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신병·탈취
모닥불이 타닥타닥 타올랐다. 잔월과 천희연이 빠른 경공으로 달릴 때는 무척 신났던 쌍둥이였다. 그러나 날이 밝을 즈음해서 둘의 등을 침과 콧물로 적셨다.
'나만의 협을 고집하다간 가까운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다. 아예 죽였으면 우릴 쉽게 찾지 못했을 테지.'
천리향이 어디에 묻었는지는 짐작이 갔다. 쌍둥이에게 침을 놓을 때 기침요결을 잠깐 꺼낸 적이 있었다. 기억이 확실한지 자신이 없어서 기침요결을 꺼내 확인했다.
천리향은 천 리 밖에서도 맡아지는 특별한 향이다. 그때 냄새를 들켜 무곡산장이 쫓아온 게 틀림없다.
그러나 잠깐 꺼내 보고 넣었기에 무곡산장은 거지들의 말을 듣고 나서야 잔월이 머무는 객잔을 알고 포위한 거였다.
'남개방 방주가 공손무기라고 했지. 그런데 남개방은 명교 편이고, 명교는 무곡산장 위치를 무극존자에게 알려주고. 도대체 무슨 짓이지?'
사람도 그렇고 단체도 그렇고, 간에 붙었다가 쓸개에 붙을 수 있고 간과 쓸개에 동시에 붙을 수도 있다.
'일부가 명교 편으로 가고 일부는 여전히 공손무기를 따르는 건가?'
그때 천희연이 버섯 한가득 따서 돌아왔다. 잔월은 물에 깨끗이 씻은 버섯을 종류별로 하나씩 입에 넣었다. 두 버섯이 독버섯으로 판명 났다.
독버섯은 쌍둥이들이 주워 먹을까 봐 땅에 묻었다. 남은 버섯은 꼬챙이에 꿰어 구웠다. 버섯이 익으면서 뿜어내는 구수한 향기에 쌍둥이가 손으로 눈을 마구 비비며 억지로 잠에서 깼다.
버섯을 배부르게 먹은 쌍둥이는 서로 얼굴에 검댕을 발라주며 깔깔거렸다. 그 모습에 도망의 피로가 싹 가셨다. 배가 좀 꺼지자 쌍둥이를 업고 출발했다.
"일단 북쪽으로 가죠. 종남으로 가도 되고 아미로 가도 되는 길이니까 저들도 헷갈릴 거예요."
"공손무기가 남개방 방주라는 얘기를 들은 적 있습니다. 사람 사는 곳은 최대한 피해 다녀야겠습니다."
"잠시 쉬다 갑시다."
빠른 속도로 달린 것도 아닌데 천희연이 잠깐 휘청했다. 쌍둥이들이 앓고부터 거의 눈을 붙이지 않아 피곤이 극도로 쌓였다. 피곤하긴 잔월 역시 마찬가지지만, 정신의 피로는 어쩔 수 없어도 계속 운기 되는 기성해가 피로를 풀어줘서 버틸 만 했다.
"조금만 눈 붙일게요."
천희연은 굵은 나무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쌍둥이 역시 밤새 흥분해 있었기에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았다.
잔월은 그냥 땅에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머리를 비웠다.
"이 나쁜 놈들. 멀리도 도망쳤구나."
심술 가득한 소리에 잔월은 물론 천희연과 쌍둥이도 잠에서 깼다.
'기습해도 되는데 안 한 걸 보면 자존심이 강한 자다. 잘하면 말로 풀어도 되겠다.'
자존심 강한 자들은 원칙이 많다. 대화를 많이 나눌수록 상대하기 편한 게 자존심 강한 부류다. 독심호리의 가르침이 불쑥 떠올랐다.
"무림 후배가 선배께 인사 올립니다. 저희로는 초면인데 혹시 무슨 연유로 '어린' 후배를 꾸짖는지 알 수 있을까요?"
"키도 나보다 큰 놈이."
"올해 열넷입니다."
"우린 다섯 살이에요."
"곧 여섯 살이야. 첫눈 오는 날이 생일이랬어."
등에 짐 한 보따리 짊어진 자는 키가 작았다. 다리도 짧고 팔도 짧았는데 특이하게 오른팔이 왼팔보다 눈에 띄게 길었다.
사 척은 넘은 것 같고 오 척엔 확실히 못 미치는 키였다. 키가 작다 보니 머리가 커 보였는데, 칼자국이 여럿이고 구레나룻이 수북한 험상궂은 인상에 어울리지 않게 눈동자는 무척 맑았다.
"네놈들 때문에 독충에 물렸잖아. 양심이 있다면 돌아와서 나랑 함께 싸웠어야지."
"보시다시피 아이가 있어서. 그놈들은 어린아이도 놔두지 않는 극악무도한 놈들이거든요."
"그건 그래. 그렇다고 너희 죄가 사라지는 건 아냐."
"그런데 어떻게 우릴 찾아내셨어요?"
"천리향 냄새 맡고. 그놈들은 걱정 안 해도 돼. 사향묘를 내가 죽여버렸으니까."
천리향은 사향묘 암컷의 체액을 정제한 것이었다. 발정 난 수컷은 천 리 밖에서도 그 냄새를 맡고 암컷을 찾아간다.
'잘 밀봉했을 텐데.'
잔월이 등짐에서 수통을 꺼내 보니 어느새 갈라 터졌다. 물을 넣고 다녔으면 말라 터지진 않을 텐데 잔월이 다른 용도로 사용하다 보니 대나무가 마르면서 갈라진 거였다.
"대협, 천리향이 어디에 묻었습니까?"
"거기 그 가죽."
잔월 예상과 달리 기침요결이 아닌 옥녀소수공을 적은 가죽이었다.
"천리향을 없앨 방법이 있습니까?"
"그냥 불에 태워버리면 돼."
"모친이 남긴 유일한 유품입니다."
"날 이겨. 그럼 천리향 냄새 없애줄게."
난쟁이가 갑자기 화를 내며 병장기를 꺼냈다. 왼손엔 도를 들고 오른손엔 검을 들었다.
"후배는 잔월이라고 합니다. 사부님의 월영도법으로 선배의 고명한 무공을 상대하겠습니다."
"나는 칠신병(七神兵)이다. 심법 제외하면 다 훔쳐 배운 거라서 이름도 없구나."
쌍둥이가 갑자기 짝짝짝 손뼉을 세 번 쳤다.
"비무 시작을 알리는 우리 문파 전통입니다."
천희연의 말에 칠신병은 고개를 돌려 잔월을 바라봤다.
"꼭 이겨야 합니까? 안 지면 되는 거 아닙니까?"
"넌 날 이기면서도 죽이지 말아야겠구나. 비기면 네가 이긴 거로 해줄게."
죽이지 않고 이기는 게 훨씬 어렵기에 난쟁이는 비기기만 해도 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거다."
"피 토하는 무공."
'아냐, 조금 달라.'
완안덕명을 상대할 때 잔월은 존재감을 완전히 지웠다. 그러나 지금은 아주 미약한 존재감이 있었다. 마치 상대 공격을 유도하듯이 단전 근처에 존재감이 남았다.
칠신병은 머리를 마구 털었다. 눈에 보이는데 존재감은 점 하나만 남은 잔월이 이해되지 않았다. 심법만 사부를 모시고 배웠고 초식은 얻어맞으며 훔친 거여서 무공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검과 도를 내려놓은 칠신병은 보따리에서 막대기를 꺼내 조립했다. 짧은 막대기들이 이어져서 창과 곤이 되었다. 그러나 창과 곤을 잡아도 잔월을 공격할 수 없었다.
"분명히 귀신은 아닌데."
대낮에 햇빛 아래 모습을 당당히 드러낸 걸 보면 귀신은 아닌 것 같았다.
방패를 잡은 칠신병은 꽤 오래 고민했다. 방패로 공격하면 상대 반격을 차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확신이 서지 않아 방패도 내려놓았다.
바깥에 날이 선 둥근 환을 집어 든 칠신병이 내공을 끌어올렸다. 칠신병 손에 잡힌 환이 맑은 울음소리를 냈다.
"가라. 피 머금기 전엔 돌아오지 말아라."
검은색 철로 만든 환이 빠르게 회전하며 잔월이 드러낸 명치의 점으로 향했다. 그때 잔월의 신형이 흐릿해지더니 환이 그대로 통과했다. 환이 지나가자 잔월 모습이 다시 나타났다. 여전히 명치 부근에만 흐릿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조심."
"사부."
환이 다시 돌아오며 등 뒤에서 공격하자 쌍둥이가 놀란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환은 다시 잔월의 흐릿한 몸을 통과했다. 칠신병의 몸을 빙 돈 환이 그대로 잔월을 향해 날아갔다.
"이기어물?"
천희연이 상식을 벗어난 환의 움직임에 깜짝 놀랐다.
'아니야. 이건 외혈이랑 비슷한 거야.'
예전에 월영고랑이 바닥에 있는 돌멩이를 손에 빨아들인 적 있었다. 두천이나 자강은 허공섭물로 오해했지만, 잔월은 다섯 가닥의 경력이 돌을 차례로 때려서 월영고랑 쪽으로 튕겨나게 한 것임을 알았다.
마찬가지로 환이 허공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듯했지만, 잔월은 칠신병도 환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함을 알았다.
"제길. 이건 안 쓰고 싶었는데."
칠신병은 환에 내공을 심어 던진 다음 환에 있는 내공과 공명한다. 마음대로 제어하진 못해도 환에 심은 내공을 뭉치고 흩어버리는 거로 환의 방향을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격필살로 사용하는 건 가능해도 오랜 기간 환을 계속 제어하는 건 내공이나 심력에 너무 부담이 컸다.
"암기다. 마흔아홉 개 암기가 너를 공격할 것이다. 네가 무슨 수법을 썼는지 몰라도 진짜 사라진 게 아니라면 내 암기를 피하지 못할 것이다."
대부분 무인은 암기 사용을 정정당당하지 못하다며 부끄럽게 여겼다. 독물을 다루는 건 본인도 물릴 위험을 안고 하는 거지만, 암기는 그렇지 않았다.
"공령은 형체가 없는 게 아니고 환허는 숨기는 거지 사라지는 게 아니다."
공령환허의 한계를 알리는 첫 구결이었다. 하수가 눈에 보이는 형체를 칼로 찌르면 꼼짝없이 당하는 게 공령환허다. 모든 감각을 동원해 상대 속임수를 파악하고 실체를 찾아 정확히 찌르는 고수한테만 먹혔다.
'그러나 섬전도와 결합하고 존재감을 내가 원하는 대로 보여줄 수 있다면?'
잔월이 갑자기 거인이 되었다. 모습은 그대로인데 존재감이 엄청나게 커졌다.
"제길."
칠신병의 손에서 나간 암기 대부분이 빗나갔다. 갑자기 커진 존재감에 암기를 던진 범위를 잔뜩 늘려버렸다.
"가져와."
칠신병은 옥녀소수공이 적힌 가죽에 검푸른 액체를 발랐다.
"천리향 없애는 약에 사향묘가 두려워하는 뱀독을 섞은 거다."
가죽을 받아든 잔월은 기름종이로 감싼 다음 수통에 넣었다. 수통의 갈라진 부분은 진흙으로 메꿨다.
"여기까진 어떻게든 쫓아오겠지. 너흰 어서 도망쳐라. 난 남아서 그놈들과 싸워야겠다."
"후의에 감사드립니다."
"후의는 무슨. 싸움이란 자고로 치고받고 해야 하는데. 어린놈이 벌써 길을 잘못 들었어."
잔월과 찝찝하게 끝낸 칠신병은 이곳에서 쫓아오는 자들과 한바탕 싸울 생각이었다.
"잠깐, 가기 전에 내 암기 좀 주워줄래? 비싼 것들이거든."
넷은 칠신병을 도와 암기를 주웠다. 나무를 자르고 바위를 부숴 안에 박힌 암기를 꺼내고 땅에 깊숙이 들어간 암기도 파냈다.
뿌린 암기를 모두 찾고 칠신병과 작별인사를 했다. 쌍둥이는 우연히 찾은 재밌는 놀이가 너무 빨리 끝나 아쉬웠는지 계속 고개를 돌려 칠신병을 바라봤다.
"세상엔 신기한 사람이 참 많군요. 칠신병 기척은 객잔에서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반박귀진의 경지 아닐까요?"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내공만 반박귀진이 가능한지 모르겠네요. 무기 일곱 개나 사용하는 것도 그렇고, 아까 무기를 잡은 모습을 보니 제대로 무기 다루는 법을 배운 것 같진 않더군요. 무기를 배울 때 가장 먼저 가르치는 게 반드시 하지 말아야 할 금기거든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우선 가르치고 그다음에 무기 특성에 따른 사용법을 가르칩니다. 제대로 배웠다면 칠신병과 같은 자세가 나올 수 없어요."
'월영도법을 제대로 익히려면 칼 잡는 법부터 고민해야겠구나.'
아주 기초부터 차근차근 쌓아야겠다고 다짐했다.
七神兵 칠신병이
奪臭 냄새를 없애주다
- 작가의말
칠신병은 쌈닭입니다. 취미가 상대 초식 훔치기여서 잔월이 무척 마음에 안 들 겁니다.
연재 24일 만에 80화에 이르렀습니다. 현재 남은 비축분은 30화 조금 넘습니다. 제가 4월 하순에 체해서 고생 좀 했습니다. 최근 20일에 비축분을 20편 정도만 쌓았습니다.
일단 100화까지는 8시와 18시에 한 편씩 매일 두 편 올리겠습니다. 그 뒤에는 비축분 상황을 봐가며 조절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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