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1화. 전쟁의 서막(1)
331화.
역시 많은 시간이 흘렀다.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아 한발짝도 밖으로 나오지 않은 결과였다.
"영지에 별일은 없지?"
"후우, 그게 문제가 조금 생길것 같습니다. 먼저 피오트르 왕국 국경으로 토르치 왕국군이 집결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저희 영지 위쪽에 있는 모로스 백작이 불만을 토하고 있는 중입니다. 모로스 백작의 성격으로 볼때 머지않아 영지전을 걸어 올것으로 예상됩니다."
어느 정도 이유를 예상할수 있었다. 확신을 하기 위해 남작의 설명을 더 들어야 했다.
"토르치 왕국의 파이츠 무역 도시와 로드 왕국의 스와튼 무역 도시와의 상행로가 막혔다고 합니다. 사막으로 들어가는 지름길인 협곡이 무너져 길이 없는 상태로 파이츠 무역 도시는 패닉에 빠져 들었을때 남쪽이 피오트르 왕국의 피시레 남작령과 저희 영지를 관통하는 터널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토르치 왕국에서 병력을 국경으로 집결해 토르치 왕국에서 협곡을 무너 뜨린것이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는 중입니다. 저희 영지 위쪽의 모르스 백작 영지도 마찮가지로 스와튼 무역 도시가 쓸모가 없게 되어 영지의 주수입원인 세금이 대폭으로 줄어든 상태로 터널이 있는 저희 영지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중입니다."
모든 책임은 터널을 파고 협곡을 무너뜨린 켄 자신에게 있었다. 하지만 토르치 왕국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헤르난데스 영지는 오히려 잘된 일이다. 모로스 백작령이 예전에 헤르난데스 백작령이었기 때문이다.
"모로스 백작이라는 놈이 영지전을 신청하면 받아줘. 이 기회에 옛 땅을 수복하자."
"알겠습니다."
남작도 흥분되는지 얼굴이 환해졌다. 헤르난데스 가문의 숙원이 모르스 백작이 소유하고 있는 백작성을 돌려 받는 일이다. 그런 성을 돌려 받기 위해선 영지전에서 모로스 백작을 죽여 완전히 병합하는수 밖에 없다.
"그리고 슬라프 자작이 방문했었습니다. 열흘동안 머물며 마스터를 뵙기를 기다렸지만 만날 여건이 되지 않아 선물만 남겨 놓은채 돌아 갔습니다."
슬라프 남작은 자작으로 승급했다. 소영주 제롬의 부인인 샤미의 친아버지로 영지전을 도와 주어 지금은 넓은 영지를 손에 넣은 상태다. 영지를 수습하고 헤르난데스 영지로 찾아 오라고 했었는데 누구도 방안으로 들이지 말라고 명령한채 방안에만 틀어 박혀 있었던 관계로 찾아 온줄도 모르고 있었다. 남작이 슬라프 자작이 가져 온 선물 상자를 보여 주었다. 중급 마나석 3개가 들어 있었다. 마법사에겐 최고의 선물이다.
"너희들이 한개씩 나눠 가져."
"그, 그래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야. 그리고 이걸 받아. 영지전이 벌어지면 연락해. 난 피시레 남작령으로 가 봐야겠다."
남작에게 마법 영상 통신판이 아닌 통신 구슬을 주었다. 이곳에 도착해 부하들에게 준 마법 영상 통신판에 연락을 넣어 봤지만 한명도 연락이 되지 않았었다. 북크가 모는 마차를 타고 폴라리스 마을로 이동해 터널을 따라 피시레 남작령으로 들어 갔다. 북크는 마차를 모는 훈련을 많이 했는지 예전에 비하면 한결 능숙하게 마차를 몰았다. 터널 입구쪽에는 큰상점가가 들어선 상태로 수많은 상인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지금도 계속 새로운 건물을 짓고 있는 중이었다. 터널 출구인 피시레 남작령쪽도 마찮가지였다.
"마차에 누가 타고 있는지 알려 주십시요."
상인들에게 물어 물어 피시레 남작령 외성문앞에 도착하자 검문을 하고 있었다. 전쟁이 기운이 감도는 남작령은 불길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마법사님이 타고 계십니다."
"어떤 일로 방문한 것입니까?"
북크의 대답에 창문을 열고 얼굴을 슬쩍 보여 주며 남작을 찾아 왔다고 말해 주었다. 그러자 경비병이 직접 안내를 자청했다. 내성문까지 도착하자 잠시 기다리라고 한뒤 경비병이 내성문 경비 책임자로 보이는 기사에게 무슨 말을 하자 기사가 마차로 다가와 얼굴을 보여 달라고 하며 누군지 물었다.
"켄이다. 남작에게 그렇게 말하면 알것이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요."
안쪽으로 기사가 사라진후 조금 시간이 지나자 피시레 남작이 내성문쪽으로 달려 왔다.
"어, 어서 오십시요. 모시겠습니다."
남작을 따라 집무실로 들어 가자 소영주도 기다리고 있었다.
"전쟁의 기운이 감돈다고 해서 찾아 온거다."
"아! 감사합니다."
"자세히 말해봐."
피시레 남작의 설명을 듣고 정말 전쟁이 임박했다는걸 알수 있었다. 토르치 왕국과는 예전에도 정쟁이 몇번 있었다고 했다. 불과 50년전의 전쟁으로 인해 그 전쟁을 기억하고 있는 자들이 많다고 했다. 피시레 남작령의 위에 있는 영지는 변경백인 그라함 후작 영지다. 피시레 남작령은 길쭉한 모양의 영지로 그라함 후작 영지 아래쪽에 위치한다. 그라함 후작 영지와 피시레 남작 영지 모두 동쪽으로 죽음의 산맥에 접하고 있다. 또한 그라함 후작 영지 바로 위쪽으로 국경을 마주하는 왕국이 토르치 왕국이다.
피오트로 왕국의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예전에는 죽음의 산맥에서 몰려오는 몬스터 웨이브에 큰피해를 입는 탓으로 쓸모없는 영지였지만 지금은 몬스터 웨이브가 없긴 하지만 근근히 먹고 살기도 힘든 영지다. 그런 영지에 서대륙과의 무역로가 생긴것이다. 무역로는 비록 피시레 남작령안에 있지만 반드시 그라함 후작령을 통과해야 피시레 남작령안으로 들어 갈수 있다. 그런 덕분에 그라함 후작령에 떨어지는 콩고물도 무시할수 없게 되었다. 예전에는 포기해도 되는 영지였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예를들면 북한의 두만강 동쪽에 국경을 접하고 있는 러시아와의 국경이 죽음의 산맥이고 동해쪽이 피시레 남작령, 남작령을 가로로 절반 가른 상태의 위쪽이 그라함 후작령이 길게 뻗어져 피시레 남작령을 둘러 싸고 있는 형태다. 그런 그라함 후작령 위쪽이 토르치 왕국이다. 피오트르 왕국에서는 그라함 후작령만을 지원할수 없는 처지라고 했다.
다른 국경쪽에도 토르치 왕국군이 집결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라함 후작령는 무너져도 별문제는 없지만 다른쪽의 국경이 무너지면 수도로 토르치 왕국군이 몰려 올수도 있는 관계로 후작령과는 반대쪽에 병력을 집결시키고 있어 피시레 남작령은 변경백인 그라함 후작과 함께 토르치 왕국군에 맞설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것이다. 병력도 보잘것없는 남작령은 절대적으로 그라함 후작에 의지할수 밖에 없다고 했다. 그런 전쟁의 기운이 감돌자 상인들도 점점 상행을 자제하는 분위기로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면 상행이 뚝 끊길것이다.
"남작 영지가 그라함 후작 영지안에 있다면 왜 후작은 남작 영지를 삼키지 않는거냐?"
변경백이라면 큰힘을 보유하고 있을것이다. 조그마한 피시레 남작령쯤은 언제든지 집어 삼킬수 있는데도 그냥 놔둔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건 몬스터 웨이브 때문입니다. 원래는 그라함 후작 영지에 이 영지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몇년에 한번씩 몬스터 웨이브로 인해 피해가 가중되자 피해를 분산시키자는 의도로 그 당시의 가신이었던 선조님에게 영지를 떼어 주어 남작령으로 만든것입니다."
남작의 설명에 납득이 되었다.
"그럼 언제 후작령으로 출발하나?"
"당장이라도 출발해야 하지만 아직 징집이 끝나지 않은 상태입니다."
"몇명이나 징집할려는데 그렇게 시간이 걸리나?"
"적어도 천명은 징집해야 합니다."
천명이 많은것 같지만 전쟁이 시작되면 보잘것없는 병력이다. 또한 징집병인 탓으로 제대로 훈련도 되어 있지 않는 평민들은 제대로 된 무기도 없을것이다. 인원수만 채워 죽음의 전장으로 내몰리면 화살받이로 사용돼 거의 대부분이 죽어 나간다. 그렇게되면 영지의 농사를 지을 인원이 부족해 심각한 식량 위기에 빠져 버린다.
"징집은 그만둬. 내가 직접 용병으로 참전할께."
"저, 정말 그렇게 해 주시겠습니까?"
죽음의 산맥을 불과 두달정도만에 터널을 뚫을 정도의 고서클 마법서다. 그런 마법사가 용병으로 참전한다면 굳이 징집병들을 모을 필요는 없었다. 고서클 마법사 한명만으로도 수천명의 병력을 대신할수 있는 것이다.
"그래. 대신 반대쪽인 헤르난데스 영지도 영지전이 벌어질지 몰라. 그래서 전쟁이 끝날때까지 계속 같이 있을순 없지만 적군에게 심각한 타격을 입혀 주고 난 전쟁에서 빠질 생각이야."
"그럼 그쪽도 터널때문에 영지전이 벌어지는 겁니까?"
"그럴꺼야. 내 책임도 없지 않아 참전하는거야."
"감사합니다."
그라함 후작 영지로는 다음날 바로 출발했다. 소영주는 남작령을 관리하고 남작이 직접 기사 한명과 병사 10명을 데리고 켄과 함께 출발한것이다. 남작령에는 기사가 단두명밖에 없었다. 한명은 영지에 남고 한명은 남작의 호위 기사로 가는 것이다. 병사들은 그런 남작과 호위 기사를 시중드는 역활로 동행했다. 병사들은 수레 두대를 끌고 갈려고 했다. 식량과 천막이 실려 있는 수레였다. 그런 수레를 아공간에 집어 넣자 남작은 물론 같이 가는 기사와 병사들이 턱이 빠질정도였다.
남작과 기사는 전마를 타고 병사들은 속보로 이동했다. 강행군이었다. 후작령까지는 3일거리였지만 병사들은 녹초가 되어 있었다. 후작령으로 들어서 국경 지역으로는 다시 3일거리다. 야영을 할땐 병사들이 천막을 치고 식사를 준비했지만 남작과 기사만이 제대로 된 식사로 병사들은 멀건 수프와 딱딱한 빵이 다였다. 그런 병사들에게 말랑말랑한 빵을 건네 주고 큼직한 고기 덩어리도 건네 주어 굽게 했다. 고기 덩어리를 칼로 잘라 후추를 뿌려 모두 함께 푸짐하게 식사를 했다. 남작도 자신에게 준비한 요리는 뒷전으로 켄이 준비한 요리를 먹었다.
점심은 보통 거르지만 잠시 쉬면서 간단하게 빵과 과일로 식사를 했다. 평소와는 비교도 할수없는 화려한(!?) 요리에 병사들은 물론 남작까지 만족스러워하는 나날이었다. 넓은 평원에 일만명은 될법한 병력들이 집결해 있었다. 모두 그라함 후작령의 병사들이다. 수천개의 천막이 세워져 있는 곳의 중앙에 화려한 천막이 있는 곳으로 안내되어 갔다. 그곳이 그라함 후작이 직접 참전해 있는 막사였다. 후작 영지의 다른쪽이 아닌 이곳으로 직접 왔다는건 그만큼 피시레 남작령을 중요시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후작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서 오게나."
그라함 후작은 중후한 분위기의 50대로 보이는 자였다.
"마법사 분을 소개시켜 드리겠습니다. 켄이라는 마법사십니다."
"오오! 반갑네. 데라시모 드 그라함 후작이네."
"반갑다. 야마모토 켄이다."
머리에 뒤집어 쓰고 있던 후드를 뒤로 넘기며 후작에게 인사를 했다.
"허허허, 젊은 사람이 패기가 있어 좋군."
그러자 후작은 반말에도 불구하고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반말도 아무렇지도 않는듯했다.
"후작에겐 미리 말해 두지만 이 전쟁은 나 때문에 발생한거야. 내가 피시레 남작령으로 터널을 뚫은 장본인이거든. 그래서 책임을 질려고 전쟁이 참가한거야."
"그게 정말인가? 자네 혼자서 그런 터널을 뚫었단 말인가?"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었어."
후작에게는 피시레 남작에게 말한것을 그대로 말해 주었다. 적군에게 치명적인 타격만 주고 빠진다고 했다. 그런 말에 후작도 켄이 고서클 마법사인것을 알아 차린것 같았다.
"젊은 나이에 굉장한 경지에 접어 든것 같군."
칭찬인지 경지를 넌지시 알려 달라는 건지 모를 말이었다.
"후작에게는 한가지만 당부할께. 피시레 남작령을 건드릴 생각은 하지마. 후작은 그런 의도가 없을지라도 만약 후손들이 욕심을 부려 남작령을 집어 삼키면 반대쪽 로드 왕국의 헤르난데스 영지에서 터널을 무너 뜨릴꺼야."
"자네는 헤르난데스 영지와는 어떤 관계인가?"
"......"
어떻게 설명할지 잠시 생각을 해야했다. 생각을 정리하고 후작과 남작외에는 모두 막사에서 내 보내라고 했다. 이곳에는 후작 호위 기사는 물론 다른 귀족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모두 나가게."
후작의 명령에 군말없이 모두 나갔다. 후작의 영향력이 대단하다는걸 알수 있었다.
"500년전의 알렉스 폰 헤르난데스 공작을 알고 있겠지?"
"물론이네."
"그런 헤르난데스 공작의 마스터가 바로 나다."
"뭐라고? 그게 정말인가?"
처음으로 후작의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조용히 듣고 있던 피시레 남작도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후작이 믿던 믿지 않던 난 사실대로 말했을뿐이다. 마법사들이 어떤 족속들인지 알고 있다면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잘 알꺼야."
"사, 사실이군요."
"그냥 편하게 말해. 그게 나도 불편하지 않아."
갑자기 반말을 하던 사람이 존대를 하면 어색하게 들린다. 그런 점을 지적한 것이다.
"그, 그래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야."
"허허허, 처음부터 반말을 하길래 뭔가 있다고 생각했었네."
그라함 후작은 눈앞의 젊은 마법사가 드래곤이라고 생각했다. 드래곤이 아니라면 절대로 500년이상이나 생존할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드래곤이라고 물어 볼수도 없었다. 드래곤의 유희를 방해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냥 모르는척 하라는 대로 따라 주면 되는 것이다. 이번 전쟁은 이미 승리의 축배를 들어도 된다. 드래곤이 참전한 이상 패배는 있을수 없기 때문이다.
병력수에서 밀리고 있는 탓으로 이번 전쟁은 암울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제는 병사들의 사기를 하늘을 찌를것이다. 드래곤이 전쟁에 참전했다고는 말할수 없지만 마도사가 참전했다는 것을 알리면 아무리 많은 적군일지라도 승리할수 있다는 자신감에 부풀어 오를것이다.
전쟁이 시작되기까지 자신에게 배정된 넓은 천막안에서 지냈다. 후작의 식사 초대에 몇번 참여만 했을뿐 대부분 천막에만 틀어 박혀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알고 있을 것이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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