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49 화 – 보여주기.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자한테 누군가가 봐준다는 것이 참 힘이 되고 고마운 것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제 49 화 – 보여주기.
리아인과 류안, 쇼트가 강제로 듀아 왕국에 오게 된 후,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오늘.
왕궁 자체에서 행사형식으로 시행하는
공개 병사훈련이 있는 날이었다.
그로 인해
왕궁 소유 대형 연무장에서는 아침 아니,
이른 새벽부터 국왕과 왕족, 귀족들 같은 손님맞이를 위한 관람석 준비와 그 외, 연무장 정비, 훈련용 장비[裝備]준비 및 점검, 병사들 상태 및 복장 점검, 경비[警備] 강화 등등 이런저런 준비를 하느라 분주했다.
그렇게 다들 정신없이 바쁜 가운데.
장소. 머무르고 있는 방이 다를 뿐,
평소하고 다를 것 없이 아침을 맞이한
류안은 평소처럼 멍하니 차를 마시고 있었고
리아인과 쇼트는 눈은 휘둥그레져 있었다.
그 이유는
듀아 왕국의 왕실 시종이 세 명을 위해 방에 두고 간 옷 때문으로.
“이게 뭐지···?”
“어··· 정장이긴 한데···.”
그 옷은 일반적인 정장이 아닌
제복[制服]이었다.
“왜······?”
아무런 직위[職位]도 작위[爵位]도 없는 자신들한테 제복이라니 의아하면서 황당했다.
더 웃긴 것은
제복의 화려함이 극에 치닫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류안 용으로 마련된 제복은 더했다.
어마어마한 장식들을 자랑하고 있었으며
저 장식들 무게 때문에 움직일 수나 있을까 싶었다.
그로 인해
리아인과 쇼트의 제복은 상대적으로 소박해 보일 정도였다.
둘은 이걸 입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을 즈음.
차를 다 마신 류안이 소파에서 일어나서는
제복이 진열된 곳으로 느릿하게 다가갔다.
그리고 찬찬히 살펴보더니,
뚜둑─.
제복의 장식 하나를 떼어냈다.
그리고는
팔짱을 낀 채, 한 손을 턱에 대고 고개를 살짝 기울여 잠시 보다가 다시 제복의 장식을 떼어내기 시작했다.
뚜둑─. 툭. 툭. 투두둑.
꽤 많은 장식이 류안의 손에 의해 바닥으로 자비 없이 떨어져 나뒹굴었으며
대부분의 장식이 떨어지고 나서야,
류안의 손은 멈췄다.
“이제 좀 괜찮아졌네.”
만족해하는 류안의 모습을 본
리아인과 쇼트도 제복의 장식들을 떼어내기 시작했다.
투두둑─. 툭. 툭.
둘은 신나게 장식들을 떼어냈고
바닥에는 제 역할을 잃은 불쌍한 장식들이 쌓여갔다.
* * *
듀아 왕국의 대형 연무장.
자국 내 공개 병사훈련으로 한쪽 목 좋은 곳에 마련된 관람석에 고위 귀족들이 자리해 있었고,
그중 상석에 해당이 되는 특등석에는
1 왕자 다미엔을 포함한 세 명의 왕자와 두 명의 왕녀가 자리했으며
한 단 위에 국왕이 자리해 있었다.
다미엔은 국왕을 조심히 힐끗 봤다.
국왕의 얼굴에는 기대감이 가득 차 있었다.
얼마 전,
야회연회장에서 벌어진 끔찍했을 사태를
수호신과 함께 해결한 신의 대리인.
국왕은 그 신의 대리인인 소년이 자신이 하사한 제복을 입고 왕국의 수호신과 함께 화려하게 등장할 광경을 기대하고 있었다.
둥. 둥. 둥. 둥─. 둥─···.
박자를 맞춘 북소리와 함께
창을 든 병사들이 줄지어 연무장 중심으로 입장하며 일사불란하게 대열을 맞춰 섰다.
그리고 잠시 후,
듀아 왕국의 수호신이자 전쟁의 신 워스만이 갑옷 차림으로 모습을 드러냈으며,
그 옆에 류안, 그 뒤로는 리아인과 쇼트가 호위하듯 뒤따라오며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병사들 앞
지휘관의 단상에 자리했다.
류안과 리아인, 쇼트의 모습을 본
듀아 왕국 국왕의 미간이 구겨지고 있었다.
자신이 하사[下賜]한 화려한 제복의 장식을 거의 제거한 기본적인 장식 한두 개만이 있는 단출한 제복 차림에 심기가 불편해했다.
“이··· 무슨··· 감히 내가 하사한 제복을···.”
국왕의 분노에 찬 목소리에
왕자 둘과 왕녀 둘은 허세 가득하고 신경질적인 국왕의 성격을 알기에···
유흥을 위해 준비한 훈련이고 뭐고
곧 제 성질 못 참고 왕창 뒤엎어질 상황에 마음 졸이며 불안해하고 있을 때,
1 왕자 다미엔은 평온해 있었다.
그런 다미엔의 모습에 의아함이 들던 왕자 둘과 왕녀 둘은 이상함을 느꼈다.
조용했다.
너무··· 조용했다.
평소 사소한 것 하나라도 제 마음에 안 들면 바로 큰소리치며 난리를 피워대던 국왕이··· 아무런 고함도 난폭한 행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조용히 연무장 중앙 쪽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런 국왕의 모습에
다미엔은 슬며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버지인 국왕의 성격을 물려받은 자신은 이미 비슷한 경험을 했기에.
저 소년. 류안이 국왕이 원했던 거와는 전혀 다른 행동, 무례한 행동을 할지언정 그냥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라 확신했고,
그 확신대로 국왕은 그저 가만히 류안을 보고 있었다.
다미엔의 미소에 왕자 둘과 왕녀 둘은 안도하면서도 의문을 떨칠 수 없었지만,
이제 곧 병사들의 공개훈련이 개막하기에
일단은 조용히 가만히 있었다.
워스만은 고개를 돌려 국왕을 바라봤다.
투구 안으로 보이는 옅은 보라색의 눈동자.
거리가 있기는 했으나,
그 눈동자의 시선에 국왕은 크게 흠칫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근엄하게 손을 들어 보였다.
개막을 선언하는 손짓.
워스만은 미소를 보이며 시선을 앞으로 돌려 병사들을 봤다.
“시작하라!”
“하-!!!”
워스만의 명에 병사들은 일제히 짧고 우렁찬 기합 소리와 함께 창을 들어 올려 자세를 잡았으며,
튼튼한 가죽 갑옷에 금속 보호대를 덧대어 몸을 보호한 병사들은 서로 합을 맞추어
군무를 추듯 흐트러짐 없는 창술을 선보였다.
“하-!!!”
한 동작이 끝난 뒤,
기합 소리와 함께 다음 동작을 절도있게 차례로 선보이는 병사들을 보면서
류안의 뒤에 자리하고 있던 리아인이 워스만을 향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알기론 류안이 해야 하는 참관은 이미 끝난 것으로 아는데. 왜 그쪽과 함께 지휘하는 위치에 서 있어야 하는 이 상황에 관해서 설명해 봐.”
뒤에서 들리는 리아인의 짜증 섞인 목소리에
워스만이 미소를 지었고 어렴풋이 장난기가 스쳐 지나갔다.
* * *
국왕의 유흥을 위한 공개 훈련의 날로부터
3일 전.
류안과 리아인, 쇼트는
훈련 참관을 얼른 끝내고 돌을 찾으러 가기 위해, 듀아 왕국의 병사들이 훈련하고 있는 연무장으로 갔다.
그렇게 도착한 연무장은
보통 알고 있는 것과는 좀 다른 모습으로
병사들이 다들 지쳤는지 너나 할 것 없이 바닥에 주저앉아 있거나, 널브러지듯 드러누워 있었다.
그런 병사들의 모습에
리아인, 쇼트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나중에 다시 와야 하나 고민하던 중.
“오- 왔군. 제때 잘 왔어.”
워스만이 반가이 맞이했고,
류안은 가만히 손가락으로 병사들을 가리켰다.
“저거 보라고 부른 거야?”
───────!!!!!
‘저거’라는 말에 병사들이 크게 움찔했다.
저 수호신인지 뭔지의 훈련 때문에 안 그래도 힘들어 죽을 판인데,
어린 것이 와서는 삿대질하며 저딴 말을 하고 있으니 다들 짜증으로 빡치려고 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워스만이 상황 설명을 해주었다.
“크흠, 내가 좀 훈련을 빡세게 시켰더니 다들 지쳐 있는지 사기[士氣]가 떨어졌거든, 그래서 네가 사기[士氣]를 충전할 수 도와주면 돼.”
그의 말에 류안은 고개를 갸웃했다.
“별 것 없어, 그저 저들과 시선만 한번 마주해주면 돼.”
류안은 다시 고개를 갸웃거리려 했는데,
워스만이 징그럽게 싱긋 웃으며
류안을 병사들이 모두 볼 수 있도록 앞에 세웠다.
그리고, 두 손을 들었다.
짝───!
“다들 주목─! 레쉬아 왕국에서 온 귀빈. 신의 대리인에게 듀아 왕국의 저력과 위상을 보여주도록─!”
이에 병사들은 모두 인상을 구기며 워스만과 류안을 봤다.
“그대들은 왕국의 병사로서 부끄럽지 않을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 난 믿는다.”
워스만은 확신했다.
야외연회장에서 벌어진 그 사태 때,
레쉬아 왕국 측에서 잡은 포로가 류안의 시선에 모든 것을 알아서 실토했듯이,
과도하게 밀어붙인 훈련에 많이 지친 저들이
류안의 시선.
‘자신을 지켜봐 주는 시선’이라는 당근.
관심과 기대에 스스로 부응[副應]하기 위해 알아서 의욕을 불태울 것이라고.
병사들은 안 그래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훈련을 강행해와서 지칠 대로 지치고 숨넘어갈 것 같아 꼼작도 할 수 없건만···
신의 대리인인지 뭔지
저 어린 것 때문에 더 쉬지도 못하고 훈련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거에 모두 짜증과 분노를 넘어서는
살기를 품은 눈으로 류안을 쏘아봤다.
그렇게 눈을 부라리던 병사들은
류안과 시선을 마주한 순간 모두 멈칫했다.
그리고는
멍하니 류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멍하니 가만히 있는 그들의 모습에
류안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말했다.
“훈련할 생각 없어 보이는데, 그냥 다들 편히 쉬라고 해.”
그러고는 몸을 돌려 연무장을 나가려고 했다.
그때.
“우오오오─오────!!!”
병사들의 거침없는 기합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류안은 가던 것을 멈추고 뒤돌아봤다.
그러자.
“우아아───! 우리는, 듀아 왕국의 병사들은 겨우 이 정도로 지쳐 쓰러지는 약골이 아니다. 우리를 보러 오신 귀빈께 듀아 왕국의 병사로서의 저력과 위상을, 가치를 제대로 증명해 보일 때다.”
그 누구보다도 살기 띤 눈이었던 병사단장의 말과 함께 병사들은 언제 널브러져 있었냐는 듯 일어나 대열을 갖추고 훈련을 시작했다.
그 모습에 지침이나 피곤함 따윈 없었다.
사기가 충전되는 것을 넘어 충천[衝天]
아주 그냥 하늘을 뚫고 갈 기세였다.
그런 모습에
워스만은 아주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예상대로였기에.
전쟁의 신으로서의 수많은 경험으로
류안의 지켜보는 시선이 어떤 힘인지 누구보다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으며
또한, 그 시선을 적재적소에 맞게 이용할 줄도 알았다.
하지만, 그런 워스만과 다르게
리아인은 어이가 없고
쇼트는 놀람에 그 광경을 얼이 나간 듯 보고 있었다.
류안은 두 눈만을 깜빡였다.
‘왜들 저래?’
자신은 그저 순수하게 다들 지쳐 보여서 쉬는 것이 좋겠다 싶어 말했을 뿐인데,
왜 저러는지 이해가 잘되지 않았다.
그리고,
병사들의 모습을 보고 있던 또 한 사람.
“호오~. 병사들이 이렇게 열정적으로 훈련하는 모습은 처음 보는군.”
듀아 왕국의 국왕. 니제로 파이센.
그는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참고로 니제로 파이센은
듀아 왕국의 역대 왕 중, 최악의 왕.
겉치레와 허세, 욕심과 자존심으로 똘똘 뭉쳐있어 국정보다는 제 안위만을 챙기고 유흥을 즐기는 인물이었다.
그나마
듀아 왕국이 제대로 굴러가고 있는 것은
아버지 국왕으로부터 물려받은 성격을 잘 조율하고 이득이 되는 쪽으로 이용할 줄 아는 1 왕자 다미엔이 뒤에서 국정을 주도[主導]하고
다른 왕자 둘과 왕녀 둘이 잘 보좌해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국왕 니제로는 오늘도 심심하다며
뭐 트집 잡아 괴롭힐 것 없나,
하이에나처럼 유흥이 될 거리를 찾아 돌아다니다 보니, 연무장까지 오게 되었고,
예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훈련을 하는 병사들을 보며 정말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이 훌륭한 광경을 나만 볼 수는 없지.”
“───!!!”
국왕의 말에 뒤에 있는 시종장과 호위기사단장은 흠칫했다.
“다른 왕국에도 이 훌륭한 광경을 보여 듀아 왕국의 저력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되는데 어떤가?”
“예··· 좋은 생각이십니다. 다미엔 왕자님께 전하의 뜻 전하겠습니다.”
“그래, 준비 철저히 잘하라고 전해주게. 아, 얕보이면 안 되니, 그때 선보일 병사들의 복장도 신경 쓰라고 하게.”
“···알겠습니다.”
시종장이 명을 전하기 위해 움직이는 사이,
국왕 니제로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그 시선의 끝에는······.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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