날개를 거두고는
리아인의 등에 오른쪽 손바닥을 살며시 대면서 기대듯이 가까이 다가가 섰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숙여 천천히 눈을 감았다.
시각 공유.
류안의 지켜보는 힘이 은은히 전해지면서
리아인의 눈동자에 일렁임으로 인해 일그러져 보이던 적들의 모습과 위치가 명확히 비치기 시작했다.
검은 옷 무리는 리아인의 몸에서 빛났다가 사라진 빛에 경계하며 키메라 마수들을 먼저 움직이게 했고,
사냥꾼들과 창술사들은 움직이던 발을 멈추고는 경계를 멈추지 않은 채 예의주시했다.
크르르르─르────······.
키메라 마수들이 전장 한가운데 있는 리아인과 류안을 포위하듯이 천천히 다가왔으며
둘의 일정 범위 안으로 발을 내디디는 순간.
콰광! 콰과강────!!!
굉음과 함께 지뢰가 터지듯이
땅에서 빛의 번개가 솟구쳐 올라오더니 그대로 키메라 마수들을 덮쳤다.
콰가가각────!!!
콰르르르르─르──────.
그로 인해 키메라 마수들의 몸에 있던 투명한 돌이 깨지고 부서지면서 뒤틀린 기운이 흘러나왔으나,
주변으로 퍼질 틈도 없이 빛에 타들어 갔다.
“─!!!!!”
그 광경에
검은 옷 무리, 창술사들과 사냥꾼들이 놀라며 당혹감에 빠지고 있을 때.
성벽 위에서 지켜보던 이들도 놀라고 있었고
리아인 역시 놀랐다.
빛의 힘으로 일으킨 번개는
강력한 것에 비해 불안정했기에 늘 몸을 찌르는 듯한 고통의 반동이 있었는데
그런 것 하나 없이 원활하게 능력이 발휘되었으며
키메라 마수들을 처리하는 것을 넘어
뒤틀린 기운을 완벽하게 태워서는 깔끔하게 없애고 있었다.
리아인은 심연의 목소리를 받아들인 후
나름 몸과 능력이 강화 및 개선되었나 싶던 그 순간.
“후우─···.”
등 뒤에서 류안의 숨 고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
리아인은 시각 공유뿐만 아니라
류안이 힘을 잘 발휘할 수 있게 도와주면서 빛의 반동 또한 가려주고 있었음을 인지했다.
‘빨리 끝내야 해.’
리아인은 류안의 몸에 무리가 가기 전에 신속히 끝내기 위해 양손에 힘이 들어가면서 백금빛의 전류 파편들이 다시 모여들었다.
파직! 파직─!! 파직───!!!
그 모습에
검은 옷 창술사들과 사냥꾼들은 놀람과 당혹감은 집어 쳐버리고
일렁임을 이용해 하얀 창을 휘두르며 공격을 시작했다.
리아인의 눈동자에
주변에 자리한 수많은 일렁임에서 적의 하얀 창이 뻗어 나오는 것이 어느 하나 빠짐없이 모두 비추어졌고
머릿속에 확실히 인식되었다.
파지직─! 파직────!!!
리아인의 손에 모인 전류 파편들은 백금빛 전류 줄기가 되어 주변으로 거침없이 뻗어 나갔다.
류안의 검고 긴 머리카락을 흩날리면서 뻗어 나간 거친 백금빛의 전류 줄기들은
일렁임에서 나오고 있는 하얀 창들의 창촉에 명중했다.
적중시키는 것 자체는 어려울 것 없었다.
가늘고 날카로운 창 특징이 피뢰침 역할을 하여 더 정확하게 명중되었으며
전도율이 있든 말든 재질 따윈 무시한 채,
창대를 타고 하얀 창들의 주인한테로 흘러갔다.
파지르르르르──────!!!
“아─악───!”
“크윽─!!”
“───······!!!”
창술사들과 사냥꾼들은 자신들이 손에 쥔 하얀 창에서 흘러온 전류에 감전되어 비명을 질렀고
창을 놓으려 했지만,
경직된 근육으로 인해 놓지 못하고 온몸으로 전류를 맞이해야 했다.
파지───······.
리아인의 손에서 몇 개의 백금빛 전류 파편이 반짝이다가 사그라들었다.
그와 동시에
감전되어 더 이상의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파직 거리며 부르르 떨고만 있던
창술사들과 사냥꾼들의 몸에서도 전류가 사그라지면서 탄내와 함께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리고는
바닥에 주저앉으면서 그대로 땅바닥에 쓰러졌다.
털썩. 털썩. 털푸덕─.
그뿐만 아니라,
그 광경을 본 검은 옷 무리가 감전당하지 않기 위해 손에 든 무기를 황급히 떨어트리게 해 그들의 공격도 봉쇄했다.
“호오~.”
검은 옷 무리의 주둔지에서
이를 지켜보던 하얀 로브를 입은 신은 흥미로워했다.
검은 날개를 거두어 천사의 모습도 아닌
전류의 정전기에 의해 검고 긴 머리카락이 산발이 되어 엉망인 소년의 모습이건만···,
번개와 전류의 힘을 펼친 자와 함께한
그 둘의 모습과 광경은 마치
검은 천사의 가호와 선택을 받은 자의 모습으로 비추어지면서
경이롭기까지 했다.
이는 하얀 로브의 신만이 그렇게 보인 것이 아니었다.
성벽 위에 있는 사람들 모두 마찬가지였고
검은 옷 무리도 그러했다.
특히,
검은 옷 조직의 검은 천사.
까마귀 수인 카밀의 충혈된 눈에도 결단코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진짜 검은 천사의 숭고한 모습으로 보이면서
질투, 분노, 짜증, 욕심, 부러움, 경외 등 휘몰아치는 온갖 감정들에 이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결국,
감정들의 공격을 이기지 못한 카밀은
하얀 창을 손과 팔에 핏줄이 드러나도록 꽉 쥐고는 자신의 검은 날개를 활짝 펼치며
전장 한가운데 있는 두 사람한테로
검은 천사. 류안한테로 매섭게 날아갔다.
‘죽이리라. 죽이고 먹어 진짜 검은 천사 되리라.’
이런 생각만으로 머릿속이 가득 찬
실핏줄이 터져 붉게 충혈된 카밀의 눈동자에
류안의 모습이 정확하게 맺혔다.
“절대자를 선택할 검은 천사는 나다!”
당장에라도 터질 듯이 울분으로 가득한 처절한 외침이었다.
“─!!!!!”
졸려 하는 류안을 부축하려던 리아인은
흉상을 드러내면서 다가오는 카밀의 모습을 보고는 위험경보가 강하게 울렸고
그 위험에서 류안을 감추면서 보호하기 위해 황급히 한쪽 팔로 감싸 품에 안는 동시에
다른 한 손에는 빛의 창을 만들어 쥐었다.
그런 상황에서
류안은 리아인의 품에서 고개만 살짝 돌려 카밀을 봤다.
왜 또 저러는 건지 의아해하면서
너무 졸려 두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있었다.
그런 류안의 모습은 의도치 않게
위에 군림[君臨]한 자가 아래에 있는 자를 안쓰럽게 보는 것처럼 보이면서
카밀의 감추고 싶던 자격지심을 더욱 자극하게 되었다.
이에 카밀은 마지막 남은 얇디얇은 이성마저도 끊어지며 몸 안의 모든 뒤틀림을 폭주시키듯 분출하였고
하얀 창을 류안을 향해 휘둘렀다.
그때,
이 상황을 보고 있던 한 명의 입이 움직였다.
“이런 쯧, 그러면 안 되지 안돼.”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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