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216 화 – 마지막으로···.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자한테 누군가가 봐준다는 것이 참 힘이 되고 고마운 것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제 216 화 – 마지막으로···.
심연을 닮았으나,
심연과는 다른 깊은 어둠이 드리워진 곳.
저벅. 저벅. 저벅.
아무도 없을 그곳에
발걸음의 소리가 울려 퍼졌고
밤하늘을 닮은 검고 긴 머리카락 휘날리며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소년이
앞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저벅. 저벅. 저벅.
막연하게 걸음을 옮기는 듯했던
소년은 어느 정도 걸어가더니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는 하얀 손을 들어 펼쳤다.
살랑~.
하얀 손바닥에서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금빛의 실이 한 가닥이 빠져나오더니,
쉬리리리──릭─···.
소년의 눈앞 허공으로 날아가 자리하면서
직사각형의 테두리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테두리만 겨우 형성하고
위태위태하게 빛을 발하고 있는 금빛 실.
검고 긴 머리카락의 소년은
그 테두리의 중심부에 손을 가져다 대었고
주변의 어둠이 짙어지면서
위태롭던 빛이 조금은 선명해지더니
테두리 안으로 문의 형태가 모습을 보였다.
소년은 희미하게 보이는 문손잡이를 잡고는
가볍게 돌려 문을 열었다.
끼이이─익.
문이 열렸다는 것을 알리기라도 하듯이
경첩 소리가 거칠게 울리면서 문은 열렸고
그 안으로 옅은 빛에 휩싸인 공간이 드러났다.
소년은 문 안쪽 희미한 빛의 공간 안으로
발을 움직여 한걸음 내디디고 있었다.
그 순간.
슈라라라──라─락!
그 안쪽에서부터 금빛 실뭉치의 무리가
소년을 향해 매섭게 뻗어오고 있었다.
그러나.
파──앙!!!
분명히 소리는 들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들린 듯한 착각과 함께
마치,
영상 필름 중간을 잘라내고 보여준 것처럼
아무런 징조도 전조도 없이
소년을 향해 맹렬하게 뻗어오던 금빛 실뭉치 무리는 갑자기 거대한 포격을 맞은 듯이 원형으로 뚫리고 뒤틀어진 채
끼긱- 거리며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소년은 그런 금빛의 실뭉치들 사이를
아무렇지 않게 유유히 스쳐 지나가면서
금빛 실들이 뻗어 나온 시작점으로 갔다.
그곳에는
금빛 실들이 서로 뭉치더니 얽히고설키면서
뭔가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형태는 얼핏 사람의 모습을 닮아 있었다.
끼리릭─ 끼리─···.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사람의 형태를 유지하며 움직이던
금빛 실 가닥들이 다시 소년을 덮칠 듯 뻗어왔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좀 전처럼 포격을 맞은 듯
그 중간 과정이 잘려 사라진 것 같이
갑자기 원형으로 뒤틀어졌다.
그러면서 그 뒤틀림은
금빛 실을 타고 그 중심부 쪽으로 향해가기 시작했다.
금빛 실로 엮인 사람의 형태는 움찔하면서
뒤틀려 오는 금빛 실들을 서둘러 끊어버렸고
끊어진 금빛 실들은 가는 모래 알갱이가 된 것처럼 바닥으로 떨어지고 흩어지면서
작은 빛의 물결을 보였다.
차라라라───락─···.
검고 긴 머리카락의 소년은
빛을 잃어가는 금빛의 실 잔해들을 밟으며
사람의 형태를 엮고 있는 금빛 실 무리
바로 앞까지 가서 발을 멈추고 섰다.
그리고는
웅크린 듯 있는 사람 형태의 시선에 맞혀
자세를 낮추며 쪼그려 앉았다.
그러한 소년의 행동에
사람 형태의 금빛 실 무리는 움찔하면서
경계를 강하게 하며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소년은 천천히 입을 움직여 말했다.
“그 아이를 강제로 차원 이동을 시켜 ‘가쉬’로 보낸 범인 너야?”
“·········.”
사람 형태의 금빛 실 무리는
아무런 대답도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너 맞나 보네.”
“·········.”
소년이 말한 것에
사람 형태를 한 금빛 실 무리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소년은 확신했다.
소년의 손 위에서
금방이라도 끊어지고 빛이 사라질 것 같은
금빛 실 한 가닥이 살랑거리며
사람의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얽히고설키며 있는 금빛 실들 틈 사이로 스며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그 아이.
리아인을 강제로 차원 이동시키고 남은
빛의 잔재 속에서 발견한 한 가닥의 금빛 실.
그 당시에는 이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세계 ‘가쉬’에 오고 난 후.
이래저래 얽히고 엮이면서
검은 옷 조직과 조력자 신들을 움직이게 한
운명의 예언서를 보고는
이 모든 것의 시작, 원흉이 눈앞에 있는 존재.
금빛 실들로 겨우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운명의 신’이라는 것을 인지했다.
“운명의 신.”
“·········.”
소년의 말에
금빛 실들로 사람 형태를 유지 중인 자는
아무런 말 없이 있었다.
하지만,
“미래를 보는 신 ‘미후라’와의 영역 싸움에서 패배하고 은둔에 들어간 신.”
움찔.
이어진 이 말에
금빛 실들로 형태를 유지 중인 운명의 신은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크게 동요하면서
분노 또한 표출하기 시작했다.
검고 긴 머리카락의 소년.
류안은 그런 운명의 신을 보며 슬쩍 미소를 보였다.
비웃을 생각은 없었지만,
감정 일부가 결핍되어 좀 둔한 류안한테는
운명의 신 모습은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아 보인 미소였다.
그런 류안의 미소에
운명의 신은 격분하면서 말했다.
“네 놈도 ‘운명’을 하찮게 보는 것이냐?”
“누구에게나 정해진 운명이 있는 것이다.”
“그러한데, 미래는 정해지지 않은 변하는 것이라며 ‘운명’을 거부하고 부정했다.”
운명의 신 목소리는
점점 격양되어 가면서 높아져 갔다.
“그런 상황에서도 난 내 권능 ‘운명’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 왔을 뿐이다.”
“그런데, 그것마저 부정당했고 그렇기에 난······.”
“그래서?”
“뭐─?”
“그래서 뭐 어쩌라고.”
류안은 자신한테 하소연을 해봤자
공감을 해주지 못했기에 한 말이었고
그 말에
운명의 신은 말문이 막혀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운명의 신 형태를 이루고 있는 금빛 실들이 부들거리면서
이를 악무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입을 움직여 말했다.
“결국, 네 놈도 날 부정하러 온 것이군.”
“응? 부정? 내가 왜?”
운명의 신 말에 류안은 어리둥절했다.
“뭐, 예외가 있긴 하지만.”
“태어난 생명체는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기본 ‘운명’인데 뭘 부정해?”
류안의 뜻밖의 말에
운명의 신은 동요하면서도 기쁨을 옅게 내보이고 있었다.
자신조차 미처 생각하지 못한 운명의 기본.
너무나 당연한 거였기에 인지하지 못한 것인지···.
그러나,
곧 이어진 류안의 말에
운명의 신은 두려움이 밀려오고 시작했다.
“그런데, 넌 그 ‘운명’을 넘어 너무 과하게 간섭을 했어.”
“한마디로 오지랖 부렸다는 거지.”
류안의 질타가 섞인 말에
운명의 신은 말 없이 굳어가고 있었고
자신보다 상위 존재한테 혼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것도 남의 권능에 지장 줄 정도의 오지랖.”
“···그건, 운명의 신으로서 운명에 따라가도록 인도한 것뿐이다.”
“난 내 할 일을 한 것뿐이란 말이다!!!”
“그게 과한 오지랖이었어.”
“하긴, 자각이 없으니 선을 넘은 걸 테고.”
“결국에는 다른 신과 영역 싸움까지 하게 되고 그 결과 패배한 것이겠지.”
운명의 신은 자신의 상처를 건드는 말에
격분하면서 말을 하려고 했으나,
류안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운명이 정해져 있다면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어떻게 흘러가든 언젠가는 그 운명대로 될 것이지만.”
“그 과정. 그 운명을 맞이하기 전까지의 과정은 당사자의 몫이야.”
“네가 오지랖 부리며 구태여 간섭할 영역이 아니란 것이지.”
“·········.”
운명의 신은 그 말에 반박하려고 입을 움직이려 하다가
류안의 눈빛에 이내 입을 다물었다.
그러던 중,
말을 잘하고 있던 류안의 표정이 뚱해졌다.
그냥 하려고 한
마지막 일을 후딱 끝내버리면 되는 것을
왜 이리 설명을 해주고 있는 것인지···.
“하아─···.”
류안은 한숨을 내쉬고는
그래도 할 말을 하고 끝맺기 위해서
다시 입을 움직였다.
“쓸데없는 말은 이쯤에서 그만할 테니.”
“하나 답해줄 수 있어?”
“·········?”
“그 아이. 리아인을 ‘가쉬’로 강제 차원 이동시킨 것 너 맞지?”
류안은 확인차 물은 것이었고,
“···그래, 나다.”
운명의 신은 답했다.
“절대자를 위한 뒤틀린 아이의 정해진 운명이었기에.”
“그 운명에 따르도록 내가 인도한 것이다.”
“···그 운명에 나도 딸려 온 것이고?”
“그래, 그 또한 너의 운명이었기에 온 ㄱ······!!!”
운명의 신은 말을 이으려고 하다가
급 입을 다물었다.
류안의 차디찬 투명할 정도의 옅은 청회색 눈동자와 마주하자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그런 운명 따윈 없어.”
류안의 이 말과 함께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있던 권능 ‘부정’이 그 힘을 펼치고 있었다.
이 권능의 기운에
운명의 신은 더더욱 입을 꾹 다물고 있어야 했다.
더 말했다가는 존재 자체가 부정당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리아인이 내 영역에 들어온 그 순간부터 뒤틀림으로 인해 네가 말한 운명에서 벗어났어.”
“그런데, 넌 동의도 없이 내 영역을 침범해서는 강제로 끌고 갔으니.”
“난 그에 맞혀 합당한 대응을 해야 하지 않겠어?”
이렇게 말을 하던
류안의 표정이 또 뚱해지려고 했다.
할 말을 하려다 보니,
또다시 말이 길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으며
자신이 이렇게 수다쟁이였나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류안은 서둘러 마지막 물음을
운명의 신한테 던졌다.
“너의 ‘운명’이 뭔지는 알고 있어?”
갑작스런 류안의 물음에
운명의 신은 저도 모르게 자신의 운명을 알아봤다.
지금껏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운명대로 흘러간다’로 나왔기에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을 뿐.
그런데
눈앞의 존재와 마주하고 물음을 받는 순간.
한 단어가 운명처럼 떠올랐다.
소멸.
운명의 신은 화들짝 놀라고
이 단어의 의미를 인지하기도 전에
류안의 미소와 마주했다.
그리고,
류안이 어떤 존재인지 인지하게 되었다.
신의 학살자.
운명의 신은 황급히 대응하려고 했지만,
스스로의 운명을 거부하는 것이기에
운명의 신으로 자신의 권능에 반[反]하는 행동이었기에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류안의 주변에 하나둘 나타난 밤하늘의 별빛 같은 작은 빛들이
운명의 신 두 눈동자에 비추어지면서
작은 빛들에 의해 실타래가 삭아 사라지듯
형태를 이루고 있던 금빛 실들은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그와 함께
옅은 빛의 공간도 벽이 무너지듯이 사라지며
심연과도 같은 어둠을 품은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로써
류안이 마지막으로 하려 했던 개인적인 일까지 모두 끝났다.
이제 자신의 영역 공간으로 돌아가면 되는 것이었는데,
류안은 고개를 들어 허공을 지그시 바라보며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심연과도 같은 깊고 어두운 이 공간이
류안 자신의 ‘방’이었기에 돌아가기 위해서 움직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젠 잠들어도 되겠네.”
류안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리고는
허공을 보던 시선을 움직여 발아래를 보았다.
퐁───.
물방울 하나가 떨어진 것처럼
류안의 발밑으로 물 파장이 일렁였고
류안은 발을 움직여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그러자,
수면 위를 걷는 듯 물 파장이 다시 일렁였고
류안은 한 걸음 한 걸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류안의 몸은 그에 따라 계단을 내려가듯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런 식으로 수면 아래로 내려간 류안은
곧 깊고 깊은 바닷속 심해에 들어온 것처럼
검고 긴 머리카락을 흩날렸다.
위아래 좌우가 구분되지 않는
심연의 바닷속 한가운데서 류안은 천천히 무릎을 굽히고 양팔로 굽힌 무릎을 감싸며 몸을 웅크렸다.
그 모습은 마치,
어미의 자궁 양수 속 태아를 닮아 있었고
그런 류안은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영원처럼 이어질 깊고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렇게 잠든 류안을
심연의 바닷속 어둠이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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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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