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일전
"독고 대장, 놈이 불었소."
"위치."
"공손평천은 대도에 있다고 하오."
대도는 원나라 수도다.
'잘됐다. 완안덕명도 거기 있으니. 한꺼번에 다 처리해야겠다.'
"괴롭히지 말고 깔끔하게 보내."
무림맹 추마대(追魔隊)는 여섯 무리로 나뉘어 공손평천의 종적을 쫓았다. 화산, 무당, 소림, 개방, 남궁가 그리고 운룡곡이 주축이었다.
"시체를 양지바른 곳에 묻어. 그리고 서안에 가서 대기한다."
멸세교 무인의 말이 진실인지는 개봉에 있는 북개방이 알아서 판단할 것이다. 거짓이라면 계속 멸세교 무인으로 의심되는 자들 위치를 알려줄 것이고, 진실이라면 무림맹은 대도로 향할 것이다.
"술은 적당히 마시고. 급한 일 있으면 비둘기 날려."
서안에 도착하고 잔월은 담두천과 한자강과 함께 화산으로 달렸다. 한자강은 당선령과 혼인했고 담두천은 남궁청영과 혼인했다.
잔월은 신혼인 둘 못지않게 다급했다. 화산을 떠나고 나서야 천희연이 임신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멸세교 무인을 쫓느라 아홉 달 가까이 화산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단무전이 정기적으로 편지를 보내 모자가 건강하다고 알려왔지만, 직접 보기 전에는 시름을 완전히 놓을 수 없었다.
"사부, 사부. 누나 뚱보 됐어요."
잔월을 가장 먼저 발견한 건 흑표였다. 흑표랑 놀아주던 쌍둥이도 오랜만에 보는 잔월을 반겼다.
흑표가 데리고 있던 암컷들은 임신하자마자 떠났다. 흑표는 '가족'을 부양하려 했지만, 암컷들은 평범한 표범이었다. 본능이 가르친 대로 임신 목적을 달성하자 강대한 지배자가 있는 땅을 떠났다.
셋은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불같았지만, 우선 장문을 비롯한 존장을 찾아뵙고 일일이 인사 올렸다. 다행히 눈치 없이 셋을 잡고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는 사람은 없었다.
한편.
개봉의 북개방 총단에는 수많은 정보가 쏟아졌다. 멸세교 무인을 찾아다니는 거지들이 보내온 소식도 있고, 멸세교 무인을 잡아 신문한 결과를 알리는 보고서도 있었다.
"이상합니다. 여섯 모두 공손평천이 대도에 있다고 보고를 올렸습니다."
건곤십팔타, 타구봉법을 비롯해 스무 개가 넘은 비급을 찾아온 덕분에 청강은 장로가 되었다. 잔월처럼 이름만 장로인 게 아니라 실질적인 권한도 갖춘 장로였다.
방주를 비롯해 대부분 고수는 타구봉법 혹은 건곤십팔타를 익히는 데 몰두하는 바람에 청강이 무림맹 개방 대표가 되었다.
"진위는 대도와 가까운 곳에 사는 팽가에서 확인한다고 합니다. 우린 느긋하게 답변이나 기다리죠."
운룡곡을 대표하여 온 제갈속은 급할 게 없다는 태도였다.
"뭔가 꾸미는 것 같아서 그러는 겁니다."
청강의 말에 제갈속이 고개를 저었다.
"꾸미는 거 없습니다. 그냥 우리보고 대도에 와서 힘으로 붙자는 겁니다. 자신이 천마라고 주장하는 이상 공손평천은 비겁한 수단을 대놓고 못 씁니다."
청강은 생각에 잠겼다.
"그래도 뭔가 생각이 있는 거 아닐까요?"
"다들 모이면 얘기하려고 했는데, 청 장로한테 미리 얘기하죠."
제갈속은 짐짓 목소리를 낮췄다.
"공손평천은 왜 멸세교 무인이 필요할까요?"
"무극존자나 독고 장로나 쉬운 상대가 아니니깐요."
"바로 그겁니다. 만약 무극존자나 독고 장로 같은 위협이 없다면 멸세교 무인이 굳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천마라고 거짓말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죠."
청강은 제갈속의 말을 단번에 알아듣기엔 머리도 뛰어난 편이 아니고 경험 역시 부족하다.
"공손평천이 천마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서슴없이 떠날 멸세교 무인을 무림맹과 싸우며 소모하면 어떨까요? 다 소모하지 않더라도, 무림맹과 적이 된 멸세교 무인이 공손평천을 쉽게 떠나지 못할 거고요."
"강한 적이 있으니 공손평천에게 멸세교 무인이 필요했군요. 마찬가지로 멸세교 무인에게 강한 적을 만들어서 공손평천 자신을 필요케 하려는 거군요."
"게다가 위협이 되는 고수를 제거하면 더 좋고요. 적이든 아군이든 말이죠."
"어떻게 보면 마지막 전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청강의 말에 제갈속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전투의 승패에 따라 천하와 강호의 판도가 달라진다. 전투 한 번에 모든 게 끝나진 않겠지만, 마지막 전투나 다름없다.
"우린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남궁가의 생각대로 해야죠. 주원장의 군대와 함께 대도에 입성해야 합니다. 원의 기병은 무인으로서도 상대하는 게 쉽지 않으니깐요."
"원은 이미 강풍 앞의 촛불입니다. 도망가려고 이미 귀한 재물을 북쪽 초원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공손평천이 무슨 수로 원 황제를 설득해 대도에서 최후 항전하게 한다는 말입니까?"
"그건 팽가가 알아내서 소식을 보내오겠죠."
대도.
팽재기는 환관과 술잔을 기울였다. 어릴 적부터 친하게 지냈는데 몇 년 전에 부모가 자식을 황궁에 팔았다. 황실 기강이 엉망이어서 환관도 외출이 자유로웠다.
"공손평천이라는 자가 밤에 황제 침소로 몰래 들어갔대."
"진짜? 무력으로 들어갈 만한 자는 여럿 되어도 몰래 들어갈 만한 자는 없을 텐데."
"진짜야. 그리고 둘이 반 각 정도 얘기를 나눴어."
"그 뒤엔 나타난 적 있어?"
"뭐가 그리 급해? 불알에 불붙은 놈처럼."
팽재기는 한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속도 꽁한 놈이 그대로 입을 다물어버릴까 봐 꾹 참았다.
"그리고 며칠 뒤에 고수 수천 명을 거느리고 나타났어. 모두 주먹으로 돌을 깰 정도의 고수였어."
'주먹으로 돌을 깨는 건 소용없지. 화살 비에서 살아남을 정도의 고수냐가 중요해.'
무인이 전장에서 부족한 건 공격이 아닌 수비다. 화살이 심장에 꽂히면 죽는 건 똑같다. 갑옷도 막아주는 데 한계가 있기에 전장에서 살아남는 덴 내공보단 외공 익힌 무인이 월등히 유리했다. 그리고 외공 익힌 자들 대부분은 강호에서 고수 소리를 듣지 못한다.
"지금 공손평천은 국사(國師)가 되었어. 황제가 조서를 보내 병사를 긁어모았는데, 아마 석 달이면 백만 명 모일 거 같아. 중원은 자기 땅 아니라고 생각하고 점령 대신 약탈과 파괴만 할 거래."
팽재기 외에도 팽가 무인들은 각자 방식으로 정보를 알아냈다. 모든 정보를 취합하여 개봉으로 보냈다.
팽가의 정보가 도착할 즈음하여 개봉에 무림맹 수뇌들이 전부 모였다. 그리고 주원장이 보낸 유백온도 있었다.
두 가지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수비를 든든히 하여 저들이 제풀에 지치기를 바라는 자들이 있었다.
"강남을 잃은 원은 식량이 부족합니다. 쌀을 더 남으로 옮기고 황하와 장강을 지키기만 해도 저들은 지칩니다. 결국, 알아서 무너질 겁니다."
반대파의 생각은 달랐다.
"저들은 민가를 약탈할 것이오. 그리고 굶주린 자들을 남으로 쫓겠지. 그럼 우리 역시 식량난을 겪게 되오. 게다가 우리 주적은 원이 아니오. 원은 어차피 망하게 되어있소. 공손평천이 형세가 불리해져 사라지면 어떻게 할 거요?"
"공손평천의 목적은 황제가 되는 것이오. 이걸 염두에 두고 대도에 모습을 드러낸 목적이 뭐고 어떻게 잡아야 할지 고민해야 하오."
"황제가 되려면 땅이 있고 백성이 있고 국가를 관리할 신하가 있어야 하오. 대도에 간 목적은 신하를 얻으려는 게 아니겠소? 원의 신하들 마음을 얻기만 하면 적대하는 자를 모두 죽여 천하를 차지하려는 속셈이겠지."
진우량은 죽었고 진선은 무당 제자가 되었다. 진선의 동생 진이가 주원장에게 투항하여 천완 정권은 철저히 파멸했다.
이젠 장사성도 몇 개 성을 차지하고 근근이 버티는 수준이었다. 이 기회에 공손평천이 원 황제를 죽이고 그 기반을 흡수한 다음 주원장까지 죽이면 황제 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렇게 하는 게 어떻겠소?"
듣기만 하던 유백온이 입을 열었다.
"무림맹에선 천하 고수를 다 모아주시오. 우리 역시 폐하께서 어가친정할 것이오."
주원장은 마찬가지로 오왕을 칭하던 장사성을 궁지에 몰아넣은 후 응천부를 수도로 삼고 국호를 대명으로 연호는 홍무로 했다.
"위험한 거 아니오?"
"천하 고수가 모인 곳이 안전하오. 그리고 폐하께서 대도에 있으면 공손평천이라는 자가 쉽게 도망가지 않을 거 아니오. 진명천자(眞命天子) 소리를 들으려면 폐하와 대적하는 도중 도망치지 못하오."
원 황제와 명 황제가 싸우는 자리에서 공손평천이 도망가는 건 어렵다. 천마로 우기려고 상처 입는 것조차 조심했다. 마찬가지로 하늘이 내린 황제 소리를 들으려면 대도에서 원 황제와 주원장을 모두 이겨야 한다.
"욕심이 많은 자는 손발이 자유로울 수 없소. 이 욕심에 묶이고 저 욕심에 걸려서 마음껏 활개 칠 수 없지. 이번 기회에 원 황실 혈통도 지우고 공손평천이라는 큰 걱정거리도 없애야 하오."
유백통의 말에 제갈속이 반박했다.
"그것 역시 욕심 아니오?"
"욕심의 줄을 끊을 힘이 있다면 욕심 좀 부려도 되지 않겠소? 안전하게 성공하려는 욕심에 모험을 주저하다가 오히려 일을 망칠 수도 있소. 지금이 적기요."
유백통의 단호한 말에 누구도 반대하지 못했다. 운룡곡이야 바깥세상에 나올 생각이 없지만, 다른 세력은 황제 눈치를 봐야 한다. 여기서 너무 강하게 반대하면 미운털이 박힐 수 있다.
며칠 후.
주원장이 이십오만 대군을 거느리고 북상했다. 동시에 천하 각지에서 무림맹의 서신을 받은 고수들이 움직였다. 일부는 개봉으로 가고 일부는 직접 대도로 향했다.
"부군, 부디 몸조심하세요."
"내 걱정은 말고 몸조리 잘하시오. 무극존자도 온다고 하니 공손평천을 죽일 수 있을 거요. 천하가 태평하고 강호가 안녕하여 우리 후손 대대로 좋은 세상만 보고 살면 얼마나 좋겠소."
"위험한 일은 꼭 피하세요. 좋은 세상은 부군 아니어도 만들 사람 많습니다."
당선령과 남궁청영 역시 한자강과 담두천 손을 꼭 잡고 몸 사리라고 신신당부했다.
대도는 검선까지 넷이 가기로 했다. 독심호리는 무림맹 일로 바빴고 용호도인 역시 끊이지 않는 손님으로 몸이 셋이어도 부족했다. 종리형은 장문인이어서 쉽게 문파를 비울 수 없다.
월영도랑은 어린 제자들을 가르쳐야 하고 남은 사람은 실력이 조금 부족했다.
넷은 경공을 펼쳐 대도로 직접 향했다.
"우리 목표는 완안덕명이다. 공손평천을 죽이면 천하제일로 이름을 떨칠 수 있겠지만, 그런 허명을 좇지 말아라."
싸움이 벌어지기 전에 완안덕명을 먼저 처리할 예정이었다.
"허명이 아니어도 반드시 죽여야 할 자입니다."
"네 말을 들어보니 공손평천은 강하면서도 조심스러운 자다. 그런 자를 죽이려면 경거망동해선 안 된다. 우리 넷은 완안덕명만 죽인다. 공손평천은 다른 사람들이 온 이후 기회를 노리도록 하자."
검선은 셋이 젊음의 호기로 공손평천을 노릴까 봐 걱정되었다. 노파심에 가는 내내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最後 마지막
一戰 승부
- 작가의말
팽재기는 환관과 술잔을 기울였다.
원래는 불알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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